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아 쿠피 -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파지아 쿠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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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근현대사 속에서 파우지아가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겪은 고난들이 내용의 대부분이어서 생각보다 파우지아의 정치적 삶의 비중이 적은 것은 아쉽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뚫고 나오는 파우지아의 강한 의지에 탄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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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발견
정승철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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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자료를 나열하기보다 방언에 대해 더 깊이 분석했다면 좋았겠지만, 방언의 흥망성쇠를 살펴보고 방언의 희망을 찾으려 하는 것만으로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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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발견
정승철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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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삶의 대부분을 서울과 수도권에서 보냈고, 표준어를 사용하며 살아왔다. 사투리를 고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사투리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거나 사투리가 사라져간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도 지방 출신의 많은 젊은이들이 취업 면접을 위해 스피치 학원에서 사투리 교정을 하고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사투리가 교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수에 속해 있으면 소수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기 쉽다.『방언의 발견』은 제목처럼 평소에 딱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방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방언의 역사는 방언의 몰락사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일본어 학습서인『인어대방 隣語大方』에서도 조선말은 서울말로 배우라고 했지만, 조선시대에 사투리를 비하하는 태도는 심하지 않았다. 실학자 이덕무는 지방관으로 일하던 시절 사투리를 쓰는 하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자 하인들에게 사투리를 쓰며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 민족 국가들은 제국주의 국가든 식민 지역 국가들이든 구성원들의 결속을 위해 표준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개화기에 들어 지식인들이 언어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국어 어법과 표기법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표준어가 방언을 주변으로 밀어낸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의 일이었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절대다수의 조선인들과는 조선어로 소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서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 개념을 새로 도입한 것이다. 표준어가 자리를 잡으면서 사투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조선 사회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투리는 야만적인 것, 틀린 것, 표준어는 세련된 것, 올바른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생겼다. 한쪽에서는 언어의 통일을 중시하며 표준어 정리에 힘쓰자는 주장이 나왔고, 다른 한쪽에서는 언어의 다양성을 중시하며 방언의 소멸을 우려하는 의견이 나왔다. 


 광복 이후 1960년대에 들어, 단결과 능률을 중시한 박정희 독재 정권은 방언을 분열과 비능률의 상징이자 국민 단결을 방해하는 요소로 규정했다. 당시 시행되던 '고운말 쓰기 운동'과 '국어 순화 운동'에서 교정되고 정화될 대상에는 욕설, 비속어뿐만 아니라 방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1999년에 사투리를 자동으로 교정해 주는 TV가 개발됐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실제로 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990년대까지도 사투리는 표준어의 주변에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방언은 마냥 밀려나고만 있지 않았다. 2006년 사투리 연구 모임 '탯말두레'의 회원들이 현행 표준어 규정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평등권과 행복 추구권, 교육권을 침해한다고 헌법 소원을 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라는 표준어의 정의 자체가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을 교양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표준어로만 공문서를 작성해야 하고 표준어로 된 교과서로만 교육을 받는 등 지역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이 기본권을 침해받는다는 주장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교양 있는'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라는 의미일 뿐이고, 국가가 표준어 규정에 개입하지만 아무런 법적 효과를 갖지 않으므로 이로 인해 기본권 침해가 일어났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말은 지나치게 좁고 획일적인 개념이기에 서울 이외 지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소수 의견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구 출신의 래퍼 MC메타가 경상도 방언으로 쓴 랩 <무까끼하이>나 록밴드 장미여관의 노래 <봉숙이> 등 사투리로 된 대중 가요들부터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등 방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TV 드라마, 보도는 표준어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사투리로 진행되는 지역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들까지, 방언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전국 모든 지역의 전통 방언이 소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방언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방언의 소멸 속도, 문화적 다양성이 상실되는 속도를 늦추려고 한다. 방언 연구회 회원들의 출신지 목록, 방언 사용 방송 목록 등 각종 목록의 나열을 좀 더 줄이고, 각 지역의 방언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방언들 중에서도 (서울말을 제외하고) 위상의 차이가 있는지, 방언의 가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더 깊이 분석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방언을 발견했으니 후속 연구나 책에서는 방언의 다채로운 모습과 가치를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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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자코메티 - 예술과 예술가들 3
제임스 로드 지음, 오귀원 옮김 / 눈빛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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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알고 있는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 는 젓가락처럼 보일 만큼 마르고 길쭉한 조각상들을 주로 만들었던 조각가였다. 올해 초 열린 자코메티 전시에서 그가 조각가일 뿐만 아니라 화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그린 독특한 초상화들도 보았다. 그리고 자코메티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작년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8개월쯤 지나서 그 영화가 정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었다. 그 영화가 <파이널 포트레이트>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실제 제임스 로드(위)와 영화 속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제임스 로드 역의 아미 해머(아래)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자코메티(제프리 러쉬)가 미국인 작가 제임스 로드(아미 해머) James Lord, 1922~2009의 초상화를 18일에 걸쳐 완성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아무래도 18일 동안 그림을 그린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이다 보니, 지루하다는 평이 많다. 원작인  『작업실의 자코메티』 를 도서관에서 빌려왔지만, 미리 읽으면 영화가 더 지루해질 것 같아 일부러 영화를 본 뒤 원작을 읽었다. 


