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평점 :
B: 집 주인네 손주들이 층간소음을 내서 내가 항의했더니, 집 주인이 오히려 우리 가족한테 나가라고 했다는 얘기 기억해?
H: 응. 그래서 내가 돈 있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돈 없는 사람들이 죄인인 게 자본주의 사회라고 얘기했었지.
B: 지금『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네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H: 어떤 책인데 그런 생각이 들어?
B: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서 낳고 있는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 책이야.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질서는 식인 제도와 다름이 없다고 얘기해.
H: 식인 제도? 자본주의는 사람을 갈아내면서 돌아가는 체제니 틀린 말은 아니네.

핸드폰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자재 중 하나인 콜탄을 채취하는 12세 콩고 소년 무기샤. 콩고 동부에서는 무기샤 같은 아동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콜탄 광산에서 위험한 채굴 작업에 뛰어들고 있다.
사진 출처: https://ejatlas.org/conflict/congo-coltan-in-the-kivu-region-dr-of-congo
B: 그래.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있잖아. 스마트폰에는 콜탄이라는 광물이 들어가. 그런데 이 콜탄이 많이 채굴되는 곳이 콩고의 키부 지역이야. 키부의 콜탄 광산 중에는 너무 좁아서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갱도들이 있대. 그런데 콜탄 광맥은 지하에 있고, 낙석 사고가 종종 일어나서 어린아이들이 콜탄을 캐다가 생매장된대. 그런데도 아이들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광산에 가서 일을 해야 돼.
H: 너무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그애들의 희생 덕분에 스마트폰을 쓰는 거네.
B: 더 끔찍한 건 그 아이들이 죽고 다치면서 캐낸 콜탄으로 만든 스마트폰의 수명이 몇 년도 되지 않는 거야. 나만 해도 스마트폰을 4년 동안 썼는데, 잔 고장도 많고 용량도 꽉 차서 더 쓸 수 없게 됐어. 그런데 4년이면 꽤 오래 쓴 축에 속해. 이 책에서는 스마트폰의 수명이 왜 그렇게 짧은지 설명해. 제조사에서 애초에 최대한 빨리 교환하고 싶은 마음이 나도록 만든 거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금방 새 물건을 살 수 있도록 고의로 상품의 수명을 단축하는 걸 ‘계획적 구식화’라고 한대.
H: 우리가 계속 소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거구나. 계획적 구식화뿐만 아니라 어딜 가도 광고투성이잖아. 이걸 사야 한다. 저걸 사야 한다면서.

청바지를 만들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들. 청바지 한 벌의 가격 7만 원에서 그 옷을 만든 방글라데시 봉제공에게 돌아가는 몫은 3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https://madventures.me/2014/11/20/tight-denim-jeans/
B: 어찌나 광고가 많은지 숨이 막힐 때도 있어. 그런데 그렇게 광고를 해서 대량으로 파는 물건들은 제3세계 노동자들의 임금을 후려치면서 만들어진 거거든.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쓰고 있는 스마트폰 가격에서 그 노동자들에게 가는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아. 청바지 한 벌의 가격이 7만 원일 때, 그 옷을 만든 방글라데시 봉제공에게 돌아가는 돈은 3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부분을 읽었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어.
H: 적을 거라는 생각은 했는데 그 정도로 적을 줄은 몰랐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 석면.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 일하는 노동자들은 석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사진 출처: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438988
B: 우리는 그런 물건들을 사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공모자가 되는 건데,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되기도 해. 내가 집주인에게 당했던 일처럼 더 가진 사람들에게 당하는 부당한 일도 있고,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우리가 다니는 회사가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할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환경 오염도 있지. 우리가 어렸을 때에 비해 봄, 가을이 많이 짧아진 거 느껴지지 않아?
H: 그렇게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느껴져. 기상 이변이 심해졌다는 게 실감이 나긴 해.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땐 이렇게 미세먼지를 걱정하지도 않았던 거 같고.
B: 자본주의자들이 지구 곳곳을 파괴하면서 환경오염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우리는 일주일 중 5일, 하루 중 8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보내잖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무직원들은 늘 석면 같은 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있대. 그리고 우리가 마트에서 사 오는 식재료들에는 살충제, 제초제, 항생제가 잔뜩 들어 있고. 그런데도 농화학업계 대기업들은 로비를 벌여서 암을 유발할 수도 있는 제초제의 사용 기간을 연장해 주는 법안을 통과시켜.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프랑스 민중들. 절대권력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당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다.
H: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런 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떻게 해결해야 된다고 얘기해?
B: 자본주의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H: 그게 가능해? 이 세상에서 자본주의가 손을 안 뻗은 데가 어디 있다고? 너무 낭만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생각이야.
B: 이 책에서 저자의 이야기를 듣던 손녀도 그렇게 얘기해.(이 책은 저자가 자기 손녀에게 자본주의가 어떤 것이고, 어떤 폐해를 낳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는 형식이거든.) 차라리 자본주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거나 자본주의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얘기해. 자본주의를 완전히, 과격하게 파괴해야 새로운 사회경제 질서를 창조할 수 있다고. 노예 제도 폐지나 여성 해방, 사회 보장 제도도 한때는 현실성 없는 유토피아로 치부됐었다고.
H: 그런데 당장 돈도 힘도 없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B: 지금 당장 주인집의 층간소음 문제도 해결 못하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무기력해지긴 해. 그래도 우리가 ‘이런 세상을 언제까지나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 거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해. 이런 세상이 옳지 않다고 깨닫고 투쟁한 사람이 이 세상에는 수억 명이 된다고.
H: 깨어 있는 건 좋은데, 그럼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고 나서 어떤 사회경제 체제를 대신 세우려고?
B: 이 책은 구체적인 대안이 아직 없다고 솔직히 얘기해.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민중들에게 왕정과 봉건 제도를 무너뜨리고 나서 뭘 할 건지 물었다면 확실히 대답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낡은 봉건 제도를 무너뜨리고 수억 명의 사람들을 해방시켰다고.
H: 음, 좀 대책 없는 얘기로 들리긴 해. 일단 질러보자는 얘기지 어떤 방향조차 제시하지 않잖아.
B: 당장 자본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을 구체적인 체제를 만들어내는 건 불가능하잖아. 우선 시작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여성 해방도, 사회 보장 제도도 아주 오랜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져 왔고, 지금도 더 나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