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미각 - 돼지국밥부터 꼼장어까지, 살아 있는 의리의 맛
고운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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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큰집이 있었던 곳이지만 우리 집에서 워낙 먼 곳이라 거의 가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친가 쪽 친척들이 경상도 사람들이고 친구, 지인, 선후배 중에도 경상도 출신이 많은데 부산은 경상권을 대표하는 도시니 속으로 친밀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9년부터 매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게 되면서, 부산은 내게 좀 더 친숙한 공간이 되었다. 그해부터 여섯 번 부산에 가면서 찐 로컬 맛집은 아니지만 프랜차이즈에서 돼지국밥과 밀면을 먹고, 자갈치시장에서 지인들과 꼼장어구이를 먹었다. 그중 돼지국밥은 평소에도 종종 먹는다. 그래서 부산 음식을 다룬 『부산미각』이 출간된다고 했을 때 반가웠다. 『부산미각』과 같은 시리즈의 전작인 『중화미각』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기대감이 더했다.

우선 전작처럼 다루고 있는 지역색을 살린 표지가 독자를 반긴다. 표지의 옅은 푸른색 바탕색은 바다를 연상시키고, 부산을 상징하는 바다와 등대, 갈매기, 부산국제영화제를 연상시키는 필름과 슬레이트,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그 위에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뒤표지를 메뉴판 모양으로 만들어 거기에 본문에서 소개되는 음식들을 적어놓은 것은 전작 『중화미각』과 같다. 전작처럼 단일한 배경색 위에 단순한 형태의 오브제들을 놓고 뒤표지에는 메뉴판을 실어 시리즈의 통일성을 만들면서도 부산만의 특징이 드러나게 디자인했다.

본문에는 열아홉 가지의 부산 음식과 부록 속 다섯 가지의 조미료가 소개되어 있다. 『중화미각』이 화려하고 다채롭다면 『부산미각』은 좀 더 담백하고 소박하다. 『중화미각』에서는 우리에게 다소 낯선 중국 음식들도 소개되고 그 음식들과 관련된 낯선 역사와 문화도 만날 수 있다. 반면 『부산미각』에는 우리도 몰랐던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곳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와 관련된 역사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재일교포의 생존을 위한 분투가 담긴 낙곱새부터 6.25 전쟁 당시 피란민의 애환이 담긴 밀면까지, 한국인이라면 직접 겪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고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역사를 담고 있다.

저자들이 대부분 부산에서 나고 자라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부산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책에서는 부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진하게 풍긴다. 중국이 연구의 대상인 반면 부산은 삶의 터전이니, 『중화미각』이 중국의 역사, 문학, 문화 등 인문학적인 지식이 차지하는 분량이 많은 반면, 『부산미각』은 부산 음식과 부산이라는 땅 자체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오는 서정적인 부분이 많다. 비문학이라기보다 한 편의 에세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새벽 골목에서는 아낙네들이 재첩국을 한 동이씩 이고 아침을 아직 안 먹은 동네 사람들에게 팔고 다니고, 낙동강가 갈대숲에서는 사람들이 은백색 웅어를 잡는다. 이런 수십 년 전 부산의 풍경,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그 시간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동래파전을 다룬 꼭지는 6페이지밖에 안 되고(그것도 사진들이 섞여 있고 마지막 페이지는 두 줄밖에 되지 않는다), 다른 꼭지들도 10페이지 안팎이니 생각보다 각 음식을 깊이 다루지 않는다. 좀 더 풍성한 지식과 읽을거리를 기대하면 아쉬울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음식에 대한 지식도 조금 쌓고 경험하든 경험하지 못했든 부산 음식에 담긴 부산의 역사, 그 속의 희로애락을 살펴볼 수 있으니, 부산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읽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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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미각 - 돼지국밥부터 꼼장어까지, 살아 있는 의리의 맛
고운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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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각 음식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부산 향토 음식들의 역사와 그에 얽힌 추억을 짚어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미각 시리즈가 앞으로 더 이어져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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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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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좋아하는 교양 인문서 시리즈로는 『난생처음 한번』, 일명 '난처한' 시리즈,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 그리고 이 책이 포함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있다. 앞의 두 시리즈는 최근 나온 편까지 거의 다 읽었지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관심이 있는 인물 편만 골라 읽었다. 문득 이 시리즈도 전부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안 읽은 편들을 하나씩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1권이지만 내가 읽지 않은 책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햄릿』과  『맥베스』뿐이지만 셰익스피어에 대해 좀 더 알면 유익하면 유익하지 무익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으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완전 정복'을 시작했다.


