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설치하려고 신청했다. 과연 이 마을에서 인터넷이 가능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기사가 와서 확인해준다고 하니 기대하는 마음이 뭉클뭉클하다. 소백산에 둘러싸인 학마을은 전기랑 수도 빼고는 핸드폰도 뚝뚝 끊어질 정도로 이래저래 어려운 곳이라 인터넷은 언감생심이었고, 또 금방 돌아갈 생각에 짐도 제대로 가져오질 안았다. 하지만 몇 달을 살아보니 학마을이 마음에 드는데다가 어쩌면 일자리가 생길 것 같아 아예 이곳에 눌어붙자고 결정했다. 그것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영주 시내의 초고속 인터넷 대리점에 전화를 건 이유다.

[권선생, 이제 진짜 선생님이구먼]
[아직 결정 안 났어요]
[이 근방에 권선생 같은 이가 또 어디 있다고.. 꼭 될 테니 걱정 말고 기다려봐. 내 술이나 한잔 받으시게]

  슈퍼 주인 할매는 응원의 말씀을 하시며 새로 나온 막걸리를 따라주셨다. 씨껍데기 막걸리라고 부석 양조장에서 첫 생산한 제품이다. 한 입 쭉 들이켰더니 시원하고 쌉싸래한 맛이 위까지 전달돼 행복하다.

[할매, 이거 아주 좋아요]
[버버리도 그러더만. 그 양반이 좋다고하면 진짜 좋은 거야]

  우리는 더위를 피한다는 핑계로 유유자적 놀며 씨껍데기 막걸리를 두 병 마셨다. 기분도 좋고 약간의 취기도 더해져 나는 슬렁슬렁 밭 사이를 걸어 다녔다. 지난주에 영주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응시 해두었는데 아직 답변이 없다. 진짜 슈퍼 주인 할매 말대로 이 근방에 나만한 선생이 없다면 되겠지만 사람일은 한 치 앞을 모르니 100% 장담도 어렵다. 해서 나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나날이다.

[뭐하세요?]
[깻잎 장아찌 할라고]

  정자 밑 시원한 그늘에서 청산 할매가 빨간 고무 대야를 놓고 일을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또 다른 대야에는 한가득 물이 담겼고 그 옆에는 막 딴 깻잎이 포대자루로 한 가득이다.

[할매, 실이랑 바늘은 왜요? 옷 수선하시려고요?]
[아니. 깻잎 꼬매려고]
[네?]
[권선생은 서울서 살아 모르겠네. 여기는 깻잎 장아찌를 이렇게 해]

  청산 할매는 깻잎을 20장 정도씩 집은 후 명주실을 낀 바늘을 두 번 통과 시켰다. 단단히 묶어 이로 자르니 마치 문방구에서 파는 종이 다발 같아보였다.

[소금물에 잘 담가두면 숨이 푹 죽고 나중에 꺼낼 때도 일일이 펼 필요 없어서 좋아]

  아, 이런 것이 선조의 지혜다. 혼자 하시는 폼이 언제 끝나실까 싶게 많아 결국 나도 앉아서 깻잎 꿰매기에 동참하였다. 잠시 후에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늘어나더니 결국 8명의 거대 모임으로 변신했다. 어느 분이 가져오셨는지 씨껍데기 막걸리도 같이 마시며 농도 주고받으니 시간이 참 빨리 갔다. 나는 술의 힘을 빌어 깻잎과 물이 가득 담긴 대야를 번쩍 들고 일어나 청산 할매네 마당에 가져다주었다.

[할매, 이걸로 끝이에요?]
[아니~ 닷새 후에 화장해야지]
[화장?]
[깻잎을 뭔 맛으로 그냥 먹어. 여자들처럼 얼굴에 양념칠 해야지]

  청산 할매의 유머는 확실히 고차원이다, 마을에서 제일 젊은 내가 못 따라 갈 정도니..나는 큰 소리로 웃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요즘 날이 한 여름이라고 어찌나 더운지 매일 등목을 해야 한다. 나도 이제는 살이 타서 살짝 구릿빛으로 가고 있으니 서울에서 왔다고 하면 믿을까 싶다. 등목을 한 차례하고 대청마루에 죽부인을 안고 누웠다. 대나무의 찬 기운과 함께 잠이 솔솔 몰려온다.

[따르르르릉..따르르르릉]

  주머니 속 핸드폰이 오랜만에 울린다.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았다. 교사 임용에 떨어졌다고 누군가가 전해준다, 그것도 매우 친절하게. 알았다는 말로 웅얼거리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바로 잠으로 빠져들었다.     

[운칠기삼이야. 더 좋은 일 생길라고 그러는 거니까 기다려봐]

  저녁을 얻어먹으러 청산 할매네 가서 결과를 알려드렸더니 그렇게 말을 하신다. 운칠기삼이라..시골 학교 교사 임용도 그런 게 필요할 줄은 몰랐다. 부적이라도 쓸 걸 그랬나.

[부적 같은 거 믿을라치면 차라리 산신한테 빌지]
[아~산신..]

  봄에 갔었던 허물어진 사당이 기억났다. 한 때는 그곳에서 자식들 시험이나, 병수발에 지친 아낙들이 매일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나름 효험이 좋다고 하는 데 이제는 찾는 이가 없어서 황폐하다.

[거기 다 무너졌던데요]
[그래도 기도 빨은 좋아]
[할매는 불교 신자면서 산신한테 기도해요?]
[종교는 차별하면 안되지]
[그럼..교회는요?]
[게도 가봤어]
[성당은요?]
[응]
[신은 다 똑같은 건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 싸우는 거지]

  할매의 신앙심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주적인 포용력을 지니신 분이라 대범하고 강단 있으신 것이리라. 결국 부적은 없었던 일로 하고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갔다.

  오일이 지나 깻잎을 화장해야할 날이다. 청산 할매는 오전 밭일을 마치고는 나를 부르셨다. 할 일도 없는 백수에게 여자 일, 남자 일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을 고쳐먹고 마당에 들어섰다. 부지런한 할매는 깻잎을 건져내는 중이다.

[엇!]
[왜?]
[개구리에요!]

  깻잎을 꺼내는데 뭔가가 톡 손바닥 위로 올라섰다. 보니 푸른색의 개구리다. 우리가 어릴 때는 거의 매일 잡아 구워 먹었던 바로 그 개구리였다. 청산 할매는 개구리를 잡아 수로로 던졌다. 한 번에 퐁당. 농구를 하셔도 잘하시겠다.

