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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그림 - 그림 속 속살에 매혹되다
유경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9월
평점 :
표지부터 도발적이다. ‘나쁜 그림’이라는 제목부터 ‘그림 속 속살에 매혹되다’라는 문구, 벌거벗은 여인이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그림 *<고디바 부인>과 표지의 나머지 공간을 가득 채운 다홍색까지. 표지를 지나 서문 앞에서 저자는 영화배우 메이 웨스트의 말을 빌려 선언한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아무 데나 간다.” 웨스트가 말하는 ‘아무 데’는 ‘원하는 곳 어디나’라는 뜻일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나쁜 여자’들이 주체적이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존재였다는 것을 ‘나쁜 그림’들 속 ‘나쁜 여자’를 통해 말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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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들라크루아, <분노하는 메데이아>, 1836-1838.
얼핏 보기에는 자식들을 지키려는 모습 같다. 하지만 그림 속 메데이아는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는 것에 대한 복수로, 아이들을 죽이려고 한다. 그것이 대를 잇는 것을 중시하는 가부장제에서 남편에 대한 가장 큰 복수였다.
이 책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작품의 소재로 다루었던 전설, 신화, 역사 속 여인들이 등장한다. 남성들을 유혹해서 죽음으로 몰아넣는 여인부터 자기 자식들까지 죽이면서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는 여인, 자신을 사랑하는 시인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파멸시켰지만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었던 창녀까지, 사람들에게는 악녀로 불리지만 자기 욕망에 충실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펼쳐놓는다. 자신이 벌거벗고 도시를 돌아다니면 백성들의 세금을 낮춰주겠다는 남편의 말을 실행한 고디바 부인, 강간당한 뒤 명예를 위해 자결했던 루크레티아처럼 ‘나쁜 여자’로 분류되지 않는 여인들도 등장한다. 그녀들 역시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자신이 뜻한 바를 행한다는 데서 주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그려진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 그림 속에서 그녀들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분석 등을 통해 그녀들을 악녀, 그림으로 그려지고 욕망의 대상이 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살아 있는 한 인간, 욕망의 주체였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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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 <잠>, 1866. 여성 동성애를 암시하는 이 그림은 에로틱한 그림을 선호했던 오스만 제국의 대사 칼릴 베이를 위해 그려진 것이다. 여성들끼리의 에로틱한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남성들 사이에서 더 인기 있었다. 여성들끼리의 에로틱한 장면도 관음증적인 에로티시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p. 96-97)
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통해 우리가 그림 속 그녀들이 한 인간이자 욕망의 주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해도, 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그림이 남성의 판타지가 반영된 그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쁜 그림’ 속 ‘나쁜 여자’들 또한 남성들의 판타지가 투영된 대상으로 소비되어 왔다. 우리 또한 그녀들을 소비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이 책에 실린 그림 속 여성들도 스스로 욕망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욕망의 대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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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쉬잔 발라동, <아담과 이브>, 1909.
(아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1614-1620.
이 책에 실린 많은 그림 중 여성이 그린 그림은 단 두 점이다. 프랑스의 화가 쉬잔 발라동이 자신과 연하의 연인을 누드로 그린 <아담과 이브>(1909)와, 17세기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1614-1620)가 그 두 점의 그림이다. <아담과 이브>가 여성 화가가 누드화를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대에 대한 도발임을 설명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를 그저 ‘여성이 남성의 목을 자르는 그림’의 예시로만 든 것은 아쉽다. 젠틸레스키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유딧에게 죽임당하는 홀로페르네스로 그려, 자신의 분노를 예술로 승화했다. 이 책에 여성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스스로 표현한 그림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양서적이고 분량의 제한이 있다 보니 아주 깊이 있는 분석까지 이르지 못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속 여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리고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그려지는 여성’이 ‘그리는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으니, 그려진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쉬웠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다음에는 여성 자신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들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 또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고디바 부인: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시의 영주 레오프릭 3세의 부인으로, 남편의 과도한 세금 징수와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하소연을 듣고 남편에게 세금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세금을 내리지 않는다면 나체로 말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겠다."고 했고, 남편은 그 말대로 하라고 했다. 고디바 부인은 자신의 말을 실천했고, 그녀를 위해 백성들은 문과 창문을 닫고 그녀를 보지 않았다. 남편은 약속대로 세금을 내리고 선정을 베풀었다. 코벤트리 시에는 그녀를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유딧은 고대 이스라엘의 여인으로, 성경 외경인 <유딧서>에 등장한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한 뒤, 그가 잠에 빠진 틈을 타 그의 목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