  읽기 전에 우려했던 것은 저자가 고령이고 영문학 전공자도 셰익스피어 연구자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목차만 봐도 굉장히 많은 곳을 여행하는데 체력이 부치지는 않았을까. 정치적 올바름에 있어 덜 민감하지 않을까. 저자 소개를 보면 영문학이나 셰익스피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력들만 보이는데 믿고 있을 수 있을까. 시리즈 안의 각 책들마다 편차는 있고 다소 아쉬운 편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하는 시리즈니 일단 믿고 보기로 했다.


  이 세 가지 걱정은 기우였다. 이 책을 위해 셰익스피어 기행을 시작한 2014년에도 저자는 이미 70대였지만 책에서는 여정 때문에 지친 기색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여성 혐오와 성차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여주인공 카테리나의 설교는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투철한 옹호이고, '길들이기'라는 관점 자체가 틀려먹었다고 단호히 말한다(이 작품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줬으면 했지만). 그 밖의 작품들에서 셰익스피어가 소수자들, 소외된 사람들을 어떻게 그렸는지도 이야기한다. 본인이 셰익스피어 연구자는 아니지만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를 함께 말하면서, 독자들이 각 견해를 비교해 보고 자신 스스로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저자 자신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서사 구조와 등장인물의 성격과 심리, 대사의 탁월한 표현(그리고 원어로는 어떻게 이 표현이 중의적이거나 언어 유희를 하는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낸다. 논리의 비약이 없으면서 현학적이지도 않다. 수십 편의 작품을 다루고 있기에 한 작품을 아주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지만, 다양한 작품들의 해설을 모아 셰익스피어 입문서로 읽기 좋다. 해설의 특성상 각 작품의 스포일러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기행문으로서도 읽기 좋은 책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각 편에 따라 기행과 인물 탐구의 비중이 달라지고, 기행문과 설명문의 질도 편차가 있다. 이 책은 둘 다 고르게 좋다. 1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찾아 그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과 그가 주로 활동한 런던, 『심벌린』 속 고대 로마 제국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배스를 여행하고, 2부와 3부에서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되거나 셰익스피어를 언급한 외국 작가들과 관련된 곳을 여행한다. 1부에서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과 런던, 배스 이 세 곳만 여행하지만, 2부와 3부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배경이 된 유럽 각 나라의 십여 곳을 다소 숨 가쁘게 이동한다. 사실 2부와 3부에서 저자가 여행한 곳은 모두 셰익스피어 본인은 살아생전 발 한 번 들여놓지 못한 곳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눈앞에 보이듯 생생하게 살려냈다. 2부와 3부에서는 거의 한 꼭지당 한 곳씩 여행할 정도로 일정이 빽빽한데도 저자는 여행자의 서정을 잃지 않는다. 짧은 여행에서도 그 장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감정을 만끽하면서 자신이 본 풍경을 스케치하듯 묘사한다. 이런 기행문이 생각보다 밀도 있는 설명에 지친 독자에게 휴식이 되어준다.


