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다섯번째...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나왔다.

 

저렴한 가격에 나와서 매번 구입하는 재미, 읽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 다섯번째 작품집도 기대한다.

(지금 사면 알사탕도 준다. ^^)

 

 

 

 

 

 

 

 

 

 

 

 

 

그나저나 앞선 작품집 다 못 읽었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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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곧 여름으로 가려고 하는 날씨...

 

 

변종모의 신간이 기다렸다는 듯 나왔다...

 

 

책, 글...

 

변종모의 색깔이 많이 묻어 있을 듯한 느낌,

 

기대감...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그가 말하는, 길 위의 소박함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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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시간의 여유가 만들어질 것 같아서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난다...

재밌는 책 좀 걸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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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일, 지금만큼은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 테오, 180일 간의 사랑의 기록
테오 지음 / 예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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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는 건, 내가 많이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합니다. 위로받는 것도, 위로하는 것도, 나는 어색합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아픈(아팠던) 마음을 직접 듣는 건 불편합니다. 긴장됩니다. 어쩌면, 두렵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애써 피하고 싶었던 것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 속에서 허우적대는 못난이를 수면 위로 떠올리기도 하는 것 같고... 아마도, 그래서였나 봅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마음 한 줄이 어떻게 다가올지 몰라 당황스럽고, 허둥대는 내 모습이 그려져서 두려운. 아마 그런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그런데 어째서인지 지금, 그 두려움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180일, 지금만큼은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자신의 기억 속의 일들을, 사랑을, 시간의 흐름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그런 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그 순간의 우리는 행복합니다. 행복해야 한다고 주문이라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이 행복하지 않다면, 사랑이 아닐 것만 같아서요. 웃음의 색깔마저 달라지게 하는 그것이 사랑일 테니까요. 감히 '기적'이라 불러도 좋을 시간. 그 기적이 힘을 발휘하는 타이밍이니까요. 그 시간 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꽉 붙잡아 두고 싶은 다짐은 필수. 서로에게 바라는 마음을 조금 숨겨도 좋은, 내가 할 수 있는 충분한 배려. 그가 가진 두려움 한쪽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 허밍과 가벼운 발걸음이 주는 봄날의 충만감. 옆에 있기에 저절로 든든해지는 위로...

 

 

그가 그녀와 함께했다는 사랑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비슷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봅니다. 모양이 조금 다를지언정, 그 사랑의 본질은 같지 않을까요? 그 마음을 다하고, 그 순간을 다 해서 해야만 하는 것을 품고 있었을 테니까요.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사랑은 끝날 테니까요. 떨어질 테니까요. 방심하면, 자동 탈락이니까요. 그래서 더 열심히 움직여 그 사랑을 지키고 싶은 건가 봅니다. 탈락의 순간을 가능한 한, 멀리 미뤄두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도, 언젠가 그 끝이 오기도 합니다. 사랑이 나에게 흘러오듯 이별도 나에게 흘러올 수 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게 되어 있거든요. 그에게도 사랑이 있었고, 이별이 있었고, 흐르는 시간이 있었네요. 그 이별을 덜 아프게, 조금은 완전하게 만들어갈 수 있었던 시간, 180일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준비한다고 해서, 이별이, 이별이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 이별을 잘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서로에 대한 배려였네요. 감정의 선이 뚝 끊어내듯 잘릴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을 다독일 수 있게 하는 어떤 준비. 많이 아프겠지만, 그 시간이 꼭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 연애가 언젠가 끝날 것을 알면서도, ‘어느 날 갑자기’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약간의 두려움. 그래서 준비하게 되는 차분한 이별...

 

 

끝이 올 거라는 것을, 온몸이 신호를 보냅니다. 눈빛이 먼저 알아채고, 손짓이 말하고 있음을 알면서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제대로 된 이별을 하기 위해 다시 시작한 그의 연애의 의미를 이제야 비로소 들여다보게 됩니다. 반년여의 시간이 그에게 가져다준 것이 그냥 이별이 아닌, 완전한 사랑의 끝에 오는 이별일 것임을...

