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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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여섯 도읍에 얽힌 중국의 역사를 논평하는 것이 좋았다.여섯 도읍의 위치를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각 도읍 안의 유적지 위치를 표시한 지도들이 있어 여섯 도읍이 어떤 공간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도판이 흑백이고 크기가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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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중단편선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문학전집 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성일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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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작품,『안나 카레니나』,『전쟁과 평화』스포일러 포함 

『톨스토이 중단편선』 1권은 톨스토이가 30대 초반에 쓴 초기작 일곱 편을 담고 있다. 초기 작품들이라 이후의 작품들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톨스토이의 문학 세계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인물 유형들과 주제 의식이 보인다. 톨스토이 문학 세계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후 작품들보다는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이지 초기작들에서도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인물 구축, 심리 묘사, 자연 풍경 묘사는 뛰어나다. 각 단편에 대한 감상을 간단하게 쓰려고 한다. 단편들 중  「데카브리스트들」 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아 글을 따로 썼다.


네흘류도프 공작의 수기


  네흘류도프 공작은 톨스토이의 말기 작품인 부활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하지만 화자인 ''는 네흘류도프가 아니라 피에르 베주호프(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나 콘스탄틴 레빈(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또는 톨스토이 자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톨스토이가 스위스를 여행하는 동안 실제로 경험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단편이고, 피에르나 레빈이라도 ''와 비슷하게 행동했을 테니까.

 

  ''는 스위스 루체른의 한 호텔에서 머물고 있다 어느 날 저녁 한 거리의 가수를 보게 된다. 행색은 초라하지만 그의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노래가 끝난 뒤 아무도 그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만 그 가수를 대접하려 호텔에 데려오지만, 호텔 종업원들은 '' 같은 귀족이 쓰는 연회장이 아니라 평민들이 사용하는 연회장으로 '''가수'를 안내하고, 가수와 함께 있는 ''까지 은근히 무시한다. ''는 사람들의 비정함과 무관심에 분노한다. 아름다운 음악에 감동하면서도 정작 그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이 가난하고 초라하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외면하는 모순이 ''를 괴롭게 한다.

 

  그런데 ''는 갑자기 자신이 거리 가수 때문에 호텔 직원들에게 화를 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이 모든 것은 온 세상이 조화롭게 돌아갈 수 있게 하는 더 큰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엉뚱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아직 29세밖에 되지 않았던 톨스토이는 이러한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을 깊이 생각하기에 너무 젊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길거리 버스커 출신인,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떠올랐다. 그는 거리 공연을 할 때 자신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도 서러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공연을 보더라도 그 공연자를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대하듯 대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아홉 시간이나 걸어다니면서 목이 아프도록 공연을 했는데도 한 푼도 못 벌었다는 이 단편 속 거리 가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그 다짐을 되새기게 되었다. 사회의 약자들이 겪고 있는 소외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나도 이 시절의 톨스토이보다 더 깊이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알베르트


  재능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알베르트는 대극장의 오페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지만, 자유분방한 기질과 유부녀와의 스캔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감동한 귀족 델레소프는 그를 자신의 집에서 지내게 하고 일자리까지 주선해 주지만, 알베르트는 술만 마시고 델레소프가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것을 답답히 여겨, 결국은 델레소프의 집에서 나와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서 찬사를 듣는 환상에 빠진다.

 

  말년의 톨스토이라면 예술을 한다며 인생을 낭비하는 알베르트를 단죄했을 것이다. 하지만 30대 청년 톨스토이는 알베르트를 비난하지도 단죄하지도 않고 그저 지켜본다. 그리고 성냥팔이 소녀가 보았던 환상처럼, 아름답지만 사라져 버리기에 슬픈 환상을 선물해 준다. 다른 이의 도움도 뿌리치고 환상 속에서만 행복해하는 알베르트의 모습에 한숨이 나오다가도, 나 또한 알베르트만큼이나 현실에 어둡고 이상에 매달려 살기에 남의 모습 같지 않아 슬퍼진다.


