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게 오늘이 벌써 새해 첫 날이다. 일전에 장에 갔다가 은행에서 받은 멋없는 달력을 새로 걸고 대청마루와 방을 청소했다. 우리 집은 구정을 지내기 때문에 새해 첫 날에 특별한 의미를 두거나 떡국을 끓여 먹는 행사가 일절 없지만, 36살의 첫 날은 단정한 몸과 마음, 깨끗한 집으로 시작하고 싶다. 하여 2시간이 넘도록 정리를 한 뒤 땀이 흐르는 몸을 닦았다. 왠지 뿌듯한 기분에 대청마루에 서서 마당을 둘러보았다.

[형욱아~]

  수로 너머에 첫째 형과 셋째 형의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라 맨 발로 내려갔다. 혹시나 학마을에서 종종 겪는 신기루가 아닐까 해서..

[신발 신고 내려오지, 그러다 발 다치겠다]

  셋째 형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술이 들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검은 비닐봉지가 흔들린다.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그냥..새핸데..혼자 보내기 적적할까 싶어서 내려왔지]

  첫째 형은 나를 바라보다가 대청마루에 앉았다. 우리 7형제가 모두 모일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잘해야 2-3일 정도다. 게 중에는 시집간 누나도 있어 친정 모임에 정확히 맞춰 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첫째 형과 셋째 형은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이라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다.

[방이 깨끗하구나]

  첫째 형은 어떻게 해놓고 사는지가 궁금한지 부엌도 들여다보고 방 안도 살폈다. 책상 위의 나비 연적과 개구리 벼루를 잠시 살펴보다가 내려놓았다. 평소의 나를 생각하면 그런 물건들이 어울리지 않아서다. 나는 모른 척하고 방 구석에 두었던 화로를 끌어왔다.

[이게 아직도 있었어?]

  화로는 지난 여름에 우리 집 다락에서 발견했다. 아마 윗 세대에서 쓰던 것 같은 데 많이 낡고 군데군데 금이 갔지만 꽤 쓸 만하다 싶어 겨울이 시작될 때 방 안에 들여놓았다. 이게 불을 피워두면 생각보다 좋다. 운치도 있고, 감자를 구워 먹기도 좋고..하여간 남자 혼자 살림에 유용한 도구다. 불이 완전히 죽어버리지 않게 살짝 덮어두었던 재를 걷고 불씨를 키웠다.

[오면서 보니까 산에 눈이 제법 쌓였더라. 꿩 사냥 하던 때가 생각나네]

  화로에 밤을 구워먹자는 의견 일치를 본 후 저장고에서 가져온 밤에 칼집을 내어 올려놓고 앉아 있자니 첫째 형이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런 겨울이면 집 안에만 있기도 지겨워 가까운 산 속에 올가미를 설치해놓았다. 학마을에서는 올가미를 옹노라고 불렀다.

[형이 옹노를 참 잘 만들어서 한 번 걸린 놈은 못 빠져나갔잖아]
[꿩이랑 토끼랑 또..뭐가 잡혔더라?]

  옹노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개목에 걸린 줄이랑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쥐덫처럼 들어간 순간 딱 조여드는 성질을 가졌다. 움직일수록 더 살을 파고들어가 늦게 발견할 때는 피를 흥건히 흘리게 된다. 문제는 설치해놓고 잊어버릴 때다. 제거도 안하고 가보지도 않으니 동물의 시체가 썩기도 하고 지나가던 사냥꾼이나 등산객이 걸리는 일도 발생한다. 그러나 이제는 가축을 해치는 산짐승이 있을 때나 옹노를 설치할 정도로 옛 추억이 되었다.

[우리 이거 다 먹고 나서 옹노 설치할까? 엊그제 폭설이 왔으니 먹이 구하러 내려오는 짐승이 꽤 있을 거야]

  셋째 형은 잘 익은 밤을 골라 먹으며 제안했다. 나는 별 대답을 안 했지만 첫째 형이 좋다고 하여 둘은 대청마루에서 옛 기억을 되살려 튼튼하게 옹노를 제작했다. 그리고는 수군수군 하더니 내가 잘 다니는 숲 속 산책로 쪽으로 사라졌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곧잘 붙어 다녔다. 한 사람이 물고기를 몰고 가면, 또 한 사람은 맞은 편에서 대기하다가 퍼 담는 식으로 손발이 척척 맞아 이곳을 떠날 때까지 근방에서 뭘 해도 제일 잘하는 형제로 소문난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어 각자의 일을 하느라 자주 못 봐도 이렇게 만나면 금방 합체를 하니 참 재미있다.

  둘은 30분쯤 후에 무릎까지 젖어서 돌아왔다. 오늘 밤이 지나면 뭔가 하나쯤은 잡힐 거라며 막걸리를 거하게 마신 후 잠자리에 들었다. 크지 않은 방 안이 코고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로 가득 찼다. 혼자 잠드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잠이 오지 않아 대청마루에 나가 앉았다. 새해 첫 날의 달은 휘영청 밝아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어디 가세요?]
[상석리에 초상이 났다고 해서 도와주러 가는 길이오]

  도토리묵 장수가 두꺼운 잠바에 방수 바지를 입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가길래 반가워 말을 걸었다. 이번에는 초상집에서 무엇을 하려나..하는 호기심이 일었지만 그가 녹녹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니 그냥 다녀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몇 걸음 가다가 할 말이 있는 듯 멈칫 하는가 싶더니 가버렸다. 요즘 도토리묵 장수는 똥 마려운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번에도 그냥 가는 걸 보니 다음에 꼭 물어봐야겠다.

  날이 아무리 추워도 울산댁네 장 닭은 어김없이 새벽을 알려주러 날아온다. 처음엔 나에게 복수하려고 그랬던 것 같지만, 요즘엔 아예 아침 산책 코스로 잡은 듯하다. 해도 뜨지 않아 어둡기만 한데 5시가 좀 지나자 우렁차게 소리를 내지른다. 문풍지로 창문을 막았어도 소리는 들어오니 형들도 결국 일어났다. 우리 셋은 옹노를 확인해보려고 산 속 길로 들어갔다. 형들의 말에 따르면 눈이 쌓일 경우 짐승들은 길을 잃지 않으려고 한 번 밟은 길로만 계속 다녀 눈을 다져놓기 때문에 알아보기 쉽다고 한다. 그런 길목에 옹노를 설치해야 100% 성공한다고 비결을 알려준다. 하여 반 년 동안 열심히 산책을 다닌 나로서도 처음 보는 곳으로 갔다.

