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 읽기 세창명저산책 57
김성동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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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을 몇 년 동안 공부했는데도 내가 읽어 온 인문학 책의 대부분은 해설서이다이 정도로 오래 공부했으면 원서를 읽어야 할 텐데 아직도 해설서에 의존하고 있다니 부끄럽지만해설서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원서를 읽기 전 기본 개념을 머릿속에 정립한다면 원서를 이해하기 훨씬 수월해질 테니까해설서 읽기가 원서 읽기로 이어지지 않을 때가 많은 게 문제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피터 싱어 Peter Singer, 1946-에 대해서도 그의 원 저서가 아니라 해설서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피터 싱어는 실천 윤리즉 규범으로서의 윤리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안에 적용시키는 윤리학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사람이다.실천윤리학 Practical Ethics은 싱어의 윤리 사상 전반을 담은 핵심적인 저술이고이 책은실천윤리학의 한국어판 번역자인 김성동 교수가실천윤리학을 요약하고 해설한 책이다.


  피터 싱어는 윤리를 정당화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이익사회적 이익이라고 이야기한다그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윤리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 행위의 목적이나 선악 판단의 기준을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증진하는 데 두는 사상)그는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을 주장했다그런데 싱어는 이 이익 평등 고려의 원칙을 적용하는 대상에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포함시킨다동물들 또한 인간들처럼 자신을 한 존재로 인식하는 인격을 가지고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피터 싱어가 동물을 인간이 이용하는 도구가 아닌인간처럼 동등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주장한 것은 혁신적인 일이다그러나 인격을 갖춘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동물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데영아나 지적 장애인치매 노인처럼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또한 동물과 다를 바 없으니인간의 생체 실험에는 분노하면서 동물 실험에는 분노하지 않는 것은 종 차별주의라는 그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불러왔다게다가 유전병이 두려워 유전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50퍼센트인 태아를 임신중절 하는 것보다는유전병에 걸린 것이 확실한 영아를 살해하는 것이 더 확실하며 영아와 태아 모두 의식과 인격을 가진 존재라고 하기 어려우니 영아 살해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의 논의 또한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철저히 결과를 중시하고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싱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나 또한 읽으면서 싱어에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피터 싱어는 자신의 실천 윤리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또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충분히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윤리적 관점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그는 우리가 왜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그 질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반성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답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또한 단순히 우리는 착하게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어떤 사안에 대해서 어떤 것을 고려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든다싱어에게 윤리는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피터 싱어가 말하는 논의는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생각할 실마리를 남긴다.

 

  철학자이자실천윤리학의 한국어판 번역자답게 김성동 교수는 윤리 교과서처럼 명쾌하게 싱어의 논리들을 해설한다각 장 뒤에 있는 주요 내용 정리가 싱어의 논지와 기본 개념을 머릿속에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싱어의 주장을 해설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김성동 교수 나름대로 싱어의 주장을 비판하기도 하고우리의 현실에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200여 페이지의 책이지만 책 판형이 작아 몇 시간 만에도 읽을 수 있다많지 않은 내용이지만 주제 하나 하나가 오래도록 고민해야 할 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김성동 교수가 명쾌하게 해설해 주었지만 김성동 교수의 해설이라는 틀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원서를 읽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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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 읽기 세창명저산책 57
김성동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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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이 어떤 논지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명쾌하게 해설하고 정리했다. 단순히 요약 정리만 한 것이 아니라 싱어의 논지에 대한 해설자의 논평도 함께 적고 있다. 분량은 적어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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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 마티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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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페미니즘을. 이 말을 듣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는 이미 성 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고, 오히려 여학생에게 유리한 공간인데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냐고. 페미니즘 교육은 교사가 마땅히 지켜야 할 중립과 공평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냐고.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초등학교 교사들의 모임인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저서 학교에 페미니즘을』에서 이런 반문들에 대답한다.


페미니즘 교육은 정말 남학생에게 불리할까


  한국 공교육의 교육과정에는 양성평등이라는 교육 목표가 들어 있다심지어 학교가 여학생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남학생 출석번호는 1번부터 시작하고여학생 출석번호는 남학생들의 번호 뒤에서부터 시작한다교과서 속 엄마는 늘 앞치마를 입고 집안일을 하고 있고아이들은 앙 기모띠(기모치 이이(기분 좋아)라는 일반적인 일본어 문장에서 유래한 표현이지만일본 포르노를 음지에서 소비하던 대중이 포르노 언어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다이러한 맥락을 알고 있는 여성에게는 성적 수치감을 일으키는 표현으로언어적 성희롱에 해당한다.)’ 같은 혐오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그리고 학교는 남의 눈치를 살피고 조용히 앉아 참을성 있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학생들에게 유리한데여성은 어릴 때부터 자기 의견을 말하기보다 묵묵히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타인의 기분을 살필 것을 남성보다 더 강력하게 요구 받는다이런데 학교가 양성 평등이 이루어진 공간여학생에게 더 유리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남학생을 차별하고 남학생의 기를 꺾는 교육이 아니다여자다운 것과 남자다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고성별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자기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교육이다체육을 잘 하지 못하거나 다른 남학생들보다 섬세한 남학생은 교사들이나 부모에게서 남자답지 못한 아이유별난 아이로 취급받기 일쑤다. ‘남자답기’ 위해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가 이 정도도 못 참느냐는 타박도 들어야 한다페미니즘 교육은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사회에서 흔히 남자답다고여자답다고 생각하는 용모와 언행에서 벗어나더라도 비웃음을 당하지 않고, 자기답게 살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 


페미니즘 교육은 중립과 공평의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익만을 위한 사상으로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만을 위한 교육으로 오해 받는다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는 사상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까지 있다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남성을 혐오하고 배척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남성이든 여성이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다른 상대를 존중하도록 하는 교육이다억압 받는 소수자인 여성의 관점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약자들과 소수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과 연대한다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위한 교육이다
 
  한편에서는 페미니즘 교육이 교육의 정치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페미니즘 교육은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그러나 여러 명이 모인 집단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 자체가 정치다학급의 규칙을 정하고 지키고 집행하는 일교사와 학생들이 의견을 조율해 가는 일도 정치에 속한다오히려 학교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배우고 실습할 수 있는 곳이다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서로 조율해 가는 것이 정치이고 민주주의이지모두가 중립만을 지키는 것이 정치민주주의는 아니다. 


