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 생명 과학 기술의 최전선, 합성 생물학, 크리스퍼, 그리고 줄기 세포
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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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인간 유전체(게놈 genome, 한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 정보 전체)의 모든 정보를 읽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23년 만에 완료되었다. 인류는 이제 자신의 유전 정보를 모두 알 수 있는 '포스트 게놈(게놈 프로젝트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쉽게 얻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유전 정보를 모두 읽어내고 분석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니, 이제는 역으로 유전 정보를 조립해 인간이 원하는 대로 생명을 설계하고 편집하고 창조하려는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런 연구들을 통틀어 '합성생물학'이라고 한다.    


크레이그 벤터 박사의 연구팀이 2016년 3월에 만들어낸 합성 생명체 Syn 3.0. 인간이 합성한 유전체만으로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합성생물학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2010년 미국의 생명과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한 세균의 유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다른 세균의 유전체로 교체했고, 인간이 교체하고 합성한 유전체로도 세균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7년 8월에는 인간의 배아에서 유전체를 성공적으로 교정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을 먹어도 안전한지는 궁금해하면서, 그 밖의 생명과학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생명과학은 앞으로의 인류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명과학자 송기원 교수가 생명과학이 최근 어떻게 진행되고 발전되고 있는지, 이런 상황 속에서 고민할 문제는 무엇인지 소개하기 위해 쓴 책이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다.


​  이 책의 저자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을 몇 달 전에 읽었었는데, 같은 저자가 같은 주제의 내용을 쓴 책이다 보니 이 책과 겹치는 내용이 있다. 겹치는 부분은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가 2017년 3월에 출간된 책이니 그때까지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 반면, 이 책은 그 이후의 상황과 이슈들까지 다루고 있다. 또 다른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책이 나오면서 이 책의 시의성 또한 떨어지겠지만, 2018년을 전후해서 생명과학 분야에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 그리고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에서 소개됐던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회문 구조(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똑같은 구조) 염기 서열 집합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를 편집하려면 필요한 부분만 잘라내는 유전자가위가 필요하다. 2012년 세균이 자기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크리스퍼라는 유전자 사이에 저장해 두고 있다가, 다음에 같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저장된 정보를 통해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 염기서열을 인식해 잘라버린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원리를 응용한 크리스퍼 가위는 기존의 유전자가위들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이전의 유전자가위들과 크리스퍼 가위의 특징을 비교하고, 크리스퍼 가위 기술을 활용한 사례들을 보여준다.  말라리아모기에게 불임 유전자나 말라리아 전달을 차단하는 유전자를 이식하는 연구, 인간 배아의 유전체를 편집하는 연구 등 크리스퍼 가위를 활용해 동식물이나 인간의 유전체를 인간의 의도대로 편집하고 교정하려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  그러나 이 책은 크리스퍼 가위의 단점과 합성생물학의 문제 또한 이야기한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다른 유전자가위에 비하면 정확한 편이지만 엉뚱한 부분까지 같이 잘라내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리고 인간의 세포는 매 순간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고 있기 때문에, 성인의 세포를 가지고 유전자 교정 시술을 할 경우 시간이 지나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수정란이나 배아 세포였을 때 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해야 수정란이나 배아 세포에서 만들어진 모든 세포의 유전자를 영구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 



박사와 고양이, 생쥐 캐릭터가 합성생물학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일러스트. 한 챕터당 하나 꼴로 실려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자연의 간섭을 피할 수 없다. 앞에서 이야기한 말라리아 모기 불임 유전자 연구는 자연의 힘에 부딪치게 되었다. 처음 4세대까지는 불임 효과가 나타났지만, 세대가 지나갈수록 불임 효과를 상쇄시키는 또 다른 변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학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발달해도 자연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유전자를 변형시킨 생물이 생태계로 유출되었을 때 기존의 생물과 전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인간 유전체를 모두 분석했다 해도, 어떤 유전자를 편집했을 때 의도했던 효과 외에 또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지금의 기술로서는 예상할 수 없다. 


