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올래야 안 올 수 없는게 날짜인데 , 왜 안오나 기다린다 . 하루 이틀 사흘 . 9일에 들어서 발표를 뒤져 본다 . 없다 . 아무것도 없다 . 그런게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듯이 흔적도 없다 . 내가 뭣에 홀린걸까 . 아니면 역시 안되는 걸까 . 나 같은 건 . 하면서 한숨을 쉬곤 다시 찾아 나간다 . 흔적은 어딘가 있을테니까 ... 겨우 찾아내선 다시 정보를 읽는다 . 다행이다 . 날짜가 아니었다 . 하아 ~ 10일 이구나 . 어쩐지 거부되지 않은 기분에 역시 아직 안 온거야 안도를 한다 .

 

빨리 10일이 되라고 기도한다 . 10일이 도착하고 그 날을 받아든 나는 그것의 뚜껑을 열고 리스트에서 익숙한 내 이름이 발견되길 기대한다 . 없다 . 그런 건 , 그래 .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맥이 빠진다 . 아직 안되는 거구나 . 아직 한참 멀은 거구나 , 나는 . 뭐 그런 체념에 , 원망이 드는 마음을 온갖 안되는 이유를 불러서 ,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면서 나를 납득시킨다 . 그렇다해도 상심한 마음이 금방 괜찮아 ! 하면서 좋아지진 않는다 . 저으기 낙담한다 . 뭔가 빵빵하게 부풀었던 마음 같은게 피시식 빠져나간다 . 어깨가 축 쳐지는 것을 내 몸이니까 느낀다 . 거부 된 것 같은 마음 . 아직 닿을 수 없는 그런 곳 .

 

이메일 알림이 뜬다 . 알라딘 이다 . 광고구나 ~ 넘긴다 . 또 딩동하고 이메일이 들어온다 . 알라딘 내 서재에 댓글이 들어왔다는 알림이다 . 어! 반가운 A씨의 댓글이다 . 이게 뭐지 ? 내 서재로 쪼르르 달려가 문을 연다 . 에~ 지난 리뷰의 책에 왜 이제야 댓글을 ..하면서 어머나 놀란다 . A씨가 어깨 춤을 추듯 들썩이면서 내게 제일 먼저 축하를 건낸다 .

 

뭐지 ? 뭘까 ! 하면서 A씨의 말에 확인을 하러 서재 밖 ㅡ 더 넓은 서재로 향한다 . 그 서재 중에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여다 본다 . 그 방은 나와는 관계없는 우수리뷰 자리이다 . 진작 그렇게 내 맘이 정했었다 . 그렇기에 그런 분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애써 쳐다도 안보곤 했다 . 어쩌면 닿을 수 없는 곳이란 자각을 하는 탓에 그런지도 .

일찍 내가 내다버린 체념이 거기 모여 있다 . 당당하게 어깨들을 겨루며 , 이런 건 이렇게 쓰는 거라고! 하듯이 ... 아 , 네 ~ 네 , 좋은 글을 좋게 읽어도 , 저는 그렇게는 , 그렇게 밖에 못써요 . 그게 저니까 그냥 받아 들여요 . 하던 내 글이 첫 칸에 떠억 있다 . 이 걸 축하해 준거다 . 내 글이 그 방에 들어가 있다 . 이런 일이 ~ 이런 일이 ~ 하면서 ... 이 글이 뭐 였지 . 내 글인데 다시 읽어본다 .  많이도 길게도 썼네 하면서 ...

 

다시 알라딘 내 서재로 돌아와 그 글에 달아준 A씨의 축하를 기쁘게 받는다 . 아까 마구 쳐지던 어깨가 조금씩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 겨우 건져졌구나 . 싶은 이상한 기쁨 . 어디서도 흔한 내 글이 인정 받기는 아직 , 아직 멀다고 그런 이상한 체념을 가지고 있다가 .

이제 조금 공기가 통하는 ㅡ 겨우 숨 통을 틔여 줄 정도의 것이겠지만 , 잘 하는 분들에겐 한없이 당연한 그것이겠지만 . 나는 기쁘다 . 꽉꽉 닫아 놓고 나를 온통 거부한다고만 느끼던 옛날의 어느 감정 지점을 넘어선다 . 조용한 체념을 이제 그만 해도 된다는 말처럼 들려서 ... 조그맣게 기쁘다 .

