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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어느 문장을 보자 , 아 ! 황정은 표다 . 그의 말하는 방식이다 .
책이 고랑이고 글 줄이 하나의 이랑인 것이라면 , 오래 써 하얗게 반짝이며 닳아서 뭉툭한 끝을 가진 쟁기가 글이라는 흙의 겉을 갈아 엎고 , 속 흙이 밖으로 나오며 공기와 닿는 그런 순간처럼 , 겉 흙이 잠겨져 안으로 안으로 박히고 속 흙이 밖으로 밖으로 내 뱉어지는 , 세계가 서로 뒤바뀌는 장면을 본다 .
현상이다 . 그랬다 . 어느 평론가의 말이 그녀의 글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
이상하지 . 원래 생각한건 두물머리의 물 때들 였는데 , 끄적거린건 다른 표현이라니 , 흐흣 ....
갑자기 쟁기 질이라니 ... 내 손이 갈아 엎는 흙이라니 ,
한 물줄기가 다른 온도의 물을 만나서 섞이기 전에 선명히 자기 온도를 보이다 이내 합체하는 듯한 , 수온차라 하는 그런것을 글 줄기에서 그 미묘한 변화를 읽는다 . 명실을 읽다가 였다 .
그, 그그그그 하면서 책상을 끄는 장면이랄지 , 궂은 살과 발바닥에 관한 표현이랄지 에서도 , 그 선연한 뒤척임이 읽히곤 한다 . 기척이 공기가 변하는 순간들이 느껴지고 보인다 .
또 이런 표현에서도 있었다 . 양의 미래에서 ,
맑은 날도 우중충한 날도 여섯 폭짜리 유리 너머에 있었다 .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 나는 서점에서 일하는게 좋았다 . 당시엔 그걸 깨닫지 못했지만 그랬다 . 지상을 향해 부채꼴로 퍼진 계단을 올라가면 벚나무가 있었고 ,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고 그것에 조명을 비추듯 가로등이 서 있었다 . ......계산대에서 그 광경이 다 보였다 . ...... 꽃잎은 돌풍이 불면 구석진 곳에서 소용돌이 치며 날아올랐다 . (본문 40 쪽 )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유리 너머에 있었다 . 햇빛은 하루중 가장 강할 때에만 계단을 다 내려왔다 . 유리를 경계로 바깥은 양지 , 실내는 어디까지나 음지였다 . ...... 오후에 , 유리를 통해 노랗게 달아오르고 있는 계단을 바라보다가 저 햇빛을 내 피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중에 채 삼십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 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나는 여기 머물고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갈 것이다 . (본문 48 쪽)
계단을 깊숙하게 내려딛는 해의 걸음 . 빛 속에 있으면서도 질 적으로 다른 조도에 그 저절로 난 양지를 , 양지 쪽으로의 빛바라기 .... 같은 것들에서도 기척이 희미하게 변화한다 .
제목은 누군가를 의식한 아무도 아닌 ㅡ 이지만 , 그들의 배경이 놓여진 환경이 더 뚜렷하게 보이는 기현상을 , 나는 본다 . 느낀다 . 그러면서 좋다 . 좋다 . 너무 좋다라고 막 생각한다 .
명실이란 단편에선 그렇지 ,
실리는 늘 다루곤 하는 사물에 특별한 애착을 품었고 종종 그런 사물들에 어떤 정서가 있다고 우겼다 ......
그 물건이 무엇을 느낄지 , 그 조그만 사물이 난데없이 그 자리에 홀로 남아 얼마나 애가 타고 허탈할 지 , ......무언가를 혼자 남겨두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 사람만이 아니고 사물도 ......사물에게도 . (본문 103 쪽 )
언젯적인지 예능 프로중에 러닝맨 였던가 , 그 유재석과 그의 일당들이 시간을 지배하는자 어쩌구하면서 놀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아 , 공간을 배경을 지배하는 , 그 텅빈 곳에 가르는 공기들을 지배하는 황정은 식의 현상을 읽는다 . 공간을 시간을 기척을 지배하는 자 , 라면서 ...
아무것도 아닌 ㅡ 이 아니고 아무도 아닌 , 아무것˝ 과 아무 도˝ 사이를 섬처럼 왔다갔다 . 내맘이 그랬다 . 그 예민하고 예민한 기척들이 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 어느 날 일기에 적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