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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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의 단편집 중 이 책이 좀 더 판형이 크고, 분량이 더 많으며, 그 분위기란 조금은 더 어둡고, 조금 더 차분합니다.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지만, 맨 앞의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 좀 긴 편이어서 중편에 가깝습니다. 그 배경도, 대체로 시골에 가까운 소읍이며, 늦은 중년에서부터, 인샏의 종막을 맞이하는 노년의 연령대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공통입니다. 대체로 주인공은 여성이며, 남성이 전면에 부각된 경우도 그를 관찰하며 캐스팅(전달)하는 목소리는 지근의 여성이라는 점도 공통입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여성도 나오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본격 글쓰기 과정을 소재로 삼지는 않는다는 점도 주목됩니다.


<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의 첫 장면이, 가구를 먼 도시, 자신이 이주할 곳으로 운반하려는 여성과 역무원의 대화인 점, 그리고 세번째 단편의 제목이 <어머니의 가구>라는 점에서도, 작가 먼로가 특히 집안의 가구에 대해 특별한 장치로 사용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스타일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책과 좋은 한 벌을 이루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서도 비슷한 태도가 엿보이던데요. 그 책에서는 가구 외에도 농장을 둘러싼(주인공들이 캐나다에 흔한 소농 집안 출신이라면, 작은 농장을 성장 배경으로 삼음이 아주 자연스럽죠) 자연 풍광에, 어린 나이의 주인공, 그리고 성장하여 그 시절을 기억하는 주인공이 일일이 그 지물에 감정 이입을 하여 선, 악, 호, 오, 미, 추를 매기는 대목이 흥미롭더군요. 놀 거리가 부족한 시골 아이들의 공통 습성을 잘 잡아내어 따뜻한 풍광으로 살렸다는 의의 외에도, 인간은 결국 무엇인가에 의미를 부여하며 사는 존재라는 점, 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역시 빼놓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서 개별사례의 일반화로 우리 앞에서 재낭독해 주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점에서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에서 얼핏 느껴지는 모습은, 답답하면서도 차분한 묘한 분위기입니다. 여성은 으레 아름다움, 활기, 일상의 재미 등에서 존재를 확인하는 법인데, 주인공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이 보입니다. 못생긴 여성에게 짖궂은 농담이나 던지는 걸 낙으로 삼는 역무원은, 어느 새 실속 있게 제 용건만 챙기고 "무례하게, 마치 자신을 자동 응답 기계 대하듯 하고는" 떠나 버린 여성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구에 손상이 생기면 안 돼요. 가축 냄새가 배어도 안 되구요." 시대 배경이 딱히 정해지진 않았으나, 우리가 속한 시간대와 그리 멀지는 않음도 확실한데, 이런 모습은 낯설기는 합니다. 역무원이 권하는 트럭 운송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영택배업 정도일까요? 조해너(한창 때에도 별 봉 일 없었을 것 같다고 역무원에게 내심으로 가혹한 평가를 당하는)는 그러나 곧이 기차 운송을 고집합니다. 나중에 드러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세요. 사신 가구들, 상점에서 사셨죠? 근데 그 가구들은 다 그 상점에서 만들었겠어요? 아니죠. 그 가구들도 다 기차가 운송한 거라구요. 우리는 그런 일 전문입니다. 안심하세요." 나름 재치와 설득력을 갖춘 설득이지만, "시골 사람 특유의 예의갖춤 기색도 없이" 조해너는 기계적 응대만 남기고 떠납니다.  이어 그녀는, 좋은 상품을 취급하지만 공동체 이웃들로부터 제 대접을 못 받는다는 불만을 떨칠 수 없는, 그러나 상술보다는 진정한 소통에 능한 어느 의상실 주인 밀레이디와 만납니다. 좋은 옷, 그녀의 예산에 약간 벅찬 가격의 옷을 제시받지만, 그녀의 체형에 잘 맞질 않습니다. 딱히 열등감이 사로잡혀 사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녀는 이런 옷을 무리하게 걸쳤다가 웃음거리가 되기 좋겠다는 냉정한 판단을 즉시에 내립니다. 매력도 행운도 결핍한 그녀지만, 현실 인식에 있어 주관적 환상에 빈틈을 내주지도 않는 타입입니다. 20페이지 중간쯤을 보세요. "녹색 드레스의 경악을 공유하고, 갈색 드레스를 찾아 내는 사이에 뭔가 유대감이 생긴지도? 아니다, 이 여자는 방금 한 건의 마수걸이를 한 데서 오는 기쁨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눈으르는,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도 아닙니다. 밀레이디라는 이 의상실 주인은, 그저 노련한 상식에 입각한 세일즈와 응대를 했을 뿐인데, 주위로부터 큰 환대를 받고 자라지 못한 조해너로서는, 임박한 작은 기쁨(그녀로서는 큰 기쁨)에 괜한 여파를 부를 변수를 차단하려는 오랜 습성이 발동한 것 뿐이겠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구>를 보면, 앞서 말했듯 잘 드러나지 않으나 결국 이 주인공은 작가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던 친척 아주머니의 독특한 인생 역정을 소재로 살짝 삼았는데, 이에 대해 아주머니는 크게 분노합니다. 나중에 아버지의 장례식에 찾아 온, 아주머니의 딸로부터(너무 나이들어 보여 처음에는 아주머니의 동생인 줄 알았다고 하죠) "물고기처럼 잔인하고 무정한 아이"라는 말까지 전해 듣죠. 자신의 말로야 그리 풀고 있습니다만, 우리 독자 역시 아픈 어머니를 뒤로 하고 바로 대학 진학을 선택한 그녀의 행보를 생각하면, 그 평가가 진실에 가깝겠다는 생각 역시 가지게도 됩니다. 그리고, 이 아주머니의 친딸이라는 여성은 과연 누구일까요? 어려서 입양되었다는 사실, 늦게서야 찾은 생모로부터 묘한 사연을 전해 들었다는 걸로 봐서, 아마 주인공의 아버지와, 그 아주머니(서로 사촌간입니다) 사이에 생긴 불의의 사생아가 아닌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결국 그녀는, 생부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셈입니다. 이 끔찍하기까지 한 진실에 어느 정도의 자각과 긍정이 주관적으로 가능했는지, 우리는 주인공의 심리를 간접으로 짐작할 뿐입니다.