 

아무도 못 듣는지 , 안 들리는지 모르는 먼 강의 숨트는 소리 . 그냥 지나쳐버려서 그게 뭔지 모르고 어디서 이 시간에 깡깡 대는거냐고 , 투덜대는 소리들이 있겠지만 , 언 강이 숨을 쉬려고 얼음을 뒤채는 그 소릴 . 누군가는 듣는다 . 나처럼 . 한 밤에 듣는다 . 저 소린 언 강이 숨트는 소리란다 . 누가 가르쳐나 줄까 ? 강이 얼었다 풀리고 하면서 빈 틈을 찾아 숨을 내보내는 새벽 . 그런 새벽이 있다는 걸 . 누가 알려는 줄까 !  소중한 기쁨을 혼자서 살짝 즐긴다 . 작은 기쁨을 하룻 밤을 고이 재운다 . 누군가는 듣고 보고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 고마운 일이다 . 그런 기쁨이다 .

 

음 , 아직 닿지 않아 그러지 , 안 되는 건 없을지도 ... 되는 때가 되도록 그저 인디언의 기우제처럼 계속 할 수 밖에 ... 그러다 보면 닿는 날이 있다는 그런 바보같은 이야길 떠들다 간다 .  고마움을 전하며 , 그 고마움은 어디서 어떻게든 못난 글을 부족한 글을 읽어봐 주는 분들에게 전한다 .  서재 이웃님들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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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w/ c 2017-02-11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림이라.... 기웃거림이란.... 기쁨이란....

[그장소] 2017-02-11 17:17   좋아요 0 | URL
ㅎㅎㅎ기대죠 기다림이란, 기웃거림도 기대, 기쁨도 기대!^^

2017-02-11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2-11 17:21   좋아요 1 | URL
하룻밤을 삭혔는데도 막 걸러지지 않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 그냥 지나 갈 수 없는 걸 떠들다 가요 . 써 넣고 보니 부끄럽지만 , 고마움에 인사하는건 꼭 하고 가야겠다.. 싶기도 해서 ..^^ 부끄~ 부끄~~^^
함께 기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기횐 또 없을지 모르니 저도 실컷 좋아하려고요!^^ ㅎㅎㅎㅎ

응원에 뭉클해져서 ..^^ 와~~락~~

2017-02-11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2-11 17:23   좋아요 2 | URL
ㅎㅎㅎ네~ 이벤트 맞네요. 제게는 !! 당첨도 맞고요..^^ 제게는 ~!! 고마워요 서니데이님 .
확실히 추워져서 제대로 겨울이 왔네 , 그럽니다. 입춘은 지났는데 .. ^^
 
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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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ㅡ 장은진

 

크리스마스가 생기고 이브 날을 기쁘게 기다리며 맞던 ,  많고 많은 날들에서 눈이 오던 날은 과연 몇 번이나 되며 안 와서 섭섭했던 날들은 얼마나 될까 . 전세계 연인들이 기다리고 들떠하던 그 크리스마스 이브에 내리지 않은 눈을 이 회색 도시에 몽땅 쏟아 붓는 건 아닌지 , 너무 오래 기다려서 , 너무 많이 기대 했던 날들이 , 너무 미룬 행복이 층층이 쌓여서는 이 도시를 무겁게 무겁게 덮는 것은 아닐까 .

 

차례차례 떠나는 이들 , 179 부터 0 까지 . 앞에서 읽다 책 장에 매겨진 숫자가 역순임을 깨닫고 맨 뒷 쪽으로 간다 . 어느 시인의 말처럼 뒷걸음으로 , 내 발자국을 보듯 작가의 글을 꺼꾸로 읽어나온다 . 어마무시 하게 쌓인 눈 속의 세상에선 차례차례 떠나는 이들이 있다 .

