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을유세계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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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이제 '이상향'을 가리키는 흔한 말이 되었다하지만 과연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말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상향을 뜻하는 말로 만들어낸 것일까유토피아라는 말을 탄생시킨 그의 소설 유토피아를 읽어보면그가 생각했던 유토피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향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토머스 모어는 친구들과 함께 포르투갈인 선원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에게서 유토피아라는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다유토피아에는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으며함께 노동해서 얻은 대가를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모두가 재화를 풍족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재화에 욕심을 내지 않고,보석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취급을 받는다죄인에게는 신체에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대신 노동을 하면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게 한다그리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며 서로의 종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지 않는다.(그런데 정작 모어 본인은 종교재판에서 개신교도들을 화형시켰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이다하지만 사회의 구성원들 모두가 사리사욕이 없는 인간일 때에야 실현 가능한 사회이다하지만 사리사욕이 전혀 없는 인간이 과연 존재할까? 모어 자신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했기에 '어디에도 없는 곳(그리스어 ou(없는)와 topos(장소)를 합친 말)'이라는 뜻의 유토피아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그리고 유토피아 내부의 제도들 중에서도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다른 제도나 관습과 모순되는 것들도 있다. 심지어 유토피아조차도 노예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다.(16세기의 인물인 저자의 한계로 볼 수 있다.)유토피아도 결코 완벽한 이상향은 아닌 것이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저술했던 당시 유럽에서는 지배층들이 백성들을 착취했고지주들이 재산을 더 늘리기 위해 농경지를 목장으로 바꾸고 소작농들을 내몰았다. (이런 현상을 인클로저 운동이라고 한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빈부격차와 실업율 증가, 빈민 문제 등의 사회 문제들이 대두되었다.) 이런 현실이 이 책에서는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인간을 잡아 먹는다."고 표현된다. 이런 영국의 현실에주인공 히슬로다에우스는 가난으로 고통 받고 도둑으로 전락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모두에게 약간의 생계수단을 주자는 혁신적인 주장까지 한다. 이 책이 나온 지 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런 기본소득제(재산이나 소득의 유무,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의 도입을 두고 찬반 논란이 일어나고 있으니, 당시로서는 얼마나 파격적인 제안이었는지 알 수 있다. 

  유토피아는 당시 현실의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었지만현실의 불합리함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고민하게 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완벽한 이상향이라기보다는 당대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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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을유세계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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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 속 유토피아에서 산다면 나는 엄격한 규율에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유토피아는 완벽한 이상향이라기보다는 이상향으로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는 지침이다. 주경철 교수님의 번역본은 주석과 참고자료가 풍부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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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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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고통』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는 미국의 예술 비평가 수전 손택의 책이다. 『타인의 고통』처럼 이 책도 사진에 관한 생각들을 담은 책인데, 『타인의 고통』(2003)보다 26년 전에 쓴(1977년) 책이다. 디지털 사진과 포토샵이 나오기 전에 쓴 책이고 거의 40여 년 전에 쓴 책이라 디지털 사진에 대한 논의는 없다. 그리고 이 책에서 내세웠던 주장이 『타인의 고통』에서 뒤집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 속 사진에 대한 손택의 비평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사진의 특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887)의 도판. 이 작품의 실물은 반 고흐가 썼던 물감의 특성 때문에 점점 색이 바래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도판이 작품 실물보다 반 고흐의 색채를 더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손택은 사진 덕분에 우리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소모한다 이야기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널리 보급된 데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한 요즘은, 손택이 이 글을 썼던 40여 년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미지가 소모되고 있을 것이다. 사진이 얼마나 현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지 오히려 현실이 그 현실을 찍은 사진에 충실한지 검토될 정도다. 에펠탑이나 만리장성 같은 유명 관광지에 갔을 때, 그곳을 찍은 사진과 비교하면서 사진과 똑같은지 아닌지 비교해 보는 것,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만났을 때 실물이 사진과 같은지 비교해 보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실물이 사진과 같지 않다며 감동을 느끼기는커녕 실망하기까지 한다. 또한 이제는 물감이 바랜 명화의 실물보다는, 예전의 생생한 색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명화의 도판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진 이미지가 오히려 현실을 압도해 버리는 것이다. 사진 이미지에 압도되는 현실을 손택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미지가 범람하게 되면 저녁놀조차 진부해져 보이는 법이다. 슬프게도, 오늘날 저녁놀은 사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스테판 기자르드가 찍은 이스터 섬의 풍경.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직접 접하지 못하는 현실들 대신 그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