맨 마지막 작품은 사실 이 책 전체의 표제로 내세워도 무방한 비중입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여기 실린 작품들 중에 가장 극적인 구조를 지닌 단편입니다. 훌륭한 가문 출신에 빼어난 지성까지 갖추고 교수직에 오래 재임하였으나, 여제자들과의 좋지 못한 추문이 번져 결국 퇴직하게 되는 그랜트. 그리고 그의 처 피오나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남편 그랜트의 표현으로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 아름다움을 손상 없이 간직한 드문 케이스입니다. 피오나의 모계 쪽으로는 대단히 급진적인 사상을 지닌 피가 흐르고 있고, 이는 아이슬랜드식 좌파라는 코드로 형상화됩니다. 금슬 좋았던 부부는, 노년에 접어들어 급속한 뇌손상을 겪어 맑은 정신을 유지 못하는 피오나 때문에 큰 시련을 맞게 되고, 사태의 변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흘러 갑니다. 결말이 상당히 의외라서 산뜻한 충격을 받았는데요. 먼로의 다른 작품을 보면 이는 이른바 "반전, 트위스팅""으로 작가가 의도적으로 짜 낸 장치는 아닌 듯합니다. 인생에 대한 찬찬하고 정직한 관조가, 뜻하지 않게 극적 흥미까지 자아낸 결과로 보여집니다. <곰이 산을 넘어오다>는 아이들 전통 동요의 제목이자 가사의 한 소절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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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게임화 전략과 만나다 - |로열티 3.0 = 동기 + 빅데이터 + 게임화 전략|
라자트 파하리아 지음, 조미라 옮김, 김택수 감수 / 처음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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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은 3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데, 다루는 내용이 묵직합니다.


결국 비즈니스의 사활은, 변덕스러운 고객을 어떻게 기업의 곁에 잡아 둘 수 있는가의 문제에 달려 있습니다. 고객으로 하여금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에 "충성"할 수 있게 하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경쟁 속에서 도태하는 게 당연합니다. 문제는 "로열티"인데, 이를 어떤 방법으로, 또 양질의 형태로 붙들어 두느냐는 게 과제입니다.