 

두 사람이 눈을 감기 전 그들과 한 몸 같던 늙은 개 반 (半) 이 떠나고 , 그의 옛 연인이었던 연희가 그림자없이 다녀가고 , 모두와 떠났던 진수라는 청년이 유일하게 돌아온 사람이었지만 , 도착과 함께 저 세상으로 떠나간다 . 기타를 안고 . 젖은 한 숨같은 희미한 그림자를 보내는 시간이 된다 . 소식 없어 걱정하던 폐지 줍는 홍여사가 , 또 싸가지라 부르지만 싫지 않은 맹랑함을 매력인듯 장착한 유나가 , 돌연하게 먼저 간 백구두 김씨와 홍여사를 두고 티격태격하던 박 영감이 미리 부고를 전하러 왔다가고 ,  이웃 가게인 또와분식 아주머니가 불안을 숨긴 채 다녀가고 ,  도시의 악몽으로 부자가 되었다던 졸부 상원이 다녀간다 .  무지개색 우산을 선물처럼 ,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놔두고 회색 눈 속을 간다 . 길을 나섰다가 떨어진 신발에 이 좁고 긴 컨테이너 박스에 들러서 낡은 구두를 고쳐신고 떠나는 회색 인도 있다 . 그렇게 모두가 떠나고 " 그게 " 온다 . 온다고 한다 . 눈이 오듯 그게 온다고 ...

 

글 속에서 음울하게 " 그게 " 점점 다가오는 동안 , 나는 어쩌면 , 어쩌면을 적어내려 간다 . 이 거대한 눈의 재앙이 어쩌면 , 이 엄청난 쏟아짐은 어쩌면 ,  하면서  눈 밭에 찍힌 발자국처럼 책의 맨 앞으로 온다 . 이 세계를 그 붉은 비와 붉은 눈과 회색 눈과 숯 눈으로 반영했구나 생각한다 . 그렇게 차곡차곡 언젠가 어떤 미래인이 읽을 지금이란 지점을 책갈피처럼 끼워두는 걸까  생각한다 . 어쩌면 숫자가 역순이니까 이 모든 일은 그저 세상 끝 한쪽에서 잠든 그들이 꾸는 지독한 꿈일지도 . 어쩌면 , 어쩌면 하고 말이다 .

 

낮과 밤이 사라진 현대의 도시를 , 잠을 미뤄서라도 현재가 아닌 내일을 살 것처럼 살아왔던 우리들에게 발전된 문명의 이기로 계절이 사라진 세계에 대해 , 잠을 잊은 사람들에 대해 잊은 것은 잃은 것은 없냐는 듯 .  그 모두에게 내려지는 벌과 같이 . 너무 열심히 빨리빨리 생을 사느라 , 스스로 명을 단축하면서도 모르고 살던 이들에게 한꺼번에 밀린 이자처럼 몰아쳐 오는 죽음같은 잠과 이불같은 눈의 세계가 아닐까 하고 .

 

어쩌면 회색 시(市) 는 움직이는 회색 인 행렬이나 멈춰선 채 그날 그게 오기 만을  기다리는 무리들보다 암울한 세상을  그저 암울해 할 뿐인 회색주의자들을 그린 건지도 모른다 .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세상을 얼른 스쳐지나 보내는 이들은 평범한 소시민이던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그런 지도 .

 

신경이 마비된 도시는 유능한 기능들을 하나씩 잃거나 빼앗겼다 . 도시는 한때 재밌게 잘 갖고 놀다가 시시해졌다며 미련 없이 내다 버린 거대한 완구와 다를바 없었다 . 사람들은 예외없이 서로의 안부를 묻거나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조차 잊었다 . ...도시는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의 마을처럼 , 문명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멈추거나 닫히거나 거부되었다 . ( 본문 9 쪽 , 176" )

 

코맥 매카시나 스티븐 킹이 그리던 세상 속에나 인류에 닥친 거대한 재앙과 길을 나서서 무작정 행렬을 이루는 이야기가 있는 줄 알았더니 ,  이 작가 참으로 조용조용한 걸음을 그리면서 그 걸음이 자못 무섭다 . 있는 세계 그대로를 세기말의 장르물로 만들어 버리다니 ... 곱씹어 봐도 멋진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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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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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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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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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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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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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3-10 17:53   좋아요 1 | URL
으흣~ 고마워~ 고마워요~ 봄꽃처럼 . 처럼 처럼~
너무 위로되요 . 그말 ~
본보기가 되주신 좋은 분들이 있어서 저도 조금이나마 성장을 할 수 있었네요!
 
날짜 없음 오늘의 젊은 작가 14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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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없음 ㅡ 장은진 ㅡ 민음사 : 오늘의 젊은 작가 14

 

 

그게 온다고 한다 .

 

ㅡ본문   0 "  261 쪽에서 ㅡ

 

 

그게 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 ' 고전 ' 이 되는 걸까 . 그게 오면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 신데렐라처럼 재투성이이에 누더기가 될까 .

