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
박정훈.김선아 지음 / 사계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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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내게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마추픽추에는 언제 데려다 줄 거냐"이다. 내가 두 분께 나중에 마추픽추에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스마트폰 잠금화면은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다. 강원도보다 더 넓은 면적이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는 이 소금사막은 내가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지금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친구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만 하지만, 언젠가는 라틴아메리카에 꼭 가려고 한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알아두어야 할 지식들을 모아놓은 책『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를 읽게 되었다. 


  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자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안내서다. 그 동안 나름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몰랐던 것들이 꽤 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금, 은, 다이아몬드 등 각종 자원을 빼앗아 오고도 몰락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야기가 특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렇게 얻어 온 자원을 자국 산업이 아니라 외국의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다 써버렸다. 오히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게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들을 대가로 받고 자기 제품을 판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자국 산업 발전에 성공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에게서 빼앗아 온 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사필귀정으로 느껴졌다. 뭐, 영국, 프랑스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빼앗아 온 부를 바탕으로 산업 발전을 이룬 건 사필귀정이 아니지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초콜릿, 설탕, 커피의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즐거움은 결국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처음 발을 내딛은 이후 유럽에서 만들어진 달콤한 디저트와, 유럽에 들어온 진귀한 과일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자원과 라틴아메리카에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의 자원을 자기 것인 양 공짜로 마구 퍼가는 행태도, 노예제도 사라졌지만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의 폐해는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남아 있다.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면 그 작물의 생산에 온 나라의 경제를 의존하게 되고, 꼭 필요한 다른 음식과 생필품을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비싼 값에 들여와야 한다. 한 작물만 집중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덕분에, 우리는 그 작물이나 그 작물로 만들어지는 초콜릿, 커피를 싼 값에 즐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에 미국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자들 못지않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게다가 각 나라의 지도자 중 미국의 이익과 어긋나는 정책을 펼치는 사람은 미국의 압력으로 쫓겨나야 했다. 1953년 과테말라의 대통령 하코보 아르벤구스탄이 겪었던 비극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소수의 대지주가 갖고 있는 땅 중 당작 경작하지 않는 노는 땅을 국가가 사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토지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에 땅을 내어주고 싶어하지 않는 대지주 중에 미국의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프루트 사가 있었다. 노는 땅이 많았던 유나이티드푸르트 사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출신 망명자들로 무장 집단을 만들어 아르벤구스탄을 쫓아내게 했다. 경제적 침략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간섭을 하니,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됐다. 우리도 일제와 서구 강대국들에게 그렇게 침략당하지 않았었는가.


  남의 도움을 받으면 남의 간섭과 침략도 뒤따라 오니,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을 스스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가 그들이다. 그들은 빈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토지, 주택, 교육, 의료, 문화 등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빈민들에게 지원했다. 룰라는 반대에 부딪쳐도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과감하게 빈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쳤다. 다만 이들의 실책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지금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의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부담을 떠안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룰라는 경제 성장을 위해 브라질 안의 아마존 숲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방치했고, 퇴임 이후 그가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이 수 차례 적발됐다. 이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실려 있어야 독자들 스스로 이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불평등을 몰아내고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던 이들의 뜻은 본받아야겠지만, 그들의 공적과 실책을 꼼꼼히 점검해 봐야 그들과 같은 지점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이야기하는 듯한 문체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즐겁게 라틴아메리카를 알아갈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채들을 옮겨 온 듯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들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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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
박정훈.김선아 지음 / 사계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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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에 대해 꼭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책 .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들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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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집밥
하야카와 유키코 지음, 강인 옮김 / 사계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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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 받을 때 예쁜 그림이 많이 실려있는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키나와 집밥』도  요리 공부보다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읽은 책이다. 오랫동안 외국은커녕 수도권 밖으로도 나가지 못해 답답하고, 이국적인 것들에 끌리는 내게 이국적인 '오키나와'와 친근한 '집밥'의 오묘한 조합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무엇보다 재료와 음식, 조리법까지 사진이 아니라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다는 점에 끌렸다. 


  22년 동안 오키나와에서 살면서 오키나와 집밥을 해 온 저자가 이 책을 썼다. 이 책에 실린 요리들은 모두 오키나와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드는 것이다. 치디쿠니(오키나와 무), 구루마후(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으로 만든 보존식품을 '후'라고 하는데, 구루마후는 속이 빈 원통 모양의 후이다.), 한다마까지 이름도 낯선 재료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구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재료로 대체해도 맛이 나쁘지는 않겠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오키나와 집밥 맛은 나지 않겠지. 조리법 자체는 어려워 보이지 않고 한 단계 한 단계 일러스트로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직접 집에서 이 책에 나온 오키나와 요리들을 만들기에는 재료 문제라는 큰 산이 남아 있다. 