[거봐! 잡힐 거라고 했지!]

  셋째 형은 신나서 야호 소리를 낸다. 마지막에 헉헉거리며 도착한 나는 옹노를 보고는 숨을 들이켰다. 뒷발이 걸려 옴삭 달삭 못하는 너구리다. 몸길이는 대략 50센티 정도로 여우보다는 작아 보이는데 입술 끝이 뾰족하다. 둔갑 너구리가 아닌 본래의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라 이놈이 과연 내가 아는 그 자매인지가 확실치 않았다. 언제 걸렸는지 기진맥진해 옆으로 누워 있어, 손이 닿아도 움찔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대응 하지 않는다. 열심히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모르겠다. 하지만 단 1% 라도 가능성이 있으니 죽이거나 잡아먹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옹노에서 조심스럽게 풀어 집으로 데려왔다. 형들은 구워먹을 생각에 장작도 준비하고 솥에 뜨거운 물을 올리며 칼도 가는 등 바쁘게 움직이는 데 나는 눈치를 보다가 너구리를 들고 수로를 넘어 도망쳤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셋째 형의 목소리가 어이가 없는 듯하다. 하긴 나라도 동생이 잡은 짐승을 들고 사라지는 데 안 그럴까 싶다. 나중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마음에서 지우고 가장 가까운 단골 보건소로 뛰어 들어갔다. 나와 안면이 있는 의사선생님은 곤혹스러워 하다가 사람의 상처를 처치하듯이 치료를 해주었다. 내 품안에서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늘어져 있는 너구리에게 연민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어쩌면 너구리 아가씨에 대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청산 할매 말처럼 내가 모질게 끊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새해부터 얽히는 것이니 자승자박이다.

[아저씨~]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어디서 구했는지 야광 같은 묘한 빨강색의 잠바와 검정색 쫄쫄이 바지를 입고 장화를 신은 너구리 아가씨였다. 내 품 안에 있는 것이 그녀가 아님을 알자 안도의 한 숨이 새어나왔다.

[뭐예요?]
[혹시 너의 친구거나 가족일까 했는데..아닌가 보네]
[사람도 친척이 엄청 많잖아요, 우리도 그래요. 영주에 사는 너구리를 다 알면 우편배달부가 됐게요]

  어딘가 이상한 대답이었지만 아무래나 좋다. 새해 첫 날 다친 게 너구리 아가씨가 아니니까.

  그녀와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다친 너구리를 부탁했다. 집으로 가져가면 형들이 결국 먹을 테니 돌봐주지도 못할뿐더러, 이 이상 다른 너구리와 안면 트고 싶지 않다. 너구리 아가씨가 잘 가는지 잠시 지켜보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포기가 빠른 형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다른 고기를 석쇠에 구워먹는 중이다. 셋째 형은 상추쌈을 입에 넣다가 나를 보고는 화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한 마음에 혼자 먹으려고 숨겨 두었던 자연산 송이와 동치미 국물을 제공했다.

[다시 합칠 생각은 없냐?]
[그냥..지금이 좋아요]

  첫째 형은 자신의 이혼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나는 아직 젊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하란다. 그는 같은 여자와 두 번 이혼한 특이한 전력이 있다 보니 나에게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못하지만, 셋째 형은 이렇게 시골에 처박혀 살지 말라고 성을 냈다. 그가 보기에 나는 딱 홀아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말을 들으며 형제들에게 내가 학마을을 왜 좋아하는지, 여기서 사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서울처럼 사람만 있고 지성이 가득한,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내 말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저녁을 먹은 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라고 내 등을 두드려준 후 학마을을 나서는 형제들에게 마음을 담아 인사했다.

[다음에는 모두 함께 와]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어 방안으로 들어와보니 책상 위에 작은 봉투가 보인다. 그 안에는 막내에게 주는 용돈, 즉 형들의 마음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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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2009-09-2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형제란 떨어져 있어도..항상 서로를 생각하고 걱정해주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동생에게 주는 용돈..행복하겠어요

새독자 2009-09-2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편부터 쭉 읽었습니다. 다음편이 궁금해서..쉬고 내일 읽을 수가 없더라구요. 한 편 한 편이 머리 속에서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작가님은 수채화로 그림을 그리시는 것 같이 글을 쓰시네요~
 

  독감에 걸렸다. 덕분에 새해가 다가오는 데 아무 준비도 못하고 자리보전 중이다. 오늘까지 며칠 째 누워있는 건지, 얼마나 잔건지 도통 모르겠다. 멍하게 눈을 뜨면 청산 할매가 보이고, 또 감았다 뜨면 슈퍼 주인 할매, 그 다음엔 도토리묵 장수까지 골고루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건지, 각각 온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한데다가 열이 나고 땀이 흐른다. 정말 무시무시한 독감이다.

[금방 털고 일어나긴 힘들겠어]
[권선생, 먹기는 하남?]
[생선 대가리 마냥 빼짝 한 게 먹기는 뭘 먹어, 아따 봐도 모르면 눈은 왜 달고 있어?]

  나를 놓고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한다. 그동안 어떻게든 먹을 때 되면 먹었건만 할매들 성에는 안 차나보다. 나는 대꾸할 기운도 없어 그저 눈만 떴다 감았다 할 뿐이다. 두통이 점점 심해진다. 잠시 후 어르신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방 안이 고요해졌다. 감기에는 이런 환경이 필요한 법인데,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콜록 콜록]

  목구멍 깊숙한 곳을 치고 나고는 기침이 온 몸을 흔들어 놓는다. 삭신이 쑤신다는 게 바로 이런 순간이다. 계속되는 기침에 끙끙 거렸다.

