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증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환자를 구하려고 노력하다가 가족들, 특히 배우자가 이상한 심리상태에 빠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 돼’ 식으로 믿고 환자를 비호하는 데 기쁨을 느끼고, 그것을 삶의 보람으로 삼습니다. 의존증 환자에게 도리어 의존해버리는 거죠.”
“의존증 환자에게 의존…….”
휴즈 형사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잭은 세 사람의 얼굴을 차례대로 쳐다보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런 심리가 강화되면 자기 삶의 보람을 지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의존증 환자의 회복을 방해하게 됩니다. 이를 ‘이네이블링Enabling’이라고 합니다. 악벽을 조장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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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증 환자에게 의존하는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공의존’이라고 합니다. 아마 라이언 씨 어머니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이런 공의존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가 의존증 환자이고, 어머니가 공의존증…….”
로빈슨이 잭의 말을 따라 했다.
“팀, 어덜트칠드런Adult children이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잭이 팀에게 물었다.
“응? 아, 그러고 보니 들어본 것 같기도 해.”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사실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어른이 된 자녀를 가리키는 약칭이야. 그 자녀도 부모와 동일한 의존증에 빠지는 경향이 강하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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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증 환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의존증 환자에 의존하는 공의존 상태에 빠지기 쉬워요. 사실 이것은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특정 분야의 직업인과 그 고객 사이에서도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런 직업을 ‘약자 지원직’이라고 부를 수 있죠.”
“약자 지원직? 그건 무슨 직업이죠?”
휴즈 형사가 이야기를 재촉했다.
“이를테면 의사와 환자, 치료사와 환자, 교사와 학생, 사회복지사와 실업자, 성직자와 신자 등을 말하는 겁니다. 이 관계에서는 양자가 서로에게 의존하는 공의존이 생기기 쉽습니다. 특히 직업의식이 높고 책임감이 강한 성실한 사람일수록 고객과 공의존에 빠지기 쉽습니다.”
로빈슨은 잭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약자 지원직 종사자는 고객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합니다. 그러나 그 헌신이 직업의 선을 넘어서까지 발휘되면 ‘문제행동’으로 발전합니다. 가령 근무시간 외에도 상대방을 보살피거나 자기 부담으로 상대방을 경제적으로 지원한다거나 하는 행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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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주위 사람들은 자기 직업에 열성적인 사람, 훌륭한 사람, 인격자라고 칭찬하겠지. 하지만 이런 행동은 명백히 직업의 선을 넘어선 거야. 고객에게 헌신하는 데 삶의 보람을 느끼는 상태, 즉 고객에게 의존하는 상태라는 거지. 그리고 어느샌가 그런 삶의 보람을 잃지 않으려고 고객의 상황이 개선되는 것을 방해하게 되지. 그리고 휴즈 형사님?”
잭이 별안간 휴즈 형사를 쳐다보았다.
“생전에 라이언 씨가 성직자처럼 살았다는 수사보고가 있었죠?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죠? 얼핏 미담처럼 들리지만, 이런 행위는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자립을 방해하고, 또 자신도 체력적, 경제적으로 피폐해지는 문제행동인 겁니다. 이런 개인적인 금품 제공 행위야말로 상대방과 공의존에 빠졌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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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면 공의존은 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가 제창한 ‘호혜적 이타’로도 연결되는…… 흐음, 그러니까 실은 생물 전체에서 널리 볼 수 있는 행동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흡혈박쥐는 굶주린 동료에게 자기 피를 빨아마시게 합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약자를 돕는 거죠.
본래 생물에는 유전자 속에 이런 ‘상호부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인간도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이 프로그램이 발동해서 누구나 공의존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누, 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