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끝나서 아쉽기만 하다.




오히데의 입에서 새어 나온 뜻밖의 문구 중에서 맨 처음 오노부의 귀를 때린 것은 ‘사랑‘ 이라는 말이었다. 이 진부하고 흔해빠진 한마디가 얼마나 오노부 앞에 복병처럼 새로운 정취를 느끼게 했는지는 전후의 맥락 없이 단독으로 돌발했다는 것이 주요 원인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이 두 사람 사이에서 아직 대화의 소재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P376

"대체 한 남자가 한 사람 이상의 여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까요?" - P382

"당신은 오노부 씨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남들한테 무척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

"오노부가 그런 말도 하던가요?"

"아뇨." 부인은 단호히 부정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을 뿐이에요. 당신 모습이나 태도가 그 정도 일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이지요."

부인은 거기서 잠깐 쉬었다. 그러고는 말을 덧붙였다.

"어때요, 맞힌 거죠? 저는 당신이 왜 그런 모습을 꾸미고 있는지 그 원인까지 분명히 알고 있어요." - P407

"제발 저를 안심시켜주세요. 도와준다 생각하고 안심하게 해주세요. 저는 당신 말고 기댈 데가 없는 여자니까요. 당신이 떠나면 저는 그것으로 무너져야 하는 불안한 여자니까요. 그러니 제발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까 안심하라고 말해주세요." - P451

"자네한테는 너무 여유가 많다.고, 그 여유가 자네를 너무 사치스럽게 만드는 거라네. 그 결과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자마자 곧바로 다음 것을 원하게 되지. 좋아하는 것을 놓쳤을 때는 발을 동동 구르며 분해하는 거고." - P488

그녀를 만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랫동안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만나지 않아도 지금의 나는 잊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녀를 잊기 위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 P528

‘운명의 업이다. 그것을 목표로 찾아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 P528

"그럼 제가 뭐 때문에 복도 구석에 숨어 당신을 기다렸을까요? 그걸 말해주세요."

"그거야 말할 수 없어요."

"그렇게 사양하지 않아도 되니까 꼭 말해주세요."

"사양하는 게 아니에요. 말할 수 없으니까 말할 수 없는 거예요."

"하지만 자기 가슴속에 있는 일 아닌가요? 말하려고만 하면 누구라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제 가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단순한 이 한마디가 갑자기 쓰다의 예봉을 꺾었다. 동시에 그의 어조를 비약시켰다. - P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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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다 읽을수 있을까?




‘옛날은 아련한 꿈처럼 확실한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져가는 게 아닐까‘
- P208

그냥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사랑하도록 하는 거지. 그렇게만 하면 행복해질 희망은 얼마든지 있어. - P215

남자하고 여자는 항상 서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거야. 요컨대 자신한테 부족한 부분이 어딘가에 있어서 혼자서는 그걸 어떻게 해도 채울 수 없다는 거지. - P224

인간이 음양화합의 성과를 올리는 일은 머지않아 다가올 음양불화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225

오노부의 눈에는 그때의 그가 어른거렸다. 그때의 그는 지금의 그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의 그와 같은 사람도 아니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사람이 변한 것이다. 처음에 무관심하게 보였던 그는 점점 자신 쪽으로 빠져들듯이 변했다. 일단 빠져든 그는 또 차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쪽으로 변해가는 게 아닐까? 그녀의 의혹은 그녀에게 거의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그 의혹을 지워버리기 위해 그 사실을 뒤집지 않을 수 없었다. - P236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비밀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아주 작은 변화, 또는 전부터 멀어졌다는 슬픈 사실을 지금에야 슬슬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마음의 변화, 그것을 고바야시 같은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 P246

"하지만 성냥 하나로도 큰 집을 태우려면 얼마든지 태울 수 있는 거잖아."

"그 대신 불이 옮겨붙지 않으면 그뿐이죠, 성냥을 몇 갑이나 안고 있어도요. 올케언니는 그런 사람한테 불이 붙을 여자가 아니에요. 아니면…." - P292

"하지만 오라버니, 만약 남편이 집에 없을 때 누군가 찾아와서 나한테 뭐라고 한다고 해보세요. 그걸 남편이 알면 걱정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 P295

"오라버니야말로 달라졌어요.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의 오라버니와 그 후의 오라버니는 전혀 달라요. 누가 봐도 아주 딴사람이에요." - P298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의 오라버니는 좀 더 정직했어요. 적어도 좀 더 솔직했어요. 근거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게 싫으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겠어요. 그러니까 오라버니도 제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오라버니는 올케언니하고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한테 이번 같은 거짓말을 한 적이 있나요?" - P299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자신들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자신들만 괜찮으면 남들이야 아무리 곤란하든 난처하든 아주 딴 데를 보고 상대도 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 P324

자기 일밖에 생각할 수 없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친절을 받아들일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다시 말해 남의 호의에 감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절하되었다는 뜻이에요. 오라버니하고 올케언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어디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자신들한테 엄청나게 불행한 일이 될 거예요. 인간답게 기뻐하는 능력을 처음부터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이거든요. - P325

그러니까 이 돈을 거절함으로써 아울러 제 친절까지 배척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올케언니한테는 아주 득의양양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 반대예요. 올케언니는 제 진의를 순순히 받아들여 느낄 수 있는 좋은 기분이 지금의 득의양양함보다 인간적으로 몇 배나 유쾌하다는 걸 전혀 모르는 분이에요."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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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5-14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성냥 하나로도 큰 집을 태우려면 얼마든지 태울 수 있는 거잖아.]