[물 좀 드세요]

  기침이 빠져나가자 이어서 찾아오는 목 타는 느낌에 더듬더듬 물그릇을 찾는데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내 손에 시원한 물 잔이 쥐어졌다. 눈을 천천히 돌려 얼굴을 보았다. 너구리 아가씨다. 언니의 말대로 홀쭉하고 여윈 얼굴이 그동안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는 걸 한 눈에 알았다. 연민이 느껴져 모습을 찬찬히 살피는데 머리에 붉은 돌? 붉은 콩? 장식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한 걸 잔뜩 달고 앉아 있다.

[머리에..뭐야?]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서 드세요]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말을 얼버무리고는 이어 약을 건넨다.

[감기에 좋은 약이에요. 생약이니까 잘 씹은 후에 넘기세요]

  오른 손을 펴게 하더니 빨간 헝겊 주머니에서 동그랗고 검은 알들을 5개 정도 올려놓았다. 환약이다. 입에 넣고 오물오물하자니 쓴 맛이 퍼진다. 좋은 약은 쓰다고 한 것처럼 씹으면 씹을수록 더 쓰다.

[계속 먹어주면 감기에 정말 좋아요]

  너구리 아가씨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너는 몸이 좀 나아졌어?]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이 반쪽인데 모를 수야 있나]
[괜찮아요. 그럭저럭]

  그녀는 나를 다시 눕힌 후 새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주고 물러갔다. 그리고 나니 나는 다시 혼자다. 하도 자서인지 수마는 태평양 저 너머로 간 듯 하여 고된 몸과는 달리 정신은 또렷하다. 문득 처음 내려온 날 잠들기 전에 느꼈던 서글픔과 외로움, 고독이 밀려온다. 잊고 지냈던 약한 감정들이 내 몸을 슬금슬금 잠식해온다. 사람은 아플 때 가장 약해진다고 하지 않는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방 안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놓고 간 다양한 음식들이 보였다. 만약 서울에 계속 있었다면 원룸이나 하숙집 같은 곳에서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앓다가 죽어갈지도 모른다.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한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땀을 많이 흘려서 당분간 일어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땀이랑 소변은 또 다른 차원인지 느낌이 계속 온다. 하는 수 없이 문을 열고 차디찬 대청마루로 나갔다.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때렸다. 간신히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돌아가려고 몸을 돌리는데 처마 밑의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치켜들고 실눈을 떠 초점을 맞추어보니 거꾸로 매달린 개구리들이다.

[뭐지?]

  나는 동물의 왕국을 보는 기분으로 눈만 껌뻑껌뻑하며 숫자를 셌다. 거꾸로, 한 쪽 다리로만 처마에 매달려 서커스를 하고 있는 개구리들은 10마리 쯤 된다.

[왜 나와 있어? 감기 더 들게..]

  청산 할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손을 들어 서커스 개구리를 가리켰다.

[여기선 병이 나면 저런 놈들이 보여]

  답을 알고 나니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아도 궁금증은 풀렸다는 안도감에 방으로 복귀했다.

[할매, 저런게 있으면 계속 아픈 거 맞죠?]
[그럼, 싹 사라져야해]

  할매는 이마에 손을 올려 열이 나는지 확인하셨다. 나는 다시 축축한 요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잠시 앉아 있던 할매는 푹 자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아저씨, 이거 드시고 주무세요]

  언제 잠들었는지 열심히 밭을 달려가던 꿈에서 깨어났다. 너구리 아가씨가 머리와 어깨에 눈을 가득 얹은 채로 숨을 고른다.

[추울 텐데..옷 좀 따뜻하게 입지..]

  아직도 반팔에 반바지라 한 마디 했다. 내 말에 객쩍은 듯 웃으며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고는 눈을 털어냈다.

[아..옷을 바꿔 입었어야 하는데..제가 아직 서툴러요]

  그녀는 왠지 얼굴이 더 어두워보였다. 눈가에 살짝 눈물도 어린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언니가 뭐라고 했니?]

  눈 속을 헤매던 밤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생각하며 물어보니 너구리 아가씨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연다.

[아저씨를 귀찮게 하지 말라고..그런 말을 들었어요. 제가..그동안 그랬나요?]

  너구리 아가씨가 눈을 피하며 말소리를 죽였다. 나는 힘없는 팔을 꺼내 다리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마음은 머리를 쓰다듬고 싶지만 거기까지 올릴 수가 없다.

[아니야..덕분에 즐거운 걸..게다가 이렇게 병문안도 와주니..고맙지]

  너구리 아가씨는 그래도 개운하지 않은 얼굴이다. 내 팔을 다시 이불 속에 넣어주고는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도자기들을 든다.

[그건 왜?]
[가져가려고요]
[지금?]
[네. 여기에 두면 아저씨가 곤란한 거 알아요]
[예쁜 것들인데..그냥..두렴]

  나는 기침을 하며 말했다. 너구리 아가씨의 의아한 표정에 계속 보다보니 예뻐서 정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그렇다기보다는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내 말의 속뜻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 수 없지만 잠시 도자기들을 바라보다가 두고 갔다. 문이 열렸을 때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서커스 개구리가 한 마리 사라졌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받은 환약을 씹어 먹고 잠을 청했다.

  약 때문인지, 감기 때문인지 잠만 들면 꿈의 퍼레이드다. 어떤 꿈에서는 꽃상여를 매고 있고 다른 꿈에서는 도토리묵 장수와 개를 잡고 있다. 가장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꿈은 장군이와 학 알을 놓고 싸웠다.

[썩 사라져!]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린다. 좀 전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움직이기가 싫어 천장을 보고 있는데 청산 할매가 오셨는지 밖이 소란스러웠다. 방문을 발로 차 열고 내다보니 팥을 손에 쥔 청산 할매가 수로 쪽을 향해 큰소리를 내신다.

