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카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5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민용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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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1936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스페인에서는 가장 사랑받는 시인이다그는 자신의 고향 안달루시아의 자연과 사람들그들의 정서를 자신의 시에 녹여내 '민요 시인', '집시 시인', '국민 시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그러나 그의 시의 신비로움과 맑은 서정성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이 책은 그의 시들 중에서 안달루시아의 자연과 정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면서지나치게 스페인안달루시아의 역사와 전통문화에만 치우친 시가 아닌 누구나 그 아름다움과 신비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들을 가려내어 모았다

  그가 안달루시아의 자연과 정서를 그린 시들은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가득하지만그 바탕이 되는 정서는 더없이 맑고 서정적이다그가 그리는 안달루시아 집시들의 한의 정서는 우리의 한()의 정서와 통하기도 해우리에게 묘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소리를 하면 사람이 노래하는 게 아니라/한이 스스로 노래를 하는 듯..."이라는 시구(플라멩코 삽화들-유명한 플라멩코 가수 마누엘 토레스에게」 중 '플라멩코 말라게냐 소리꾼 후안 브레바')는 소리로 한을 풀어냈던 우리의 소리꾼들을 떠올리게 한다그의 시에서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김소월을 떠올리게 하는 맑은 서정한의 정서가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로르카는 맑은 서정과 신비롭고 환상적인 이미지만을 그리는 시인이 아니라,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시로써 현실을 비판했던, 옳지 못한 현실에 저항할 줄 알았던 시인이었다.  그는 2년 동안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뉴욕은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상은 매우 삭막하고 차가운 도시였다. 그와 같은 이민자, 유학생들에게는 더욱 더 냉혹한 곳이었다. 로르카는 뉴욕에서 지내던 시절에 쓴 시들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자본가들의 이기심과 비정함을 비난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고발한다,
다른 절반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자기들의 시멘트 산을 일으키는
구제할 길 없는 다른 절반.
...나는 너희들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다른 절반의 사람들이 내 말소리를 듣는다
삼키며노래하며그들의 순수 속에서 날아가며,
...사무실의 숫자 속을 헤엄치는 너 자신도 흙이다.
...나는 고발한다.
나는 이들 텅 빈 사무실들의
음모를 고발한다.
그들은 밀림의 계획을 지우는
어떤 고민이나 고뇌도 전달하지 않는다
- 「도시로 돌아오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이 대도시에서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사랑은 베개 밑에서 나누는
뼛속까지 아파 오는 어둡디 어두운 입맞춤에 있다.
말갛게 비치는 손을 가진 노인은
죽어 가는 수백만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말하리라
사랑사랑사랑.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성스러운 나날의 빵을 원하니까,
오리나무 꽃과 낟알을 털고 난 뒤의 영원한 사랑을 원하니까,
두 편의 송가」 중 '로마를 향한 절규-크라이슬러 빌딩의 탑으로부터'

  그의 작품 곳곳에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튀어나와 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하고스페인안달루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잘 모르기에 스페인안달루시아 사람들만큼 그의 시에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시에 담긴 맑은 서정과 신비함, 비정한 현실에 맞서 사랑을 되찾으려는 따뜻한 마음은 삭막한 현실을 뚫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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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카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5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지음, 민용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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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르카의 시에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가 가득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정서는 더 없이 맑고 서정적이다. 그가 그리는 안달루시아 집시들의 한의 정서는 우리의 한의 정서와 통하며 우리와 묘한 공감대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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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 - 칼리프의 집 동방문학총서 2
타히르 샤 지음, 알이따르 옮김 / 훗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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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사블랑카> 때문에 카사블랑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실제로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영국의 작가 타히르 샤는 영화보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떠났던 모로코 여행에서 영향을 더 받기는 했지만, 그 또한 카사블랑카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라면 "아치와 주랑이 있고 향기로운 참죽나무로 만든 높은 문과 숨겨진 정원이 있는 안뜰, 마굿간과 분수, 과일나무가 있는 과수원, 그리고 수십 개의 방이 있는 제대로 된 집으로의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주변의 동료, 지인들의 만류도 듣지 않고 카사블랑카의 대저택 다르 칼리프(Dar Khalifa, 아랍어로 '칼리프(이슬람 사회에서 상당한 정치 세력을 거느린 지도자)의 집'이라는 뜻)를 사고 가족들과 그곳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이사 온 첫날 밤 환상은 박살난다. 