​  이렇게 이 책은 최근의 생명과학, 특히 합성생물학의 명암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 때 교수님의 강의보다 명쾌한 필기 노트로 동기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었다던 송기원 교수는 이 책에서도 최대한 쉽고 명쾌하게 최근의 생명과학 연구와 그 원리들을 설명한다. 송기원 교수를 캐릭터화한 것으로 보이는 박사 캐릭터와 고양이 캐릭터, 생쥐 캐릭터가 그림을 통해 합성생물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일러스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처음에는 이 책이 그런 일러스트들로 이루어진 책인 줄 알았다. 막상 책을 읽어보니 텍스트가 주이고 일러스트는 한 챕터당 하나씩만 나오지만, 합성생물학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캐릭터들이 귀여워 과학책의 딱딱한 느낌을 덜어준다. 


​  이 책을 통해 지금의 생명과학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구자들도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생명과학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책뿐만 아니라 더 많은 생명과학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생명과학이 영향을 미치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르고,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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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 생명 과학 기술의 최전선, 합성 생물학, 크리스퍼, 그리고 줄기 세포
송기원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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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생물학이란 어떤 것인지, 합성생물학이 가져온 최근의 성과와 그에 관련된 이슈는 어떤 것이 있는지 최대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려 한 것이 보인다. 한 챕터당 하나 꼴로 있는 일러스트가 신의 한 수. 박사 캐릭터와 고양이 캐릭터, 생쥐 캐릭터가 본문의 내용을 쉽게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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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집 - 화가가 머물고 그림이 태어난 집을 찾아서
제라르 조르주 르메르 지음, 장 클로드 아미엘 사진, 이충민 옮김 / 아트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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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집은 우리 자신의 작은 세상이다. 사는 게 바빠서 자기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맞게 집을 가꾸어 나갈 여유가 없다 해도, 집은 우리 삶의 흔적들로 인해 우리가 살기 이전과는 다른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의 집에 갔을 때 우리는 바깥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 사람이 만들어 온 내밀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각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자기만의 세계를 확고히 세우는 화가의 집에서는 그 화가의 삶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다.『화가의 집』은 프랑스의 미술사학자와 사진작가가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19세기와 20세기 미술사를 빛낸 화가 열네 명의 삶과 예술 세계를 들여다 본 책이다.


프란티섹 빌렉의 집 내부. 빌렉은 이 집을 '지상에 옮겨 놓은 신의 사원'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의 의도대로 나무와 돌, 흰 벽으로 이루어진 집은 수도원처럼 절제되고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진 출처: http://en.ghmp.cz/

제임스 엔소르의 고향 집 거실. 벽 하나를 가득 메운 그의 작품 <1889년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과 거실 곳곳에 놓인 온갖 골동품과 꼭두각시 인형이 기괴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방문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진 출처: http://priscillasadventuresineurope.blogspot.com/


  화가에게 집은 번잡한 바깥 세상을 피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작은 세상이다. 때로는 그 작은 세상을 자신의 작품들을 보관하는 작은 미술관으로 쓰기도 한다. 화가의 집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만들고 보관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화가의 캔버스가 되어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남는다. 열네 명의 작가들의 작품 세계가 서로 다르듯 집도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다. 같은 체코의 예술가인데도 알폰스 무하Alfons Mucha, 1860-1939의 집이 그의 작품들처럼 화려하고 유려한 장식과 골동품들로 가득 찬 반면, 프란티섹 빌렉Frantisek Bilek, 1872-1941의 집은 조각 작품들만 치운다면 목사관이나 수도원처럼 보일 정도로 경건하고 절제된 분위기의 공간이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집이 그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한 온갖 꽃들로 방문객을 환영한다면, 벨기에의 화가 제임스 엔소르James Ensor, 1860-1949의 집은 기괴한 작품과 골동품으로 방문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지베르니의 정원 풍경. 모네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연못과 그 위에 놓인 일본식 무지개 다리가 보인다.

사진 출처: https://sonurai.com/bingwallpapers/856

지베르니 집의 식당. 천장과 벽, 식탁, 청화백자 타일까지 푸른색 톤으로 맞추어져 있어 정갈하고 청결한 느낌을 준다. 모네는 미식가로서 부엌을 맛과 향의 실험실로 여겼다고 한다.