  왜 영문학 전공자나 셰익스피어 연구자에게 이 책을 맡기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씻어낼 정도로 저자는 여행과 인물 탐구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셰익스피어 입문서로 좋은 책을 써냈다. 너무 작지도 크지도 않고 딱 적당한 크기의 판형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여행 사진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감각적인 편집 디자인에서도 이 시리즈가 여러모로 공들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은 처음 시작하는 시리즈에 대한 의문과 우려를 씻어내 준 시리즈의 산뜻한 시작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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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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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첫 권이라 힘을 준 게 느껴진다. 저자가 영문학자도 셰익스피어 전문가도 아니어서 걱정했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에 대한 애정도 크고 이해도도 깊다. 셰익스피어 입문서로도 기행문으로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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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명왕성 킬러 마이크 브라운의 태양계 초유의 행성 퇴출기
마이크 브라운 지음, 지웅배 옮김 / 롤러코스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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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가 스포일러지만 스포일러 포함


아무리 문과라 해도 작년에 과학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건 너무하다 싶었다. 안 그래도 과학 책 한 권은 읽어야겠다 싶었는데, 얼마 전에 재개봉한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과학 책, 특히 천문학 책이 더 읽고 싶어졌다(크리스토퍼 놀란은 문과도 과학 공부 하고 싶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영화관에서 10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도서관으로 가서, 천문학 책들이 모여 있는 서가 앞에 섰다. 너무 어렵지 않고 흥미로운 책 없나. 서가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쭉 훑어보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책을 발견했다.

이 책은 명왕성보다 더 큰 천체를 발견하면서, 명왕성이 행성 자리에서 쫓겨나는 데 공헌해 '명왕성 킬러'로 불리게 된 천문학자의 이야기다. 지구의 인간들이 자기를 행성으로 규정하든 말든 명왕성은 저 수십억 킬로미터 밖에서 수십억 년 동안 그래왔듯이 멀쩡하게 공전하고 있으니, '킬러'라는 말이 적절하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명왕성을 태양계의 행성으로 배운 세대고, 어느 날 갑자기 명왕성보다 큰 천체가 발견됐으니 그것도 행성으로 삼겠다는 뉴스를 들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가 뒤집혔다. 그 천체도 명왕성도 행성의 정의에 맞지 않으니 그 천체를 행성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명왕성도 이제 더 이상 행성이 아니라는 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각 반의 이름이 행성 이름이었는데, 맨 끝 반인 우리 반은 '명왕성' 반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좀 아쉽긴 했지만 오래 아쉬워했던 것 같지는 않다. 왜 그렇게 됐는지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됐구나, 했고. 제목이 특이한 이 책을 보고 나서야 거의 20년 만에 명왕성 퇴출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옮긴이의 말로는 21세기에는 새로운 천체를 찾는 천문학자들이 드물다고 한다. 이전 세기의 선배 천문학자들이 중요한 천체들을 다 찾아놓았고, 자동화된 첨단 컴퓨터와 거대 망원경이 하늘 전체의 방대한 지도를 이미 완성해 놓았다. 그러니 21세기의 천문학자들은 다른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지만)에 집중할 수밖에. 그런 점에서 여전히 새로운 별을 찾는 저자 마이크 브라운은 특이한 천문학자라고 한다. 1930년 명왕성이 발견된 이후로 70년 넘게 새로운 태양계 행성을 찾으려고 시도한 사람이 없었는데, 브라운은 2002년부터 태양계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천체들을 발견해 냈다.

