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포일러 포함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는 "남편 찾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안에서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대상이 여러 번 바뀌어서, 끝까지 읽어야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서 누가 여주인공의 남편이 될 것인가를 예측해 보는 것처럼, 당시 독자들도 등장인물들 중 누가 여주인공의 남편이 될 것인가를 놓고 입씨름을 벌였을 거라는 이야기도 봤다. 책 앞쪽의 등장인물 소개 덕분에 나는 누가 남편인지를 미리 알고 책을 읽었다.(인간적으로 등장인물 소개에 스포일러는 넣지 말아 주세요, 출판사 분들.) 그래서 여주인공 나타샤가 보리스와 첫키스를 해도, 안드레이와 사랑에 빠져도, 아나톨리와 바람이 나도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계속 책을 읽었다. 결국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여주인공과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2016년 BBC 드라마 버전 <전쟁과 평화> 속 피에르와 나타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온 끝에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어차피 남편은 피에르였다. 2016년 BBC 드라마 버전 <전쟁과 평화>에서 남주인공 피에르 역을 맡았던 배우 폴 다노의 표현대로, "피에르와 나타샤는 수천 페이지에 걸쳐 서로를 찾아낸다." 오랜 시간 돌고 돌아온 끝에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서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을 닮았다는 글을 읽고 동감했다. "응팔의 여주인공 덕선도, 나타샤도 사랑이 어떤 건지도 모르면서 자신에게 사랑이 오길 기다린다나타샤는 그저 사랑을 하고 싶은 마음에 첫사랑인 보리스와 첫키스를 하지만 곧 그를 잊어버린다." 그  나타샤는 왕자님처럼 잘생기고 멋있는 안드레이와 사랑에 빠져 그와 약혼하지만, 바람둥이 아나톨리의 유혹에 넘어가 파혼한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나타샤가 평생 동안 사랑하게 되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항상 그녀를 지지하고 도와주고 곁에 있어준 피에르였다." (출처: 디시인사이드 기타 국내 드라마 갤러리 유저 ㅇㅇ님의 글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_new&no=6018928&page=덕선이 가벼운 첫사랑 선우, 예뻤던 풋사랑 정환을 거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택을 평생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쌓아온 유대와 신뢰가 낭만적인 감정을 넘어서는 굳건한 사랑이 된다는 설정, 오랜 시간을 돌아왔어도 서로에게 올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설정에서 <전쟁과 평화>는 응답하라 시리즈와 통한다. (또, 이번 BBC 드라마 버전은 나타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도 피에르를 의식하고 신경 쓰고 챙겨주는 모습들을 더 넣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할 때도 늘 택을 의식하고 신경 쓰고 챙겨주었던 덕선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 외에도 <전쟁과 평화>와 응답하라 시리즈 사이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작품이 만들어진 당시보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과 평화>의 시대 배경은 톨스토이가 집필하던 당시인 1860년대가 아니라 그보다 50여 년 전인 1805년에서 1820년이다. 작품 속 인간 군상, 사회상이 워낙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서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것을 바탕으로 쓴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집필 당시로부터도 5, 60여 년 전의 나폴레옹 전쟁사와 당시 러시아의 사회사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쓴 책이다.(다만 전쟁 묘사에는 톨스토이 자신이 크림 전쟁에 포병대로 참전했을 때의 경험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2010년대 현재에 6.25 전쟁 당시와 그 직후인 1950,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고 생각하면 와 닿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톨스토이가 집필하던 당시로부터도 50여 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 시대의 청춘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프랑스와의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부딪치게 되지만, 그런 와중에도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으려 애쓴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아파하기도 하고,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뭔가 해 보고 싶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헤맨다. 이것저것 시도해 봐도 이루어지는 건 하나도 없다. 


BBC 2016년 드라마 버전 전쟁과 평화 속 한 장면. 피에르(폴 다노)는 자신의 인생이 실수의 연속이라며 자조하고 있다.


  그런 청춘들의 고민과 방황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는 주인공 피에르이다. 에르는 모든 것에 서툴고유혹에 잘 빠진다더 올바르게더 잘 살아보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맨다.  2016년 BBC 드라마 버전에서 피에르는 "내 인생은 실수의 연속이고, 사람들을 돕고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려고 했지만 하는 일마다 망치고 있다. 살면서 이룬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한탄한다. 원작에서 피에르는 이런 말을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혼생활도, 농지 개혁도, 프리메이슨 활동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꿈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피에르는 실패자였다.