[할매, 무슨 일 있어요?]
[사람 기가 허하면 미물들이 꼬여, 권선생 빨리 일어나야지, 안 그럼 자꾸 와]
[혹시, 반바지 차림이었어요?]
[뭔 소리야, 짐승이어도 이런 날엔 반바지 안 입어]

  할매는 죽을 끓였다며 방 안에 놓고 돌아가셨다. 잠깐 올려다보니 서커스 개구리가 두 마리 사라졌다. 점점 나아가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저씨~]

  얼마 후에 문 앞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발로 문을 차서 열였다. 머리카락에 팥이 잔뜩 달려있는 너구리 아가씨가 서 있다. 좀 전에 청산 할매가 쫓아낸 미물이 누군지 알았고, 더불어 지난번에도 머리에 붙어 있던 붉은 돌은 팥이었다.

[아프지?]
[그럭저럭 견딜만 해요]
[그래도..아플 텐데..안 와도 돼]
[아저씨가 어떠신지 봐야 마음이 놓여요]

  나는 방 안에 누운 채로, 너구리 아가씨는 밖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산 할매가 올라치면 바로 도망갈 준비를 한 듯 긴장하며..

[다음에 또 올게요. 약..놓고 가요]

  너구리 아가씨는 가는 게 좋겠다 싶은지 약이 담긴 붉은 주머니만 방 안으로 밀어 넣고 모습을 감췄다. 팥을 잔뜩 맞고도 찾아와주는 게 미안해진다. 감기가 나으면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지..라고 생각하며 쓰디쓴 환약을 입에 물었다.

  밤이 되어 창밖도 어둠만 보이는 데 대청마루에서 뭔가 살금살금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또 산신인가 하며 내가 그동안 만난 이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무엇이든 간에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방문을 조금만 열고 밖을 염탐했다. 예상 외로 너구리 아가씨다. 그런데 그녀는 나를 찾아온 게 아닌 듯 하다. 대롱거리는 개구리를 떼어내려고 까치발을 하며 끙끙 거린다. 이제야 스스로 떨어진 게 아니라 저렇게 매일 몰래 떨쳐주는 이가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그녀가 넘어질락 말락 쩔쩔매며 뜯는 걸 지켜보았다. 몇 십 분을 고생하여 두 개를 떼어내고는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는 게 순간 예뻐 보인다. 내 아내도 여기 있었다면 저렇게 해주었을까? 청산 할매도? 너구리 아가씨가 대청마루를 내려가 마당을 가로질러 가는 걸 귀로 들으면서 방문을 살짝 닫았다. 내일 아침에 나가서 보면 아마 서커스 개구리가 4-5마리 정도만 남아 있을 것이다. 

[일어나면..쇠고기나 구워서 같이 먹자고 할까?]

  창문을 흔드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좀 더 세차게 불어서 나머지도 다 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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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jtladmfajrwk 2009-09-22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거 같아요. 아플 때..더 많이 느껴진다잖아요. 작가님! 항상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할매들이 요즘 새벽부터 사라져서 해가 질 무렵에 돌아오신다. 겨울은 농번기라 얼마 전에 지어진 마을 회관에서 고스톱을 치시며 노셔야 되는데 어디론가 우르르 갔다가, 다시 우르르 나타나신다. 고로 이 마을에는 버버리 할배와 나만 있는 셈이다.

[할매, 어디 다녀오세요?]
[봉황산에 갔다오지]
[이런 겨울에 왜요?]

  할매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논밭이야 겨울에는 놀려야하고, 방안에서 짚신을 짜던 것도 고리짝의 일이라 불러줄 때 가서 일하면 돈도 벌고 좋지 않냐고 하신다. 게다가 일하던 사람이 놀면 병난다나. 아무튼 할매들은 새벽에 봉황산에 가는 봉고를 타고 국화 꽃순 따기 아르바이트를 한 뒤, 일당 4만원을 받아 저녁에 오신다. 요즘 갈 곳도 없고, 대화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 심심하던 차에 할매들의 제의를 받자 같이 가서 일하기로 했다. 

  새벽 5시에 정자 앞으로 가니 수건 달린 모자에 장갑까지 갖춘 할매들이 나를 기다리셨다. 털털거리는 봉고가 새벽을 뚫고 들어와 나는 보조석에 앉았다. 운전기사는 도로를 무법자처럼 내달린다. 살짝 보니 커브길인데도 80의 속도다. 언젠가 티비에서 보니 도시보다 시골에서 대형 사고가 더 잘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그동안의 경험에서 보자면 폭주족들이 많고 음주운전자들이 넘치는 세상이 바로 시골이기 때문이다. 도시처럼 마을, 마을마다 버스가 많고 택시가 잘 연결 되는 게 아니다보니 시내에 술을 마시러 나갈 때도 차를 가지고 가고, 조금 알딸딸해도 룰루랄라 몰고 온다. 또한 왕복 2차선 도로가 대부분인데 앞 차가 60으로 규정 속도를 잘 지키고 가면 빵빵 소리를 내며 짜증을 내다가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여 달린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너무 잘 아는 길이니 속도를 안 줄이는 특성이 있다. 학마을 주민의 90%를 태운 이 봉고도 평균 100에서 120으로 달려 1시간 거리를 25분 만에 도착하였다. 나는 문이 열리는 순간 보조석에 앉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휘적휘적 내렸다.

[국화를 겨울에도 재배하나요?]
[죽는 사람이 천지삐가리인데 계절 가릴게 있나]

  처음 보는 분이지만 시골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 내 옆에서 국화 꽃 눈을 따시는 할매에게 물어보았다. 그 분은 숙련된 기술자인지 손은 국화꽃을 골라 정교하게 따면서도 쉴 세 없이 이야기를 하셨다. 국화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지만 장례식장에서 쓰는 흰 국화는 계절을 안 따지고 수요가 많다. 사계절에 다 필요하다보니 겨울에는 이렇게 난방을 하는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는 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밤차로 대도시의 꽃 도매 시장에 가져다주면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서 국화 농사를 짓는 사람의 경우는 지난해에 순이익만 7000만원이라고 하니 내가 하고 싶을 정도다.

[권선생, 시엄시엄 해. 병 나]

  빨간 양옥집에 사시는 황주 할매가 귀띔하셨다. 초보자란 게 보통 일은 못하면서 열심히 하기 때문에 혼자 얼굴이 빨개지고 땀을 삐질 삐질 흘리기 마련이다.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확 밀려온 지독한 국화 향기에 적응이 안 돼, 숨을 소리 내어 쉬다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딱 병나게 생겼다.