[권선생 그거 아나?]
[네?]
[저 개구리야말로 운칠기삼일세]

  깻잎을 다 꺼내 바짝 물을 빼라고 하셔서 베보자기에 싼 뒤 발로 밟았다. 그 사이 청산 할매는 대량의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하신다. 간장이 졸아드는 냄새를 맡으며 옆에서 오도카니 지켜보고 있는데 난데없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저 놈은 본래 소금물에 오래 있으면 죽을텐데, 빨리 발견해서 살지 않았나. 게다가 내 덕에 맑은 수로로 이사했으니 운칠기삼이지] 

[아..그러네요]

  그제야 청산 할매의 운칠기삼이 뭔지 알겠다. 작은 미물도 저렇게 운을 타고 나는데..하는 생각에 기운이 빠져 조용히 물어보았다.

[할매..저는 어때요?]
[권선생?]
[네. 학교 떨어진 게 운칠기삼일까 해서요]
[글쎄..그건 모르지. 사람이랑 미물이랑 같나]

  할매는 새벽이 될 때까지 깻잎 화장을 시키셨다. 12시가 넘으니 허리가 뻣뻣하여 크게 기지개를 켜는데 깻잎을 담은 그릇을 건네주며 한마디 하신다.

[나도 운칠기삼인기라. 권선생이 이렇게 일도 도와주고~ 수월하다 이거지]

  진짜 나만 빼고는 모두 운칠기삼인거 같아서 기분이 더 나빠졌다. 내가 힘들여 바른 깻잎 장아찌를 몇 장 먹고는 냉장고에 잘 넣은 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인터넷 설치 기사가 왔다. 그의 말로는 보건소에 전용선이 들어오니까 그걸 끌어다 쓰면 어렵지 않다고 한다. 다만 거리 비례로 설치비가 드니 문제다. 좀 더 생각해보고 연락하겠다고 한 뒤 돌려보냈다. 현재까지 돈은 한 푼도 못 벌고 살살 까먹고 있으니 그리 헤프게 주기엔 좀 부담스럽다. 인터넷 없이 사는 게 과연 언제까지 가능할까 생각중이다. 학마을이 아무리 좋아도 뼈 속 어딘가는 대도시의 편리함이 배어있으니까. 이럴 때 로또라도 한 방 날려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서울에서 종종 보던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이런 저런 안부 인사 후에 시골에서 유유자적 선비 흉내를 낸다고 했더니 책을 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한다. 그는 중고등학교 학습지 출판사에 다니는데 개정 교과서용 출판물이 필요하단다. 이게 웬일이냐 싶어 덥석 물었다. 다음 주 초에 계약서를 가지고 오겠다고 한 말을 뒤로 우리의 통화가 끝났다. 이것이 진정한 운칠기삼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학교가 되었으면 다니느라 바빠서 학마을에 관심이 줄어들 것이고, 그럼 청산 할매는 혼자 힘들게 일을 해야 하고, 더불어 더 이상 장군이도 구해줄 수 없다. 모두에게 좋은 운칠기삼이 이루어지려고 교사 임용에서 떨어진 것이라 결론지으니 어이 안 좋을 수 있겠는가. 해서 다음 날 권선생 주최 씨껍데기 막걸리 잔치를 열어 어르신들을 마당에 모셨다. 불판에 자들자글 구워지는 쇠고기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으시던 청산 할매가 나에게 속삭이신다.

[내 말이 맞지?]
[네, 할매. 운.칠.기.삼!]

  때마침 지나가던 도토리묵 장수도 얻어먹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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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한마디 : 씨껍데기 막걸리..마셔보면 막걸리 중에 최고입니다! 특히 울릉도 나리분지에    서 파는 게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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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하루 2009-09-0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씨겁데기 막걸리..마셔보고 싶군요.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작년에 나는 사법 고시 2차에서 떨어졌다. 교직을 그만둔 후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사이 머리가 녹슬었는지 계속 고배의 잔을 마셨다. 몇 번의 실패가 이어지자 이 길 역시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몸도 점점 쇠약해져 낙향을 결심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폐가로 전락했던 집을 대충 청소하고 마당의 풀도 뽑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보니 이게 또 살만하여 한 달 정도 있을까 계획하고 내려온 게 어느덧 석 달이 되어간다. 결혼에도 실패하여 혼자인데 불러주는 이 없는 서울에 굳이 다시 갈 이유가 없다.

[권선생, 다 큰 어른이 서리를 왜 해?]
[할매..못 본 척 해주세요]
[냉큼 내려와. 거기 뱀 많아]

  그 말에 깜짝 놀라 자두나무에서 내려왔다. 길가를 걷다보니 누구네 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때 이르게 익은 자두들이 제법 보였다. 올 해는 햇볕이 매우 강하고 비가 적어 농작물들이 여느 때보다 빨리 익는 중이다. 생각 없이 바라보던 길에 갑자기 따 먹어보자는 장난 끼가 발동해 한 개, 두 개 근처의 것을 따다보니 어느 결에 나무에 매달렸다. 산에서 내려오시던 울산댁 할매가 그런 나를 보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부르셨다.

[진짜 뱀이 있어요?]
[그럼! 여긴 산이 바로 뒤라 사람 사는 데까지 잘 내려와. 항상 조심 해야돼]

  그리고 보니 낙향 한지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마당에 죽어 있던 뱀을 발견했다. 또 어떤 할매는 상추 뽑다가 뱀에 물려 보건소로 달려가기도 했다. 여긴 참 생각외의 사건들이 많다.

[개 사~개 사~]

  대청마루에서 무더위라고 중얼거리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는데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는 개장수가 있었나..하며 중얼거리는데 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개 사~개 사~]

  도로를 내다보니 그 개장수는 봄 밤에 만났던 도토리묵 장수다.

