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제단 - 제6회 무명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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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룡이 정실에게 가하는 성적 학대는 불편하다. 하지만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상룡이 집안에서 대물림되는 폭력을 깨닫고 사랑을 지키려 하는 모습은 눈물겹다. 사랑은 폭력을 끊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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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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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사극에서 본 선비들은 멋있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대항한 사육신들, 개혁을 추진하지만 훈구파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한 조광조는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다. 그런 내게 국사 선생님이 물었었다. "사육신이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난을 일으킨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그 사람들이 성공했다면 조선이 더 나아졌을까?" 어린 시절에는 그 사람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거 같아 내가 다 분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나도 그 점이 의문이다. 또, 조광조가 누구를 위해서 개혁을 추진했는지, 그 개혁이 조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이었는지 따져보면 그의 개혁이 실효성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선비가 권력을 잡으면 과연 나라가 좋아질까?"


사극 '여인천하(2001)' 속 중종(최종환)과 조광조(차광수)의 모습. 조광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관청 소격서를 철폐하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결국 뜻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소격서 혁파가 조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저자는 유교 정치 이념의 근간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이론 자체의 가치는 인정한다. 수신(身), 즉 개인의 도덕적 수양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인류가 추구한 지고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신과 제가, 치국을 모두 제대로 이룬 선비는 얼마나 될까다. 수신도 제가도 이루지 못한 채 치국에는 더더욱 무능했던 반례가 더 많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또한 저자는 덕치와 교화라는 유교 정치의 이상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유교 정치는 힘이 아닌 덕으로 다스리는 정치, 덕치(德治)를 추구한다. 선비들은 먼저 덕을 쌓은 뒤 자신의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함으로써 사회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개인의 모범적인 행동을 통해 사회를 교화하는 것은 고도의 국가 체제에서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덕의 개념은 현실 정치에서 적용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에서 정약용(안내상)은 여자도 제자로 인정하고, 제자들에게 편견에 갇혀 있지 말라고 가르치는 개방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에서 그는 공노비 해방이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는 조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저자는 선비들이 나라를 이끈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낱낱이 폭로한다. 18세기 후반부터 노비 제도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해, 마침내 1894년 갑오개혁으로 완전히 폐지된다. 그러나 노비 제도가 폐지되는 데 선비들은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에게 선구자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정약용조차 1801년의 공노비 해방이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조치였다며 비판했다. 선비들은 노비들에게 측은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노비제도를 포함한 신분 질서는 끝까지 고수했던 것이다. 양반도 군포(軍布, 군역 대신 세금으로 나라에 바치는 베)를 내는 호포제(戶布制)는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실행되지 못했고, 정약용조차 호포제 실시를 주장했을 뿐 양반들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기득권,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 의식을 넘어서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국가의 지배층인 선비들 중에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 조선의 문제였다. 

 또한 우리가 국사 시간에 견제와 균형의 정치로 배웠던 붕당 정치에 대해서도 저자는 회의적이다. 당쟁의 폐해는 일본 학자들이 악의적으로 언급하기 전에 이미 조선 내부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개탄하는 문제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려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공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선의 붕당들에는 그러한 자세가 없었다. 오히려 한쪽이 권력을 독점하고 한쪽은 몰락하는 치열한 정권 쟁탈전만이 계속됐다. 그 쟁탈전을 통해 더 건설적인 의견이 나와 조선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도 없었다. 

 이렇게 기존의 질서와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난 선비들이 개혁을 제대로 이루어낼 리는 없었다. 조선 후기 청과 일본이 상공업의 발달로 부를 쌓아가고 있을 때, 선비들은 근검절약만을 강조하며 국가의 부를 키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이 신경쓴 것은 새로운 부의 창출이 아닌 한정된 부의 분배 문제였다. 선비들이 권력을 잡은 16세기 후반부터 조선과 일본의 경제적 격차는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선비들이 만든 나라의 실상이었다.

 책의 논조가 너무 과격해 반박하고 싶기도 했지만, 하나 하나 따져 보면 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역사 지식이 짧아 저자에게 반론을 제기할 만한 반례를 알지 못한다. 존경하고 우러러봤던 선비들과, 그들이 만든 나라의 한계를 보니 씁쓸했고, 부디 저자에게 반박할 수 있는 반례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신과 시대의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비들도 있지 않았을까, 환상을 깨고 본 선비들의 실상이 우리들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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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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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에 대한 환상을 무참히 깨뜨리는 책. 논조가 다소 과격하지만 틀린 말이 없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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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지음 / 까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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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나는 마드리드, 파리,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나폴리, 아테네를 발견했다. 이미 1947년에 나는 뉴욕을 발견한 바 있었다. 1956년에는 런던, 안트베르펜, 브뤼셀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쓴 시와 엽서 몇 편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흥미로운 발견을 이야기하고 있는 텍스트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이 유명한 도시들을 처음 방문했을 당시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숙연한 침묵으로 이끄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태어났고 살고 있는 대륙에 몇몇 유럽인들이 도착한 것을 우쭐대며 부르는 소위 '아메리카의 발견'이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구나.