[그래도 지금이 여름보다 좋아. 하우스 안이 얼마나 더운지 온 몸이 땀에 절어]

  나를 위로하는 할매의 말이지만 겨울인 지금도 비닐하우스 안은 덥다. 2시간을 내리 해보니 국화 꽃눈 따기란 게 절대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참하고 실한 국화를 피우기 위해서는, 꽃눈 여러 개가 동시에 올라오면 가운데의 크고 좋은 것 하나만 남기고 모두 따버려야 한다. 그래야 영양분이 결집돼 상품성이 좋은 국화가 탄생된다. 처음 순 따는 것을 알려준 여주인은 힘들이지 않고 하려면 두 손으로 꽃을 바치고 양손의 엄지만을 사용해서 딱 소리가 나게 꺾으라고 했는데 그러려면 허리를 계속 숙여야 한다. 고로 키가 큰 나는 불리하다. 허리가 굽은 청산 할매는 2시간을 해도 아프다 소리를 안 하시는데 나는 몇 개 따고 허리 두드리고, 몇 개 따고 허리 펴느라 더디게 진행되었다.

[아침 드세요]

  안주인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비닐하우스 앞에 지어져있는 임시 거처가 식당이다. 해도 없던 시간에는 모두 몇 명인지 몰랐지만 모이고 보니 제법 많았다. 할매, 할배,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20명은 됨직 하다.

[할만해?]
[돈 벌기 쉬운 게 어디 있겠어요. 열심히 해서 돈 값은 해야죠]
[권선생은 역시 배운 사람이라 다르네]
[일이 많이 힘들어서 저 사람들 오래 못하고 그만 두는 경우가 많아요. 마을 어르신들이 훨씬 좋은데..수가 적어서..어쩔 수 없이 저 사람들을 써요]

  안주인은 밥을 퍼주며 알려주었다. 그들은 머슴밥이라고 부를 만큼 꾹꾹 눌러 담은 밥을 열심히 먹었다. 나 역시 새벽부터 빈 속에 일해서인지 밥을 평소의 두 배나 먹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1시까지 일하고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에는 다 자란 국화 따기와 상품성이 없는 것이나 이상한 꽃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뒤돌아보니 오늘 하루만도 아침, 점심, 새참에 막걸리까지 엄청 먹었다. 평소에는 별로 안 먹는데다 끼니도 가끔 건너뛰는데 이렇게나 잘 먹는 내 모습에 놀랬다. 

[이거 가지세요]

  오후 4시 반쯤에 모든 일이 다 끝나자 여주인은 일당 4만원을 주면서 상품성이 없어 한쪽으로 버려진 국화를 건네주었다. 집에 가져가서 꽃꽂이 삼아 화병에 꽂어두는데 꽃향기가 퍼져서 숙면에 좋단다. 해서 생각지도 않게 한 다발 정도 얻었다.

  아침의 그 공포 봉고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락에 올라가 사방을 뒤져 화병으로 쓸 만한 도자기를 찾았다. 너구리 아가씨에게서 받은 것들만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흰 국화를 담기에 나쁘지 않다. 깨끗이 안을 부시고 물을 채워 국화를 층층이 담으니 나름 작품이다.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져 책상 위에 화병을 올려놓고 그 옆에 나비 연적과 개구리 벼루를 두었다. 고된 일과 후에 술 한 잔이라고 중얼거리며 국화꽃들을 향해 건배를 제의했다. 혼자 마시는 술에 국화가 벗이라니..나름 풍류가 있지 않은가. 술을 한 잔 마시고 내려놓는데 국화꽃들이 흔들렸다. 바람 한 점 없는 방 안에서 방울꽃들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는 게 참 귀엽다. 자세히 보니 파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며 바람을 솔솔 일으킨다. 흰 국화꽃잎에 파란 가루가 떨어진다. 추상화가도 못 그릴 명화처럼 느껴져 그것을 축하할 겸 또 한 잔의 술을 마셨다. 잔을 내려놓는데 연적에 나비가 없음을 알았다. 평소에는 날개를 펴고 연적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던 그 나비가 국화꽃 주변을 날아다니며 유혹을 하니, 거 참 한가롭고 매력적인 밤이다. 문득 이 나비가 다른 때도 꽃이 있었으면 날아다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 벌떡 일어나 놋대접에 물을 한가득 퍼왔다. 개구리 벼루 안에 조심스럽게 붓고 나와라..나와라..중얼거리며 술 한 잔을 또 따라 마셨다. 나비가 꽃을 찾아 나오는데, 물 좋아하는 개구리가 벼루에서 탈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지!]

  시간이 조금 지나니 못 버티겠는지 벼루 꼭대기에 앉아 있던 개구리가 다리를 쭉쭉 펴며 기지개를 켜더니 물속으로 퐁당 들어간다. 뻐끔뻐끔 입을 벌리며 이리 저리 헤엄 친다. 나비가 날아다니고 개구리가 헤엄치는 방에 국화 향기가 가득하니 올 해 최고의 술상이다. 기분이 좋아 술을 모두 비우고 잠이 들었다.

  그 뒤로도 열심히 국화 농장에 다녔다. 일에 적응이 되고 공포 봉고에도 제법 익숙해져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다보니 살이 2킬로나 쪘다.

[강단이 있으시네요]

  겨울 국화가 모두 정리 되자, 다음번에 또 오라는 말과 함께 여주인은 일당에 보너스 만원을 더 얹어 주었다. 왠지 서운하고 섭섭해지려해 국화가 포장된 박스를 몇 번 쓰다듬은 뒤에 발길을 돌렸다. 봉고는 농장 입구에서 사람을 태우고는 나에게 어서 오라며 붕붕 거렸다. 나는 눈을 만지다가 조수석에서 잠이 들었다.

[권선생..권선생..]

  어느 할매인지는 모르지만 나를 흔들며 부르는 게 느껴진다. 귀찮지만 집에 도착했구나 싶어 눈을 떴다.

[몸은 괜찮소?]