 

ㅡ본문   3 " 258 쪽에서 ㅡ

 

 

" 미안해할 일이 있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 "

" 왜요 ? "

" 그런 게 있어야 애틋해지잖아요 . 하나도 없다면 생각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을 거예요 . 더 이상 빚진 게 없으니까요 . "

" ...... "

 

ㅡ본문  15 " 244 쪽에서 ㅡ

 

 

우리가 가졌던 대부분의 추억은 네모 길쭉한 박스 안에 모두 담겨 밀봉되어 있었다 . 부식되지 않는 타임캡슐처럼 . 이대로 시간이 봉인된 채 보존 된다면 우리는 천 년이 지나 발견될 수 있을까 . 우리의 존재가 천 년 후에도 증명될 수 있을까 . 만약 발굴된다면 우리에겐 어떤 상상과 이야기가 붙여질까 .

 

ㅡ본문  52 " 198 쪽에서 ㅡ

 

 

" 침묵이 전부예요 . 걷거나 죽거나 쓰러지거나 . 어제는 임산부 하나가 길바닥에서 애를 낳다 혼절했는데 그 틈을 타 회색인들이 탯줄도 안 뗀 신생아를 눈 속에 파묻어 버렸어요 . 태어난다는 건 더 이상 소용도 의미도 없다면서 . 끔찍하지만 그런 건 약과 쭉에 껴요 . 도덕이나 가치가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잖아요 . 친구나 가족 개념도 사라졌고 . 공포감에 미쳐 버린 사람들도 있어요 . 그런 자들은 결국 낙오되죠 . "

 

ㅡ 본문  87 " 136 쪽에서 ㅡ

 

 

" 기가 허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 내 눈에는 토끼처럼 보이는데요 . 저쪽에는 기린도 있고 , 코끼리도 있네요 뭘 . 더 샅샅이 살피면 뿔 달린 유니콘이랑 여의주 문 용도 있을테니까 찾아보든가요 . "

" 장난치지 마요 . 난 심각하단 말이에요 . "

" 구름이란 게 워래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거잖아요 . 온갖 것들을 다 만들어 낼 줄 아는 게 그거라고요 . "

" 알지만 . "

" 그러니 유령이 별 거겠어요 ."

" 유령 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어요 . "

" 그럼 마음이 보고 싶어 했나 보죠 . "

 

ㅡ본문 89 " 131 쪽에서 ㅡ

 

 

세계는 시계로 존재했고 , 시계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세계였다 . 그동안 수십 번의 낮과 밤 , 그리고 새벽이 교차되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도 우리는 그 지점이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

 

ㅡ본문 92 " 128 쪽에서 ㅡ

 

 

나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챘다 . 빨간 비가 내리면서부터 , 회색시에 눈이 멈추지 않게 된 후부터 , 우산을 많이 팔게 됐다는 . 그래서 하루아침에 살 만하게 됐다는 ' 상원 ' 이란 이름의 우산 장수였다 . 처음에는 해 오던 대로 수공예 우산을 성실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정직하게 팔았지만 물량이 달리자 질낮은 부품을 사용하고 , 일부러 금방 고장 나도록 허술하게 만들어 놓고 가격을 올려 받았다는 그 남자 .

.......

회색시는 남자가 졸부가 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끊임없이 만들어 준 셈이었다 . 세계가 변해 감에 따라 부자가 되는 사람도 달라졌다 .

 

ㅡ본문 99 " 118 쪽에서 ㅡ

 

 

그게 온다는 말도 그런 식의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도착한 불길한 소식 중 하나였다 . 하지만  소문이 소식이 되고 , 소식이 소문이 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누구도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었다 . 소문이란 온갖 소음과 잡음을 달고 어디든 앉았다가 또 어디로든 날아가는 것이라서 신빙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공짜로 듣는 그 정보의 사실 유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신문과 방송의 기사가 모두 진실일 거라 단정할 수 없듯이 .

다만 그날이 다가올수록 그 소식을 믿는 자들과 세계는 점점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 소문이 퍼지는 속도만큼 신봉자들도 속출해서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지내던 모습이 아니었다 . 세계는 미치광이가 되어 있었고 , 분명 역행하고 있었다 . 진실은 시간만이 알고 있었다 . 약속처럼 정해진 시간을 허비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 무수히 많았던 역사 속 끝에 대한 모든 소문의 결론이 그러했듯이 .

