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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 - 위기에 내몰린 개인의 생존법은 무엇인가?
브래드 에반스.줄리언 리드 지음, 김승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국가가 조장하는 위험들'이라는 제목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전쟁, 테러...계속되는 재앙과 재난 속 안전과 안보를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 통제 시스템의 진실'이라는 홍보문구를 보면, 국가 안보 시스템의 허점을 파헤치고 비판하는 책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국가보다는 전 세계 국가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 이전의 자유주의가 낡은 옛 관습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 반면, 신자유주의는 인간이 자신의 지성으로 옛 습관, 관습, 제도, 신념을 새로운 현실 조건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위험을 겪고 나서 스스로를 회복시키는 역량, 즉 회복력을 키워야 한다고 독려하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기만적인 일인지를 밝히고 있다.(그래서 원제도 '회복력 있는 삶 Resilient Life'다.)
과거에 국가 권력은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명목으로 국민들의 삶에 개입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위험은 주로 지구 전체의 위험, 특히 생태계적인 위험이다. 인류는 지구 생태계의 일부지만, 산업 발전을 위해 지구를 이용하면서 환경을 파괴시키고 자원을 고갈시켰다. 인류 스스로 전 지구적 위험을 일으킨 것이다. 위험 자체는 완전히 제거할 수 없고, 우리 모두는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주장이다. 그러니 개개인이 위험을 겪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위험을 겪고 나서 회복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지구상의 생물종들이 위기를 넘기고 진화했듯이, 우리가 위기를 통해 오히려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그저 위험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삶을 거부한다. 그러한 삶은 불안에 사로잡혀 그저 살아남는 것 이상의 삶, 더 나은 삶을 꿈꾸지 못한다. 위험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위험에 적응하고 대처하는 삶만을 살다보면 우리는 불안과 고통에 우리 자신을 소진시켜 버린다. 저자들은 미래를 우리에게 올 재앙으로만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삶과 세상을 꿈꾸자고 주장한다. 팍팍한 현재와 막막한 미래에 한탄하고 있지만 않고, 신자유주의와 국가 권력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고 저항하는 것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본다. 이성으로 신자유주의 통치의 허점을 알아채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상상력으로 세상이 정한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변화시킨다. 저자들은 회복력에 의존하는 삶 이상의 삶이 있음을 믿는다.
정치철학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이 책은 정치적이기보다 철학적으로 느껴진다. 사회과학 서적인데도 시적인 표현들이 많이 사용되고, 대안은 다소 원론적이고 이상적이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은 다소 동어반복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상상력으로 신자유주의나 국가 권력이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삶 너머를 바라보자는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정신승리에 그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작은 억압 하나도 이길 힘이 없는데 상상이 무슨 힘이 있을까. 그래도 지금의 고통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지금의 삶을 저당잡히지 않고,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싶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지고, 세상이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