​ 그래서 직접 따라 하면서 요리를 만들어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오키나와 시장을 둘러보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각 계절에 만들어먹기 좋은 요리들로 나누었기 때문에 재료에서는 계절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키나와는 섬이니 해산물이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다양한 제 철 채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책 전체가 싱그럽게 느껴진다. 따뜻한 지방이어서 그런지 채소들도 생선들도 색이 다채롭고 선명하다. 아직 가 보지도 않은 오키나와가 다채로운 색채로 다가온다.


​ 쑥, 콩나물, 우엉 같이 친근한 재료들도 후치바, 마미나, 군보 같은 오키나와어 명칭이 같이 붙어 있으니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오키나와는 지금 일본에 속해 있지만 원래는 일본과는 독립된 왕국이었다. 재료와 요리 명칭, 음식에 대한 오키나와 동요에서 보이는 오키나와어 단어들은 일본어 방언이라고 보기에는 일본어와 전혀 다른 어감이다. 요리법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의 음식 문화와 풍습, 자연까지 실려 있어 작은 오키나와 지리지 같은 느낌이 든다. 


​  책이 너무 얇은 게 아쉽지만, 얇아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오키나와 집밥을 알리고 싶은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책으로 오키나와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고, 언젠가 오키나와에 가게 되면 이 책 덕분에 오키나와 음식들이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사랑하는 오키나와를 알리고 싶은 저자의 의도는 성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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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집밥
하야카와 유키코 지음, 강인 옮김 / 사계절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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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만으로도 오키나와에 다녀온 듯 기분이 좋아지는 요리책. 사진 대신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를 넣은 것이 신의 한 수. 내용이 너무 적은 것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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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사워드 지음, 강정인.이석희 옮김 / 까치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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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할 때 가장 처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의미만 옳다고 여겼다가는, 민주주의가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놓쳐버릴 수 있다. 반면, 민주주의의 의미를 너무 활짝 열어놓았다가는, 민주주의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까지 민주주의로 둔갑할 수 있다. 박정희가 장기 독재 체제인 유신 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로 포장했던 것만 보아도,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민주주의라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학자 마이클 사워드 교수는 저서『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서 민주주의의 의미를 끈질기게 탐색한다. 


  이 책에서는 민주주의를 정의하는 두 가지 이론을 소개한다. 하나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정의하는 민주주의다. 슘페터에게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시장에서 개인들이 서로 더 큰 이익을 얻으려고 경쟁하듯이, 정치에서도 엘리트 정치인들은 리더로서의 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한다. 그들은 정책 묶음을 소비자, 즉 유권자에게 판매하고 유권자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만한 정책 묶음을 제시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한다. 엘리트 정치인들이나 평범한 유권자들이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 민주주의 제도를 활용한다. 하지만 평범한 시민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조작된 메시지에 쉽게 속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이성을 잃어버리고 그 밖의 현안에는 무지하다. 슘페터가 말하는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의 역할은 그저 투표로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것으로 축소된다.


  다른 한편에는 슘페터의 민주주의 정의를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다른 목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이자 이상이다. 슘페터의 민주주의가 오직 국가 단위에서의 선거나 정치 제도, 정치 운영에 관한 것인 반면, 이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국가뿐만 아니라 학교, 직장, 지역 공동체, 국가를 넘어선 국제 공동체까지 다양한 공간과 장소에서 실행될 수 있고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투표로 지도자들을 선출하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치에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스스로의 역량과 자신감을 키워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 쪽을 지지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둘 중 어느 쪽도 지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각각의 이론이 어떤 역사를 거쳐 형성되었고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 소개할 뿐이다. 독자들은 두 이론을 비교해 보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지 깨닫고 각자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듬어갈 수 있다. 또한 지구화가 급속히 전개되면서 민주주의가 한 국가를 넘어 여러 국가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지,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민주주의가 인간이 아닌 생물들의 권리까지 보호해야 되는지 등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는 완성되어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다듬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본문 뒤에는 간접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등 다양한 민주주의들의 용어 설명이 정리되어 있다. 독자들은 본문을 읽으면서 용어 설명을 참고할 수도 있고, 본문을 다 읽고 나서 다양한 민주주의들의 개념을 머릿속에 정리할 수도 있다. 독자들 스스로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탐색하게 만드는, 간결하고 깔끔한 민주주의 입문서이다. 다만 원서가 2003년에 출간되어서 브렉시트, 난민 문제 등 최근의 정치 이슈들이 반영되지 않아 시의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외국 학술서적의 번역 출간이 늦어지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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