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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ㅣ 낭만픽션 7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포함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표지의 예쁜 일본 인형 그림과 독특한 제목에 끌렸다. 그리고 "원치 않던 혼담으로 괴로워하던 언니가 강물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 동생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준다는 인형 하나히메를 찾아간다."는 줄거리 소개에 호기심이 들었다. 책을 펼쳐보니, 그 동생이 언니를 죽였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서장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계속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설의 주인공 오나츠는 에도시대(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지배하던 시기, 1603~1867) 에도(지금의 도쿄)의 스마다가와 강 료고쿠바시 다리 일대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행수의 열세 살 난 딸이다. 오나츠의 언니 오소노는 남 몰래 사귀는 남자가 있는데, 아버지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자 무척이나 슬퍼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는 스미다가와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아버지가 언니를 죽인 게 아닐까 의심하던 오나츠는, 료고쿠바시 다리 일대에서 복화술 인형 공연을 하는 츠키쿠사를 찾아간다. 츠키쿠사의 인형 오하나('하나히메'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진실을 말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오나츠와 하나히메, 아니 하나히메를 조종하는 복화술사 츠키쿠사는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간다.
나는 줄거리 소개와 오나츠가 아버지에게 하소연하는 부분만 읽고 이 책 전체가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긴 여정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는 이 책에 실린 다섯 가지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언니가 죽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비정한 아버지, 복잡한 사연, 이런 걸 기대했었다. 그런데 내가 명예살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봤나 보다. 언니의 죽음 이야기는 가부장제의 비정함, 폭력성을 다룬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섯 가지 이야기 모두 옛날 민담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복화술사 탐정' 츠키쿠사는 진실을 파헤쳐가고, 하나히메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다. 오나츠는 언니의 죽음의 진상을 거의 혼자 밝혀내고, 다른 이야기들에서 간간이 단서를 잡아내긴 하지만 왓슨 박사 같은 조력자라기보다는 관찰자에 가깝다. 츠키쿠사가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주 치밀하거나 스릴 있지는 않다. 그리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슬프고 감동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츠키쿠사와, 그의 제2의 자아지만 발랄하고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하는 하나히메의 매력이 돋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히메는 츠키쿠사가 조종하는 인형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츠키쿠사와 하나히메를 다른 사람처럼 대하고 심지어 하나히메를 츠키쿠사보다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재미있다. 그리고 에도시대 당시의 에도 풍경과 풍속을 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이렇게 에도시대를 다루는 일본 소설들은 당시 사람들이 어떤 것을 먹고, 마시고 입었는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놀았는지 당시의 일상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이 책을 읽을 때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한창 연등축제가 열리고 있고, 푸드트럭들도 여기저기 세워져 있던 청계천에 갔었다. 지금의 한국과 에도시대의 일본은 서로 다르고, 청계천과 스미다가와 강은 크기부터 서로 다르다. 하지만 츠키쿠사의 인형극 공연을 비롯한 각종 공연들이 펼쳐지고, 온갖 먹거리들이 가득했던 에도시대의 스미다가와 강변의 분위기도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깊은 감동이나 슬픔, 치밀한 트릭은 없지만 에도시대 에도의 저녁 풍경을 상상하며 읽는다면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