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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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 자체도 자각하지 못했던 두 남매가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찾기까지의 고통스러운 성장기. 변화와 성장이 아무리 느리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자유를 찾아도 그 다음에 짊어져야 할 것들이 많다 해도 자유와 변화, 성장을 향한 갈망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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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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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소설을 쓰곤 한다. 내가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일기 대신 소설의 형식으로 쓴다. 일기도 매일 쓰긴 하지만, 일기를 쓸 때보다 좀 더 거리를 두고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가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큰 흐름도 잡아놓지 않고, 가끔씩 소설이 쓰고 싶어질 때마다 마음 가는 대로 몇 문단씩 써 놓는다. 나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읽힐 만한 소설은 못 되지만 소설을 쓰는 행위에서도, 써 놓은 소설에서도 위안을 얻는다.


김탁환 작가의 『대소설의 시대』를 읽으면서, 18세기 조선에도 나처럼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을 즐겼던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 전체 180권이나 되는 『완월회맹연』등의 대소설이 여성들의 손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고, 김탁환 작가는 그 연구 결과를 토대로 『대소설의 시대』를 썼다고 한다. 조선 후기 여성들이 한글 소설을 즐겨 읽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소설을 직접 창작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100권이 넘는 길고 긴 소설이라니. 조선 후기 여성 작가들이 이런 대작을 쓸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김탁환 작가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 결과에 상상을 섞어 ‘임두’라는 필명의 조선 후기 여성 작가를 만들어냈다. 임두는 23년 동안 199권에 이르는 소설 『산해인연록』을 써 왔다. 그녀가 23년 동안 소설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을 좋아했던 혜경궁 홍씨와 의빈 성씨가 그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후원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소설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깔끔하게 필사해 주는 궁녀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렇게 대소설을 만드는 여자 뒤에는 소설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연대가 있었다.


그녀들 이전에는 임두가 처음 작가로서 발을 내딛게 해준 여자들의 연대가 있었다. 시부모는 스물네 살의 임두에게 오랜만에 친정에 온 시누이를 위해 소설들을 필사하라고 했다. 임두는 단순히 필사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이 보기에 필요 없는 내용을 빼고 내용을 더 지어서 넣었다, 시어머니는 임두가 더 넣거나 뺀 내용을 보고 임두의 글 쓰는 재능을 알아보았다. 그 이후로 임두는 시댁 여인들의 소설 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소설을 쓰는 즐거움에서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임두 같은 대작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설을 놓았다 하더라도, 그녀들이 있었기에 임두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소설에 자신들이 겪는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고통을 담았던 그녀들에 대한 기억이 임두가 대소설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녀들과 임두가 그토록 소설을 사랑했던 것은, 그 시절 그녀들이 꿈을 꾸고 욕망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소설뿐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조선의 한 집안 안에 갇혀 지내지만 그녀들은 소설 속에서 광활한 대륙과 천상의 세계, 지하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수백 명의 인물들이 그 안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단지 이야기일 뿐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때로는 살아갈 힘을 준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그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며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꿈을 꾸고 욕망하고 그것을 펼쳐낼 방법이 많아진 시대를 살고 있지만, 나는 수백 년의 그녀들에게 깊이 공감한다. 내게는 그녀들이 겪었던 것과는 또 다른 현실과 제약들이 있고, 그런 답답한 현실에서 내가 버틸 수 있게 하고, 꿈꿀 수 있게 하는 건 이야기들을 읽고 쓰는 것이다. 대소설의 시대는 이야기를 만드는 여자들의 시대였고, 그 시대는 끝나지 않고 내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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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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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공간의 제약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만들어내고, 수백 년 전의 사람들과 수백 년 뒤의 사람들을 이어주는 이야기의 힘. 수백 년 전, 스스로 소설을 쓰고 필사하고 즐겨읽었던 여인들의 존재를 알려준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 소설로서의 재미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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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임보일기
이새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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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4월 8일


이새벽 작가님의  『고양이 임보일기』를 주문했다. 이새벽 작가님을 알게 된 건 작년 가을이었다.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더 빌릴까 해서 서가들을 둘러보다, 우연히 이새벽 작가님의 『고양이 그림일기』를 발견했다. 작가님이 고양이들과 식물과 함께 한 나날들을 일러스트와 일기로 그려낸 책이었다. 


