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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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이 책을 부른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콜롬비아의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들 중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 『사랑과 다른 악마들 Del amor y otros demonios』 을 다른 책 덕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에서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Magical Realism, 사건과 인물은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꿈, 신화 등의 환상적인 요소들을 결합한 문학 사조)'을 소개했는데, '마술적 리얼리즘'의 예시로  이 소설을 들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 강렬한 매력이 있는 이 소설을 만나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느꼈다. 


​  이 책은 시작부터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소설은 1949년 콜롬비아의 어느 예배당 내 납골묘에서 한 소녀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유골에 달려 있던 22미터가 넘는 풍성한 머리채는 독자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소녀가 죽은 뒤에도 그녀의 머리카락은 200여 년 동안이나 계속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불가사의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야기는 200여 년 전 소녀가 아직 살아 있던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  소녀의 이름은 시에르바 마리아로,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받던 18세기 콜롬비아의 항구 도시 카르타헤나에서 살고 있던 귀족의 외동딸이었다. 그녀는 어느 날 시장에 가다 미친 개에게 물렸다. 상처는 아주 가벼웠고 세 달 동안이나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열이 난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시에르바 마리아가 광견병에 걸렸다고 의심했고, 상처를 다시 째거나 오줌을 마시게 하거나 독성이 있는 약을 먹이는 등 온갖 엉터리 치료를 해댔다. 멀쩡한 사람도 오히려 병이 나게 만드는 치료에 소녀가 반항하고 발광하자, 카르타헤나 시의 사제들은 소녀에게 악마가 씌었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수녀원에 갇혀 구마 의식을 치르게 되었고, 카르타헤나의 주교가 믿고 신뢰하는 젊은 신부 델라우라가 그녀의 구마 사제로 임명됐다. 시에르바 마리아의 병이 아니었으면 서로 마주칠 일도 없었을 두 사람은 생각지도 못하게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진다.


​  이 책의 중심 줄기는 시에르바 마리아와 델라우라의 금지된 사랑 이야기다. 사람들은 금지된 사랑을 하는 둘에게 악마가 씌었다고 말하지만,  진정한 악마는 사랑할 줄 모르고 증오만 하는 그들이다. 그러니 '사랑'은 두 사람이고, '다른 악마들'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다른 사람들이다. '사랑'과 '다른 악마들' 중에서 '사랑'의 비중은 의외로 크지 않다. 남주인공인 델라우라는 작품의 3분의 1이 지난 뒤에야 등장하고, 작품의 중간 지점에서야 시에르바 마리아를 처음 만난다. 마르케스는 '다른 악마들'을 이야기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가 간절히 바라고 지키고 싶은 것은 '사랑'이었겠지만,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다른 악마들'이 어떤 것인지 집요하게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악마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에서 벗어난 것들을 광기, 이단, 악마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다. 시에르바 마리아는 백인 귀족의 무남독녀로 태어났지만 부모는 그녀에게 무관심해 그녀를 아무렇게나 방치해 두었다. 무관심한 부모 대신 흑인 노예들의 손에 자라면서 시에르바 마리아는 스페인어와 기독교 대신 아프리카의 언어들과 종교를 자신의 언어와 종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백인 귀족이라기보다는 흑인 노예에 가까운 차림새와 언행을 보여준다는 이유만으로 시에르바 마리아는 악마가 들렸다고 오해받는다. 권력을 쥐고 있는 주류인 고위 기독교 사제들은 신의 사랑을 실천하기는커녕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단, 악마로 규정하고 고문하거나 죽인다.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그들이 바로 악마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 소설에서 광신과 이성의 대립을 볼 수 있다. 18세기는 이성과 계몽이 빛나던 시대였지만 무지와 계몽의 과도기에 많은 사람들은 종교재판의 희생양이 되었고, 힘이 없는 지식인들은 자신의 이성과 지식을 발휘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이 소설은 200여 년 전 그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가 그 시대의 광기와 무지, 그로 인해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을 느끼게 한다. 그와 함께 우리는 사랑이 그 모든 것을 뚫고 나아가려다 좌절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  소녀는 단지 개에 살짝 물린 것이었고 가벼운 감기 때문에 열이 난 것일 수 있다. 멀쩡한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치료를 하니 아프고 겁이 나서 반항했을 뿐이었다. 지식인인 델라우라와 아브레눈시우는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권력이 없다. 권력을 쥔 자들에게는 소녀에게 악마가 씌었다는 것이 진실이고, 진실이어야 한다. 결국 델라우라는 소녀와 강제로 격리되어 평생 참회하며 살아야 했고, 소녀는 다른 사제들이 거행하는 고문이나 다름 없는 구마 의식을 치르고 목숨을 잃는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자르지 않겠다고 서원했던 소녀의 머리카락마저도 빡빡 깎였다. 사랑하는 델라우라와 결혼하면 스스로 자를 머리카락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한 때문이었는지, 고슴도치처럼 짧게 깎였던 소녀의 머리카락은 소녀가 죽은 뒤부터 수백 년 동안 계속 자라나 수십 미터나 되는 머리채가 되었다. 