[묵 팔던 분 아니신가요?]
[묵도 팔고 개도 사고..장사를 골라가면서 하면 안 되지]

  대화는 나랑 하지만 눈은 수로에 빠진 장군이를 본다. 순식간이라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입맛을 다셨다. 나는 얼른 수로로 뛰어들어 장군이를 구해냈다. 장군이 역시 도토리묵 장수가 무서운지 꼬리를 말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고 놈 팔지 그래]
[청산 할매네 개라 곤란해요. 그리고 할매가 팔 분도 아니시고요]
[개 사~개 사~]

  도토리묵 장수는 멀어져 가면서도 매우 아쉬운 듯 장군이가 사라진 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러다 밤에 장군이를 납치해 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곧 복 날이니까 개장수들이 돌아다니지]
[장군이가 딱 좋은지 자꾸 팔라고 하던데요]
[나무관세음보살]

  청산 할매는 굽은 허리로 일도 참 잘하신다. 엉덩이에는 포대자루를 깔고, 밀어서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며 밭을 파헤친다. 보고 있자니 오동통한 감자가 쏙쏙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이 강원도는 아니지만 어찌 그리 감자가 실한지 쪄먹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감자밭 너머에 서서 말을 주고 받는데, 포대에서 여러 개를 꺼낸 할매는 나에게 주셨다.

[감자 가져가]
[할매가 고생해서 캔 건데..괜찮아요]

  사람 인심이 그런 게 아니라며 내 손에 듬뿍 얹어주시는 바람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조심히 돌아왔다. 감자를 씻어 불 위에 올리고 나니 김치랑 같이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학마을 살이 3개월에 시골 사람이 다 됐다.  


  그렇게 먹고 한 잠 늘어지게 자고나니 또 어느 결에 하루가 다가고 밤이다. 오늘은 사실 내 생일이라 문득 엄마가 만들어주던 메밀전이 생각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급격히 가난해져 생일이라도 뭔가 특별한 것을 해줄 가능성이 없었지만, 내가 서울로 가기 며칠 전 생일에는 닭을 잡아주셨다. 철없는 어린 아이니 왜 엄마가 먹지 않고 바라만 보는지 생각도 못하고 그저 좋아라 싹싹 발라먹었다. 그 백숙의 맛..이젠 어디를 가도 그 맛과 같은 게 없다. 


  다음 날은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내리는 게 딱히 돌아다니기도 뭣하여 오랜만에 책이나 읽으려고 대청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몇 장이나 읽었을까 청산 할매가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장군아~장군아~어디 있냐?]
[또 장군이 없어졌어요?]
[어젯밤에 못 나가게 묶었는데 일어나보니 없어]
[어디서 물고기라도 잡고 있나 보지요, 걱정 마세요]
[이번엔 두 줄로 묶어서 못 빠져나올텐데..아무래도 잡혀 갔나보이, 불쌍한 놈. 나무관세음보살]

  할매네 집 마당을 보니 정말 두 줄로 둥글게 묶어두었던 자국이 그대로 있다. 마치 몸만 쏙 빠져나간 듯 해 잡혀갔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었다. 다리 위쪽으로 걸어가는 할매를 바라보며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장군이가 사라져도 사람은 먹고 자고 싼다. 할매 역시 강단이 있는 분이라 비가 그치자 곧 마음을 다잡으시고 밭일을 가셨다. 여전히 불경을 외우시며 작물을 돌보셨다.  


  그날 밤 오랜 만에 동네 마실을 나갔다. 바람이 선선하여 집에만 있기 아쉬운 마음 때문에 다른 때와는 달리 마을을 벗어나 가본 적 없는 곳까지 걸었다. 얼마를 갔을까 저만치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그 마을 누군가가 장작불을 만든 모양이다. 삼복더위에 참..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도토리묵 장수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그가 이 근처에 사는 모양이다. 나는 왠지 모를 생각에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이~이리로 오슈]

  내가 눈에 들어왔는지 도토리묵 장수는 손을 흔들었다. 몇 몇의 남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폼이 한창 술판이다.

[제가 끼어도 되나요?]
[그럼그럼. 학마을 권선생 아니요? 맞지? 그럼 끼어도 돼]

  처음 보는 구릿빛 피부의 할배는 나를 잡아 앉혔다. 그리고 백숙을 내놓았다. 하도 고왔는지 사그라져 형체는 알기 어려웠으나 국물을 떠먹으니 서울로 가기 전날의 어머니표 그 백숙이었다.

[개는 사셨어요?]
[아~샀지. 시골에서야 개가 천지삐까리인데, 뭘]
[네..그럼 혹시..학마을에서도?]

  뼈를 발라먹던 도토리묵 장수는 내 질문에 말없이 눈을 맞추었다. 몇 초 쯤 후에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렸지만 과연 장군이를 잡아간 건지 아닌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즐거운 분위기를 망치기도 멋해서 더 물어보지도 못하고 고개 숙인 채 내 앞에 놓인 백숙에만 집중 하였다.

[입에 맞나보네. 더 줄까?]

  구릿빛 할배는 씩 웃으며 국자를 들어보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심란한데도 음식은 잘 넘어가는 게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장군이보다 백숙이라니..청산 할매 보기가 미안하다.

[근데 이놈은 얼마야?]
[그냥 드소. 신세진 거 갚는 거라 생각해주시면 더 좋고..]
[복날인데 장에 내다 주면 값도 수월찮을 것을 이래도 되겠나?]
[신경 쓰지 마시고 드소]

  도토리묵 장수와 구릿빛 할배의 대화가 왠지 이상했다. 목을 타고 올라오는 전율에 순간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왜 서울에서 그렇게 찾아다녀도 어머니표 백숙과 비슷한 맛을 찾을 수 없었는지..나는 휘적휘적 일어나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은 채 만 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표 백숙은 백숙이 아니었다. 바로 보신탕이었다. 뽀얗게 우려내어 다 사그라진 모습에 내가 백숙이라고 먼저 말하며 달려들자 어머니는 정정할 수 없었다. 오늘밤 내가 먹은 음식의 맛이 거의 흡사한 걸 보면 이곳 사람들은 복 날에 사그라질 정도로 끓인 보신탕을 먹는 모양이다. 어쩌면 오늘 내가 먹은 것은 장군이였을지도 모른다.

[할매..제가 아무래도..]
[나무관세음보살]

  청산 할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경을 외웠다. 가끔 할매는 내 속을 아는 것처럼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신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비록 매일 수로에 빠져도 장군이는 할매의 소중한 개였는데..찾아줘도 시원찮을 판에 나도 같이 먹은 것 같으니 진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낼 비올 거야, 빨래 걷으시게]

  청산 할매는 잠시 하늘을 쳐다보더니 들어가셨다. 나만이 길가에 홀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할매의 굽은 허리에 장군이가 매달린 듯하여 쓸쓸해졌다.

