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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 평양 도시 공간에 대한 또 다른 시각: 1953-2011
임동우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5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518/pimg_7978711981910126.jpg)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군중집회. 평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평양,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광장에서 행진하는 군인들의 거대한 물결, 대낮에도 한적한 거리, 겉보기엔 웅장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호텔. 도시로서의 면모는 갖추었지만 어딘가 연극 무대 같고 실재감이 없는 유령 도시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리고 핵 문제로 북한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이념적 편견을 배제하고 평양을 바라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건축가 임동우는『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에서 피상적이거나 이념적 편견에 물든 시각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평양이라는 도시공간을 분석하려 한다.
저자는 평양이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시키려 하는 도시공간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기존의 도시 인프라가 완전히 파괴된 평양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그려나갈 백지와 다름없었다. 이미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 사회주의자들은 대도시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 문제에 대해 고민해 왔다. 도시 환경을 개선하려 재개발을 해도 개선된 주거 공간은 부르주아들이 차지하고, 노동계급은 여전히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차별이 발생한다. 자본의 논리로 인한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고 모두가 더 나은 주거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사회주의 도시 계획의 목표이다. 구역마다 생산 수단을 갖추게 하기 위해 도심 가까이에도 생산 시설들이 있고, 모든 시민이 휴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 풍부한 녹지 공간을 갖추는 도시. 그리고 이런 이상을 실현하는 사회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상징적인 공간들이 있는 도시. 북한 내부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상황으로 인해 처음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평양이 보여주는 사회주의 도시의 이상은 자본주의 대도시의 문제점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러나 평양이라는 도시 공간의 물리적 환경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을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는 저자의 의도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 경제,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도시 공간은 건축 이론에서 쓰이는 도시 모형밖에 없다. 저자 서문에서 말한 의도와 달리 본문에서 평양의 도시 공간은 정치, 경제, 사회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설명된다. 저자의 설명을 다양한 도표와 지도들이 뒷받침하는데, 건축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시각 자료들도 꽤 많이 있다. 평양의 행정구역과 주요 건축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한 지도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일 후 평양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한 저자의 상상은 참신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딪치게 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은 고찰하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평양은 겉치레만 한 유령도시’,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거대한 연극 무대’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도시공학적으로 평양을 바라보려는 이 책의 시도는 참신하다. 하지만 동어반복적인 면이 있고,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현실과 관련해 더 깊이 있게 도시 공간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상상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회주의의 이상이 이루어진 도시는 우리가 지고 있는 자본주의 대도시의 문제점에 어떤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줄 수 있을까, 평양은 어떤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통일 이후 그 잠재력을 실현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라는 의문에 대해 단초를 제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