세 죽음


  말 그대로 세 개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한 귀족부인의 죽음과 한 평민의 죽음, 그리고 그 평민의 십자가를 만들기 위한 숲 속 한 나무의 죽음. 귀족부인은 편안한 침대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죽어가지만 죽기 직전까지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반면 가난한 평민은 자기 집도 아닌, 북적거리는 여관 벽난로 위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었지만, 잠들듯이 평안히 세상을 떠난다. 그 평민의 십자가를 만들기 위해 숲 속의 나무는 삶을 마치고, 나무가 잘려나간 뒤에도 자연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톨스토이가 지향하는 죽음은 셋 중 평민과 나무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귀족부인을 나무라지는 못하겠다. 나 또한 아직은 삶에 미련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가정의 행복


  제목만 보고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고리타분한 설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 가장 몰입이 잘 되었다. 열일곱 살 소녀 마샤는 부모님을 잃은 뒤 열아홉 살이나 많은 후견인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진다. 10대 후반 미성년자와 30대 후반의 사랑이라니 지금으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관계지만, 자신보다 한참 연상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심리는 여자인 내가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묘사했다. 어린애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어린 여자애가 아니라 동등한 한 사람으로서 그 사람과 마주하고 싶은 마음, 좋아하지만 휘둘리고 싶지는 않은 마음. 30대 남자가 어떻게 10대 소녀의 미묘한 감정을 이렇게 잘 알까 싶다. 마샤와 세르게이가 서로 마음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그려지는 심리 묘사는 어느 연애 소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변의 자연 풍경을 통해 두 사람의 설레는 마음을 전하는 솜씨도 뛰어나다.

 

  나이 차이 때문에 망설이고 주저하던 마샤와 세르게이는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두 사람이 인생의 주기에서 서로 다른 지점에 있었다는 것이다. 마샤는 남편과 시골에서 소박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에 만족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매일 비슷한 일상이 지루해졌다. 게다가 마샤는 하고 싶은 게 많은 10대 소녀다. 반면 30대 후반인 세르게이는 이제 안정적이고 소박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마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에 나가서 미모로 인기를 얻게 되고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되고, 남편과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 사교계의 명성은 한 순간의 것이었다. 이제 21살이 된 마샤는 다른 귀족들이 자신보다 어린 귀족 아가씨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한물갔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다. 100여 년 전에도 지금에도 여자는 외모와 나이로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한숨이 나왔다. 그제서야 마샤는 사교계가 얼마나 가식과 허영으로 가득찬 곳인지 깨닫게 된다. 세르게이는 마샤 스스로 사교계의 헛됨을 실감하기까지 기다렸다고 말한다. 마샤는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지만, 세르게이는 이전과 같은 감정, 관계는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단편은 마샤의 마지막 말로 끝맺는다. "그날로 남편과 나의 로맨스는 끝이 났다. 옛 감정은 소중하고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아이들과 아이들 아빠에 대한 애정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지금 현재로서는 내가 아직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행복한 삶의 시작이 되었다."

 

  또 다른 행복의 시작이라지만 예전과 같은 설레던 감정은 이제 포기했다는 것이 슬프다. 그것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세르게이는 밖에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자기 뜻을 펼칠 수도 있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인 마샤는 사회 활동을 하기 어렵다. 마샤는 자기의 뜻을 펼칠 수도 없고 또 다시 설레는 연애를 할 수도 없고 오직 어머니로서의 보람만 찾으며 살아야 한다. 꿈도 많고 사랑에 대한 기대감도 컸던 마샤, 생명력이 넘쳤던 마샤는 결말에 들어 갑자기 세르게이에게 길들여진 아내가 된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모습에서는 안나 카레니나가, 결국은 한 아내이자 어머니로 가정에 정착하는 모습에서는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와 안나 카레니나의 키티가 보였다.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 가정의 행복을 위해 여자는 정숙하고 가정적인 아내이자 어머니로 길들여진다. 톨스토이는 피에르와 나타샤 부부, 레빈과 키티 부부, 그리고 자신과 아내의 삶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이상적인 부부상을 꿈꾸었지만, 실질적으로 아내를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에 아내를 끼워맞춘다. 아내 소피아는 톨스토이가 생각한 이상에 부합할 수 없었고, 톨스토이는 결국 결혼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이후 작품들에서 결혼에 대한 환멸감을 토해냈다.

 

  톨스토이를 위대한 사상가로 만든 것은 도덕과 올바른 삶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였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문학가로서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의 필력이 워낙 뛰어나서 자신의 사상과 도덕관도 흥미롭게 읽히게 만들지만, 생생하게 살아숨쉬던 인물들은 그의 도덕관에 갇혀 밋밋해진다. 도덕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었다면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생명력이 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자크인들: 카프카스 이야기 1852


  주인공 올레닌의 성장기를 그리려던 것이었다면 실패작이고, 카자크(Kazak,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러시아 중앙 지역에서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일대와 러시아 서남부 지역으로 이주한 뒤 자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농민 집단. 자치적인 군사 공동체를 이루어 러시아의 변경 지역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의 삶을 그리려던 것이라면 성공작이다. 젊은 귀족 올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의 판에 박히고 나태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 카프카스 지역의 군대에 자원 입대한다. 올레닌이 카프카스에 오면서 소설이 시작되고 올레닌이 카프카스 지역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나니, 올레닌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올레닌보다 카프카스의 자연 환경과 그곳에 사는 카자크들의 풍속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카자크 박물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톨스토이는 실제로 1851년 카프카스 지방의 군에 입대해서 군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쓴 것이니 카프카스와 카자크 묘사가 디테일하고 생생할 수밖에 없다.