  다음 날은 새벽부터 비가 쏟아졌다. 수로에 물이 넘쳐 삽을 들고 뛰어들었다. 버버리 할배도 같이 도와주어 좀 수월하였지만 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온 동네 수로를 다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물고기 한 마리가 떠내려 오는 걸 목격했다. 잠시 후 또 한 마리가 온다. 이건 마치 누군가가 물고기를 물에 던지고 있던지, 혹은 몰고 오는 것 같이 느껴진다. 고개를 갸웃하며 지켜보는데 물고기들 뒤에는 포부도 당당하게 허우적거리며 물속을 들락날락 하는 장군이가 떠밀려오는 게 아닌가!

[장군아~]

  나는 너무도 반가워 물이 왕창 불은 수로로 뛰어들었다. 장군이는 익사 직전인 듯한 포즈로 눈만 깜박이다가 나를 보고는 반가운지 짓는 자세로 입을 벌렸다. 물론 그 순간 물을 마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엉금엉금 다가가 장군이를 옆구리에 끼고 수로를 빠져나왔다. 청산 할매에게로 달려가는 데 다리 너머로 도토리묵 장수가 우산을 쓰고 지나간다.

[어이~개 팔 텐가?]
[아뇨! 우리 동네에는 팔 놈이 없으니 다른 데 가보세요]

  도토리묵 장수는 큰 소리로 웃었다. 열심히 비를 맞으며 뛰어가다 보니 청산 할매가 집 앞에서 기다리시는 게 보인다. 역시나 청산 할매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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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2009-09-0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어제 넷째 형의 전화를 받았다. 새 차를 구입하게 되어 쓰던 차를 가져가라고 하기에 넙죽 그러마..하고 대답했다. 학마을은 시내에서도 이십여 킬로를 들어 가야하는 지역으로 하루에 3번 정도 다니는 버스를 이용하여 시내에 나가니 이래저래 생활이 불편하던 차였다. 게다가 마을 주민 10여분들이 모두 고령의 어르신들이라 운전면허증이 없다. 그런 이유로 현재 서울에 가서 차를 몰고 내려오는 중이다. 풍기 인터체인지를 지나 시내로 들어서서 가짜 사과들이 진열된 가게들 앞을 지나갔다. 지금은 출하된 사과가 없어 작년에 저장해둔 냉동 사과를 팔다보니, 신선도 유지를 위해 길가에 사과 박스를 내놓거나 먹음직스럽게 가판대 위에 올려놓을 수가 없다. 대신 피같이 새빨간 모조 사과들을 박스에 담아 전시한다. 좀 더 현대적인 가게의 경우는 빨간 두건을 두른 마네킹을 세워놓았다. 이곳을 지나면 어디서나 봄 직한 시내로 들어선다. 여기서 이십여 킬로를 가면 학마을이다. 새벽에 넷째 형네 집에 갔다가 부리나케 출발했지만 어중간한 운전 실력이다 보니 시내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몇 분후 교차점에 도착했다. 신호도 없는 길이지만 안전을 위해 잠시 멈추어 선채 이정표를 바라보았다. 왼쪽으로 돌면 부석사로 갈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변덕스럽게도 그리로 차를 돌렸다. 부석사야 학마을에 사는 이상 언제든 갈 수 있는데도 돌아온 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쩌면 서울 사는 사람이 남산 타워에 가본 적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부석사로 연결된 길은 새로 포장을 하여 덜컹 거리지도 않고 참 좋다. 게다가 지금 정도의 봄이면 밤이라 하여도 꽃들이 가득 피어있어 기분이 상쾌해진다.

  문득 시계를 보니 8시가 살짝 넘어섰다. 시골의 밤은 대도시보다 빨라 주변은 이내 완전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부석사에 가는 사람들이 없어 왕복 6차선 도로가 텅텅 비어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지그재그 운전도 하고, 가다 서다도 하며 놀다보니 10여분 걸리던 길이 배는 들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올라갔다. 사찰 입구에 있는 3-4개의 음식점들도 닫을 차비를 하느라 간판의 불을 내리는 게 보인다. 고작 한 두 명의 동네 주민정도만이 소주를 걸치고 있으니 이 순간 부석사 입구는 참 고즈넉하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잘 정비해 둔 부석사가 아닌 약간은 우습고, 또 많이 낡았던 절을 뛰어다녔다. 어린이 대공원이나 롯데월드 같이 가족들이 손잡고 놀러갈 곳도 없고, 또 바쁘디 바쁜 농번기에 놀아줄 어른 역시 없는 시골에서는 아이들끼리 장난감을 만들고, 놀 공간을 점거하는 게 중요했다. 부석사 역시 그런 곳 중에 하나다. 우리들은 밤이면 부석사 경내에 모여 귀신 놀이를 했고. 낮에는 남자아이를 낳고자 치성을 드리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몰래 숨바꼭질을 했다. 초파일에는 꿀맛 같은 산사 음식도 얻어먹었다. 지금은 잘 닦인 콘크리트길을 밟고 올라가면서 그런 감회에 슬쩍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저씨..지금 몇 시인가요?]
  

  하늘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데 갑자기 어여쁜 말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다. 절이라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여자 목소리가 들리니 간이 작은 나로서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다. 꺼지려는지 깜박거리는 가로등 근처 벤치에서 난 소리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고개를 새침하게 돌린 아가씨다. 

[9시가 다 되가네]
[누굴 좀...기다리고 있어요]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대답한다.

[이 시간에 여긴 인적이 드물어서 위험한데..]   
[곧 내려갈 거예요. 아저씨는 어디 가세요?]
[그냥 산책 삼아 걷는 중...여기 사람 아닌가 보네]

  어느새 나는 그 아가씨 옆에 앉아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처음 보는 내가 겁나지도 않는지 배시시 웃으며 곧잘 대답을 해 귀엽다.

[여기 사람이 맞기는 한데..억양이 서울 사람 같아서 그러시죠? 사투리가 나오면 왠지 좀 촌스럽잖아요. 그런 여자는 남자들에게 인기 없어요]
[난 정감 있어서 좋을 거 같은데..]
[아저씨나 그렇죠!]