사진 출처: http://fondation-monet.com/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은 모네의 지베르니 저택이다. 두 개의 강으로 둘러싸인 지베르니의 아름다운 풍경은 물을 좋아했던 모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집을 지을 때 특히 정원에 정성을 쏟았다. 그는 회화의 구도에 따라 정원을 배치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품종의 꽃을 심었고, 지금도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어 다채로운 풍경들을 만들어낸다. 말년에 거동이 불편해져 외출하기 힘들어진 모네가 정원의 모습만으로도 수백 점의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을 정도다. 저택 내부의 방들도 각각의 색에 맞추어 간결하고 소박하게 장식되어 있어, 생활하고 창작하기에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화가의 작품들이나 온갖 수집품으로 가득 차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하는 집도 좋지만, 실제로 살아가고 활동하기에는 오래 머물기 편안한 집이 좋다. 


 화가와 그의 집에 대한 기록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화가의 집과 예술 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글과, 현장감이 넘치면서 집안 곳곳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사진 덕분에 화가의 작은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온 기분이 든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 장식품 하나에서도 화가의 흔적과 마음이 느껴진다. 원래 알고 있던 화가보다 모르던 화가들이 더 많지만, 알고 있던 화가의 더 깊은 내면을 알게 되었고 모르던 화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책에 나온 집들에 직접 가서 그 집에서 살면서 창작을 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느껴보고 싶다. 


 아쉽게도 인터넷 서점의 판매지수를 보니 이 책은 그렇게 많이 팔리지도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절판되어 중고도서로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밖에 없다. 홍보가 잘 되지 않았던 걸까,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 이야기가 많아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은 걸까. 글과 그림, 디자인, 구성부터 공을 많이 들인 아름다운 책인데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은 소장할 수도 없다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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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집 - 화가가 머물고 그림이 태어난 집을 찾아서
제라르 조르주 르메르 지음, 장 클로드 아미엘 사진, 이충민 옮김 / 아트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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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작은 세상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든다. 가만히 화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 보는 글과 화질 좋고 생생한 사진 덕분이다. 이 책이 더 많이 알려지지 않고 절판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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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사자 -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을 길들이고 세계를 정복했을까
애비게일 터커 지음, 이다희 옮김 / 마티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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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는 호랑이가 산다. 4.8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이 작은 호랑이는 내가 자기 뒤를 쫓아다니면서 쓰다듬어 주거나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밥을 먹으러 부엌에 가거나 TV를 보러 거실에 가기만 해도 같이 방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쓴다. 그런데 막상 귀찮을 때는 내가 쓰다듬든 말든 거들떠 보지도 않고, 푹신한 이불 위에서 잠이나 잔다. 엄마는 주인이 집에 오자마자 반갑다고 핥아대고 심부름도 척척 해내는 개가 더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귓등으로 흘린다. 내 작은 호랑이, 내 고양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억 마리의 고양이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인간에게서 사랑을 받는다. 인간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비게일 터커의 책 『거실의 사자』는 이러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모든 고양이의 조상인 리비아살쾡이. 1만 년에서 1만 2천 년 전에 리비아살쾡이 중 일부가 인간의 마을에 침투했고, 오늘날의 애완고양이로 이어졌다.