 

  톨스토이의 남주인공들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나',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나' 자체에 도취되는 면이 있다고 느끼는데, 올레닌도 그렇다. 올레닌은 가식적이고 나태하게 사는 러시아 본토의 귀족들과 달리, 자유롭고 당당하고 강인하게 살아가는 카자크 사람들의 삶에 매혹된다. 그러나 카자크들에게 올레닌은 본토에서 온 러시아군 1일 뿐이다. 차라리 친구 벨레츠키처럼 스스럼없이 카자크들과 어울렸으면 좋았을 텐데, 올레닌은 자신의 상상 속 이상적인 카자크들을 설정하고 그 환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러니 카자크 사람들과 깊이 교류하지 못했고, 처음 왔을 때의 거창한 포부와 달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결국 본토로 돌아간다. 그나마 올레닌을 진심으로 아꼈던 유일한 카자크인 예로슈카 아저씨만 그를 배웅하지만, 그도 자신이 아끼는 마을 청년 루카와 올레닌 중 한 명을 선택하라면 망설임 없이 루카를 선택할 것이다. 올레닌이 열렬하게 사랑했던 마을 아가씨 마리안카도 올레닌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 너무 잘 보여서 안타까웠다.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카자크 사람들에게 가려져 올레닌의 존재감은 희미해진다. 아무래도 작품 활동 초기라 톨스토이가 작품의 구심점을 잡고 주인공의 존재감과 개성을 만드는 데 서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어떤 기행문이나 박물지보다도 생생하게 그 시대의 카프카스와 카자크들의 삶을 전하고 있다.


폴리쿠슈카


  무고하고 힘 없는 서민이 뜻하지 않게 불행에 빠진다는 점에서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 폴리케이('폴리쿠슈카'는 폴리케이의 애칭이다.)는 평범한 농노이다. 성품 자체는 선량하지만 젊은 시절 도둑 밑에서 일하다 도벽이 생겨서 물건을 자꾸 훔치다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잃었다. 나라에서 군인을 징집할 때 사람들은 폴리케이를 군대로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주 부인은 폴리케이가 정말 착하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믿고, 오히려 큰 돈을 받아오는 중요한 임무를 폴리케이에게 맡긴다. 폴리케이는 마님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 임무를 잘 해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불행이 그에게 닥쳐온다.

 

폴리케이는 모자에 돈 봉투를 넣어두지만, 폴리케이도 모르는 사이에 모자가 낡아서 생긴 구멍으로 돈 봉투가 빠져나간다. 폴리케이는 마님의 신뢰를 잃을 것이 두려워 목을 매어 자살해 버린다. 남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폴리케이의 아내는 갓난아기를 목욕시키다 남편에게 뛰어간다. 그러는 바람에 아이는 욕조에 빠져 익사하고, 남편과 아이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아내는 미쳐버린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폴리케이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농부 두틀로프가 잃어버린 돈 봉투를 찾아왔다. 그러나 마님은 폴리케이 가족의 비극을 불러온 돈을 보기 싫다며 두틀로프에게 그 돈을 통째로 준다. 두틀로프는 그 돈으로 병역을 대체할 사람을 사서 징병되었던 조카를 빼내온다. 울며불며 두틀로프를 원망했던 조카와 조카의 가족들은 행복해한다. 그 돈 때문에 폴리케이 가족이 불행해졌는데도, 자신 대신 전쟁에 나가는 용병이 나는 당신들 대신 죽는 거라고 악을 쓰는데도.