새로운 천체를 발견하기까지 그는 단순 반복에 가까운 관측과 분석 작업을 계속해야 했다. 3일 밤 동안 하늘의 같은 구역을 사진으로 찍고 사진 세 장을 비교해 변한 게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맨눈으로 사진을 확인해야 했던 선배 천문학자들과 달리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본인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컴퓨터는 작은 얼룩도 새로운 천체로 인식해 버리니 새로운 천체 수만 개가 있다는 결과를 도출해 버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프로그램을 개선하거나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의 초반부는 그러한 기나긴 탐색을 그리고 있어 좀 지루하다. 하지만 그런 성실한 반복이 삶을 만들고 큰 일을 이룬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칼텍에서 교수로 일하는 석학도 지루한 노동은 피할 수 없구나 싶었는데, 천체의 진짜 발견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브라운 팀이 '산타'라는 별명을 붙인 카이퍼 벨트의 천체 하나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에스파냐의 한 천문학 연구 팀이 그 천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해 버린 것이다. 브라운은 속이 쓰렸지만 천문학계에서는 먼저 발표한 사람을 발견자로 인정하니, 쓰린 마음을 감추고 에스파냐 연구 팀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에스파냐 연구 팀이 천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하기 며칠 전에 브라운의 연구 팀이 천체를 발견할 때 사용한 망원경의 데이터에 접속한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때부터 브라운 팀과 에스파냐 팀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되는데, 그 과정이 꽤 흥미진진해 책 전체 중 이 부분을 가장 빠른 속도로 읽었다. 학자로서의 명예를 놓고 피 말리는 신경전을 벌인 당사자들에게는 '흥미진진하다'는 말이 실례지만.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는 '그는 어쩌다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했나'이다. 브라운은 자신이 현재 생존해 있는 천문학자 중 유일한 행성 발견자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는데도, 그가 발견한 에리스가 행성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명왕성이 행성으로 남게 하기 위해 국제천문연맹이 온갖 궤변으로 행성의 정의를 수정하고 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대중들이 더 정확하게 천문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제천문연맹의 회원이 아닐지라도 목소리를 낸다. 아마도 국제천문연맹은 명왕성을 아끼는 사람들(특히 미국인들, 명왕성만 유일하게 미국인이 발견한 행성이기 때문이다)의 눈치를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양심이 있었기에 일은 순리대로 흘러가 에리스는 행성이 되지 않고 명왕성은 행성에서 카이퍼벨트의 천체 중 하나로 강등된다. 이 모든 과정은 물로 덮인 행성이나 블랙홀을 만나 구사일생하는 SF 영화 속 상황처럼 박진감 넘치지는 않지만, 천문학자들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탐색하고 연구하고 논쟁하는지 엿보게 한다.

대중에게 과학을 널리 전하고 싶어 하는 과학자답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천문학의 원리들은 어렵지 않다. 난해한 수식 하나 없고, 그나마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카이퍼 벨트 천체들의 궤도를 그림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비유를 들어 자신의 연구와 연관된 천문학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는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연구에서 알아낸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에도 열정을 쏟는 학자다.

태양계의 맨 끝에 있는 천체들을 연구하던 시간을 정리하면서 저자는 결혼, 출산, 육아까지 그동안 자신이 겪어온 개인사도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다. 나도 남의 가족사, 특히 남의 집 애 얘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이 브라운의 자서전이라고 하니 이해는 된다. 아무리 관찰하고 값을 기록하고 분포도를 계산해 봐도 갓 태어난 딸의 수면 패턴은 파악할 수 없었다는 부분에서는, 과학자로서의 그와 아버지로서의 그가 분리되지 않는 것이 재미있었다. 에필로그마저 딸에 대한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그를 보면서 (실제 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가 꽤 좋은 아버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로서의 삶과 일상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이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이게 영미권의 특징인지 서구 전체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문학과 문학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이 영미권(또는 서양) 저자들이 쓴 책의 매력이라고 느낀다.

이 책을 읽고 내 천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아진 것은 아니지만, 우주에 대한 관심은 아주 조금은 커졌다. 그것이 저자가 바란 바가 아니었을까. 명왕성이 행성이든 아니든 명왕성은 오늘도 열심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영미권 사람들이 이제 행성 이름의 암기 방법(각 행성의 머리 글자와 같은 머리 글자의 단어들로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을 어떻게 수정할까 고민하지만, 나는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의 캐릭터들 이름으로 태양계 행성의 영어 이름들을 외웠으니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다. '명왕성(pluto)'이 빠졌으니 문장 끝의 'p'를 빼고도 어떻게 말이 되는 문장이 되게 할지 영미권 사람들은 고민하겠지만, <세일러문> 속의 세일러 플루토는 어제와 변함없이 태양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테니. 나는 여기서 지구를 지키면서 천문학과 다른 과학 분야에 조금씩 더 관심을 가져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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