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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평점 :
문장의 온도.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에세이집 『언어의 온도』를 벤치마킹한 듯한 제목이다. 제목만 들으면 젊은 작가의 에세이집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글을 모은 문집이다. 하얀 바탕에 노란 복숭아 하나가 놓여 있는 산뜻한 표지도 조선시대 문인의 문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책 소개 플랫폼 '소행성 책방'의 홍보 웹툰도 이 책을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맛이 있다.', '이덕무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 마치 SNS 같다'며 친근한 느낌을 부각시킨다. 표지의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라는 홍보 문구까지 보면, 출판사는 조선시대 문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낡고 딱딱한 느낌을 지우려고 애쓴 것 같다.
책 소개를 보고 '힐링 에세이'를 기대했는데, 그냥 조선시대 문집이잖아, 라고 느낄 수 있다. 이덕무는 실학자이고 이 책은 그가 20대 시절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지만, 그는 조선시대 선비다. 성리학에 얽매이지 않는 실학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공자, 맹자와 백만 광년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아니다. 공자와 맹자의 말도 꽤 많이 인용되고, 선비답게 자기수양을 강조하는 글들이 많다. 명예와 권세에 집착하지 말라, 군자가 될 수 있도록 정진하라, 이런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많은데도 훈계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덕무가 자기답게, 자연스럽게 사는 삶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p. 35.)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의주가 말똥보다 훨씬 귀하다. 하지만 말똥구리는 용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말똥구리로서는 자신의 말똥이 여의주보다 못하다고 여길 이유가 없으니까. 누군가 자기보다 잘났다고 부러워하지도 않고, 자기보다 못났다고 비웃지도 않고 그저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걸리고 얽힌 것을 잘 운용하는 사람은 비록 천 번 제지당하거나 만 번 억압당해도 그 걸리고 얽힌 것을 마음에 두지 않는다. 또한 그 걸리고 얽힌 것에 노예가 되어 부림을 당하지도 않는다. 때에 따라 굽히기도 하고 펴기도 하면서 제각각 그 마땅함을 극진히 하면 걸리고 얽힌 것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나의 온화한 기운 역시 손상되지 않아 자연스럽고 순조로운 경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다."(p. 276.)
세상에는 우리 자신을 제약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때로는 우리 자신조차 자기검열을 한다. 그러나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려고 애쓴다면 자신다운 모습을 잃지 않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도덕적 수양을 강조해도 훈계로 느껴지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음덕을 베풀지 못하지만 마땅히 하려고 하고, 자신도 다른 사람의 잘못과 실수를 언급하지만 마땅히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솔직히 인정한다.(p. 351.) 그리고 겨울날 집에 있던 책들을 이불 위에 펼쳐 추위를 막았다는 등, 자신의 가난한 처지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우산이 떨어져 우뢰를 맞으며 깁고, ...새들을 문하생으로 삼고, 구름을 벗 삼아 산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형암(이덕무의 호)의 생활을 두고 '편안한 삶'이라고 한다. 우습고 또 우습구나!(p. 265.)
안빈낙도하려고 애쓰면서도 가난한 삶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간 데다,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자기 재주와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그는 『논어』 속의 온화하고 기쁜 글을 읽으면서 거칠고 추한 마음을 없애고 평온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공자가 아니었다면 내가 거의 발광해 달아나 버렸을 것이다."(p. 273.) 자기 가능성을 펼칠 기회가 없어 답답한 마음을 책으로 달래는 모습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조선의 유학자라는 시대적, 사상적 경계를 넘어 내가 그에게 공감할 수 있던 것은 책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책을 2만 권이나 읽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공공도서관도 없었지만 그는 온갖 서적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서 읽었다. 살면서 읽은 책이 아직 천 권도 안 되는 나는 그에 비하면 "단지 마시고 먹고 잠이나 자는" 사람이지만,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와 같다. 누군가에게서 온갖 훈계를 들어도 "감히 말씀하신 대로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던 그가, "서책에 대한 기호를 버려야 한다."는 말에 "서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라는 말입니까?"라고 정색을 한다. 그리고 눈병이 나도 책을 하루도 떠나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사방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이 나와 겹쳐 보였다.
이덕무가 "수고했어, 오늘도", "괜찮아, 잘될 거야" 라고 직접적으로 위로하지는 않는다. 표지에서는 위로라고 했는데 훈계만 많은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하고 가능성이 막혀 버린 삶 속에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그의 모습, 솔직하고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살아가려 했던 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우리는 2백여 년 전 조선 선비 이덕무에게 공감하고, 우리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