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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 -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계승범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사극에서 본 선비들은 멋있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대항한 사육신들, 개혁을 추진하지만 훈구파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한 조광조는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다. 그런 내게 국사 선생님이 물었었다. "사육신이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난을 일으킨 게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그 사람들이 성공했다면 조선이 더 나아졌을까?" 어린 시절에는 그 사람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거 같아 내가 다 분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나도 그 점이 의문이다. 또, 조광조가 누구를 위해서 개혁을 추진했는지, 그 개혁이 조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이었는지 따져보면 그의 개혁이 실효성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 책은 그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선비가 권력을 잡으면 과연 나라가 좋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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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여인천하(2001)' 속 중종(최종환)과 조광조(차광수)의 모습. 조광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관청 소격서를 철폐하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결국 뜻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소격서 혁파가 조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저자는 유교 정치 이념의 근간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이론 자체의 가치는 인정한다. 수신(修身), 즉 개인의 도덕적 수양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인류가 추구한 지고의 가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신과 제가, 치국을 모두 제대로 이룬 선비는 얼마나 될까다. 수신도 제가도 이루지 못한 채 치국에는 더더욱 무능했던 반례가 더 많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또한 저자는 덕치와 교화라는 유교 정치의 이상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유교 정치는 힘이 아닌 덕으로 다스리는 정치, 덕치(德治)를 추구한다. 선비들은 먼저 덕을 쌓은 뒤 자신의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함으로써 사회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개인의 모범적인 행동을 통해 사회를 교화하는 것은 고도의 국가 체제에서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유교에서 말하는 덕의 개념은 현실 정치에서 적용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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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성균관 스캔들(2010)'에서 정약용(안내상)은 여자도 제자로 인정하고, 제자들에게 편견에 갇혀 있지 말라고 가르치는 개방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에서 그는 공노비 해방이 국가 기강을 무너뜨리는 조치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저자는 선비들이 나라를 이끈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낱낱이 폭로한다. 18세기 후반부터 노비 제도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해, 마침내 1894년 갑오개혁으로 완전히 폐지된다. 그러나 노비 제도가 폐지되는 데 선비들은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에게 선구자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정약용조차 1801년의 공노비 해방이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조치였다며 비판했다. 선비들은 노비들에게 측은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 노비제도를 포함한 신분 질서는 끝까지 고수했던 것이다. 양반도 군포(軍布, 군역 대신 세금으로 나라에 바치는 베)를 내는 호포제(戶布制)는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실행되지 못했고, 정약용조차 호포제 실시를 주장했을 뿐 양반들도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기득권,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 의식을 넘어서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국가의 지배층인 선비들 중에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 조선의 문제였다.
또한 우리가 국사 시간에 견제와 균형의 정치로 배웠던 붕당 정치에 대해서도 저자는 회의적이다. 당쟁의 폐해는 일본 학자들이 악의적으로 언급하기 전에 이미 조선 내부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개탄하는 문제였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려면 상대에 대한 존중과 공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조선의 붕당들에는 그러한 자세가 없었다. 오히려 한쪽이 권력을 독점하고 한쪽은 몰락하는 치열한 정권 쟁탈전만이 계속됐다. 그 쟁탈전을 통해 더 건설적인 의견이 나와 조선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도 없었다.
이렇게 기존의 질서와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난 선비들이 개혁을 제대로 이루어낼 리는 없었다. 조선 후기 청과 일본이 상공업의 발달로 부를 쌓아가고 있을 때, 선비들은 근검절약만을 강조하며 국가의 부를 키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이 신경쓴 것은 새로운 부의 창출이 아닌 한정된 부의 분배 문제였다. 선비들이 권력을 잡은 16세기 후반부터 조선과 일본의 경제적 격차는 급격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선비들이 만든 나라의 실상이었다.
책의 논조가 너무 과격해 반박하고 싶기도 했지만, 하나 하나 따져 보면 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역사 지식이 짧아 저자에게 반론을 제기할 만한 반례를 알지 못한다. 존경하고 우러러봤던 선비들과, 그들이 만든 나라의 한계를 보니 씁쓸했고, 부디 저자에게 반박할 수 있는 반례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신과 시대의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비들도 있지 않았을까, 환상을 깨고 본 선비들의 실상이 우리들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