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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눈은 차갑지만 온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 안습니다. 그런 눈처럼 차가운 듯하면서도 외로운 마음, 다친 마음을 감싸 안는 소설이 있습니다. 7년 전에 개봉되어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공포영화『렛미인』의 원작 소설『렛미인』이 그 소설입니다.『렛미인』은『트와일라잇』시리즈처럼 인간과 흡혈귀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지만, 인간과 흡혈귀의 사랑을 달콤한 로맨스로 그려낸『트와일라잇』시리즈와 달리, 그 사랑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지켜볼 뿐입니다. 작가는 담담하다 못해 때로는 차갑고 건조하게 그 사랑을 바라보지만, 그 사랑은 온기를 품고 있고 그 온기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렛미인』속 인간과 흡혈귀의 사랑은 낭만적이지도 않고 무작정 달콤하지만도 않습니다. 인간인 오스카르와 흡혈귀인 엘리는 서로 매우 다른 존재인 것 같지만, 둘 다 차가운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입니다. 오스카르는 못생기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집에서는 이혼한 부모 중 어느 쪽에도 기대지 못하는 외롭고 연약한 소년입니다. 오스카르와 달리 아름다운 외모와 인간보다 강한 힘을 지녔지만,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과 함께 사는 인간이 구해다 주는 피에 의존해야 하는 엘리도 작고 약한 존재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작고 약한 존재들이 우정과 사랑을 쌓아가면서 서로 온기를 나누고, 서로에게서 누구에게서도 얻지 못한 위안을 얻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던 오스카르는 그들에게 맞설 용기를 얻고, 아무 감정 없이 그저 생존만을 위해 수백여 년을 살아오던 엘리는 오랜만에 천진한 동심과 따뜻한 우정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들의 우정과 사랑이 서로를 구원할 것이라고 확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흡혈귀이기에 엘리가 인간들의 생명을 빼앗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오스카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현실입니다. 소설은 영화에서는 미처 다 나오지 못했던 엘리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꼼꼼하게 풀어나가면서, 엘리가 오스카르에게는 좋은 친구이지만 희생자들에게는 자신이 살기 위해 그들의 삶을 짓밟은 가해자라는 것도 분명히 보여줍니다. 건조한 문체이지만 엘리와 그녀의 보호자 호칸이 벌이는 살인행위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그 잔혹함에 질리는 독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스카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결정일까요. 엘리와의 우정이 과연 그에게 구원이 될까요, 아니면 또 다른 지옥 같은 삶의 시작이 될까요. 작가는 명쾌하게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잠시라도 내가 되어 봐'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겪어온 고통을 전하는 엘리를 이해하게 되고, 그녀의 잔혹함을 알면서도 그녀와의 우정과 사랑을 놓지 않는 오스카르의 모습은 우리에게 작은 온기를 전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이 언제나 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차가운 세상 속에서 작은 온기를 나눌 수 있게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차가운 듯한 이 소설에서 우리는 오히려 따뜻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