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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평점 :
상나라부터 현대까지 3천여 년의 중국사를 살펴보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 등 각 분야로 나누어서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중국사를 이끌어간 주요 인물들을 통해 살펴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시안, 뤄양, 카이펑, 항저우, 난징, 베이징 등 중국 역사에서의 주요 도읍지 여섯 곳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이 여섯 도읍지들은 여러 왕조의 중심지였던 만큼 여러 시대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특히 1129년 동안 열세 개 왕조의 도읍지였던 시안은 책 전체 분량의 40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고대 상나라 유적지부터 20세기에 공산당이 새로 지은 성문, 최근 시진핑 주석이 내놓은 '일대일로(一帶一路, 21세기에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부활시키려는 프로젝트)' 프로젝트까지 시안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중국이 오롯이 쌓여 있다. 수천 개의 석굴과 10만 개의 불상으로 이루어진 용문석굴이 있는 뤄양은 북위와 당나라 시대의 화려한 불교미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송나라의 수도였던 카이펑은 강과 가까운 평지 지형이기 때문에 수십 번 수몰되었지만 그때마다 다시 복구되어 번영을 이루었다. 카이펑의 지하에는 지금도 각 시대의 유적이 겹겹이 쌓여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북방의 이민족 국가인 금나라에게 중국 북부를 빼앗긴 송나라는 남쪽 저장성의 항저우로 천도했다. 영토 수복을 꿈꾸던 송나라에게 항저우는 변방의 임시 수도였지만, 아름다운 호수 서호와 비극적인 연인들, 의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혁명가들의 이야기를 품은 도읍지이다. 난징은 난징 대학살이라는 아픈 역사를 통해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주민들의 세계와 유목민들의 세계의 접경지였던 베이징은 정주 민족과 유목 민족,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아우르며 현재 중국의 수도로서 중국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풍부한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저자의 필력이 뛰어나다.
각 도읍지마다, 도읍지의 장소들마다 서려 있는 풍부한 이야기도 장점이지만,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여섯 도읍에 얽힌 중국사를 논평하는 것도 장점이다. 저자는 시안 일대의 유적지를 중심으로 하, 상, 주 삼대의 정확한 역사 연대를 고증해 내려는 프로젝트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大工程'이 고대의 다양한 민족의 역사를 중화민족의 역사라는 단일한 역사 프레임 안에 가두려는 행보라고 생각하고 이를 경계한다. 한편 하, 상, 주 삼대는 하나같이 나라를 어지럽힐 정도의 미모를 지닌 여인들과 그녀들에게 미혹되어 나라를 망친 폭군들 때문에 멸망했다고 기록된다. 저자는 남성 중심 사회, 승자가 곧 정의라는 프레임 때문에 여성과 패자는 역사의 타자이자 희생양이 된다고 지적한다. 올해 나온 책인 만큼 최근의 중국 정세와 고대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며 고대의 역사가 지금의 중국, 미래의 중국에 미치는 영향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속표지에는 중국에서의 여섯 도읍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각 챕터 앞에는 각 도읍지 안의 유적지 위치를 표시한 지도들이 있어, 어느 위치에 각 도읍지와 유적지가 위치해 있었는지, 그 위치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다만 사진 자료가 모두 흑백이고 크기가 작은 것이 아쉽다. 이런 단점이 있지만,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중심지였던 도읍지들을 통해 중국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들고 여섯 도읍지를 여행하면서 역사의 흔적과 중국의 오늘을 직접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