소세키 옹의 마지막 미완성 작품 <명암>이 새파랑님의 🖐월 독서의 🔥🔥🔥🔥🔥태우길 바랍니다 ^^

새파랑 2022-05-15 09:00   좋아요 2 | URL
주말에 논다고 책을 많이 못읽었어요 ㅜㅜ 근데 이 책 너무 좋네요 ㅜㅜ 오늘 열독하겠습니다 ^^

서니데이 2022-05-15 2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가끔은 책읽지 않고 쉬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눈도 쉬어야 하니까요.
새파랑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새파랑 2022-05-16 09:14   좋아요 3 | URL
어제는 책말고 다른 할게 있어서 너무 바쁘더라구요 ㅜㅜ 근데 재미있는 바쁨이었습니다 ㅋ
서니데이님 새로 시작하는 한주 즐겁게 보내에요 ^^
 

역시 소세키는 좋다.


만약 그것이 자신의 미래에 가로놓인 필연적인 운명이라면 언제까지고 현재의 광택을 유지하고픈 오노부는 언젠가 한번 슬픈 타격을 입어야 했다. 여자다움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여전히 여자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젊은 그녀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생존으로만 여겨졌다. - P179

"저 사람은 일본 여자가 다 자신한테 반해야 한다는 얼굴을 하고 있잖아." - P185

결혼 전에는 천리안 이상으로 그의 성격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자신감은 결혼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환한 태양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것처럼 잘못 판단한 착각의 흔적으로서 이미 여기저기 더럽혀졌다. 필경 남편에 대한 자신의 직관은 오랜 세월의 경험에 의해 정정되고 보수되어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진리에 드디어 고개를 숙였던 그녀는 고모부에게 선동되어 금세 우쭐거릴 만큼 어리지도 않았다. - P191

"아니, 꼭 쑥스러워서 그런 게 아니야. 선입관이 있으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 그 애의 생각이야. 그러니까 오노부가 공평하게 얻은 첫인상을 듣고 싶었던 거겠지." - P195

결혼해서 반년 넘게 살고 있는 지금, 쓰다에 대한 오노부의 생각은 변했다. 하지만 쓰다에 대한 쓰기코의 생각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쓰기코는 어디까지나 오노부를 믿었다. 오노부도 이제 와서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 여자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선견지명으로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소수의 행운아로서 쓰기코 앞에 자신을 내세우고 있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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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5-15 16: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표지의 동양화는 무슨 그림일까요...? 궁금해지네요~

새파랑 2022-05-15 17:48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ㅋ 쫌전에 다 읽었는데 미완성 작품이어어 완전 아쉬웠습니다 ㅜㅜ
 

너무 좋다.

이 육체는 언제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 아니, 지금 바로 이 육체안에 어떤 변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 P18

"정신세계도 마찬가지다. 정신세계도 전적으로 마찬가지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변하는 것을 본 것이다." - P19

"그러니까 푸앵카레의 주장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이 우연, 우연, 하는 이른바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이네" - P19

하지만 사나흘 독서를 등한히 해온 탓에 앞뒤 맥락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걸 생각해내려면 자연히 앞부분을 다시 한번 읽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 그는 읽는 대신 그냥 페이지를 훌훌 넘기고 책의 두께만 괴로운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자 갈 길이 아득히 멀다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 P22

"러시아 소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을 거네. 사람이 아무리 미천해도, 또 아무리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해도 때로는 그 사람의 입에서 눈물이 흘러내릴 만큼 고마운, 그리고 조금도 겉으로 꾸미지 않은 지고지순한 감정이 샘물처럼 흘러넘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을 거네. 자네는 그걸 허위라고 생각하나?" - P106

"요컨대 나 같은 사람은 평생 떠돌아다닐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일지도 모르지. 어떻게 해도 자리를 잡을 수가 없거든. 설사 자신이 정착할 마음이 있어도 세상이 정착하게 해주지 않으니까 잔혹한 거네. 도망자가 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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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5-13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학자 푸앵카레가 언급되어 반갑네요. 소세키가 당시에 접하기 쉽지 않았을것 같은데 다방면으로 공부했나봐요^^*

새파랑 2022-05-13 22:04   좋아요 1 | URL
소세키 영국 유학생 출신이에요 ㅋ 가끔 나오는 유식(?)한 말에 깜짝깜짝 놀랍니다 ^^ 이 책 벽돌책이어서 진도가 잘 안나가네요 ㅋ
 

주식에 너무 빠지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과연 몇 사람이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P133

오라, 슬픔이여!
감미로운 슬픔이여!
내 아기처럼 그대를 품에 안으리! - P153

상상력을 앞세우면 안 되네. 현재 속에 있어 봐. 이 시간을, 이 순간을, 이 시점을 잡아 봐.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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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5-13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식뿐만 아니라 무엇에도 너무 빠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자기 중심마저 빠지거든요.
하지만 젊은 한때 그 무엇에 빠져 보는 경험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새파랑 2022-05-13 22:06   좋아요 1 | URL
뭐든지 직접 경험을 해봐야 이게 좋은건지 안좋은건지 체감이 되는거 같아요 ㅋ 요책도 리뷰 써야하는데 잠깐 미뤄뒀습니다 😅

파이버 2022-05-15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저 빼고 다들 주식하더라구요ㅎㅎ 작년의 주식 열풍이 아직도 여운이 많이 남은 느낌이에요
새파랑님 말씀대로 어떤 것이든 직접 해봐야 배우는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5-15 17:47   좋아요 1 | URL
저도 할 정도면 전 국민이 다하는 거겠죠? ㅋ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면 일단 하고 후회하는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