 

번역자의 해설에서는 여지주의 변덕 때문에 죽은 폴리케이를 통해 톨스토이가 농노제의 폐해를 고발했다고 했지만, 나는 소외되는 약자들에 대한 세상의 무관심을 보았다. 폴리케이 개인의 비극과는 상관 없이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돌아간다. 심지어 폴리케이의 불행 덕분에 다른 누군가는 행복해진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으로 인한 것인지 모르고, 알더라도 외면하고 마냥 행복해하기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세상은 여전히 그렇게 차갑고 비정하기에 읽기 가장 힘들었던 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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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작품, 『전쟁과 평화』 스포일러 포함 

  「데카브리스트들」은  『전쟁과 평화』 를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전쟁과 평화』 가 이 작품을 쓰려다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톨스토이는 원래 당대 러시아의 혁명가들이었던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했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농노제 폐지와 입헌군주제 실시를 목표로 1825년 황제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에게 봉기를 일으켰다 진압당했고, 30여 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데카브리스트들 중 주요 인물인 세르게이 볼콘스키, 세르게이 드루베츠코이와 먼 친척이었던(톨스토이의 어머니가 볼콘스키 가문 출신이고 외할머니가 드루베츠코이 가문 출신이었다.) 톨스토이는 어릴 때부터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1855년 니콜라이 1세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에 새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특별 사면령을 내려, 데카브리스트들이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 돌아오자, 톨스토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고 했다.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들이 어떻게 혁명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젊은 시절인 1812년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다. 젊은 귀족이었던 데카브리스트들은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지만 프랑스군을 쫓아 프랑스에 가게 되면서 프랑스의 자유주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더 발전시켜  『전쟁과 평화』 를 썼고, 정작 쓰려고 했던 데카브리스트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남겨놓았다. 그 미완성작이 바로  「데카브리스트」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2010년에 출간된  『톨스토이 중단편선』 1권에 이 단편이 실려 있어 읽어보았다. 

  이름까지 따 왔지만(안드레이의 성 볼콘스키Bolkonsky는 첫 글자만 세르게이 볼콘스키Sergei Volkonsky와 다르다.) 안드레이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었고,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는 데카브리스트인 세르게이 드루베츠코이와 달리 권력에 영합하는 인물이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열렬히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으니 톨스토이가 원래 의도대로 썼다면 데카브리스트가 될 인물은 피에르 베주호프밖에 없다. 에필로그에서 피에르는 비밀 정치 결사 활동을 해 니콜라이에게 의심을 받고, 피에르를 무척이나 따르는 니콜루슈카(안드레이의 아들)는 피에르와 혁명을 일으켰다 니콜라이에게 진압당하는 꿈을 꾼다.  피에르가 에필로그 시점(1820년)에서 5년 뒤 데카브리스트의 봉기에 가담할 복선이라고 볼 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 의 주인공은 1856년 새 황제의 특별 사면으로 모스크바에 돌아온 데카브리스트 표트르 이바노비치 라바조프와 그의 가족들이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탈리아고, 부부는 서로를 '피에르'와 '나타샤'라고 부른다. 피에르 라바조프는 『전쟁과 평화』 의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다.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자기 주장을 펼칠 때는 물러서지 않는 성품은 베주호프와 꼭 닮았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능력은 안드레이에게, 이미 다른 사람의 약혼녀인 나탈리아와 사랑에 빠지는 무모함은 아나톨리에게 간 것 같지만. 라바조프의 아내 나탈리아는 검은 눈의 미인에 사랑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열적인 면, 피에르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나타샤를 연상시킨다.  동생 라바조프와 30여 년만에 상봉하는 누나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베주호프의 친척 누나 카치슈가 세월이 지나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카치슈는 방탕한 데다 사생아인 베주호프를 친척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냉대했지만, 결말 부분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베주호프와 화해한다. 