(위) 영화 속에서 자코메티와 자주 갈등을 빚는 아내 아네트(실비 테스튀) 

(아래) 불륜 행각을 벌이고 있는 자코메티의 정부 카롤린(클레망스 포에시)과 자코메티(제프리 러쉬)


 원작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영화 쪽이 MSG를 쳤다는 것이었다. 자코메티와 아내 아네트(실비 테스튀) 사이의 갈등, 창녀 카롤린(클레망스 포에시)과의 불륜 행각은 원작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 자코메티와 아네트의 관계도 그저 평범한 부부로 묘사되고, 영화에서처럼 자코메티가 아네트를 냉대하는 모습은 원작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코메티의 정부 카롤린은 원작에서 그저 자코메티가 최근에 함께 작업하고 있는 모델이라고 몇 번 언급되기만 할 뿐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자코메티가 카롤린과 불륜 관계를 가졌고 그것 때문에 아네트가 힘들어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제임스 로드는 자신의 책에서 자코메티의 가정사를 시시콜콜히 파고들지 않는다. 


제임스의 초상화를 끊임없이 그렸다 지우면서 고뇌하는 자코메티


 영화 안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랬겠지만, 그런 자극적인 요소들이 들어가면서 원작에서 자코메티와 제임스가 나누었던 예술에 대한 대화들은 줄어들었다. 영화에도 자코메티가 세잔과 피카소에 대해 평가하는 대사가 나오기는 하지만, 원작에서 자코메티와 제임스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부터 현대 화가들까지 다양한 화가들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자코메티가 평생 동안 갈고 다듬어 온 예술관도 원작에서는 더 자세하게 설명된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 어떻게 될 건지 생각하지 않고 어떤 선입견도 없이 작품을 하는 겁니다. ... 세잔은 자연 그대로를 그려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 하지만 모두들 노력해야 합니다. 마치 세잔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감각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그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조차 매 순간 새롭게 보려고 했고,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원작을 읽고서야 그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림을 지웠다 다시 그리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캔버스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자코메티와 제임스


 자코메티가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드는 괴팍한 인간이라는 것은 원작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영화와 달리 의외로 섬세한 면도 눈에 띈다. 


"작업을 조금만 더 합시다. 이 상태로 놓아둘 수는 없어요. 내가 밉죠?" 그가 물었다.
"바보 같은 소리를 하네요. 내가 왜 그렇겠어요?"
"당신을 이렇게 힘들게 하니까 그렇지요."
"그런 소리 마세요."

  자코메티는 초상화 때문에 제임스가 발이 묶여 있는 것을 은근히 의식하고 제임스의 눈치를 보기까지 한다. 영화 속 자코메티는 시종일관 "뭐, 자네가 가면 가고 머무르면 머무르는 거지."라는 식의 태도를 보여서 제임스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자코메티가 제임스에게 반말을 하는 영화 자막과 달리, 원작의 한국어판에서는 자코메티가 제임스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번역되어서 그렇지만, 자코메티와 제임스의 관계는 영화보다 더 정중하게 느껴진다. 자코메티에게 환멸감을 다소 느끼는 영화 속 제임스와 달리 실제 제임스는 발이 묶여 있는 처지가 달갑지는 않지만 초상화를 완성시키지 못하는 자코메티의 괴로움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를 존경한다. 

자신의 초상화를 사진으로 찍는 제임스(위)와 마침내 완성된 제임스의 초상화(아래)


  영화에서 제임스는 초상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자코메티가 그린 초상화들을 사진으로 찍는다. 원작에서는 한 챕터에 하루씩, 하루에 한 장씩 제임스가 찍은 초상화의 사진이 실려 있다. 열여덟 개의 초상화 사진은 처음 봤을 때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자코메티 자신에게는 이 초상화들이 어떻게 다른지 더 뚜렷이 보였을 것이다. 제임스도 오늘은 얼굴이 기울어졌다, 오늘은 형태가 더 견고해졌다는 식으로 자신의 초상화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민감하게 포착한다. 18일 동안이나 계속되는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제임스도 자코메티만큼이나 초상화 작업을 진지하고 섬세하게 대했다는 것이 보인다.

  어느 날에는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하고, 어느 날에는 꽤 진전을 보인다. 어느 날은 자코메티와 아네트가 싸우고, 어느 날에는 자코메티와 아네트가 화해하고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어느 날은 카롤린이 제임스와 자코메티를 데리고 드라이브한다. 영화는 이렇게 단조로워지기 쉬운 18일의 하루하루를 조금씩 변주하면서, 자코메티의 예술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코메티의 예술과 예술관을 좀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원작을 읽어보는 것이 낫다. 자코메티와 제임스가 나누는 예술에 대한 대화는 원작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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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자코메티 - 예술과 예술가들 3
제임스 로드 지음, 오귀원 옮김 / 눈빛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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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의 원작. 영화보다는 자코메티의 예술관을 더 자세하게 다룬다. 자코메티가 괴팍한 인간이었던 건 분명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생각보다 더 섬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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