​  이들의 사랑도 안타깝지만 '다른 악마들' 중에서도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 시에르바 마리아의 아버지 카살두에로 후작이다. 그는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방치했지만, 아픈 딸을 돌보면서 뒤늦게 부성애를 느끼게 된다. 그가 딸을 수녀원에 보낸 것도 딸이 구원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시에르바 마리아는 끝내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첫사랑 둘세 올리비아와는 오래도록 서로를 잊지 못했지만 사소한 어긋남들 때문에 끝내 이루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아내 베르나르다와 화해하려고 했지만, 베르나르다마저 귀족 부인이 되고 싶어 자신에게 접근했을 뿐 자신을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할 수 있다는 모든 희망을 잃은 후작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다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난다. 광신과 증오 때문에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다른 악마들과 달리, 뒤늦게서야 사랑하려고 했지만 결국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도 못했던 그가 안타까웠다. 


​  사랑하는 이들, 사랑하는 이들을 악마로 몰아가는 진짜 악마들, 그리고 사랑하고자 했으나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이. 이들의 온갖 감정과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쓸쓸해졌다. '사랑'은 결국 '다른 악마들'의 방해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다른 악마들'이 강제로 깎았던 소녀의 머리카락은 그녀가 죽은 뒤 계속 자라 광신, 권력자들, 세월에 저항하고 있다. 이 책에서 사랑은 승리하지도 행복한 결말을 얻지도 못했지만, 그 집요하고 강렬한 생명력으로 우리가 사랑의 힘을 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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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다른 악마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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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들, 사랑하는 이들을 악마로 몰아가는 진짜 악마들, 그리고 사랑하고자 했으나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이. 적막한 풍경 속에서 이들의 온갖 감정과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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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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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이나 영화평을 읽을 때 글쓴이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책(영화) 이야기를 읽고 싶은 건데 왜 내가 알고 싶지도 않은 글쓴이의 사생활 이야기를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작품이어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이 나오는 것은, 그 작품이 각자의 삶과 맞닿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간결해서 그만큼 각자의 삶과 맞닿을 여백이 많은 작품들이 있다. 미국의 만화가 틸리 월든의 만화 『아이 러브 디스 파트』도 그런 작품이다. 


 

 이 만화는 두 10대 소녀 레이와 엘리자베스의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독자들은 둘의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7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인데다 기승전결이나 시간 순서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이 서로 어긋나는 모습 뒤에, 엘리자베스가 레이에게 "네 연주 좋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인지 둘이 화해하는 모습인지 모호하다. 대사보다 이미지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대사들도 대부분 짤막하다.  "너 나 좋아하니?""엄청.""다행이다, 나만 그런 거면 어쩌나 했는데." "널 어떻게 미워해." 일상적이고 단순한 대사지만 우리도 언젠가 누군가와 나눠봤을 대화들이다. 그 누군가 때문에 이 단순한 대사들이 마음에 파장을 남긴다. 간결하면서 서정적인 그림체와, 흑백과 보라색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색 구성이 둘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담백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전한다. 흑백 사이에 간간이 들어간 보라색이 달콤쌉싸름한 느낌을 더한다.


  독특하게도 이 만화에는 배경 건물에 비해 레이와 엘리자베스가 더 큰 모습으로 등장하는 컷이 많다. 배경의 건물이 미니어처이거나 둘이 킹콩이라도 되는 것처럼. 왜 이런 특이한 연출을 했을까? 둘의 세상에서 가장 큰 부분이 서로였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가 있는데 등 뒤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300미터가 넘는다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제목인 '아이 러브 디스 파트',  엘리자베스가 레이와 이어폰을 한 쪽씩 끼고 음악을 듣다가 말한 한 마디 "이 부분이 제일 좋아"에서 '이 부분'은 음악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서로였을 것이다. 내 세상에서 제일 큰 부분도, 제일 좋은 부분도 바로 너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이어폰을 한 쪽씩 끼고 노래를 같이 들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 들은 노래보다 함께 부른 노래와 서로에게 불러준 노래가 더 기억에 남는다.  미술관으로 함께 걸어가는 길에 그애가 나지막하게 성시경의 <내게 오는 길>을 불렀다. 둘이 등산을 하면서 김동률의 <출발>을 같이 신나게 불렀다. 나는 등산을 싫어하지만 그애와 함께 있는 게 좋았다. 그애가 잠 못 드는 밤에는 스탠딩에그의 <Little Star>를 그애에게 불러줬다. 그애는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메신저로 자기가 직접 기타를 치며 부른 노래를 보내주었다. 그애가 사는 집 앞 골목을 팔짱 끼고 함께 걸으면서, 가로등불 켜진 저녁 골목길을 함께 걷고 있는 이 순간을 그리워할 날이 분명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못 견디게 그리워한 날들도 있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순간을 아주 조금 그리워한다. 이 만화를 읽을 때는 아주 조금 더 많이 그 순간이 그리웠다.