  말을 사쁜사쁜 걷는 것처럼 건네던 아가씨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슬쩍 쳐다보자 아무래도 안 오나보다..라고 중얼거리더니 내려가겠다며 일어섰다. 나 역시 굳이 더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아 같이 내려가기로 했다. 무슨 바람이었는지 마을 근처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말하자, 겁도 없는 아가씨는 팔짝거리며 차에 올라탔다. 이렇게 해서 혼자 온 부석사를 둘이서 떠나게 되었다. 얼마쯤 갔는지 세워달라는 말에 차를 도로 한편에 붙였다. 아가씨는 조만간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사쁜사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좋은 기분이라 휘파람을 불며 학마을로 돌아왔다.

[아저씨~]

  아침이 되어 자리를 털고 나오며 오늘은 상추를 좀 따볼까 싶어 집 근처 노지에 나섰다. 뒤를 돌아보니 어제보다 더 해맑은 미소의 그 아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영주 안의 일은 눈감고도 알아요. 고만고만한 동네들이잖아요]
[하긴..] 

  시골이 그렇다. 내가 수로에서 장군이를 건져낸 사건이 1시간도 안 되어 다 퍼지는 마을이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상추 밭으로 들어갔다.

[권선생, 날도 더운데 쉬엄쉬엄 해]

  허리가 아프다 싶게 숙이고 상추를 따는데 뒤편에서 슈퍼 주인 할매가 손을 흔들었다. 나 역시 말 대신 웃으며 끄덕였다. 할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옆을 보니 그 아가씨는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왜 이제 오세요?]

  상추를 그릇에 가득히 담아 마당으로 들어섰더니 사라진 줄 알았던 아가씨가 대청마루에 앉아 발장난을 친다. 게다가 내가 늦게 왔다며 핀잔이다.

[언제 돌아온 거야? 간다는 소리도 없이..]
[난 먼저 들어간다고 했어요, 아저씨가 못 들으신 거죠.  슈퍼 주인 할매가 보여서..]
[그 할매가 싫어?]
[젊은 게 놀고 있다고 혼나요]
[하긴..그 할매는 게으른 거 싫어하시지]

  가져온 상추도 씻고 청산 할매네 밭에서 아삭한 고추도 따왔다. 조촐한 점심상이지만 간만에 신나게 먹었다. 개울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햇볕에 젓은 옷을 말리다 보니 벌써 해질 녘이다. 아가씨는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개울을 내려다보다가 먼저 떠나갔다. 나 역시 간만에 말이 통하는 젊은 사람을 보내는 게 슬퍼 터벅터벅 마을 슈퍼로 향했다. 왠지 막걸리 한 잔을 마셔야 잠이 오지 싶다.

[다 저녁에 뭔 술이야?]
[그냥..목이 컬컬해서요]
[하긴, 그리 돌아 다녔는데.. 한 잔 쭉 마시고 자]

  역시나 시골은 비밀이 없다. 나랑 그 아가씨가 놀러 다닌 걸아시니..

[권선생, 너무 정주지 말아]
[네?]

  슈퍼 주인 할매는 물건을 정리하느라 등을 돌린 채로 말을 하신다.

[그 처자랑 붙어 다니니까 하는 말이야]
[네?]
[아까 버버리 말이 개울가에서 같이 있다고 하더구만. 나도 아침에 상추 밭에서 보니 둘이 꼭 붙은 게 걱정돼서 그래. 시골은 고만고만해서 다들 알고 지내는 데, 이 근처에 그런 아가씨는 없어]

  할매의 말에 먹던 막걸리 잔을 내려놓았다. 이게 다 무슨 소린지..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왠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슈퍼를 나왔다. 학마을로 돌아와 살게 되면서 종종 기이한 일들이 생기는 데 한 밤에 만난 묵 파는 장수는 그러려니 해도 그 아가씨까지 이상하다면 참 묘해진다.

[계세요?]

  달빛을 받으며 집으로 가는 길에 청산 할매 집에 들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커다랗게 TV 볼륨을 높여 놓으신 채로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계신다.

[낼 대거리를 한 번 해야겠네]
[대거리요?]
[권선생이 마음에 들었으니 또 올거야]
[그럼..귀신인가요?]
[귀신은 낮에 안 돌아다녀. 짐승이 둔갑한거지. 여긴 종종 그래]

  청산 할매의 심드렁한 말에 안달하는 내가 오히려 무안해졌다. 그러려니 하되 끌려가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덤으로 장군이까지 받아왔다. 수돗가에서 목과 얼굴을 대충 씻자니 잠깐의 기억이지만 즐거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잠이 올까 싶었는데, 저질 체력으로 하루 종일 놀았더니 걱정하는 마음과는 달리 잠이 팍 쏟아졌다. 살포시 감기는 눈 너머로 장군이가 엎드려 있는 대청마루 가 보인다. 장군이가 있으면 괜찮을라나..하는 생각을 하는데 어둠이 밀려온다.

[멍멍 멍멍] 

  하도 시끄러워 눈이 번쩍 떠졌다. 장군이는 물고기 잡이 선수지 개치고는 잘 안 짓는 놈인데 처음으로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나갔더니  아침 해가 눈이 부시게 내려온다. 수로를 사이에 두고 난처한 표정의 아가씨와 장군이가 서로 대치중이다. 그녀는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든다.

[아저씨~] 

  자세히 보니 매일 같은 옷차림이다. 하긴 20대의 젊디젊은 여자가 땀이 배였을 옷을 매일 입는데 그걸 이상하게 생각 안했다니 나도 참 둔하다.

[아저씨~]

  나에게 계속 손을 흔드는데 참 난감했다. 머리는 끌려가지 않으려면 모른 척 해야 한다인데 마음은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려고 한다. 아마도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놀 때 보았던 따뜻하고 귀여웠던 이미지 때문이다.

[훠이~훠이~어서 가거라!]

  갑자기 붉은 돌들이 아가씨에게 날아왔다. 내 발밑으로 굴러온 돌을 보니 팥이다. 아가씨는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 소리를 내더니 혼비백산하여 산 쪽 길로 도망친다. 순간 머리가 쭈뼛하고 섰다.

[고 사이에 또 따라 갈려고 그랬지? 권선생도 참 걱정되이..]
[할매...]