 

  쿠바의 작가 레타마르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이렇게 비꼬았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와 문명을 세우고 살아가고 있는 대륙을 자신이 '발견'했다고 주장한 콜럼버스. 이 '발견'이라는 말 자체가 폭력의 언어였다. 이 말이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사람들과 그들이 세운 문명의 존재 자체를 은폐하고 지워버렸다. 아메리카 대륙은 실제로는 수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인도로 둔갑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정복되고 교화되어야 할 야만인이 되었다. 


 콜럼버스의 '발견'은 유럽인들에게 눈부신 발전의 시작이었지만 아메리카인들에게는 거대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을 세계 체제의 중심, 그 밖의 지역을 주변으로 규정하는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 맞서 이 책은 "정치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좀 더 공정한 역사"를  이야기하려 한다. 중심도 주변도 없는 역사, 중심에서 주변으로 뻗어나가는 역사가 아닌 각 지역의 역사가 화음을 만들며 진행되는 역사를.

 유럽은 콜럼버스 이후 자신들만이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고 아시아는 경제적으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던 것처럼 주장해 왔다. 그런 유럽의 주장과 달리, 아시아 또한 아메리카에서 유출된 은괴의 수혜자였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은의 유입으로 상업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고, 생산성도 인구도 증가했다. 중국 남부와 인도의 벵골은 세계 시장의 일부가 되어, 그곳에서 활발한 무역 활동이 이루어졌다. 1750년 당시 세계 GNP의 80퍼센트를 생산한 곳은 아시아였다. 


아이티의 독립 영웅 투생 루베르튀르 장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투생 루베르튀르(2011)'의 한 장면. 말을 타고 있는 루베르튀르의 모습이다.


 또한 저자는 정치적으로도 유럽은 계몽 사상을 토대로 한 민주주의가 발전했고, 그 외의 지역은 전제군주제나 봉건제도에 머물러 있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다.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에 영향을 받은 흑인 지도자들은 수 년간의 독립전쟁 끝에 1804년 독립국 아이티를 건설했다. 하지만 백인이 아닌 인종이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던 유럽인들은 아이티 혁명을 철저히 외면했다. 미국 남부의 백인 노예주들은 그들이 일으킨 혁명이 전파될까 두려워했고, 그들의 두려움은 아이티의 이미지를 좀비와 흑마술, 미신이 창궐하는 나라로 왜곡시켰다.


커피 원두를 고르고 있는 멕시코 농민들. 멕시코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지이다.


  유럽이 아닌 각자의 지역에서 발전을 이루어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지역의 발전 아래 희생된 사람들도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자기 손으로 자기 땅에서 나는 은을 캐서 아무 대가 없이 유럽 정복자들에게 바쳐야 했다. 그들의 희생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는 은 중심으로 바뀌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흑인들은 갑자기 고향에서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와 사탕수수 농장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그들 덕분에 유럽인들은 달콤한 설탕으로 만든 디저트와 초콜릿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세계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멕시코 농민들은 생산비용의 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커피 수매 가격(물건을 사들이는 가격. 여기에서는 농민들에게서 커피 회사들이 커피 원두를 사들이는 가격.) 때문에 게릴라 세력이 되거나 그들을 지원하는 불만세력이 된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 위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다. 

  이 책은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의 역사뿐만 아니라, 15세기에서 21세기, 아메리카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까지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오가면서 좀 더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독자들은 수만 킬로미터의 거리와 수백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뿐만 아니라, 전에는 듣지 못했던 좀 더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듣게 된다. 13년 전에 나온 책이기 때문에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 유럽 중심의 세계사 속에 묻혀 있던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의 역사, 정복자의 이야기 아래 묻혀 있던 정복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귀를 기울이고 기억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때 "지리적으로 공정한 세계사"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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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
이성형 지음 / 까치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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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부터 현대까지, 유럽의 시각에서 벗어나 아시아, 아메리카의 시각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본다. 다양한 시공간을 넘나들며 유럽의 시각으로 보지 못한 것들을 살펴보다. 10여 년 전에 출간되어 최근의 역사가 업데이트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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