참고기사: 「세계의 한 부분, 바로 너를」, 2018.10.25,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674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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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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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이런 관계, 이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짧고 얇은 책이 만 원 가까운 가격이라는 건 좀 과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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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
박정훈.김선아 지음 / 사계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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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이 내게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마추픽추에는 언제 데려다 줄 거냐"이다. 내가 두 분께 나중에 마추픽추에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스마트폰 잠금화면은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다. 강원도보다 더 넓은 면적이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는 이 소금사막은 내가 가 보고 싶은 곳 중 하나다. 지금은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여행했던 친구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만 하지만, 언젠가는 라틴아메리카에 꼭 가려고 한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알아두어야 할 지식들을 모아놓은 책『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를 읽게 되었다. 


  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자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사회, 문화, 역사에 대한 안내서다. 그 동안 나름 라틴아메리카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봤다고 생각했는데도 몰랐던 것들이 꽤 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금, 은, 다이아몬드 등 각종 자원을 빼앗아 오고도 몰락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야기가 특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렇게 얻어 온 자원을 자국 산업이 아니라 외국의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다 써버렸다. 오히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게서 라틴아메리카의 자원들을 대가로 받고 자기 제품을 판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자국 산업 발전에 성공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에게서 빼앗아 온 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게 사필귀정으로 느껴졌다. 뭐, 영국, 프랑스가 라틴아메리카에서 빼앗아 온 부를 바탕으로 산업 발전을 이룬 건 사필귀정이 아니지만.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초콜릿, 설탕, 커피의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즐거움은 결국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인들이 라틴아메리카에 처음 발을 내딛은 이후 유럽에서 만들어진 달콤한 디저트와, 유럽에 들어온 진귀한 과일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자원과 라틴아메리카에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생산된 것이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의 자원을 자기 것인 양 공짜로 마구 퍼가는 행태도, 노예제도 사라졌지만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의 폐해는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남아 있다. 한 작물만 대량생산하면 그 작물의 생산에 온 나라의 경제를 의존하게 되고, 꼭 필요한 다른 음식과 생필품을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비싼 값에 들여와야 한다. 한 작물만 집중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덕분에, 우리는 그 작물이나 그 작물로 만들어지는 초콜릿, 커피를 싼 값에 즐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된다. 


 이런 라틴아메리카의 비극에 미국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거대기업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 지배자들 못지않게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게다가 각 나라의 지도자 중 미국의 이익과 어긋나는 정책을 펼치는 사람은 미국의 압력으로 쫓겨나야 했다. 1953년 과테말라의 대통령 하코보 아르벤구스탄이 겪었던 비극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소수의 대지주가 갖고 있는 땅 중 당작 경작하지 않는 노는 땅을 국가가 사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토지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에 땅을 내어주고 싶어하지 않는 대지주 중에 미국의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프루트 사가 있었다. 노는 땅이 많았던 유나이티드푸르트 사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출신 망명자들로 무장 집단을 만들어 아르벤구스탄을 쫓아내게 했다. 경제적 침략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간섭을 하니,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해됐다. 우리도 일제와 서구 강대국들에게 그렇게 침략당하지 않았었는가.


  남의 도움을 받으면 남의 간섭과 침략도 뒤따라 오니,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을 스스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가 그들이다. 그들은 빈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토지, 주택, 교육, 의료, 문화 등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빈민들에게 지원했다. 룰라는 반대에 부딪쳐도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부른다."고 말하며 과감하게 빈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쳤다. 다만 이들의 실책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지금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의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부담을 떠안고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룰라는 경제 성장을 위해 브라질 안의 아마존 숲이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것을 방치했고, 퇴임 이후 그가 부정부패를 저지른 것이 수 차례 적발됐다. 이들에 대한 비판도 함께 실려 있어야 독자들 스스로 이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 불평등을 몰아내고 모든 국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려던 이들의 뜻은 본받아야겠지만, 그들의 공적과 실책을 꼼꼼히 점검해 봐야 그들과 같은 지점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라틴아메리카는 처음인가요?』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알아두면 좋은 것들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이야기하는 듯한 문체로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 즐겁게 라틴아메리카를 알아갈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선명하고 다채로운 색채들을 옮겨 온 듯한 아기자기한 일러스트들이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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