  장군이가 청산 할매를 보고는 반가워서 수로를 팔짝 뛰려다 물속으로 떨어졌다. 이제야 저 놈이 왜 자주 물에 빠지는지 알았다. 장군이를 구하느라 수로로 들어갔다 나오니 시원한 물 덕분에 꿈에서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고마워]
[뭘요...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가는 길이 다른 법이니..앞으로 조심해]
[네. 들어가세요]

  반쯤 젓은 장군이를 두 손으로 받아 드신 청산 할매는 굽은 허리를 더욱 굽히며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셨다. 나는 그 아가씨가 도망간 숲 속 길을 잠시 바라보았다. 다음에 또 찾아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데, 내가 과연 모질게 대하거나 청산 할매처럼 팥을 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법 마음이 맞았으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제 먹다 남겨둔 상추가 기억나 비빔밥을 해먹자고 중얼거리며 부엌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 

글쓴이의 한마디 : 영주에 가시면 이런 사과 과게가 많아요. 왼쪽에 있는 가짜 사과들이 실제로 보면 기가막히게 붉어요. 딱 가짜라는 걸 알죠--;   

(사진출처: http://image.search.daum.net/dsa/search?w=imgviewer&q=%BF%B5%C1%D6+%BB%E7%B0FA&page_offset=0&page=3&shape=default&size=0&color=0&SortType=3&lpp=28&cp=&od=bJhcy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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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들이 요 근래 들어 가장 많이 날아온 날이다. 학마을이란 이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알 정도로 우리 마을 뒷산은 학들의 요람이요, 놀이동산이다. 지금은 관공서에서 학이라는 말 대신 정확한 명칭을 사용하여 “백로도래지”란 푯말을 마을 앞에 세워주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불러온 이름이 더 익숙하여 우리는 여전히 학이라고 한다. 그들이 가득 앉은 나무는 솜털처럼 하얀 빛이 물결을 이루어 절경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에 비해 학의 똥은 매우 독하다. 그들이 생활하는 나무는 시들어 고사 직전이라 한 눈에 보아도 어떤 게 학들 전용인지 알 정도로... 바닥에 떨어진 학 똥이 딱딱하게 마르면 우리 마을에서는 벌래 같은 해충을 쫓을 때 활용하였다. 옛날에는 마을에 아이들이 많아서 학을 쫓아다니는 재미에 살았지만, 이제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뿐이라 그들의 기세가 날로 세지는 중이다.

[버버리는 아직도 학을 쫓아다녀]

  슈퍼에서 학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듣고 있던 울산댁 할매께서 한마디 거드셨다. 버버리란 마을 입구로부터 두 번째 집에 사는 70초반의 할배로 말을 더듬어서 버버리로 불린다.

[여..여기..들..이..있..었..구만..]

  갑자기 슈퍼 문이 열리더니 바로 그 버버리 할배가 들어왔다. 일을 하다 오셨는지 한 손에는 삽을 들었다.

[막걸리 한 잔 줄까?]

  슈퍼 주인 할매는 다 안다는 듯 먼저 사발을 들며 물었다. 술이라면 엄청나게 좋아하는 버버리 할배가 웬일인지 고개를 젓는다.

[권...선상...이..거..조..좀...봐...]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종이 한 장을 꺼내 건네주셨다. 얼마나 들고 다니셨는지 접힌 부분이 다 일어났다.

[이게 뭔데요?]
[그 집 아버지가 남겨준 거야]

  슈퍼 주인 할매가 대답 했다. 그 말에 나는 그를 살짝 처다보았다. 버버리 할배는 손에 땀이 나는 듯 연신 바지에 닦는다.

[왜 저에게?]
[나..가..그..글을..모..몰러]
[권선생이 제일 똑똑하니까 가져왔구먼. 우리에겐 보여주질 않던데..]

  종이를 펴고 읽다보니 특별할 것도 없는 중풍 예방 안내장이다.

[별거 아니네요. 중풍 아시죠?]
[뭐?]
[풍이요..풍]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행동을 보여드리니 버버리 할배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아~풍. 그거 걸리면 콱 죽어야지 오래 살면 못 쓴다]

  울산댁 할매가 손바닥을 치며 끼어들었다. 대화란 게 사람이 많으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고 이야기는 갑자기 우리 어머니의 과거로 껑충 뛰었다. 나는 여기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서울로 올라가서 사정을 몰랐지만, 어머니는 시어머니 병수발과 작은 할매 중풍 치다꺼리까지 도맡아 하셨다고 한다.

[똥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구들댁이 엄청 고생했어]
[진짜 시어머니도 아닌 사람을...]

  작은 할매라는 분은 첩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우리 집 땅을 안 밟으면 못 걸어간다고 할 정도로 부자였다. 옛날에는 본부인 말고도 옆 마을에 첩을 두는 게 당연한 시대라 우리 집 역시 그랬다. 문제는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을 동안 어머니가 병구완을 다한 뒤 장례를 치뤘는데, 1달 뒤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할매가 중풍에 걸렸다.  
   

   결국 그 날은 이렇게 다른 말들을 듣다가 막걸리에 취해서 버버리 할배를 도와드리지 못하고 헤어졌다. 며칠 뒤에 만난 청산 할매가..

[버버리네도 풍이었어]
 

  라고 귀띔해주셨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유품을 정리할 때 지갑 속에서 발견한 후 지금까지 신주단지처럼 가지고 계셨단다.

[중풍을 예방하는 이 방법은 일본의 민간요법이며 일생에 한 번만 복용하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제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란 흰자 1개, 사기 또는 유리 그릇, 머윗잎 5매, 곡주, 생매실 또는 우에 보시 5개를...]

  정자에 앉아 큰 소리로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내 앞에는 버버리 할배뿐만 아니라 마을의 모든 어르신들이 모여 계셨다. 유언이 아니라 하여도 다들 고령이시니 풍 예방 차원에서 읽어달라는 요청이다. 문제는 읽어내려 갈수록 이것이 과연 믿을 만한지 의문점이 증폭된다. 계란이랑 머위, 곡주, 생매실을 섞은 걸 딱 한번만 먹으면 죽을 때까지 중풍에 안 걸린다는 말이 진실이면 벌써 세계적인 이슈일 테지만 들어 본 적 없다. 그런데도 학마을 어르신들은 열광적이다.

[머위? 그게 뭐지?]
[머우 있잖아. 머우]
[아~머우. 뒷산에 가면 많아]

  다들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준비물을 나누셨다. 계란도 그냥 계란은 안 되고 유정란만 효험이 있다는 말에 어제 낳은 계란을 갖고 오시겠다며 청산 할매는 재빠르게 가셔서 두 손에 소중히 담아 오셨다. 게다가 곡주는 화학 성분이면 안 된다고 시내에 다녀오라고 채근하여 순도 100%의 술을 사왔다. 마침내 생매실까지 마련 되자 모두 갈아 섞은 뒤 컵에 담았다. 