  이사 온 첫 날 밤, 오래 전부터 저택을 관리해 온 관리인들은 진(Jhin, 알라가 불에서 만들었다는 정령으로, 무슬림들이 진들이 인간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들을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한 방에 석탄 덩어리로 원을 놓고 그 안에서 자야 한다고 말한다. 첫 날 밤을 무사히 보낸 뒤로도 관리인들은 툭하면 진을 핑계대면서 말을 듣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의 가족들이 사는 것을 진들이 원하지 않으니 퇴마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근처에 사는 조폭 두목의 아내는 작가가 다르 칼리파의 집 문서를 찾아내지 못한 것을 알고 가끔씩 찾아와서 협박한다. 집안 관리를 위해 데려왔던 비서 조흐라는 작가가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모함했다고 자신의 수호 정령이 말해줬다며 작가의 계좌에서 4천 달러를 인출해서 도망친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저택을 보수하기 위해 건축가에게 보수공사를 의뢰하지만, 건축가가 보낸 인부들은 공사를 개판으로 하고 있고, 건축가에게 따져도 건축가는 나 몰라라 한다. 


  작가는 아버지 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혈통이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슬람 세계의 문화와 전통을 조금이나마 체험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쭉 생활해 왔기 때문에 다른 영국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현대 서구인인 작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환장스러운 상황의 연속에서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두 번째 비서 카말이다. 카말은 미국에서 여러 해 살다 와서 영어에 능통하고 업무 처리에 있어서도 유능하다. 그러면서도 모로코인으로서 같은 모로코인들의 사고 방식, 삶의 방식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작가와 가족들이 모로코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해 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에게 혀를 끌끌 차면서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때로는 어둠의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 캐릭터는 소설이나 영화, 만화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현실에도 있었다. 작가와 카말이 모로코 생활을 하면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더 정확히는 카말이 문제를 해결하고, 작가가 카말의 수완에 감탄하거나 경악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자신이 간 장소를 여행자보다는 밀접하게 현지인보다는 낯설게" 바라본다는 작가 소개처럼, 작가는 여행자보다는 더 가까이서, 현지인보다는 더 멀리서 카사블랑카와 모로코를 바라본다. 카말이 건축가를 해고하고 새로 데려온 건축공들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저택을 탈바꿈하지만, 저택 공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관리인들은 툭하면 진 핑계를 대면서 말을 듣지 않지만, 자신들이 받은 월급의 3분의 1을 작가의 이름으로 근처 학교에 기부해 마음을 찡하게 한다. 클럽에서 만난 모로코 여자에게 반해 이슬람 이단 종파의 일원이 된 미국 청년의 모습에 혀를 차다가도,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모로코 사람들에게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추억에 잠긴다.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인정, 속물 근성과 뒤틀린 자본주의가 뒤섞인 모로코에서 좌충우돌하며 일 년을 보낸 뒤, 작가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무엇보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우리가 모로코와 관리인들에게 그리고 칼리프의 집에서 마침내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블로그와 홈페이지, 페이스북을 찾아보니 작가는 지금도 다르 칼리파에서 살고 있다. 관리인들과도(심지어 돈을 들고 튀었던 조흐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이 모든 상황들을 감당할 가치가 있었다고 할 만큼 다르 칼리파는 아름답다. 작가와 가족들,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다르 칼리파에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냈으면 한다. 


다르 칼리파의 문패가 걸려 있는 하얀 담장


모자이크로 장식된 음수대. 숙련공들이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도자기 조각 수천 개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타히르 샤의 서재. 시더나무로 만든 24미터 길이의 책장이 들어서 있다. 현대적인 가구들과 아랍 전통무늬가 새겨진 저택의 문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황색 양탄자와 커튼, 우아한 곡선의 가구들로 꾸며진 거실


푸른색 타일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욕실


사진 출처: 타히르 샤 블로그(http://www.tahirshah.com/blog/)

http://artnlight.blogspot.com/2008/09/dar-khalifa-caliphs-house-in-casablanca.html

http://digma.lt/interjero-dizainas-interjeras/kalifo-rumai/dar-khalif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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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 - 칼리프의 집 동방문학총서 2
타히르 샤 지음, 알이따르 옮김 / 훗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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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아름다움과 환장스러운 상황이 공존하는 카사블랑카의 다르 칼리파 저택에서 벌이는, 작가의 좌충우돌 모로코 생활 적응기. ‘이곳이 나를 인정했다‘는 작가의 마지막 말에 왠지 모를 안도감과 뿌듯함을 함께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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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아 쿠피 -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파지아 쿠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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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가니스탄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은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들(『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과 애니메이션 <브레드위너>, 수많은 뉴스와 르포들을 통해서. 이 책도 그렇게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이야기 중 하나다. 하지만 탈레반의 횡포를 주로 다루었던 다른 이야기들과 달리, 탈레반이 물러간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새롭게 만들려는 모습을 다루었다는 점, 그런 혁신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정치인 파우지아 코피(Fawzia Koofi, 책에서는 '파지아 코피'로 표기되지만 실제 발음은 파우지아 코피다.)가 저널리스트 나딘 구리 Nadene Ghouri의 도움을 받아 쓴 자서전이다. 탈레반의 여성 억압, 부르카를 쓰고 다니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생각하면 아프가니스탄에 여성 정치인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 세워진 정부에서 여성이 정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상원과 하원에 여성 의원 할당제를 도입했다. 파우지아는 여성 의원 할당제의 혜택이 아니라 압도적인 득표 결과로 하원의원이 되었다. 