 

 

사랑이 끝나고 나서 느끼는 편안함. 그게 뭘까 생각하다가 이런 느낌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랑이 끝나고, 이별이 지나고 나서 비로소 찾아오는 그 마음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채로 길게 늘어지는 이별이 아닌, 차분하고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는 이별을 만나는 거라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네요. 그렇군요...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언젠가 사랑의 끝에 찾아올, 그 이별을 감지하게 된다면, 그 준비를 해야겠다고 그에게 배우고 있어요. 이별이란 것이, 준비한다고 해서 완벽한 이별이 될 거라 확신하지는 않아요. 이미 알고 있거든요. 어떤 이별도 슬픔이 빠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아프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그 흐름을 느껴보려고요. 많은 것이 흘러가고 있음을 보고, 인정해보려고요. 흘러가다가, 마음이 희미해지다가, 그렇게 또 잊힐 수도 있음을... 그걸 인정하는 것. 그게 이별에 대한 준비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요.

 

 

 

 

 

 

 

 

 

 

 

 

 

나는 사는 일이 바람 같다고도 느낍니다.

가고 오는 걸 정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여행이 좋았습니다.

여행은 내가 원하는 대로 떠날 수 있으니까.

머물 수 있으니까.

그런 방식으로 당신을 찾아 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구름 저쪽으로 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 232

 

 

 

 

금요일 밤이라고 착각을 했던 목요일, 오늘, 밤입니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문자를 한 통 보냅니다.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잘 지내느냐는 안부 한 줄에, 봄이 지나가고 있다는 평범한 계절의 인사가 전부입니다. 한참이 지난 후 그녀의 답장이 옵니다. 가끔 내가 보내주는 문자 한 통에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바쁜 건 아닌데 바쁜 것 같고, 숨이 쉬어지는데 답답한 것 같다고... 뭐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상태. 아마도 그런 건가 봅니다. 나도 그 마음을 아주 모르지 않기에 조용히 듣고 있습니다.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그녀에게 전하는 나의 안부가 그녀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안심합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 사람의 안부가 물으며,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직, 내 안에 남아있어서...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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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포근했던 날이 언제였느냐는 듯, 갑작스러운 추위로 옷깃을 여미던 주말이었다. 마치 때가 되었으니, 조금은 슬퍼도 되는 날이니, 날씨마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듯이... 몸도 마음도, 상당히 추웠던 날이다. 덕분에 때아닌 감기가 다시 찾아왔지만, 괜찮았다. 그까짓 감기쯤 너그럽게 받아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엄마를 보내드리는, 조금은 슬펐던 그 의식으로 감기쯤이야 뭐 별건가, 싶은...

 

 

금요일 오후...

작은이모가 왔다. 나이 75세. 몇십 년 만에 기차를 타봤다고 했다. 그것도 혼자서. 너무 무서웠다고. 나이가 드니 겁이 더 많아졌다고. 그동안은 자식들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이동했던지라 혼자서 낯선 곳으로 오는 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이모의 말로는 40여 년 동안 고향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내 기억에서도 그렇다. 엄마랑 같이 이모를 만나러 간 적은 있어도 이모가 이곳으로 온 적은 내 기억에 처음인 듯하다. 이모가 고향에 오지 못했던 이유는, 먹고 살기 바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마음을 아주 모르지 않기에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이모는 쉬지도 않고 이야기를 했다. 어디 가서 말할 데도 없다면서 답답한 속내를 한참 풀어놓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도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안 들을 법한 나도 그냥 듣고 있게 된다. 밖에 나가서 말하자니 흉이 되고, 그 속을 이해할 사람 없으니 함부로 이야기도 못 하고. 무엇보다, 다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그 작은 기쁨을 맛보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주무신다고 누우시더니 바로 코를 골고 있다. 재밌다. 장거리 기차여행이 힘들었을 테고, 낯선 곳으로의 발걸음이 긴장되었을 테고, 심란한 마음이 무거웠을 테고...

