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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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책에서의 등장인물 이름 표기가 중국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와 다르다. 현행 중국어 표기법이 실제 중국어 발음과 차이가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우선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인명 표기도 정리해 놓는다. 서평에서의 등장인물 이름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했다.


한자 표기

책에서의 표기

중국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

葉秋生

예치우성

예추성

趙戰雄

자오잔숑

자오잔슝

葉明泉

예밍첸

예밍취안

許宇文/葉宇文

슈위우원/예위우원

쉬위원/예위원

高應翔

가오잉썅

가오잉샹

曲宏彰

취홍장

취훙장

王文明

왕우원밍

왕원밍

余元介

위옌지에

위위안지에

夏美玲

시야메이링

샤메이링

馬大軍

마다준

마다쥔

許二虎

슈알후

쉬얼후

王覺

왕쥬에

왕쥐에


이 소설은 대만의 근현대사를 소재로 하고 있고 주요 인물들이 대만인이나 중국인이다. 하지만 대만 소설이 아니라 일본 소설이다. 대만인이었던 작가가 다섯 살까지는 대만에서 살다 그 이후로는 쭉 일본에서 살며 활동했기 때문이다. '히가시야마 아키라'라는 일본식 이름도 필명이다. 원래 대만인이었지만 현재는 일본인으로 사는 작가가 일본어로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이 이 소설만의 독특한 성격을 만들어냈다.

광대한 영토에서 장대한 역사를 거쳐와서인지 중국어권 소설들에서는 특유의 호방한 기세가 느껴진다. 워낙 험한 역사를 겪어왔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훌훌 털어버리는 대인의 풍모라고 할까. 그런데 이런 대륙적인 느낌이 가벼운 일본식 문체와 만나면서 무게감이 떨어진다. 번역 후기만 빼도 470여 페이지에 이르는 소설로 적지 않은 분량이다. 단순히 분량만 많은 것이 아니라 서사와 거기에 실린 메시지의 무게가 꽤나 묵직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묘사도 탄탄한데, 이상하게 가볍고 밀도가 떨어진다. 주인공의 치기 어린 10대와 20대 시절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그때의 감성을 일본 청춘물처럼 그려서일까.

'일본이라는 필터를 거쳤다'는 느낌은 일본식 문체 때문만이 아니다. 작가가 일본인 독자나 평단의 눈치를 본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만의 근현대사는 백 년이 넘도록 대만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과 떼어놓을 수 없는데, 이 책의 주요 독자는 일본인들이다. 그러니 역사 문제에 있어서 작가는 과거의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기보다는 한 걸음 물러선다.

이 책의 중심 줄기는 주인공이 할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인데, 살해 동기는 대만과 중국의 근현대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수십 년 전 할아버지가 처단한 친일파 일가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이 범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할아버지의 동지 쉬얼후의 아들이라고 정체를 속이고 할아버지의 양자가 되었다. 그런 뒤 수십 년 동안 원수를 갚을 기회를 노리다 결국 할아버지를 죽였다. 이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부분이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다. 주인공은 친삼촌처럼 여겼던 사람이 할아버지를 죽인 진범이라는 것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범인은 원수의 핏줄인 주인공을 죽여야 할지 말지 갈등한다. 결국 가족으로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 쌓아온 사랑 때문에 주인공과 범인은 과거를 덮어두고 서로를 용서한다.