그 이후로 이새벽 작가님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 고양이와 식물을 담은 일러스트와 글을 즐겨 보고 있다. 그러면서 작가님이 새끼 길고양이 다섯 마리를 임시보호하다 입양을 보낸 이야기를  『고양이 임보 일기』라는 책으로 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책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지만,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어 출간한 지 세 달이나 지난 지금에야 주문을 했다. 전편인  『고양이 그림일기』도 예전부터 갖고 싶었기 때문에 함께 주문했다. 



4월 9일


주문한 지 하루 만에 책이 도착했다. 『고양이 그림일기』와 비교해 보니 그림체가 확연히 더 아기자기하고 섬세하다. 임시보호했던 다섯 아가나 『고양이 그림일기』 이후로 작가님이 키우고 있는 검은 고양이 베리나 더 작고 올망졸망해서 그런 걸까.  


그런데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체로 그려낸 현실은 만만치 않다. "새끼 고양이가 다섯 마리면 똥도 오줌도 설사도 모두 다섯 배가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 뒤의 말을 들으니 더 짠했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괜찮다. 괜찮지 않으면 큰일이 날 테니." 아이고, 작가님. 


4월 10일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길고양이들이 겪어야 하는 잔혹한 현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도 아프고 화도 났다. 어미가 잘 키우고 있는 새끼 길고양이들을 도와준다고 거두었다가 결국 어미와 생이별시키고 정작 자기는 책임도 지지 못하는 사람, 데려온 고양이를 책임지지 못하고 강제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하는 고양이 공장으로 가게 한 사람. 어설픈 선의 때문에 오히려 고양이들을 더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나도 그런 어설픈 선의와 부족한 지식 때문에 고양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한 적들이 있었다. 내가 누굴 나무라나 싶다. 



4월 11일


표지에 나온 작가의 말대로 혼자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돌보는 것은 만만치 않다. 나도 높은 곳에서 떨어져 어미와 떨어진 새끼 고양이를 돌보긴 했지만 단 2주 동안만이었고, 사실상 고양이를 주로 돌본 건 집에 계신 엄마였다. 그런데도 먹는 대로 설사를 하고 바닥에 흘리고 다니는 새끼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님은 나와 달리 혼자서, 그것도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 고양이를 돌봐야 한다. 분유와 사료와 설사가 뒤섞인 비린내가 온 집안과 몸에 배이고, 몸 곳곳에는 새끼 고양이들이 만든 상처가 늘어간다. 


아래 컷만 봐도 다섯 아이들을 돌보느라 엉망진창이 된 작가님의 집안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에게 분유 먹이고 배변 시키는 법까지 꼼꼼하게 기록하신 것이 놀랍다. 


4월 12일


작가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고양이 그림일기』 의 시점 이후로 '베리'라는 까만 암컷 고양이를 길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베리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자기도 어린데 자기보다 더 어리고 약한 새끼 고양이들을 그루밍해주고, 배변 유도도 해 주고, 화장실 쓰는 법도 가르쳐준다. 작가님이 잠시 맡았었던 또 다른 길고양이 시로에게 얻어터져 가면서도 계속 다가가서 결국은 시로의 마음을 열고. 나야 책과 블로그, 인스타그램의 사진과 일러스트로만 보는 아이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이인 것 같다. 


작가님과 베리, 임보 아기들, 든든한 흰둥이, 상처 받으면서 닫혔던 마음을 열어가는 시로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사랑스럽다. 우울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나와,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도 녹아내린다. 


4월 13일


임보 아기들이 한 명씩 입양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안도감이 들면서도 아쉬워진다. 한 마리씩 입양 갈 때마다 안도하면서도 허전함을 느끼는 작가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베리도 돌보던 아기들이 한 마리씩 사라질 때마다 허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섯 아이들은 모두 좋은 곳에 입양을 갔고,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삼색이의 새 이름 홍시를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이름을 모두 수집한 날엔 배부르고 행복한 용이 된 기분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그런 날에는 악몽을 꿀 리 없었다. 용이 고양이를 모두 구했으니까." 이 마지막 문단에서 나도 안도했다. 지금까지 한 마리의 고양이도 구하지 못했던 나는 다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모두 구한 용에게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고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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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임보일기
이새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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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보다 더 아기자기하고 촘촘해진 그림체가 새로운 캐릭터들(임시보호하고 있는 아기 고양이들, 베리)의 사랑스러움을 잘 살린다. 다섯 마리 아기 고양이를 키우는 고충과 보람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도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길고양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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