 우리는 인터넷이나 SNS에서 우리가 가 보지 않은 멋진 여행지와 우리가 키우지 않는 귀여운 애완동물들,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은 멋지고 예쁜 연예인들의 사진을 다운받고 소장할 수 있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우리가 접하지 못한 현실 대신 그 이미지들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소유일 뿐이라고 손택은 말한다. 현실은 사진에 담겨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이 되어버렸다. 이런 사진 이미지들, 볼거리들의 홍수 속에서 살다 보면, 정작 그 이미지들이 나타내는 현실을 봤을 때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해 버리는 것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한 장면. 손택은 이미지로만 이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지가 아닌 현실로 전쟁을 접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은 실제로 고통당하고 있다고 27년 뒤의 저서『타인의 고통』에서 주장한다.


  손택은 30여 년 뒤에 쓴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은 위신을 잃어버렸고, 재현만이 남게 된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과장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사진, 이미지가 현실을 소모하고 압도한다고 말했던 주장을 뒤집은 것이다. 그 이유는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는 현상은 지구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테러나 전쟁에 관한 뉴스를 볼거리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테러와 전쟁을 현실로 겪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등 우리가 가는 곳마다 구매를 촉진하거나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이미지가 넘쳐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구매를 촉진하고 계급, 인종, 성의 갈등이 빚은 고통을 마비시키는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미지에 기반한 문화를 필요로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또 자본주의 사회가 카메라를 통해 자원 개발, 생산성 증가, 질서 유지, 전쟁을 위한 정보를 무한정 수집하기에, 손택은 카메라를 잠재적인 통제의 도구로 본다. 카메라는 대중에게 스펙터클(구경거리)을 제공해 주면서 통치자들에게 감시 대상을 포착해 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오히려 디지털 카메라와 이미지 처리,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런 현상은 손탁이 이 책을 썼던 40여 년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특히 "다양한 이미지와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자유가 자유 자체와 동일시될 것이다."라는 문장은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느라 자신이 통제되고 있음을 깨닫지도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어딜 가도 넘쳐나는 사진과 이미지들에 지칠 때가 있다. 손택의 표현처럼 지금의 나 자신도 "경험을 일종의 이미지, 일종의 기념품"과 맞바꾸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택은 이후에 『타인의 고통』에서 현실이 이미지에 압도되는 것은 안전한 곳에서 사진 이미지를 소비할 수 있는 일부 지역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이 책과 『타인의 고통』 은 현실은 사진 이미지 밖에 있고, 사진 이미지에 매몰되어 현실을 잊지 말라는 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40여 년이 되었는데도 우리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 또는 거기에 담긴 현실을 소비하는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40여 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너무 일상적이어서 지나쳐 버렸던 사진과 이미지의 소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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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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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이라면 사진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책을 쓰던 당시보다 사진 이미지의 지배력이 더 커진 지금 더 큰 의미를 갖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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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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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한 살짜리 아이의 시신을 들고 울부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아버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런 사진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보고 연민을 느끼는 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수전 손택은 말한다.


  2천여 년 전에 쓰인 책인 플라톤의 국가론』에는, 처형된 범죄자들의 시신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과 시신에 대한 혐오감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시신을 보고 마는 아테네 시민이 등장한다. 또한 기독교 미술은 수백 년 동안 수난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이렇게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 사진 기술의 발달로 훨씬 더 쉽게 이미지를 대량생산하고 널리 유포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이미지,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이미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로 소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미술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이 책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우리의 반응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지구의 다른 한 쪽에서는 전쟁과 테러 같은 고통을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우리는 사진 이미지로만 접하게 된다. 전쟁, 빈곤, 대량 학살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의 배경은 보통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런 사진들은 전쟁, 테러, 빈곤 같은 비극은 우리와는 먼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비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물론 이런 이미지들이 없으면 우리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연민을 자아내고 그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지는 우리에게 최초의 자극을 줄 뿐이고, 연민과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손택은 말한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 자체는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다. 하지만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금방 시들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연민만을 베푸는 데 그치지 말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연민의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타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지 밖에 있다. 이미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합리화하는 권력자들에게 눈길을 돌려보자고, 그 합리화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깨닫고 꼼꼼히 검토해 보자고 권유하는 것 이상을 해낼 수는 없다고 손택은 말한다. 이미지는 그것을 본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손택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 밖의 현실이라고, 현실을 지키기 위한 실천은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10년도 더 넘은 지금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봐서 앞서 본 이미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세상 속에서, 이미지에서 배제된 현실, 이미지로는 다 알 수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그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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