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H.M. - 기억을 절제당한 한 남자와 뇌과학계의 영토전쟁
루크 디트리치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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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소 산만하고 굳이 넣지 않았어도 됐을 것 같은 부분들이 보인다. 독자들에게 뇌과학을 좀 더 친숙하게 전달하려 한 의도는 알겠지만, 헨리 몰래슨에게 좀 더 집중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헨리의 기억을 빼앗아 간 장본인인 외할아버지를 객관적으로 노력한 점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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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궤적 -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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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쉽지 않다. 폭력, 살인, 강간, 테러, 전쟁 등 악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서 새치기하는 사람부터 우리에게 부당한 처사를 일삼는 집주인이나 직장 상사,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고도 아주 적은 형량만 받는 정치인까지 세상은 크고 작은 불의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미국의 과학자 마이클 셔머는 저서『도덕의 궤적』에서 인류가 과학과 이성을 통해 지금까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도덕적으로 더 진보한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셔머는 어떤 근거로 세상이 도덕적으로 진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걸까? 그리고 도덕과 과학은 서로 별개의 영역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과학이 도덕의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일까? 과학보다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종교가 도덕의 진보를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셔머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가 도덕적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보며, 도덕적 진보의 원동력이 종교가 아닌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우선 셔머가 도덕과 과학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셔머가 생각하는 도덕은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감응적 존재는 감정, 지각, 감각, 반응, 의식이 있어서 느끼고 고통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모든 인류뿐만 아니라 동물들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과학은 이성을 토대로 일련의 논증과 경험적 입증을 거쳐 그 결론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는 절차다. 


요하네스 얀 루켄, 안네켄 헨드릭스의 화형. 헨드릭스는 1571년 마녀라는 혐의로 화형당했다. 헨드릭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 과학은 마녀사냥과 같은 미신적이고 종교적인 생각들을 허물어뜨렸다. 


  근대 이전 노예와 여성, 동물들은 주인과 남성,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응적 존재였음에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재산이나 수단으로 취급받으며 폭력과 차별, 학대로 고통 받았다. 성소수자들은 신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도덕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박해 당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들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에 수천 년 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을 박해하는 이들을 옹호하고 정당화해 왔다. 


프랑스 인권선언문. 계몽주의자들은 과학에서처럼 비판과 논쟁, 실험을 통해 민주주의와 민권의 원리를 정립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은 정말 도덕적으로 진보했을까? 셔머는 통계자료들을 통해 세상이 도덕적으로 진보했음을 보여준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을 비교해 보면 현대에 들어 전쟁 사망률은 크게 감소했다. 정치적 자유가 있는 나라들의 비율은 1970년대 이래 증가했고,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저자가 그 예로 우리나라와 북한을 비교한 것이 흥미롭다.) 남녀 간의 임금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더 포용적인 응답을 하는 사람의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채식주의자들과 인도적으로 기른 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도덕의 진보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앞으로도 세상은 도덕적으로 진보할까? 셔머는 그럴 것이라고 믿고,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이 유토피아가 아닌 프로토피아(Protopia)라고 말한다. 프로토피아는 프로그레스(progress,·진보)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이상향인 유토피아와 달리, 측정할 수 있는 꾸준한 진보가 일어나는 현실의 장소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서 탐욕과 폭력성이 유전적으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모든 감응적 존재가 번성할 수 있는 사회의 특징들을 전 세계로 퍼뜨린다면 모든 사람이 차이를 넘어서 한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느끼는 문명 2.0에 이를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도덕의 영향권을 나 자신과 혈연관계로 맺어진 친족들을 넘어서 나와 다른 집단에 있는 타인들, 동물들, 즉 더 많은 감응적 존재들에게까지 확장해서 그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장소에서 진리와 정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또한 역사와 사회는 도덕적 방향을 향해 항상 진보하지만은 않고 때로는 퇴보한다. 미래에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악조건이 생겨 도덕의 진보를 막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지침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프로토피아와 도덕적 진보에 대한 셔머의 믿음이 도덕의 궤적이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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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궤적 -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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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진화생물학과 뇌과학, 사회과학과 역사학을 넘나들며 도덕적 진보의 역사를 살펴본다. 너무 낙관적이다 싶기도 하지만, 방대한 자료와 날카로운 문체, 구체적인 대안이 설득력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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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바라 스톡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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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군에게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가고 있어. 지난 번에는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게 돼서 반가웠어. 친구라면서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게 미안했고. 나 자신도 그렇게 굳건하지 못한 상태거든. 그래도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불안하고 막막할 때 나는 반 고흐를 생각해. 늘 동생에게 신세만 지고 있고 그림은 팔리지 않아 불안해하면서도 "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던 반 고흐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던 그와, 한없이 게으른 나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나 또한 보잘것없는 내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걸 펼쳐보고 싶어. 그래서 유독 반 고흐에 대한 책들에 끌려. 