 

 

토요일 아침...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 옷을 갈아입던 작은이모가 말한다.

“나이를 먹으니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이모, 얼마 전에 누가 그러던데? 눈물은 마르지 않는대.”

“그래, 그런가 보다...”

나이를 먹으니 눈물이 많아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의식을 위한 날이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기도 하고...

곧 큰이모까지 오셨다. 그렇게, 칠순을 넘긴 노인 셋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당신들의 엄마 아빠(나에게는 외조부모)가 계신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외삼촌이 살아계셨을 때는 외삼촌이 알아서 관리하셨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2년 전에 외삼촌이 돌아가시고 나니, 이제 당신들의 부모가 누워있는 그 자리를 돌볼 사람이 없었다. 엄마의 형제 중에 살아계신 분은 한국에 세 명, 미국에 네 명. 물리적으로 오고 가기 힘든 상황이기도 하지만, 다들 살아갈 날이 머지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다들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화장하기로 한 것을 행하는 날이었다.

 

예감했다. 그 자리가 어떨지를. 오랜만에 만난 그녀들은 서로의 안부를 제대로 묻기도 전에 눈물을 흘렸다. 칠순이 넘은 노인들이 당신들의 엄마 아빠를 이제는 완전하게 보내드려야 하는 그 마음을,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몇십 년을 땅속에 계시다가, 하얀 가루가 되어 날아갈 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를. 그래도 언젠가 내가 부딪힐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언젠가 내가 보일 모습이 그러할 것이니...

간단하게 예를 갖추고, 포클레인이 묘를 파고, 조심스럽게 드러낸, 얼마 남지 않은 뼛조각. 울적한 마음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이 아니었을까...

나에게도 엄마가 있고, 언젠가 저렇게 보내드려야 할 텐데, 생각만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들의 눈물에 동요했다. 지금 다 알지는 못해도 알아야 할 눈물의 의미 때문에. 영원한 안녕을 위해 꼭 한번을 치러야 할 의식처럼, 경건하면서도 슬펐던 시간... 이제는 지나간 시간이면서 가슴에 묻어야 할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저녁에, 이모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돌아오다가 괜히 울컥했다.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시간 오지 말라고 때 쓰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기에. 가슴에 묻는 아픔과 고통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에...

밤에, 엄마에게 물었다. 어떠시느냐고. 엄마는 답이 없었다. 나도 참, 어리석다. 어떤 답을 듣겠다고 그런 질문을 던졌을까...

 

 

조금 오래된 얘기다.

큰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엄마와 둘이서 서울행 고속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도착하려면 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두 여인이 있었다. 60대와 8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명. 그들은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탔고, 우리 좌석과 대각선 방향으로 앞쪽에 타고 있었다. 조금 더 젊은 쪽이 나이 든 쪽을 엄마라고 불렀다. 모녀 사이인가 보다. 손주, 혹은 증손주를 두고 있을 나이의 두 사람이 엄마라는 호칭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애틋했다. 혹시나 엄마가 멀미할까 싶어 몇 번이고 괜찮으냐고 묻는 딸, 괜찮으니까 그만 신경 쓰고 편히 앉으라는 엄마.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엄마의 몸을 부축하고 차에서 내리는 딸, 걸음이 조금 느린 엄마를 안고 화장실로 향하는 모습. 잠시 후 다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도 계속되는 그들의 대화, 그들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내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다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하는 엄마의 말을 나는 듣고 말았다. “엄마 보고 싶다...”

당연한 건데 나는 참 자주 잊고 살아온 듯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그 엄마를 불러보고 싶은 마음을 전혀 모르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오직 나의 엄마의 자리에만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 낯설었나 보다. 그 당연함이...

 

 

모든 일정이 끝나고, 결국, 엄마는 지독한 몸살이 났다. 나의 컨디션도 최악인데, 감히 엄마의 그 상태 앞에서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무거울 그 몸살이 조금은 가볍게 지나갔으면 싶은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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