  도토리묵 장수와 경찰이 나를 바라본다. 알고 보니 병원이었다. 공포 봉고가 여느 때처럼 학마을로 힘차게 달려가는데 오른쪽에서 나오던 농기계랑 교통사고가 났다. 다른 곳은 괜찮았는데 내가 앉은 조수석으로 농기계의 팔 부분이 유리를 뚫고 들어왔고, 내가 옆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기 때문에 병원에 후송되었다고 한다. 그 때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이가 도토리묵 장수여서 경찰이 증인 삼아 함께 데려왔다. 결국 실제 환자는 나 한 명인데 참고인에 증인까지 몰려서 병원은 와글와글 시장 통이다. 엑스레이 등등의 검사를 하였으나 별 다른 이상은 없었고 머리에 유리 파편이 많이 박혀 있어 남자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아야 한 일 빼고는 멀쩡히 걸어 나왔다. 사고 순간에 농기계가 나를 친 것도 아니건만 왜 옆으로 쓰러졌는지 알 수 없다.

[욕 봤소. 몸 잘 추스리소]

  도토리묵 장수는 경운기로 집까지 데려다 주고는 푹 쉬라며 돌아섰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술 한 잔 대접하겠다고 붙잡아 방 안으로 끌고 갔다. 풍류 좋은 한 때를 자랑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어때요?]

  아직 국화가 싱싱하여 나비가 날아다니고 개구리가 벼루 안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있는 도토리묵 장수에게 감상을 물어보았다.

[술 맛 나겠구먼]

  그는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국화 향기 가득한 방 안에서 무릉도원을 거니는 보살처럼 그날 밤이 샐 때까지 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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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바다 2009-09-2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뜩 찌푸린하늘..금새 비가 쏟아지겠죠..아침에 출근해서 궁금한맘에 일이 제대로 안될지경이 되엤네요..점심에야 겨우 짬이나 후딱 읽고 다시 천천히..파란 나비나 개구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않겟죠..점점 도토리묵아저씨의 정체가 궁금해지네요..바쁜 일상중에 잠시 휴식이되어주어 점말 감사합니다.낼 뵐께요..술 넘 많이 드시지마세요

최현진 2009-09-21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아침부터 오더니 지금도 내리네요. 사람의 기분은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걸 또 한 번 느낍니다. 내일은 비가 안 오길 바라며..참..도토리묵 장수는 나중에 외전에서 정체가 밝혀집니다(외전까지는 아직도..쭉 달려야해서..ㅜ.ㅜ)
 

   12월에 들어서니 수로가 얼었다. 개울물은 덜 하지만 거기도 한번만 더 동장군이 오면 빙판으로 변할 태세다. 덕분에 장군이를 꺼내는 아르바이트는 휴업 상태다. 집에서 추위를 피한다고 이불 속에 있자니 밖보다 더 추운 느낌이 든다. 우리 집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기가 부담스러워 전기장판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기름 값 걱정을 하다가 결국 영주 시내에 들러 연탄보일러 공사를 부탁했다. 눈이 더 오면 길이 막혀 들어오질 못할 테니 꼭 내일 아침에 시작해달라는 말을 하고 시내로 걸어갔다. 바로 돌아갈까 하다가 서점에 들러 책 한 권을 샀다. 봄이 되면 야생화를 캐다 마당에 심으려고 하는데 아는 지식이 별로 없어 농한기 동안 열심히 들여다보자는 마음이다. 하여 미니 백과사전 같은 책을 골라 금액을 지불하고 버스비로 쓸 잔돈을 마련하기 위해 껌 한 통을 샀다. 1시간 뒤에 학마을을 지나가는 막차를 탔다.

[날씨가 꽤 춥소]

  나는 운전기사의 인사에 답변도 제대로 못했다. 그는 다름 아닌 도토리묵 장수였다. 그동안 내가 본 그는 도토리묵 장수, 개 장수, 닭 장수, 자장면 배달원이었는데 여기에 버스 운전기사라는 이름이 또 하나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언제부터 운전을 하신 건가요?]
[오늘]
[자장면은 배달 안하시구요?]
[눈이 와서 그만 뒀소]

  그의 답변은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막차라서 그런지 할매 한 분이랑 내가 다여서 그가 심심할까봐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러다보니 건너편 자리가 불편해 운전석 뒷자리로 옮겨 앉았다.

[이렇게 눈이 날리는 날이 운전하는 게 더 어렵고 위험하던데..잘 하시네요]

  그는 고개만 끄덕이더니 라디오를 켰다. 내가 사는 학마을은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데 지금 아나운서의 말에 따르면 오늘 밤 산간지방에는 폭설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살살 내리는 눈발이 거세지기 전에 집에 도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이 갑자기 펑펑 쏟아진다. 아직 집까지는 마을을 세 개 더 지나야 하니 큰일이다. 학마을은 이 버스의 마지막 정류장인데다가 굽이굽이 길이 이어져 있어 눈이 많이 오면 위험하다.  

[꽉 잡으슈]

   운전을 하던 도토리묵 장수가 엄숙하게 말했다. 나는 졸고 있는 할매를 슬쩍 돌아본 뒤에 의자 옆에 있는 긴 봉을 잡았다. 잠시 후 굽이굽이 길에 들어섰다. 버스는 반대편에서 차가 오지 않으면 중앙선을 침범하여 커브를 돌았고, 나는 그 때마다 보이지 않는 건너편에서 갑자기 차라도 나타나 박을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차라리 이 순간 졸고 있는 할매가 부러웠다. 어느 덧 굽이굽이 길의 최고점에 도달했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으로 된 굽이굽이 길이다. 눈이 하도 오니 와이퍼를 움직여도 앞이 잘 안 보인다. 아마도 우리만 이 길을 가는지 앞뒤로 차가 없다. 게다가 재설 작업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아 길이 눈 투성이다. 그걸 아는 도토리묵 장수는 이젠 아예 중앙선이 그려져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도로 가운데로 차를 운전한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털썩 기댔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버스가 가니까 언젠가는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을 보지 않으려던 행동인데, 따뜻한 히터 바람 때문에 고개가 자꾸 숙여졌다. 자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점점 무뎌진다.