[전..안 먹어도 건강한데요]
[참말로..권선생..풍이 사람 봐가며 오나!]

  내 손에도 컵이 들려졌다. 다들 그 푸른색의 액체를 바라보시는 모습이 비장하다. 버버리 할배를 시작으로 모두들 쭉 들이킨다.

[흐미...맛이 참 요상하네..]
[원래 몸에 좋은 게 쓰잖아]

  손으로 쓱 입을 닦으며 하시는 말씀들에 먹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특히 슈퍼 주인 할매는 입을 틀어막고 목만 꿀렁꿀렁 소리를 내신다.

[권선생! 아까 워라. 다시 만들어야겠구먼]

  나는 그 역하디 역한 맛을 참지 못하여 입에 넣은 지 몇 초 만에 모두 뿜어냈다. 청산 할매는 등을 쓸어주며 다시 만들자는 제안을 하신다. 깜짝 놀라 손을 내저으며 잔에 남아 있는 나머지만 먹었다. 젊으니 반만 먹어도 약효가 좋다는 열변을 토하며.. 


  마침내 집에 돌아와 대청마루에 누웠다. 빈속에 술이 섞인 중풍 예방 음료를 넣었더니 서 있기가 거북했기 때문이다. 취기가 올라오는 게 얼굴에 열이 난다.

[권선생..괜찮아?]

  청산 할매가 나를 건드리며 옆에 앉았다.

[기분이 영..나쁘네요]
[이게 도움이 될 테니 불 붙여서 옆에 두고 자]

  할매는 나뭇잎에 싼 것을 건네주시고는 할 일이 많다며 바삐 가셨다. 나는 꼼짝하기도 싫어 어두워지도록 그 자리에 엎어져 시간을 보냈다. 부엉이 소리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안을 뒤져 작년에 쓰던 모기향 그릇을 꺼내 나뭇잎에 싼 것을 옮겨 담았다. 그것은 학의 배설물이다. 단단하게 굳었고 나름 모양도 단정하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불이 붙은 배설물에서 묘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아마 대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 냄새 역시 중풍 예방약만큼이나 끔찍할 수 있지만 나는 그 똥 밭에서 굴러다닌 인물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팔베개를 하고 창 너머로 보이는 검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센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별 넷...]

  별세기 작업이 30을 넘었을 때 한 개씩 내 품으로 떨어졌다. 행복한 기분이 퐁퐁 솟아오른다. 낙향이든 귀향이든 이런 시골 생활도 과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권선생~권선생~]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다. 밤새 배고 있었던 팔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저려 두드리고 문지르며 밖으로 나왔다.

[장군이가 또 월척을 낚아왔어]

  내가 고통을 격는 동안 장군이는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아주 실하디 실한 놈을 잡아왔다. 청산 할매와 나는 그 물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운 후 입에 넣고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켰다.

[이것이 보약이에요]
[하긴 사람은 잘 먹고 잘 싸면 되는 거지. 명 껏 살다 죽는 게 최고야]

  그 요상한 약이 예방을 하기는 하는지 그 뒤로 학마을에서는 한 분도 풍을 맞으신 분이 없었다. 중풍 예방약 만세!
 
---------------

글쓴이의 한마디: 중풍예방 안내장..어머니가 만들어 주셔서 먹었는데..정말 넘어옵니다..--; 

아래 사진은 백로들이 서식하는 나무의 사진입니다. 영주에 가면 "백로도래지"표시가 있고 마을  

뒤에 정말 이렇게 죽어가는 나무가 있답니다.(사진 출처: http://cafe.daum.net/jds0808/1xlE/26?docid=17mWA|1xlE|26|20070524171949&q=%B9%E9%B7%CE%B5%B5%B7%A1%C1%F6&srchid=CCB17mWA|1xlE|26|2007052417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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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마을과 제일 가까운 도시인 영주는 2일과 7일에 장이 선다. 오늘이 마지막 주 27일이니 즉 장날이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났지만 어두운 느낌에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밖은 비가 제법 내린다. 옷을 대충 입고 옆집에 가보니 청산 할매는 부지런하게 장에 갈 차비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신다.

[날이 많이 궂은데 안 나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정도 같고 뭘..빨리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게]

   오른 손에는 장바구니를, 왼 손에는 때가 묻은 지갑을 꼭 쥐신 게 말린다고 안 가실 분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장에 가면 서울에 보내실 것을 사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천둥 번개가 처도 가시리라 짐작 했다. 그러나 고령의 어르신이라 걱정스럽다. 동네에 노인 분들만 있다는 건 운전을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 장날용 특급 버스를 타고 우르르 나갔다가 시간 안에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제가 같이 갈까요?]
[뭐 하러?]
[장 구경도 하고..겸사겸사요]

  꼬리가 붙으면 원하는 대로 다니기 어렵다며 한사코 만류하신다. 어찌나 독립심이 강한지 호미처럼 굽어 불편한 허리에도 웬만한 일로는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옆에서 보면 아슬아슬하다 싶은데도 곧잘 이곳저곳 다니시는 성격이라 오늘도 혼자 편하게 다녀오시겠다고 선언하신다. 하는 수 없이 꼭 2시 차로 돌아오시라고 부탁드렸다.  


  동네 어르신의 과반수를 실은 장날용 특급 버스가 출발하자 우산을 쓰고 다리까지 걸어갔다. 마을에서 제일 안쪽에 살기 때문에 뒤로는 울창한 숲 속 산책로요, 앞으로는 3분 거리의 개울가와 다리가 있어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에는 더없이 좋다. 다만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문제가 생긴다. 개울물이 지나가는 수로가 집 마당과 도로의 경계 사이에 자리 잡아 물이 넘치기도 하고 때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떠내려 온다. 게다가 비가 많이 오면 수로가 막히지 않게 삽을 들고 뛰어들어야 한다.  


