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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브레인 - 삶에서 뇌는 얼마나 중요한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7년 7월
평점 :
사실 뇌과학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다. 뇌, 하면 떠오르는 것은 뇌호흡 같은 유사과학이나 ‘아인슈타인도 자기 뇌를 다 사용하지 못했다’는 잘못된 속설이니, 뇌에 대한 이야기들은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뇌과학의 성과까지 유사과학이나 잘못된 속설로 폄하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몸 전체를 통제하고 생각과 기억을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뇌인데, 뇌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는 뇌과학 입문서인 『더 브레인』 을 읽게 되었다.

저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 <더 브레인>의 한 장면. 컵 쌓기 시합을 하는 두 사람의 뇌파를 측정하고 있다.
『더 브레인』 은 미국의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진행한 TV 프로그램 <데이비드 이글먼의 더 브레인(The Brain with David Eagleman)>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어떻게 삶이 우리의 뇌를 만들고, 어떻게 뇌가 우리의 삶을 만드는가?"이다. 단순히 뇌에 대한 과학적 지식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위) 런던 시내 지도.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은 런던 시내의 수만 개 장소와 경로들을 암기한다.
(아래) 뇌 구조 중 해마. 런던의 택시운전사들은 수만 개의 장소와 경로를 암기하면서 해마의 크기가 커졌다.
이 책의 첫 챕터에서 저자는 말한다. 여러 상대와 나누는 대화부터 당신이 속한 문화까지, 삶의 모든 경험들이 당신 뇌 속의 세부 구조를 변화시킨다고. 어린 시절의 환경이 뇌가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우리의 뇌가 완전히 발달해 더 이상 변화하지 않을 것 같지만, 성인기에도 우리의 뇌는 계속 변화한다. 이것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의 뇌이다.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은 런던 시내 수만 개의 장소와 거리를 외우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들의 뇌에서 공간 기억에 필수적인 뇌 구역인 해마가 커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택시운전사들뿐 아니라 우리의 뇌도 우리가 태어난 가정, 우리의 문화, 직업, 친구들, 읽은 책, 본 영화,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 등 우리가 겪은 모든 경험들을 통해 물리적 구조가 변화된다.

물을 마시는 간단한 동작도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뇌 속 수많은 세포들의 협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이렇게 삶이 우리의 뇌를 만든다면, 뇌도 우리의 삶을 만든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 자유의지가 우리의 삶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의식이 뇌 활동에서 극히 작은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일어나서 걷거나 달리고, 컵을 입에 가져가 물을 마시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들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 뇌 속 수많은 세포들의 협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뇌 속의 뉴런(전기 신호를 써서 다른 세포들과 소통하는 신경 세포)들이 다른 뉴런들에게 조종되면서, 일상적인 동작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 감정, 결정까지 만들어진다. 차가운 음료가 든 컵을 들었을 때보다 따뜻한 음료가 든 컵을 들었을 때 자신과 가족 사이의 관계를 더 우호적으로 이야기하고, 이름의 첫 글자가 서로 같은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등 아주 작은 요소들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흥미롭다.

우리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곳에 업로드된 우리도 여전히 우리 자신일까?
우리의 삶이 뇌에 미치는 영향과, 뇌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후 이 책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미래에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까?”이다. 어떤 경로로 데이터가 입력되든 뇌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런 원리를 토대로 잃어버리거나 제 기능을 못하게 된 신체 부위 대신 인공 감각 기관을 통해 감각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유한한 인체보다 더 오래 가는 기계에 인간의 뇌를 복사하고 업로드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가설도 제기된다. 그렇게 뇌를 복사하면 우리 자신도 복사될까? 복사되고 업로드된 우리도 여전히 우리 자신일까? 여기에서 뇌과학은 과학을 넘어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진다.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우리의 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우리가 누가 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경험하고 시도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뇌를 만들고 우리의 삶을 만들 것이다. 뇌를 통해 우리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쉽고 재미있지만 마냥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