[어이~어이~]

  이번엔 눈 내리는 호수에서 파란 나비랑 개구리들과 놀고 있는데 누군가 흔드는 통에 깨어났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올려다보니 도토리묵 장수다. 그는 간단하지만 힘이 실린 한마디를 했다.

[내리소]
[뭐라고요?]
[차 섰어]

  내가 잠든 사이에 버스가 고장 났다. 그의 말로는 라디에이터 문제라는데 오늘 버스 운전을 시작한 사람의 말이니 100% 믿기도 그렇다. 무엇이 문제이든 버스가 섰으니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함께 탄 할매가 걱정이 되어 뒤돌아보니 이미 내리셨는지 없었다.

[혼자 가라고요?]
[나는 버스를 지켜야 되니까]
[하지만..]

  그는 나보다도 얇은 옷차림이었지만 버스와 함께 장렬히 전사할 작정인지 고개를 흔들며 나를 밖으로 내몰았다. 버스 문이 열리는 순간 뺨에 칼날이 스친다. 손에 입김을 불어 뺨에 대고 비비면서 걸어가자니 울적해지는 기분이다. 한 편으로는 그냥 기름보일러 땔걸..하는 자책도 든다. 몇 푼 아끼겠다고 이런 고생을 하다니..

  시골길의 문제점은 이정표가 드문드문 있다는 사실이다. 하여 나는 지금 얼마쯤 걸었는지, 어디쯤 왔는지 모르겠다. 눈은 어느새 발목을 다 채우고도 계속 올라가는 중이라 감각도 없이 추운데 핸드폰도 없고, 따뜻한 손난로도 없으니 쉬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걷는다.

[길을 잃으셨나요?]

  생각을 비우며 기계적으로 움직이는데 반갑게도 말소리가 들려왔다. 머리에는 여름에 밭일할 때 쓰는 수건 달린 모자를 썼고 두꺼운 방한 잠바와 바지를 입은 아주머니였다. 손에는 그릇이 들린 게 어딘가 다녀오는 길인 듯 하다.

[학마을에 가는데 버스가 고장 나서요..아무래도 길을 잃었나봅니다]
[아..학마을..제가 길을 아는데 따라오실래요?]

  자신은 상석리에 산다며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 걱정 말고 가자며 웃는다. 이 상황에서 안 따라가면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왜 이 밤에 밖에 계세요?]
[동생 집에 갔다가..]

  나보다 앞서 걸어가는데 도토리묵 장수 저리 가라로 발이 빠르다. 확실히 길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있는 발걸음, 절도 있는 손동작이다. 그렇게 그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걸어가자니 너구리 아가씨가 무사한지 걱정 된다. 연모의 마음이야 다음 문제라 치고,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면 먹이 구하기도 어렵고 고립이 될 수도 있다.

[우리 동생에게 오지 말라고 해주세요]
[네?]

  갑자기 억양이 달라져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머뭇거렸더니 앞서 가던 아주머니가 모자를 벗고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가로등불에 보니 너구리 아가씨의 언니, 즉 학 알을 달라고 찾아왔던 여자다.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안 좋다. 어쩜 같이 있기 싫은 걸지도..

[처음엔 모른 척 하려고 했는데, 혹시 죽기라도 하면 내 동생이 따라 죽는다고 할까봐 살려주려고 왔답니다]

  나는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금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동생 분이..어떻게 한다고요?]
[음식도 먹고 도자기도 받으셨으니, 자기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역시 청산 할매의 말이 맞았다.

[다음 날 돌려주려고 갔었지만 집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도 제 동생이 선생님 집에 갔을텐데요. 그럴 마음이 없으면 확실하게 하셨어야죠]

  우리는 계속 걸어가면서 옥신각신 한다. 나도 처음에나 놀랐지 계속 말하다보니 곧 평정을 되찾았다.

[마음도 없으면서 흔들다니 참으로 나쁜 사람이군요. 동생은 지금 몸저 누웠어요.밥도 못 먹고 울기만 한다구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팽 풀었다. 그날 울고 가서는 그리 되었구나..문득 마음이 아파오면서 슬퍼졌다. 눈은 어느새 무릎까지 쌓였다. 또 하나의 언덕길을 올라 정상에 도착하여 둘러 보니 학마을 입구가 눈에 파묻혀 온통 하얗다.

[남편 분은 혹시..사람인가요?]
[한 번은 그랬고, 또 한 번은 아니에요]
[행복했습니까?]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침묵이었다.
  그녀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다 보니 생각보다 학마을 입구에 일찍 도착하였다. 내가 목례를 하고 눈에 덮여 흔적도 없는 다리 위를 걸어가자니 그녀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서로 살아가는 길이 다르잖아요]

    다 건너 커브를 돌 무렵 저 너머를 바라보니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버스 운전기사인 도토리묵 장수가 지나가는 중이다. 그의 손에는 영주 시내에서 샀던 야생화 백과사전이 들려있었다. 그는 멈추지 않은 채로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빙긋 웃었다. 왠지 그가 일부러 나를 그곳에 내려주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냥 돌아섰다. 나 역시 내 갈 길을 가려고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 속에 발을 옮겼다. 이제 곧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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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여유 2009-09-1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 몇일간의 스토리는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이 맞네요. 사람이 아니지만..사람으로 변신하여 같이 살아가고 주인공의 마음을 흔드는..그림같은 이야기군요. 잘 읽고갑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이혼 할 때 팔려고 내놓았던 집이 마침내 계약이 되어 내 통장으로 반을 넣었다고 한다. 이혼한 후에도 이렇게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전부 가지라고 못하는 게 미안하다. 시간이 나면 학마을에 놀러오라는 말을 하고 통화를 마쳤다.

[다들 어디 가셨어요?]
[온천 여행]
[할매는 안 가시고요?]
[이래가지고 어디를 가!]

  청산 할매는 얼마 전에 넘어져서 팔에 깁스를 하셨다. 그덕에 혼자 남으신 걸 둔하게도 굳이 물어본다.   