라자트 파하리아는, 시쳇말로 "게임화"라는 말이 뜨기도 전에, 이미 게임화(gamification)의 방법을 업계 최초로 개념화하고, 이를 사업의 장에 띄워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입니다. 그가 설립한 "번치볼"이라는 회사는 일 찍부터 많은 미디어로부터 혁신 기업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았고, 현재도 유수의 대기업(NBC, IBM, 아이스하키클럽 LA 킹스 등)들로부터 특정 섹터의 "게임화" 수주를 받아 자사의 첨단 모델을 곳곳에 보급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번치볼이 추구하는 "모든 사업의 게임화"라는 야심찬 전략은 현재진행형으로 성장 중이며, 아직 엔드 유저들은 실감하지 못하나 머지 않아 비즈니스, 일상 생활의 전영역을 (우리가 의식하건 그렇지 못하건) 지배하는 원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기초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되기 전에는, 타율적인 동기(책에서는 외적 동기라고 표현합니다)에 의해서, 아니면, 얄팍한 인센티브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종래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조직행동론은 다 이런 타율적 혹은 외적인 동기의 관 점에서 목표를 추구하고, 또 마케팅 이론을 정립해 왔습니다. 아직도 일부 노령층 관리자들은 이런 지난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나, 물리적 생존은 더 이상 위협받지 않습니다. 대량 인명 살상이 우려되는 전쟁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벌어지지 않고 있고(지난 시절에는 문명 세계조차 상시적인 전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죠), 기근의 문제는 질소 비료 개발과 녹색 혁명으로 어느 정도 해결을 본 상태죠. 사람들은 더 이상 집단의 명예나 가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추구하며 이른바 "삶의 질"을 지향합니다. 양적인 지표는 더 이상 경쟁에서의 승리와 성취를 담보하지 못합니다. 기업 내적으로는 직원이, 기업 외적으로는 충성스러운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양질의 프로세스를 통해서만이, 기업은 진정한 시장의 승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보장하는 전략이, 저자가 말하는 게임화이며, 이를 위한 수단이 빅데이터이고, 그 최종의 로엹티 프로그램이 "로열티 3.0"이라는 거죠.


인간의 자발성이야말로 일찍이 체험하지 못했던 양질의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무한대의 리소스입니다. 이미 여러 논자가 지적한 대로, 아무 소득도 명예도 없는 무보수의 노동을, 인간은 기꺼이 labor of love에 의해 수행하는 게 그 본능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성과는, 마지못해 기계적으로 동원된 수량화의 산물이 넘보지 못할 양질의 결정체인 게 또 보통이라는 겁니다.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해진 시대에, 어떻게 하면 보다 집중적이고 고급의 노고가 깃든 생산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느냐로 많은 경영진의 고민이 기울여지고 있는 작금, 이 게임화야말로 자발적 지성의 노고를 힘들이지 않고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대안이 아닐 수 없죠.


내적 동기는 전통적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자발성(autonomy)㉡숙달(mastery)사회적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이 그것이며, 자기결정성 이론(SDT)에서 디치, 라이언 두 교수가 확립한 이론이죠. 여기에 저자는, ㉢목적(purpose)㉣ 도달(progress) 두 가지를 추가하여, 소비자와 직원의 내적 기제를 보다 세분화합니다. 이 다섯 가지가 모두, 게임화 모델을 개발함에 있어 최우선 전제로 고려해야 할 5대 내적 동기입니다. (저자가 고려하는 동기가, 단지 소비자의 동기가 아닌, 기업 직원의 동기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공하는 기업은, 소비자뿐 아니라 직원의 마음까지 양질의 충성을 확보하느냐의 여부를 주목합니다)


이 러한 내적 동기를 충분히 주시한 후에는, 이를 빅데이터와 결합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빅데이터는 이 책뿐 아니라 여러 다른 책, 그리고 TV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었습니다만, p64에 나와 있는 정의를 옮겨 다시 한번 고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단일 기관이 통제하지 않으며ⓒ기존의 정형화한 통제 프로그램에 의해 관리되지 않으며ⓓ그 크기가 매우 큰 데 이터를 말합니다. 이 빅데이터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이 책의 주제인 "게임화"와 직접 관련은 없으면서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어 부대 지식의 축적에 도움을 줍니다. 그 중 제가 눈여겨 본 건 크라우드 소싱(아웃소싱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의 로그에 의해 자원을 확보하기), 휴리스틱이 아닌 알고리즘(이 책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데요, 알고리즘은 기계적인 프로세스, 휴리스틱은 인간의 감각, 직관에 의한 절차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에 의한 신규 직원 채용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가 이뤄집니다. 다만 저자는, 이 제록스의 예가 전화상담원이라는 다소 기계적인 업무 종사자였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꼼꼼한 당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숙달

목적

진전

사회적

상호작용

자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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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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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가로행은 게임화기법, 세로열은 동기항목입니다. " 탑승"이 뭘까 하실 분들이 있을텐데, 예전부터 쓰이던 기법입니다. "윈도 마법사" 같은 걸 생각하시면 되고, 최근 어도비 포토샵의 방대한 기능을 보다 쉽게 사용하는 일을 도와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탑승(onboarding)" 은 특정 기술에 익숙해지는 동기 외에 어떤 다른 팩터도 작용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한들, 그 성과를 자랑할 대상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냐는 아주 소박한 전제조건(그러나 때로는 가장 강력할 수 있는 동기의 구체화)을 이르는 말입니다.