 

ㅡ본문 101 " 113 쪽에서 ㅡ

 

 

끊임없이 내리는 회색 눈이 아들의 몸을 점점 지워 나가고 있었다 . 말하자면 그것은 관 뚜껑이었다 . 온 몸을 지워내려는 회색 눈과 치우려는 나 사이에 치열하고도 기나긴 사투가 벌어졌다 . 뚜껑을 치우려는 내 능력이 닫으려는 회색 눈보다 조금만 앞서도 이기는 게임이었다 . 내가 지치자 그가 대신 늙은 아들의 가슴에 깍지 낀 손을 얹어 펀프질을 했다 . 그의 도움으로 우리의 노력은 한층 빠르고 맹렬해졌다 . 그와 나는 번갈아 가며 꽁꽁 언 손으로 쉬지 않고 펌프질을 했다 . 행렬은 동요하지 않고 스틱으로 얼음 바닥을 깨부수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다 . 그들은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 관심도 없었다 .

그때 늙은 아들의 몸이 점점 따듯해지는 게 느껴졌다 . 우리는 더 바빠졌다  . 나중에는 늙은 아들이 스스로 누을 거둬냈고 , 눈꺼풀을 들어 올렸고 , 입을 벌렸다 . 잠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 뚜껑이 닫히기 직전에 먼저 관에서 허리를 세우고 일어난 것이었다 . ... 회색 눈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었다 . 나와 그와 늙은 아들이 . 그리고 늙은 아들보다 더 늙은 어머니가 .

 

ㅡ본문 107 " 100 쪽에서 ㅡ

 

 

회색 눈은 금세 시신의 존재를 지우고 있었다 . 몇 분 뒤면 아무도 저 자리에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게 될 것이다 .

 

ㅡ본문 163 "  21 쪽에서 ㅡ

 

 

어떤 사람에게 회색 눈은 죽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

 

ㅡ본문 164 "  21 쪽에서 ㅡ

 

 

그곳에는 상상만큼의 평온과 평안은 없었다 . 나는 회색인에게 또다시 홀릴까 두려워 앞만 보고 죽도록 뛰었다 .

 

ㅡ본문 166 "  18 쪽에서 ㅡ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해골의 윤곽을 창백하고 , 메마르고 , 투명해진 피부 뒤로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  윤곽이 분명해질수록 사람들은 모두 쪽같은 인상이 되어갔다 . 이름도 , 나이도 , 성별도 , 국적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 그즈음 차이를 발견해 구별하고 차별한다는 건 성가신 일이 되어 있었다 . 그 해골은 죽은 후에도 남는 것이니 , 사람이란 결국 해골로 태어나 해골이랑 살다 해골을 간직하며 죽는 것이었다 . 그것은 단지 삶이라는 얇고 불안한 표피를 덧입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

 

ㅡ본문 174 "  11 쪽에서 ㅡ

 

 

그게 온다고 한다 .

 

ㅡ본문 179 "   7 쪽에서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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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inyyeop_n 2017-02-10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도 먹먹하면서 쨘해요. 가슴이 시리다고 해야할까요? 눈이 오면 <날짜없음>이 자꾸 생각나요.

[그장소] 2017-02-10 16:02   좋아요 0 | URL
그 눈이 오던 날을 이 책 모르고 보낸 제가 뭔가 살짝 억울하네요.. ㅎㅎㅎ 엉뚱하게~ 너무 좋았어요 . 이 책 ! 멋진 세계를 갖고 있는 작가구나 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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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창 , 그 안으로 빽빽한 글자
한 번 하면 멈출 수 없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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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 ˝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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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2-10 1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찮아도 스스로의 가치를 올리는데 아주 좋은 아이템이 책 아니겠습니까..당 이름이 좋네요..책읽는당~^^..