  점심때가 지나면서 비가 거세졌다. 수로의 물도 상당히 차올랐다. 물론 아직은 수로 속으로 들어가야 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이다 싶지만, 할매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셔서 마음이 불편했다. 학마을은 평일에 버스가 3번 정도 들어오는 지역인데, 작년에 집단 건의가 통과되어 장날은 4번 운행한다. 이런 이유로 장날용 특급 버스라 부른다. 동네 분들은 아침 8시의 첫 차를 타고나가 보통 2시 버스로 돌아온다. 만약에 장을 더 봐야 한다거나 다른 일 때문에 늦어지면 막차인 5시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다 같이 수다를 떨고 싶어 2시 버스를 대부분 이용한다.

[청산 할매는 같이 오지 않으셨어요?]
[몰라. 안탔어. 울산댁~봤어?]

  슈퍼 주인 할매가 물어보니 같이 내린 어르신들이 모두 고개를 흔든다. 다들 별일 없을 테니 좀 있어보라며 마을로 들어가는데 나는 망설여졌다. 얼마쯤 지났을까 비가 갑자기 더 심해져서 수로를 확인하려고 집 앞으로 갔다.

[멍멍, 멍멍]

  어찌된 영문인지 수로 속에는 누런 강아지 한 마리가 반쯤 몸을 담근 채 애처로이 운다.

[너 왜 거기에 있냐?]
[떠내려 왔어요]

  물론 말을 할리 없으니 혼자 묻고 답하며 꺼내들었다. 얼핏 봐도 똥개였다. 잘 키우면 복 날감으로 딱 좋을 황구다. 구출된 게 감사한지 얼굴을 열심히 핥는다. 그 녀석을 대청마루에 내려놓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나가기 전에 시계를 보니 4시 50분. 막차가 좀 있으면 오겠다 싶어 도로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나는 어릴 때 엄마가 장에 가면 안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듯하다.

[왜 이렇게 늦게 오세요?]
[왜? 뭐 잘못됐어?]
[다들 돌아오셨는데 할매만 안 오셔서요]
[버스 끊기면 택시 타고 오면 되지. 차야 천지삐가리인데 뭘 걱정해]

  유쾌하게 웃으시며 쓸데없이 걱정한다는 소리를 하시니 마음이 살짝 놓였다.

[야야~너 거기서 뭐해? 빨리 나와라]

  할매는 다리를 건널 쯤 개울가를 보면서 소리치셨다. 그에 나도 바라보니 아까 내가 구해줬던 똥개가 개울 한 가운데서 우리를 올려다보며 우는 소리를 낸다. 

[아는 개에요?]
[내가 장에서 산 놈이야. 없어져서 찾아다녔는데 벌써 와 있었구먼]

 어떻게 다시 물에 빠져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할매 성화에 풍덩 뛰어들어 구해왔다. 사실 개울은 무릎 정도 오는 깊이라 풍덩이라고 표현하기는 창피하지만..

[이 놈 키워서 잡수시게요?]
[에끼. 나무관세음보살]

  할매는 흉한 소리 한다며 똥개를 뺏어들고 먼저 걸어가셨다. 나는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따라갔다. 똥개는 다음 날부터 비어있던 개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름은 장군이.

[무럭무럭 커서 장군처럼 되라~]

  할매는 남은 음식을 장군이에게 줄 때면 그렇게 말을 하신다. 그런데 장군이 되어야할 놈이 자주 물에 빠진다. 어떻게 목줄을 빼고 나가는 건지 항상 사라져 할매 성화에 찾아보면 수로 속이나 개울물, 때로는 저수지에서 허우적거린다. 이곳에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똥개 구하는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되니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사는 일이다.

[복 받을 거야]

  청산 할매는 매번 구해주는 게 고마운지 감자만두를 만들어주셨다. 이건 콩을 밖아 넣은 강원도식 음식이라 할매가 어떻게 아는지 궁금했지만 다음에 물어보기로 했다. 굉장히 뜨거워 끙끙 데느라 입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다. 먹으면서 슬쩍 개집을 보니 장군이가 없다.

[입천장 홀랑 까지니까, 조심해서 먹어. 그나저나 장군이 고 놈도 참..]

  머리를 흔들며 돌아가는 할매를 보자니 휘어진 허리가 걱정으로 더 굽은 것처럼 보였다. 감자만두를 담았던 그릇을 그냥 돌려드리기가 미안해져 호박엿을 한 주먹 넣어가지고 나왔다. 옆집으로 가는 길에 집 앞 수로를 내려다보았지만 장군이는 없었다. 할매네 문 앞에 그릇을 내려놓고 개울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장군아~장군아~]

이상하게도 마을 안에서 장군이가 보이질 않는다.

[수고했어]

  장군이의 행방불명 소식에 청산 할매는 하늘을 한 번 바라본 뒤에 밭일을 하러 가셨다. 과부 생활을 오래하시다보니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 안 할 정도의 강한 성격이 되셨다는 슈퍼 주인 할매 말이 참으로 맞다. 기른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마음을 쓰시던 녀석인데, 사라졌다는 말을 하면 할매가 낙담하실까봐 걱정한 게 우스워졌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일주일이 지났다. 6월로 접어든 학마을은 파란 자두가 상큼하게 열리기 시작하였고, 나뭇잎의 푸른빛이 햇빛에 반사되어 곳곳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권선생, 이리 좀 나와 봐~]

  해가 져물어가는 저녁이라 얼른 밥을 먹고 치워야겠다싶어 부엌에서 부산을 떨고 있는데 청산 할매의 목소리가 들려 뛰어나갔다.

[헉!]

  장군이었다. 입에 큰 물고기를 문 모습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게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온 백전노장이다.

[착한 놈, 실한 걸 물어왔네]

  할매 앞에 물고기를 놓고는 유유자적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시더니 감탄의 말을 하셨다.

[저 놈 혼내야하는 거 아니에요?]
[내버려둬. 다 지 할 참이니까..]

  할매의 표정은 장군이가 돌아온 것으로 만족하시는 것 같아 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잠을 자려고 누워 생각해보니 참 이상하다. 학마을은 소백산으로 둘러싸여있어 물도 얕은 편인데 저렇게 큰 물고기를 어디서 물고 온 것일까? 장에 혼자 가서 생선가게를 털었나?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요상하다. 뭐, 할매는 전혀 궁금해 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그 뒤로도 장군이는 종종 사라졌다가 물고기를 물고 돌아왔다. 과연 학마을에 사는 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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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의 한마디 : 영주장..참 정겹고 좋습니다. 인심도 후해요 (사진은 다음 아고라에서 가져왔어요. 주소는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60&articleId=8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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