  미완성작이다 보니 이야기는 라바조프와 가족들이 마리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기승전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  속 피에르가 데카브리스트가 되었다면, 피에르와 나타샤가 시베리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나탈리아는 라바조프가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1분도 망설이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 시베리아의 라바조프에게 갔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기후, 무거운 수감 생활을 견뎌내고 나탈리아와 라바조프는 두 남매를 낳고 수십 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왔다. 나타샤도 피에르가 유배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시베리아 생활이 혹독해도 피에르와 나타샤 부부는 강인하게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다만 피에르 라바조프와 나탈리아의 아이들이 시베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과 달리, 피에르 베주호프와 나타샤의 아이들은 데카브리스트의 봉기 이전에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것이다. 에필로그 시점에 이미 아이들이 태어나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갓집인 리셰 고리에서 지내고 있었으니까.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친정이나 친척집에 맡기고 남편에게 달려간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상상한 뒷이야기에서 피에르와 나타샤의 아이들은 외삼촌 니콜라이와 외숙모 마리아에게 맡겨진다. 아버지의 자유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아이들은 황제에게 충성하는 외삼촌 니콜라이와 갈등을 겪고 헤어진 부모를 그리워하지만, 막상 30여 년만에 부모가 돌아오자 낯설어한다. 안타깝게도 내 필력은 30여 년에 이르는 거대한 이야기를 쓰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 피에르의 이야기를 끝내 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이 짧은 미완성작을 통해 피에르와 나타샤의 노년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고, 돌아온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귀족들에 비하면 초라한 라바조프 가족의 행색을 보고 은근히 무시하던 숙박업소 사장과 직원들은, 라바조프가 데카브리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을 깍듯하게 대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귀족들에게는 데카브리스트들이 돌아온다는 것이 큰 뉴스이고, 라바조프를 역사의 산 증인이자 뉴스거리로 대한다. 그들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뜻을 마음 깊이 되새기기보다는 그들을 무료하고 지루한 삶의 활력소로 여긴다. 하지만 작가는 "(18)56년도에 러시아에서 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감히 말하겠다."고 말할 만큼 그들의 귀환에 큰 의미를 둔다. 이 짧은 부분만 보더라도 데카브리스트들의 귀환을 대하는 다양한 반응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는데, 이야기가 완성됐으면 데카브리스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살아남은 의미를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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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안 나이트 - 러시아 전문가의 시베리아 이야기
박대일 지음 / 미래터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전쟁과 평화』스포일러 포함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데카브리스트. 나는 이 둘에 마음에 끌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모스크바까지 가 보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고, 톨스토이의 소설『전쟁과 평화』덕분에 데카브리스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평원을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달린다. 9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가로지르는 것이다. 데카브리스트들은 농노제 폐지와 입헌군주제 실시를 목표로 1825년 혁명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시베리아로 유배 간 혁명가들이다.『전쟁과 평화』의 결말에는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가 데카브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암시가 숨어 있다. 이 둘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에 호기심이 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노선도. 이르쿠츠크는 횡단철도의 중간지점이다.

출처: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04443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간까지만 다루고 있다.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이 이르쿠츠크이고 자주 오가는 지역이 이르쿠츠크부터 그 동쪽에 있는 지역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르쿠츠크 서쪽의 역들이 궁금하다면 다른 책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책들에서는 다루지 않는 작은 역들까지 이야기하고 있고, 그 역에 얽힌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특히 항일 독립운동과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에 얽힌 이야기가 많아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작가가 횡단열차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도 다채롭고 생생하다.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도 내가 만족할 만큼 잘 정리되어 있었다. 톨스토이는 원래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했다 그들의 젊은 시절에 해당하는 시대의 이야기『전쟁과 평화』를 쓰게 되었다. 정작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소설은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지만,『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가 데카브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암시도 결말에 남겨 두었다. 톨스토이 작품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피에르가 데카브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데카브리스트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공인물 때문에 실존인물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다니 뭔가 주객전도된 느낌이지만, 이게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에 반대해서 봉기를 일으켰다 실패한 데카브리스트들은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유배되어 그곳에서 수십 년 동안 유배되어 살아간다. 아직 횡단철도도 깔리기 전인 그 시대에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은 시베리아까지 남편을 찾아갔다. 정부에서는 국가 반역 죄인인 데카브리스트들과 혼인 관계를 파기하지 않는다면 모든 귀족 칭호와 특권을 박탈하고 시베리아에서 낳는 아이는 농노 신분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지만, 아내들은 끝까지 남편의 곁을 지켰다. 데카브리스트들과 그들의 아내들, 그들이 시베리아 곳곳에 남긴 흔적들을 보면서 피에르와 그의 아내 나타샤가 어떻게 시베리아에서 지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바이칼 호수의 풍경. 이 책에서는 한 챕터에 걸쳐 바이칼 호수와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출처: BK 투어서비스. BK 투어서비스는 작가가 운영하는 시베리아 지역의 여행사이다.


  이 책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사람들의 생활, 시베리아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바이칼 호수 등 다양한 시베리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가의 필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고, 신선한 시각이나 깊이 있는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컬러 도판을 담고 있고 특히 바이칼 호수의 풍경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자연 풍경 사진들은 마음을 사로잡지만, 너무 작은 도판들도 많다. 특히 데카브리스트들의 유형지 현황을 담은 지도들은 도판이 너무 작아 정보 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베리아를 다룬 다른 책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아니면 집 안에서 광활한 시베리아를 상상하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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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중단편선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문학전집 6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김성일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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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이후 작품들의 씨앗을 볼 수 있는 책. 초기 작품들이라 이후의 작품들보다는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톨스토이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인물 유형, 주제 의식이 보인다. 이후 작품들보다 부족한 것이지 인간에 대한 통찰과 심리 묘사는 초기작들에서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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