 『학교에 페미니즘을』은 교사들만 읽으면 되는 책일까


 그런데 이런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나는 교사도 부모도 아니고앞으로도 교사나 부모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그런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교사나 부모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대할 일은 생긴다그리고 나는 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이 아이들이 자라나 세상을 이끌 것이다내 눈 앞에서 아이들이 성 차별적이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성별에 대한 편견에 갇힌 모습을 보일 때 나는 그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그 아이들을 그대로 놔둔다면 지금의 성 차별과 소수자 혐오는 대대손손 계속될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교사나 부모가 아닌 사람도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자답게또는 여자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나는 나답게 살고 싶지만 세상은 여자답게 살라고 요구한다여자는 젊고 예쁘고 날씬해야 하고그렇지 못한 여자는 일상생활에서, TV와 인터넷 방송에서 조롱거리가 된다아버지는 엄마와 나만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엄마조차 외출했을 때는 딸인 내가 아버지 밥을 차려드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꿈을 꾸고 나서 남자답게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지 실감했다내 지인 중 한 명의 성별이 갑자기 바뀌어 버리는 꿈이었다꿈속이지만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성별이 바뀌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하지만 결국에는 성별이 바뀌어도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꿈에서 깬 뒤 생각해 보았다내 성별만 바뀌고 다른 점들은 그대로라면 나는 많이 달라질까그렇게 많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나는 남성적인 사람도 아니고여성적인 사람도 아니고 그저 나일 뿐이니까
 
  남자답게또는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때 우리답게 살 수 있다는 것성별에 관계없이 상대방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은 폭력이라는 것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의 외모를 칭찬하는 것조차 타인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라는 것 등초등성평등연구회가 아이들에게 전해 주려는 메시지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성 차별과 소수자 혐오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지금이 우리들에게도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한 때다. 아이들도우리 자신도 남자다운, 또는 여자다운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답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교사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참고 기사:  여자 컬링팀 애칭으로 ‘앙 기모띠’ 권하는 사회(http://slownews.kr/68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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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 마티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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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게, 또는 여자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꼭 필요한 것. 그래서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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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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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항설백물어』에는 각 장의 원전이 된 괴담과 삽화를 함께 실어 기괴하고 오싹한 분위기가 더욱 강해진다.


  무서운 이야기는 듣고 나면 밤에 잠을 못 잘 걸 알면서도 듣고 싶어진다. 그렇게 괴담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다.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 는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이야기'라는 뜻으로, 일본의 소설가 교고쿠 나츠히코가 일본에서 전해져 오는 괴담들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에도시대(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다스렸던 시기, 1603~1867)에 괴담집을 만들기 위해 각 지방의 괴담을 수집하러 떠돌아다니는 청년 모모스케와 해결사 마타이치 일당이, 함께 괴이한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에피소드 형식의 소설이다. 괴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으니 이 소설 자체가 일종의 괴담집이다. 


  괴담집인데도 이 소설에서는 귀신이나 요괴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모스케와 마타이치 일당이 겪는 기묘한 사건들은 겉보기에는 귀신이나 요괴의 농간처럼 보이지만, 결말에서 귀신이 아닌 사람이 저지른 짓으로 드러난다. 진상을 알고 나면 사건을 일으킨 인간의 탐욕과 증오, 잔혹함에 치를 떨게 된다. 그들을 처단하는 마타이치 일당도 마냥 선하고 정의롭지만은 않다. 마타이치 일당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사건을 해결한다. 마타이치 일당이 교묘한 수를 써서 범인들을 함정으로 몰아넣고 스스로 파멸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면, 그들도 범인들 못지않게 잔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악귀보다 독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건은 해결되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고 세상에는 요괴나 귀신이 저지른 짓으로 알려진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수많은 괴담들이 이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세상에는 어떤 작가도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 기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뒤에는 복잡하게 뒤얽힌 인간의 감정이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움은 앞으로도 잔혹하고 괴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런 기묘한 사건들, 어지러운 세상을 보는 마타이치 일당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약한 사람들을 고통과 원한에서 구하고,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 다칠 사람들을 위해 일부러 진상을 밝히지 않는다. 험하고 악한 세상에서 구르다 보니 사람에게서 어떤 선한 것도 바라지 않게 된 마타이치 일당에게도 인정은 남아 있다. 희미하게나마 남은 사람의 온기가 잔혹한 이야기들에 지친 마음을 감싸준다. 

  이야기들 자체가 흥미로우니 그저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고, 악인들이 처단되고 잘못되었던 일들이 바로잡히는 모습에 통쾌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씁쓸한 마음이 남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항설백물어』 는 좋은 읽을거리가 되어줄 것이다. 분량도 5백 페이지가 넘으니, 읽을 것이 많아 좋다. 읽을 것이 많다는 건 맛있는 음식을 잔뜩 쌓아둔 것만큼이나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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