  사실 작가 자신도, 독자들도 인정하는 대로 피에르는 결코 유능하지 않다.  농지개혁이 실패했던 것은 피에르의 실무 능력과 추진력 부족 때문이었다. 나폴레옹의 원정 때 모스크바를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민병대는 관리 소홀로 좀도둑떼로 전락했다. 정식으로 입대하지 않고 무작정 군대에 찾아갔다 그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전쟁을 일으킨 주범인 나폴레옹을 암살하겠다고 모스크바에 남았지만, 나폴레옹에게 접근하기는커녕 방화범으로 몰려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때때로 사람들을 돕기도 했지만 그것도 다소 서툴렀다

  결국 피에르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엄청난 업적을 남기지는 못한다. 오히려 이렇다 할 업적을 쌓은 것은 전쟁에서 활약한 안드레이, 니콜라이, 돌로호프이다. 그들은 머리도 명석하고 군인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나고 외모까지 수려하다. 반면 피에르는 실무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외모도 평범하다. 전쟁 속에서 활약하기는커녕 다른 사람들처럼 전쟁의 참화에 휩쓸린다.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남고, 작가 자신과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피에르이다. 


BBC 2016년 드라마 버전 속 피에르. 농지개혁을 추진하던 때의 모습이다.


  피에르는 계속해서 살아가고, 계속해서 행동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작품 내내 피에르는 계속해서 뭔가를 하려고 한다. 되돌아보면 그것이 치기에서 나온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더 올바르게 살기 위해, 보람 있게 살기 위해, 그리고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계속 시도한다그는 자신의 시도가 계속 실패로 끝나고, 세상에 자신의 이상과 어긋나는 것들, 자신의 이상을 방해하는 것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래도 계속해서 나아가기로 선택할 사람이다. 

  그런 피에르도 자신이 했던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은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을 때는 모든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는 농민 출신 병사 플라톤 카라타예프를 만난다. 어느 곳에서나, 어떤 조건에서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카라타예프를 보면서 피에르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 가르침을 준 카라타예프 자신조차 결국은 허망한 결말을 맞았지만, 피에르는 그에게서 배운 것을 간직한 채 계속해서 살아가고, 나아간다.  포로 신세에서 구출되고 나서 피에르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던 나타샤를 다시 만나게 된다. 삶의 의미를 깨닫고 변화된 피에르의 모습은 나타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준다. 결국 피에르는 오래도록 사랑해 왔던 나타샤의 마음을 얻어 그녀와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특별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어도 그토록 찾아헤맸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 사는 그의 모습은 더 없이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피에르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나타샤와 결혼한 지 7년 뒤인 1820년, 그는 나타샤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면서 한편으로는 비밀 정치단체 일을 하고 있다. 정치단체 일 때문에 집에 늦게 돌아와 나타샤에게 바가지를 긁히고, 열혈 왕당파인 니콜라이에게 반역의 무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나타샤가 "카라타예프가 지금의 당신을 본다면 당신에게 동의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피에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카라타예프였으면 지금 이대로, 그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에르는 황제가 몇몇 측근들 위주로 정국을 운영하는 당시의 상황이 그릇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과 가족들의 행복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정치 활동에 뛰어든다.

  피에르 자신은 모르지만, 톨스토이 자신도 독자들도 피에르가 또 다시 실패할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정치단체는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자유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혁명가 데카브리스트들일 것이다. 그들은 입헌군주제와 농노 해방을 목표로 하고 5년 뒤인 1825년 다음 황제인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에서 반란을 일으키지만,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진압당한다. 주모자들은 처형당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시베리아로 추방돼 평생 그곳에서 살아가게 된다. 피에르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초고에서 피에르는 데카브리스트이고, 시베리아로 추방돼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피에르가 꿈꾸었던 혁명은 실패로 끝날 것이고, 그의 뒤를 이어 혁명을 꿈꾼 사람들도 수없이 좌절하고 회의감을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는 너무나 크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 덕분에 세상은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나폴레옹 같은 몇몇 영웅이 아니라고 한다. 톨스토이는 묵묵히 전쟁에 나아가서 싸우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계속해서 살아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보았다.  피에르도 그렇게 역사를 움직여 온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들을 기억하며 톨스토이는 50여 년 전, 우리는 200여 년전의 그 시대, 그들에게 이야기한다. 그 시절을 잘 버티고, 잘 살아왔다고.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어도, 그렇게 살아간 것만으로 그들은 역사를 움직여 왔다고.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빛나는 사람들이라고.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1812년이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인생 캐릭터 피에르 베주호프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 소설. 피에르는 정약용과 동시대 인물인데도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고, 그에게 공감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 145년의 유랑, 20년의 협상
유복렬 지음 / 눌와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2011년 마침내, 병인양요 때(1866년) 프랑스에 빼앗겼던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만에 우리나라에 돌아왔다하지만 반환이 아닌 영구임대라는 형식으로 돌아왔다이 점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하지만 왜 외규장각 의궤가 영구임대라는 형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그런 형식으로라도 돌아오게 하기 위해 누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이 책은 그 두 가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저자는 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외교관답게 반환 협상 과정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전해준다반환 협상 과정에서 일어났던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은 직접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저자가 아니었다면 그만큼 생생하게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올곧은 학자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고 강경하게 반환을 주장했던 한상진 교수와 그에 팽팽하게 맞섰던 자크 살루아 위원다른 한국 유물과 의궤의 등가교환을 고집하는 프랑스 측에 대담하게 대가 없는 반환을 요구했던 박흥신 대사외규장각 의궤가 반환되는 순간까지 의궤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았던 자클린 상송 프랑스국립도서관 사무장까지 다양한 개성과 신념을 지닌 인물들이 부딪치고 협상하면서 만들어내는 드라마는 흥미진진하다또 외규장각 의궤가 병인양요 당시 불타 없어지지 않고 프랑스에 남아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발견한 박병선 박사프랑스의 배신자라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약탈한 문화재는 돌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의궤의 반환을 도운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장관과 뱅상 베르제 교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그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제목을 읽고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저자가 의도한 것이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이다.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라는 제목을 보고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의 의궤 반환 협상이야기이다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의도하는 것은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으로서의 나의 삶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저자는 외교관으로서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땀과 눈물을 바친 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 이야기를 하면서자신의 외교관으로서의 삶 이야기를 함께 풀어나가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저자의 외교관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겠다는 의도를 감안하더라도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 이야기가 주요 내용인 다른 장들과 달리외규장각 의궤 이야기가 전혀 없는 2장은 책의 전체 흐름을 끊어놓는 느낌이다.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가 이야기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독자로서는 저자의 외교관으로서의 개인적인 삶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당황할 수도 있다. 