화해와 용서로 끝나는 결말에 감동을 받은 독자도, 평론가도 물론 있을 것이다.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친일파이든 반일파이든 서로 죽고 죽인 건 똑같다, 그럼에도 모든 원한을 끌어안는 사랑이 있었다는 것이 작가가 남기는 메시지일 것이고, 그 점이 일본 독자와 평단의 감동과 호평을 이끌어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만이나 중국처럼 일본의 제국주의적 폭력에 피해를 입은 나라 국민의 입장으로서는 찜찜하다. 사실 자신이 놓인 입장에서 선악을 판단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역사에서의 과오와 책임은 확실히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에서 범인도, 범인처럼 주인공 할아버지의 손에 친일파였던 가족을 잃은 사람들도 자기 가족의 친일 행적은 반성하지 않는다. 범인은 아버지가 일본인인 아내를 사랑해서 버릴 수 없었던 것뿐이라며, 자기 아버지가 친일파로서 동포들과 이웃들을 착취하고 해친 것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이 원수를 갚는 과정에서 할아버지의 동지 쉬얼후 일가를 죽인 것에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가 죽인 사람 중에는 열두 살 어린 소년인 진짜 쉬위원(게다가 범인은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죽인 그의 이름으로 살아왔다)과 그보다 더 어린 여동생들도 았었는데도. 오히려 할아버지가 자기 가족을 죽인 것을 반성하고 후회했을 거라고 말하는 태도는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할아버지는 친일파를 처단한 것에는 한 점 후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생은 살생이니 자신이 그의 손에 죽는 것은 업보라고 생각했겠지). 온 가족을 잃은 원한이 깊겠지만, 자기가 죽인 쉬얼후 일가와 자기 아버지에게 핍박당한 사람들의 원한은 어떻겠는가. '왜 자기들끼리 흘려보내기로 결정하는지 모르겠다'는 어느 한국 독자의 평은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사랑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결말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소설이 수십 년의 세월과 대만, 중국 본토, 일본 세 나라에 걸친 장대한 서사를 펼치며, 파란만장한 대만 근현대사를 압축하며 평범한 대만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과 열대 지역을 섞은 듯한 대만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텍스트만으로도 느껴진다. 이러한 장점들 덕분에 이 상은 심사위원 전원의 만장일치로 나오키상 대상에 선정되고 "몇십 년 만에 한 번 나올 만한 위대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들었을 것이다. 일본의 과오는 묻지 않아 일본 독자와 평단은 껄끄럽지 않았겠지만 한국 독자로서는 껄끄럽다. 그리고 주인공이 진범을 알아채는 과정에서의 논리적 비약처럼 설익은 부분도 보인다. 대만에 관심이 많은 독자로서는 대만의 근현대사를 훑어보면서 그 속에서 살아갔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것은 흥미로웠지만, 나오키상 심사위원들이 보냈던 극찬을 보내기는 힘들다. 대만도 백 년이 넘게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친일 성향이 강하기는 하지만, 일본어, 일본 문학이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대만 작가의 작품이었으면 어땠을까 한다.

P. S. 주인공의 친구 자오잔슝이 모시는 조폭 두목 가오잉샹은 대만 사투리(대만에서는 표준 중국어와 대만어를 모두 사용한다)를 쓰는 인물이다. 한국어판에서는 그의 대만 사투리가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가 다 섞여 있는 지역 불명의 사투리로 번역됐다. 베이스는 전라도 사투리인 것 같은데, 번역자가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하려 했지만 전라도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아 이렇게 된 것인지, 특정 지역에 대한 비하로 느껴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여러 지역의 사투리를 뒤섞어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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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9 - 드뷔시, 소리로 그린 풍경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9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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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전체의 분량도 적은데 드뷔시가 살았던 시대와 그 이후 시대의 상황까지 다루느라 드뷔시의 음악 세계를 아주 깊이 다루지는 못한다. 그래도 드뷔시의 삶과 음악에서 중요한 부분은 다루고 있고, 드뷔시가 살아간 시대와 그가 이후에까지 남긴 영향을 전체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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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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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는 장대하고 묘사도 생생한데 이상하게 생각보다 가볍다. 일본적인 문체와 대화가 중국어권 특유의 무게감을 떨어뜨리기 때문일까, 주인공의 성장기, 로맨스, 가족 서사에 호러까지 섞었는데 그게 산만하게 느껴져서일까. 건국부터 80년대까지의 대만을 엿보기에 좋지만 걸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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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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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만큼이나 두꺼운 책을 '벽돌책'이라고들 한다. 내 기준으로 6, 700페이지대인 책은 페이지가 좀 많은 정도이고 900페이지는 되어야 벽돌책이다. 벽돌책은 완독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정말 오랜만에 도전해 보고 싶은 벽돌책을 발견했다. 그 책이 『상나라 정벌』이었다. 제목처럼 역사적으로 증명된 중국 최초의 국가인 상나라가 주나라의 역성 혁명으로 정벌되는 역사를 다룬 책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데다 역사 중에서도 근현대사보다는 고대사에 더 끌리는데, 고대사를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니. 탐스러운 읽을거리였다.