[그장소] 2017-02-10 15:19   좋아요 2 | URL
그쵸? 여당 야당도 아니고~ ㅎㅎㅎ 책읽는 당 !! ^^ㅋㅋㅋ
책으로 겨우 가리거나 겨우 보이거나 , 뭐 그런게 아닐까 , 요즘의 저는 그렇네요! ㅎㅎ

cyrus 2017-02-10 17:39   좋아요 1 | URL
‘책읽는당‘이 ‘나는 모릅니당‘보다 낫습니다. ㅎㅎㅎ

[그장소] 2017-02-10 18:32   좋아요 0 | URL
cyrus님 캬아..^^ 그러게요 . 잘 배워서 많이 읽어서 좀 좋은 일로 나누지, ㅎㅎㅎ
나는 모릅니당 ! 하지 말고 ...

hnine 2017-02-10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소설 중 한 구절이네요.
머그컵도 노트와 색깔 맞춤? ^^

[그장소] 2017-02-10 16:00   좋아요 0 | URL
ㅎㅎㅎ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의도한 건 아닌데요!^^ㅋㅋㅋ 어쩐지 주황주황 하더라!^^
 

조수경 ㅡ문 , 그 안쪽에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늘 어느 집에서가 개가 짖었던 기억 . 늘 비슷한 지점을 지날 때마다 문 안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고 , 그것이 아침일 때도 있었고 , 점심일 때도 있었고 , 저녁이나 아주 늦은 밤일 때도 있었다 . 그때마다 나는 , 아 , 저 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가보구나 , 하면서 쓸쓸한 마음이었는데 , 그러고 보니 방금 그 집이 늘 개가 짖던 집 , 그 쯤 되겠구나 , 싶었다 . 그런데 ...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 그런데 ... 그 집이 몇 호였더라 .


무섭고 슬픈 이야기들은 언제나 현실 안쪽에서 벌어진다 . 그러므로 , 나는 언제나 굳게 닫혀 있는 문 , 그 안쪽이 궁금하다 . 그것이 공동주택 복도에 줄지어 있는 똑같이 생긴 문이든 , 사람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달린 문이든 .


ㅡ 064 p ㅡ

매쓰꺼워 지려고 한다 . 방금 세 집에서 사람이 나와 개가 부린 난동에 그 집까지 찾아 현관 앞까지 들어갔다가 뭔가에 놀라 뒷걸음질을 하곤 무엇을 봤던 그 문을 그냥 닫고 , 모른 척하는 걸 본다 . 홋수 조차 확인을 않는 채 돌아가 경찰에는 알렸을까 심상찮은 분위기 만으론 비운 경비실 , 주차장 경비실의 경비원 부재가 덜컥 맘에 문고리처럼 걸린다 .
세상의 많고 많은 집들 그리고 닫힌 문들 . 우리가 개인주의라거 나 배려라는 흉내 비슷한 것으로 묻어버리는 진실은 얼마나 될까 . 사람끼리 부대껴 살지 않고 남은 반려족들만이 컹컹 , 그 외로운 뒷 길을 알려 올 때 . 그런 때가 많아질 거란 불길한 예감으로 속이 뒤집힌다 . 집들이 사람의 인생을 내내 좀먹더니 이젠 묘지 역할까지 하는구나 ㅡ 싶어서 ,




#Axt
#no.010
#2017/01/02
#다와다요코
#은행나무
#격월간문학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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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9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7-02-09 17:55   좋아요 1 | URL
아니, 아니요 ! 두개는 특별한 날을 위해 아끼고 있고(아끼다 x 된다는데 얼른 써버릴까요?) , 한개는 거실 상주 , 이 책상엔 이 티크가 ..안그래도 바꿔줄때 됐지 그랬는데 , 예리하세욧~^0^
관심있게 봐주시니 전 좋아요~~^^

AgalmA 2017-02-11 0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벽을 대신하고 있어 계속 밀려나면 책상은 10센치 돼서 오늘밤은 무서워요 하게 될 지 몰라요ㅋㅋ
개가 혼자 있는 시간을 생각하는 문장,,,넘 좋은데요.

[그장소] 2017-02-11 10:55   좋아요 1 | URL
책장 정리를 하느라 분류해 놓느라 책상을 책들이 점령한 상태 . ㅎㅎㅎ 노트북 주위만 그나마 ..빽빽한 게 덜해서 ... ㅋㅋㅋ 한칸 정리하면 또 아쉬운게 보이고 ㅡ 한칸 해놓으면 또 어색해보이고 .. ㅡㅡ;
2월 안에 끝내야지 ㅡ 마구 늘어져서 그럽니다. 며칠안에 후딱 해버릴 요량 였는데 , 에구 제 몸 생각은 1도 안 넣은 계산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