 

 또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반환 협상 과정이 거의 생략된 것도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저자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튀니지에 부임해 그 기간 동안은 협상 과정을 직접 지켜보지 못했던 것, 2008년에서 2009년까지는 협상이 소강상태에 놓였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부록의 ‘2006년 9한국-프랑스 정상회담외규장각 의궤 문제 해결을 위해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방안을 모색하자는 입장을 재확인이라는 한 줄 문장만으로는 그 5년이 요약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그 시기 동안 MBC 프로그램 느낌표’ 제작진이 외규장각 의궤 환수 캠페인을 벌이고민간단체인 문화연대가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일도 언급될 만한 일이었는데거기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국제법과 외교에 능통한 외교관으로서 저자가 그들의 활동의 의의와 한계를 정확히 짚어줄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이러한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길고도 치열했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과의궤가 돌아오게 하기 위해 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는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신랄한 유머감각을 갖춘 저자의 필력 덕분에 협상 과정이 펼쳐내는 드라마는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20여 년에 걸친 협상 끝에 마침내 모든 외규장각 의궤가 한국에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저자를 포함한그 순간이 오기까지 애쓴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게 된다그리고 영구임대에서 더 나아가 언젠가는 완전한 반환이 되길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우리 문화유산들이 우리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길 꿈꾸게 된다기나긴 협상의 종착점이었던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이 더 많은 우리 문화유산들이 돌아오는 길의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 145년의 유랑, 20년의 협상
유복렬 지음 / 눌와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가 기대한 것은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과정 이야기)와 외교관 이야기였겠지만 작가가 의도한 것은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과정 이야기)와 외교관(으로서의 나의 삶) 이야기. ‘외교관으로서의 나의 삶‘ 이야기가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과정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엮이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 - 서연문답
김도환 지음 / 책세상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의 선구자인 홍대용과 개혁군주 정조두 사람이 만났다그 결과는 어땠을까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이 책 정조와 홍대용생각을 겨루다이다홍대용은 왕세자의 수업인 서연(書筵)에 참여하는 관직에 있으면서 당시 세손이었던 정조와 자신다른 서연관들이 9개월 동안의 서연에서 나눈 대화를 계방일기(桂坊日記)라는 책으로 남겼다이 책은 계방일기를 번역하고 저자의 해설과 논평을 함께 넣어한 편의 사극처럼 재구성했다.

서연이 진행되면서 정조는 홍대용의 깊은 학식을홍대용은 정조의 영민함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의 대화는 깊어진다깊은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펼치는 논의는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과 지성들이 학문과 정치에서 어떤 것들을 고민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지향하는 바는 근본적으로 달랐다홍대용이 급선무로 생각한 것은 이용후생(利用厚生), 즉 학문에서 배운 것을 실천해 백성들의 현실의 삶을 이롭게 하는 것이었다반면 정조가 급선무로 생각한 것은 왕 스스로가 군자가 되어 보편타당한 의리를 세우고그에 따라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것이었다이 지점에서 홍대용은 정조와 자신이 갈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의 시대에 동참하기를 포기한다

이 책은 개혁군주로 널리 알려졌던 정조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그로 인해 홍대용과 정조가 엇갈리는 과정을 생생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내고 있다홍대용과의 논쟁에서 의견이 엇갈릴 때마다 자기 권위를 내세우며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고이용후생에 대한 홍대용의 간언을 주의 깊게 듣기보다는 흥밋거리로 여기는 정조의 모습은 그의 개혁군주로서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정조와의 근본적인 관점 차이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홍대용의 꿈이 좌절되는 모습은 독자에게 안타까움을 남긴다하지만 저자는 그의 실학이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며 그의 꿈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실마리를 남기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