고양이는 어떻게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고양이와 인간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오랜 인연을 시작했다. 야생의 대형 고양이들은 우리의 조상인 원시 인류를 잡아먹었고, 원시 인류는 고양잇과 동물을 순전히 음식으로서 사랑했다. 그러나 인간이 한 곳에 머물러 생활하게 되면서 고양잇과 동물들의 진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고양잇과 동물들에게 인간 정착촌의 음식물 쓰레기는 새롭고 다양한 먹을거리였다. 고양이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혼자 살고 싶어하는 경향을 극복하고 대담하게 인간이 사는 곳에 침투했고, 먹을 것과 잘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익을 누리게 되었다. 인간이 고양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인간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의 배에 고양이가 몰래 숨어들어 다른 나라에 가게 되었든, 쥐를 잡으려는 목적으로 인간이 고양이를 의도적으로 풀어놓았든, 인간에게 힘입어 고양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사실 고양이는 실용적인 동물이 아니다. 개들이 양치기 개, 군견, 애완견, 장애인 안내견 등으로 활약하는 반면 고양이는 실용적인 방면에서 거의 활동하지 않고 있다. 흔히들 고양이를 쥐 잡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고양이는 힘들게 쥐를 사냥하는 것보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쥐를 잡아먹는다 해도 실제로 전염병을 옮기는 성체 쥐보다는 연약하고 어린 쥐를 잡아먹는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희귀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포식동물이어서 희귀동물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한 생물학자는 특정한 동물(즉 고양이)에게는 애정을 쏟으면서 다른 동물의 안녕을 무시하는 현실에 한탄한다. 게다가 가축화가 덜 되어 예민하고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며 독립성이 강한 것 등, 애완동물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고양이 사진에 "이번 달은 돈을 아껴써야 해요"라는 문구를 넣은 인터넷 밈. 이와 같은 고양이 밈들은 수많은 밈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몇 개월씩, 몇 년씩 누린다.


이런 고양이의 단점들에 대해 읽고 있다 보면 "이래도 고양이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고양이 집사들의 답은 하나다. "그래도 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동그란 얼굴, 통통한 볼, 넓은 이마, 큰 눈, 작은 코까지 갓난 아기처럼 느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평균 3.6킬로그램인 고양이의 몸집마저 갓난아기의 체구와 정확히 일치한다. 인간은 고양이의 갓난 아기 같은 모습에서 양육 본능에 가까운 끌림을 느낀다. 완전한 고립 상태를 즐기는 고양이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개의 얼굴과 달리 무표정한 고양이의 얼굴은 백지와 같기 때문에, 오히려 온갖 인간의 감정을 갖다 붙이고 의인화하기 더 쉽다.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현실 집사들은 키우는 고양이를 예뻐하고 랜선 집사들은 SNS 속 남의 고양이에게 열광하며, 수억 명의 사람들이 고양이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 동영상 등의 짧고 재미있는 콘텐츠. 유행어와 비슷하지만 단어가 아니라 사진이나 동영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을 즐긴다. 고양이는 물리적인 지구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라는 가장 침범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지배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고양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리의 놀잇감이 아닌 자기만의 전략과 사연을 가진 강인한 생명체로 보아야 한다고.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조차 죽이고 마는 우리의 잔혹함과 무관심을 경계하고, 고양이뿐만 아니라 고양이만큼 귀엽지 않거나, 함께 생활하기 편하지 않거나, 생존력이 뛰어나지 않은 동물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고양이가 우리에게 길들이든 우리를 길들이든, 인간에게 유용하든 무용하든 고양이는 그 자체로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거실의 사자』의 한국어판 표지. 고양이가 문틈 사이로 발을 내미는 귀여운 모습을 담은 이 표지는 알라딘에서 "2018 올해의 표지" 3위에 선정되었다.


P. S. 1. 안타깝게도 표지는 고양이 사진이지만 본문에는 고양이 사진이 한 점도 실리지 않았다. 단지 보고 즐거워할 수 없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실린 수많은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시각 자료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쉽다. 그리고 하드커버를 감싸는 겉표지는 보관하기 어려워 아예 제거하는 도서관 정책 때문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서 읽은 나는 귀여운 고양이 표지를 즐길 수조차 없었다.

P. S. 2. 역자 후기에 따르면 출판사는 이 책의 번역자를 찾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는 번역가를 찾는다는 소식을 SNS로 전했다고 한다. 책에 애정을 갖고 번역할 사람을 찾으려 했던 출판사의 사려 깊음이 엿보인다. 고양이 집사가 번역한 책답게 이 책의 번역에서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역자 후기에서도 번역자는 자기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역자 후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 책의 번역을 맡게 된) 이 행운의 공을 우리 술이(고양이 이름)에게 돌리며 오늘도 어김없이 집사 된 도리로 캔을 따주기 위해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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