그런데 나 말고도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분량부터 압도적인 이 책의 판매량과 화제성이 높은 것은, 고어물에 가까울 정도로 잔혹한 상나라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상나라는 인신 공양을 하던 나라였다. 왕이 하늘에 바치는 제사부터 새 집을 짓고 나서 집이 튼튼하길 기원하는 제사까지, 상나라 사람들은 크고 작은 제사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상나라 유적에서 사지가 동강 나고 이리저리 뒤틀린 해골들만 보아도 제물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나라 사람들이 쓰던 청동 찜솥에서는 귀족 소녀의 머리뼈가 발견되었다. 치아의 상태로 보아서는 고기를 자주 먹던 상류층 사람인데도 인간 제물이 되고 같은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잔혹한 일들을 덤덤하게 설명한다. 인간 제물이나 동물 제물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는 듯이. 그럼에도 저자의 이야기와 그 증거로 제시된 사진들은 독자에게 충격을 주고 때로는 마음을 아프게 한다. 특히 아이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결국 같이 난도질되어 죽임당한 인간 제물의 이야기와 사진은 보는 사람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이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함께 제물로 바쳐진 아버지의 유골. 상나라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저자는 '상나라 정벌'이 상나라의 제후였던 주나라 일족이 이런 참혹한 역사를 끝내기 위해 내린 결단으로 보고 있다. 상나라는 작은 이웃 나라들을 정벌해 그곳 사람들을 인간 제물로 바쳐왔고, 주나라는 인간 제물들을 잡는 데 앞장선 인간 사냥꾼들이었다. 그러나 상나라의 군주 주왕이 주나라의 세자 백읍고를 인간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아버지인 희창(훗날 문왕으로 추존됨)에게 먹이는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그의 만행에 분노한 주나라 일족은 오랜 인고의 시간 끝에 상나라를 정벌하고 인간 제물을 바치는 풍습을 없앴으며, 상나라의 인간 공양도 인간 사냥꾼인 자신들의 과거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수십 년 동안 선배 학자들이 진행해 온 상나라 관련 고고학 연구, 요순시대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고대 역사서 『서경』, 『역경』의 점괘 해석들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문제는 그의 주 연구 분야가 상나라-주나라가 아니고, 자신이 구축한 역사적 서사에 자료를 끼워 맞춰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근거를 주장에 끼워 맞춰서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학자로서 지양해야 할 태도다. 그런데 고고학도 중국 고대사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이것만 가지고 단정할 수 있나 싶은 부분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저자는 확실한 고고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주나라 일족의 근거지에서 발굴된 저택 유적을 문왕의 저택이라고 단정한다. 또한 『서경』에서 실제로는 주공이 내린 명령들의 주어가 '왕'으로 되어 있는 것을, 저자는 주공이 당시에 실제 군주로 군림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을유문화사판 『서경』 의 번역자 이세동 교수는 실제로 명을 내린 것은 주공이지만 군주인 성왕의 이름으로 명을 내렸기 때문에 주어를 '왕'으로 했다고 보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세동 교수의 분석이 더 합리적이다. 한편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이라는 부제대로 저자의 『역경』 속 점괘 해석들이 이 책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저자는 이 점괘들이 인간 제물들의 다양한 모습이나 문왕이 처한 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원문 자체가 너무 단순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식인 데다, 글을 이룬 글자들이 지금의 한자와는 다른 형태의 한자라 어떤 게 어느 글자인지를 두고도 학자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니 저자가 『역경』의 점괘를 바탕으로 그려낸 상나라의 참상이 아무리 생생하다 하더라도, 저자의 해석이 객관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중국 학계에서도 이 책을 상당히 많이 비판했다고 한다. 방대한 양의 고고학 보고서와 논문 속 역사의 파편들을 모아 수천 년 전 상나라의 모습을 재구축하는 것도, 그것을 (한국어 번역판 기준) 900페이지에 걸쳐 밀도 있게 그려내는 것도 분명 굉장한 역량이다. 저자가 디테일하게 상상해 낸 상나라의 모습 덕분에 독자들이 상나라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중국 고대사 연구자인 심재훈 교수는 이 책을 '재미있는 역사 소설'로 평하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중국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괜찮지만, 저자의 주장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 쪽이 좋을 것이다.

P. S. '세력'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는데 '실력'으로 번역한 것이 몇 군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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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나라 정벌 - 은주 혁명과 역경의 비밀
리숴 지음, 홍상훈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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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자신이 구축한 역사적 서사에 따라 자료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역사책으로서의 치명적인 결점이다. 저자 본인의 연구 분야는 상나라-주나라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그래도 역사의 작은 파편들로 밀도 높은 글을 900페이지 넘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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