 이 책도 반 고흐의 삶을 그린 만화라는 점에서 끌렸어. 화려하거나 과장된 그림체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만화의 그림체는 단순하고 아기자기하다는 점에 더 끌렸고. 사람들은 보통 반 고흐하면 소용돌이치는 듯한 강렬한 그림체를 생각하잖아. 그래서 이 만화의 단순한 그림체가 반 고흐의 강렬함을 전달하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내게는 반 고흐의 강렬한 삶을 단순한 그림체로 그렸다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어. 단순해서 오히려 한눈에 살펴보기에 더 좋고.

  그림체는 단순하지만 색채는 반 고흐 그림 속의 색채만큼이나 밝고 화려해. 반 고흐 그림의 짧은 붓터치에서 따온 듯한 점과 짧은 선들로 반 고흐의 감정을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야. 점들과 짧은 선들만으로도 반 고흐의 휘몰아치는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게 신기해.

  그리고 컷마다 숨어 있는 반 고흐의 작품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어. 단순화되고 축소되어 만화 속에 숨은 반 고흐의 작품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실제 집을 모델로 한 인형의 집처럼 원본과 닮아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해. 실제 작품이 컷 옆에 있었다면 비교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겠지만. 

  이 만화는 그림체뿐만 아니라 내용도 간결해. 반 고흐가 가장 강렬하게 빛나는 그림들을 그렸던 아를 시기부터 생레미의 정신병원에서 지내며 그림을 그리던 시기, 오베르에서 마지막 그림들을 그리던 시기, 이 세 시기만을 다루고 있거든. 반 고흐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이 만화를 본다면 아쉬울 거야. 하지만 나는 이 만화가 반 고흐의 삶을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반 고흐의 인생에서 가장 강렬했던 순간들을 포착한 만화라고 생각해. 반 고흐가 기뻐하고 슬퍼했던 순간들을 단순히 그림과 글로 옮겼다기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게 마음에 들어. 반 고흐의 팬으로서 옆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펼쳐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만화 평전이야. 

  그리고 반 고흐를 다룬 다른 책들이 그렇듯 이 만화 또한 내게 위안이 돼. 네가 뿌리 없는 나무를 그렸었던 걸 기억해. 의사는 그 나무 그림을 보고 네가 지금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처럼 불안한 상태라고 했었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고 있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이토록 자연스러운데, 우리한테는 왜 그리 어려운 일일까. 빈센트도 우리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 그런 빈센트에게 만화 속 테오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아.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쟁기를 끌 거야.
그리고 함께 경이에 찬 눈을 돌려 데이지꽃과 
새로이 갈아엎은 흙덩이와 
봄에 싹 틔우는 관목 가지를, 
청명한 하늘의 고요한 푸른빛을,
가을의 뭉게구름을, 겨울의 헐벗은 나무를, 
저 태양과 달과 별을 바라보자.

앞날은 예측 못할지언정, 
그것만큼은 온전히 우리 몫으로 남을 테니. p. 132.


오베르의 언덕에 함께 서 있는 테오(왼쪽)와 빈센트(오른쪽)


  쟁기를 끄는 건 아니지만, 우리도 숨이 다할 때까지 우리의 일을 하겠지. 그리고 때로는 눈을 들어 꽃과 나무, 뭉게구름과 태양, 달, 별을 바라보자. 우리 또한 우리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지만, 그것만큼은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을 거야. 그렇게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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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바라 스톡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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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덕후로서 갖고 싶은, 사랑스러운 반 고흐 평전. 단순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반 고흐의 아를과 생레미, 오베르 시절을 그려낸다. 그림체는 단순하지만 색채는 화려하고, 컷들마다 깨알같이 반 고흐의 작품들이 숨어 있어 숨은 그림 찾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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