  파우지아는 어떻게 아프가니스탄 여성으로서 정치의 길을 걷게 되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파우지아의 삶과 아프가니스탄의 근현대사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아야 한다. 파우지아의 할아버지는 지역 사회의 지도자로서, 아버지는 지역 사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지역 주민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파우지아네 가문은 대대로 정치인 가문이었고 공익을 위해 힘쓰는 것이 가문의 전통이자 명예였다. 그러나 파우지아가 세 살이었던 1978년, 그녀의 아버지는 친소련 성향의 중앙 정부와 그에 대항하던 무장조직 무자헤딘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려다 무자헤딘 세력에게 살해당했다. 이 때부터 파우지아의 삶은 아프가니스탄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와 얽히며 험난해진다.

 파우지아의 오빠들 또한 행정관료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우지아와 남편까지 오빠의 정적들에게서 위협을 받았다. 남편은 매형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여러 번 감옥에 끌려가는 바람에 건강을 해쳤다. 파우지아는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에 입학했지만,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공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탈레반이 집권하고 나서 여성 교육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파우지아는 주변의 여성들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강간을 당해도 간통죄로 공개처형을 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런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우지아와 남편은 탈레반의 손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북부 지역으로 떠났다.

 탈레반에 저항하는 무자헤딘 세력이 지배하는 북부 지역에서 파우지아는 다시 자유를 찾았다. 그곳에서 파우지아는 학교를 세우고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한 사람으로서 독립하게 된다. 그리고 구호기관을 위해 의료 조사를 하고, 유니세프의 아동 보호국에 취업하면서 전쟁으로 집과 재산, 가족을 잃은 주민들과 아이들을 돕게 된다. 이때부터 파우지아는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게 된다. 탈레반이 몰락한 이후 민주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파우지아는 여성단체와 유니세프에서 일하면서 얻은 인맥과 경험, 정치인 가문의 전통에 힘입어 하원의원에 당선되고,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정치인 중 한 명이 된다.

 파우지아의 삶에서 우리는 역사가 한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개인이 그러한 역사의 영향 속에서도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지를 볼 수 있다. 계속되는 내전과 탈레반의 억압으로 파우지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의사의 길을 포기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그녀는 한 사람으로서 독립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는 데서 더 나아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는데도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렇게 파우지아는 일방적으로 역사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삶에서 벗어나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그녀조차도 아프가니스탄과 이슬람의 전통과 인식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파우지아는 자신에게는 따뜻한 말 한 마디 한 적 없고 그저 시집 가면 끝인 딸들 중 하나로만 여겼던 아버지, 지역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국왕에게 목숨 걸고 간언하면서 집에서는 밥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아내를 때리던 아버지를 여전히 존경하고 롤모델로 여긴다. 아버지는 하루도 쉴 새 없이 가문과 지역을 위해 일해야 했으니 중압감이 컸을 것이고, 아내를 때리는 것이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여겨졌으며 집안 대소사를 맡길 정도로 어머니를 신뢰하고 사랑했다고 파우지아는 아버지를 옹호한다. 그러나 아무리 중압감이 크더라도 아내를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으로 삼은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아내를 진정으로 한 인격체로 존중했다면 밥이 잘 안 됐다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심하게 폭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부르카를 쓰든지 말든지 개인의 선택이고, 부르카도 전통의 하나이므로 쓰는 것 또한 존중 받아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녀가 한 번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왜 여성만 히잡이나 부르카로 자신의 모습을 가려야 하는지, 성폭력 문제의 원인이 과연 여성이 단정한 옷차림을 하지 않아서인지. 히잡이나 부르카 자체가 근본적으로 품고 있는 모순에 대해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녀 또한 정치인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파우지아는 이 책에서 족벌정치를 비판하지만 그녀 자신도 아버지와 가문의 후광을 입었고, 정치 가문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물론 파우지아가 족벌정치를 펼치는 정치인들과 달리 자신과 자기 가문의 이익을 사사로이 챙기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러한 족벌 정치와 차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여성 하원의원 말랄라이 조야가 지나치게 과격한 언행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것을 보고 정치적으로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평했는데, 조야야말로 진정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대표라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성이 정치를 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위협하는 데도 아프가니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는 그녀의 용기 자체는 의심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에 평화와 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없다고 보지만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이 평화롭고 부강한 국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도 뛰고 있다.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녀는 지금도 살아 있고, 2014년에 다시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활발히 정치 활동과 인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와 아프가니스탄이 어떠한 길을 걸을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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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no책읽기yes 2021-10-06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몰랐는데 바스티안님의 글을 보니 관심이 생기네요.

바스티안 2021-10-16 12:30   좋아요 0 | URL
제 글 때문에 이 책을 알게 되셨다니 기쁘네요. 이 서평을 다시 읽어보니 지금 상황에 읽기 좋은 책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