[그럼 학마을에 할매랑 나뿐이네요]
[왜?]
[어제 사다 논 고기 구워먹을까 했거든요]
[권선생, 팍팍 쓰지 말고 돈 아껴. 늙으면 돈 있어야지 안 그럼 초라해]

  주민자치센터에서 단체 온천 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슈퍼에 붙은 포스터의 날짜가 바로 오늘이었다. 그동안 나는 너구리 아가씨의 행보에 정신이 팔려 그 행사를 잊고 살았다. 겨울이 되자 너구리 아가씨는 동면을 하는지 벌써 열흘 정도 오지 않는다. 물론 도자기를 받은 이후로는 모습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그림자처럼 와서 고구마와 도토리묵만 두고 갔다. 그것도 이제는 끊어져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별 문제 없이 잘 지내는지..

[받아 먹지 말라했는데 왜 말을 안 들어?]
[저 안 먹었어요. 전부 장군이랑 예쁜이 줬어요]
[너구리가 보기엔 그릇이 비어 있으니 권선생이 마음을 받아주는 걸로 알텐데.. 쯧쯧]

  그 순간 10년은 됨 직한 묵직한 한숨이 나왔다. 할매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 하신다.

[일희일비하지 말아, 시간이 가다보면 방법이 있겠지]

  할매의 힘들게 걷는 뒷모습을 보자니 내가 마음에 깁스를 한 느낌이다. 너구리표 깁스.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깁스.

[여기, 영주 시내에요]
[어? 그래? 데리러 갈게. 나오지 말고 터미널에서 기다려]
[아니. 택시 탔으니까 괜찮아요. 학마을이라고 하면 되죠?]
[응]

  삼일 뒤에 아내로부터 영주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내나 너구리 아가씨나 갑작스럽게 오는 건 똑같다. 나는 얼른 마당을 정리하고 방을 걸레로 닦은 뒤에 부엌을 청소했다. 결혼 생활을 할 때는 집안 일을 한 적 없으니 아내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뭐..그럭저럭. 나 촌 아저씨 다 됐어]
[그래 보여요]

  우리는 나란히 다리 위를 건너가며 안부 인사를 했다. 본지 반년이 훌쩍 넘어서일까, 그녀가 아내였다기 보다는 오랜 친구같다. 마을 제일 끝의 우리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마당을 돌아다니기다가 수로를 내려다본다. 오늘도 장군이는 어김없이 물속에서 나를 기다린다. 아내는 웃으며 나와 장군이를 번갈아 본다.

[많이 편해진 것 같네. 잘 웃고..]
[응. 당신도..]

  나는 장작불을 준비하며 말했다. 청산 할매랑 같이 쇠고기를 구워 먹기로 하고 그녀는 수돗가에서 송이를 씻고 상추를 다듬었다.

[할매, 우리가 가야하는데 오시라고 해서 죄송해요]
[얻어먹는 사람이 와야지, 그럼 쓰나] 

  할매는 예쁜이까지 데리고 오시느라 지치신 듯 의자에 앉으시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내를 인사시키고 할매가 가져온 막걸리와 함께 지글지글 구워지는 쇠고기를 먹었다. 냉장고에서 좀 된 것이지만 송이도 그럭저럭 먹을 만 하다.

[아저씨~]

  할매가 팔이 아프시다며 돌아가시자마자 너구리 아가씨가 수로 너머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아내와 너구리 아가씨가 같이 나타나기로 약속이라도 했나보다. 서로 어떻게 인사시킬지 고민 하는데 이번에는 자장면을 배달하던 도토리묵 장수도 왔다.

[냄새가 좋소]
[아..와서 같이 드세요. 여긴..아내, 여긴..친구..]

  꼭 도토리묵 장수에게 말한다기 보다는 모두에게 뭉뚱그려 소개했다. 아내는 무표정이고, 너구리 아가씨는 뚱해보였으며, 도토리묵 장수는 두 여자를 번갈아 응시했다. 우리는 울산댁네 장 닭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말없이 고기를 먹었다.

[여기..참 재미있는 곳이에요. 왜 당신 마음이 넉넉해졌는지 알겠어요]
[내가 넉넉해졌어?]
[예전엔 찌푸리고 힘든 표정이었는데..지금은 보기 좋아요]

  아내를 바래다주려고 걸어가는 길에 고사 직전의 학나무를 쳐다보던 아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집에는 처음보다 더 뚱한 표정을 짓는 너구리 아가씨와 말없이 앉아 있는 도토리묵 장수를 두고 나왔다.

[다음에 또 와]
[고마워요]

  아내는 미리 불러둔 택시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까보다 더 추워진 듯 한 느낌에 손을 비비며, 이번에는 너구리 아가씨 차례다..라고 마음속에서 기합을 넣으며 집으로 성큼성큼 돌아갔다.

[흑흑]

  울음 소리가 들려 수로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지금 마당의 광경은 이러하다. 고기는 숯이 되도록 타는 중이고, 장군이와 예쁜이는 입맛을 다시며 기회를 노린다. 너구리 아가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운다. 도토리묵 장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인다. 내 집인데도 무엇 때문인지..들어가기가 망설여졌다.

[아저씨...]

  내 기척을 느낀 너구리 아가씨는 멜로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뛰어와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도토리묵 장수를 쳐다보았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여자란 성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내가 이해하기엔 힘든 그 무엇이다. 둘 다 정말 알 수 없는 어려운 존재다.

  도토리묵 장수는 마침내 울음을 그친 너구리 아가씨가 어두운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봐, 행동을 바르게 해야지. 그래서야..]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면서 어두운 도로로 걸어가 버렸다.
 
  숯이 된 고기는 장군이와 예쁜이가 가져갔는지 이미 불판에 없다. 갑자기 만사 귀찮은 생각에 전부 그대로 두고 방으로 들어가 벌러덩 누웠다. 바람이 창문을 덜컹덜컹 흔든다. 너구리 아가씨가 문풍지를 잘 붙여주어 바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아..도자기들..또 못 돌려주었네]

  아직도 책상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나비 연적과 개구리 벼루가 나를 보고 웃는다. 울고 있던 너구리 아가씨가 신경 쓰여 잠이 오질 않는다. 문득 창문을 보니 바람은 그치고 올해의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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