책 의 나머지 두 장은 이의 실전화를 위한 다양한 사례와 추가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붉은 여왕"의 법칙을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세상이 워낙 치열한 경쟁 속에 탈바꿈하다 보니 질주를 해도 결국 그 자리지만, 우리는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저자는 "게임, 디지털 네이티브"를 이야기합니다. 날 때부터 이전 세대와는 다른 환경을 접하고, 디지털 부호화의 코드와 호흡이 자연스러운 세대를 소비자와 직원 pool로 대면해야 하는 기업은, 냉큼 이 현실을 status quo로 인정하고 들어가는 편이 명하다는 말입니다. 이 native라는 단어는 저자에게 좀 다른 의미로 와 닿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저 맨 위 사진에서 보아 알 수 있듯, 그는 인도계 이민 2세입니다. 하지만 그 자신은 미국어 네이티브이고, 받은 교양과 지식은 어느 코카서스 인종에 뒤질 것 없음을 알리려는 듯 곳곳에서 인용하는 현란한 비유, 풍부한 지식의 동원은 책 읽는 재미를 배가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번역도 참 갈끔하게 이뤄졌는데요. 기술경영 서적이 이만한 가독력으로 읽히는 체험도 흔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자의 이름이 Rajat Paharia인데, 책에서는 계속 Lajat로 나와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사진에서 보듯 "쇼"라는 글자가 매번 깨져서 인쇄된 것이 눈에 거슬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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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경제의 귀환 - 잃어버린 성장 DNA를 찾는 길
오영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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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도 논의의 기본 전제로 사용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에 일본계 미국 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러스트>라는 저서를 내어서, 신뢰가 경제 작동의 기본이 되고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로 세계의 국가들이 이대별될 수 있다는 논의를 발표하여, 전세계를 한 때 치열한 논쟁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그 구성분자들의 자격을 평가함에 있어서, "신용불량자"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활동자로 나누는 데서 알 수 있듯, 현행 자본주의 경제는 철저히, "신용'이라는 추상적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 신용을 공여받은 자와 부여한 자 사이에, 물리적 족쇄나 법적 강제(많은 비용 지출이 수반됩니다) 없이도 원활한 거래, 혹은 계약 관계 안의 급부 교환이 가능하다면, 그 사회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 소비에만 신경을 기울이면 되고, 별 도의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 예를 들어 채무자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다든가, 계약 이행 여부를 감시하기 위해 매 단계마다 별도의 노력이 기울여져야 한다면, 시스템의 공적 인력을 통한 이행 확보를 위해 엄청난 비용이 지출될 것입니다(예전에 "좋은나라운동본부"같은 TV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세요. 체납자, 채무불이행자의 추적과 처벌에 적정 수준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면, 그 사회는 세금 징수 단계에서 붕괴할 수 있습니다.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가진 자들은 더 이상 저축 섹터에 자신의 부를 노출하지 않고 "장롱"속으로만 은닉해 두거나, 신뢰가 확보된다고 판단하는 해외 경제 단위로 돈을 빼돌릴 것입니다).


저 자 오영호씨는 행정고시 재경직 출신으로, 평생을 경제관료 생활을 통해 커리어를 다진 분이고, 서강대 교수, 무협 부회장을 거쳐, 현재는 KOTRA 사장에 재직 중인 분입니다. 이분이 1952년생이시고, 대략 20대 중후반에 공직생활을 시작했다고 보면, 한국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를 갓 해결하려는 단계에서 벗어나 원자재 가격 폭등, 중화학 공업 위주 구조로의 전환을 위해 극심한 성장통을 알던 시기인 1970년대말, 그리고 이른바 "3低의 호황"을 누리던 최전성의 도약기 1980년대를, 아직은 국가가 그 컨트롤타워를 관장하던 시절 정책 결정 관료로서 지켜 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이분처럼, 한국 경제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 없는 기적 같은 도약을 맞이하던 시기를 회고하며, "현재의 교훈과 자율성 등은 충분히 살리되, 그 시절의 장점과 희열을 다시 살릴 수는 없을지?"를 담담히, 혹은 안타깝게 저술하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정구현 자유기업원 이사장이 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있었구요.


베테랑, 원로들이 현 경제의 건강성과 실태를 활력 부족의 관점에서 걱정하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성장하고 인생의 최절정기를 보내던 방식과는 달리, 현 경제의 성장과 건설을 담지하고 나가야 할 젊은 세대는 이른바 "3포"의 함정에 빠져 자활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중추 세대가 무기력에 빠져 있는 실정을 정확히 반영이라도 하듯, (비록 24000$의 사상 최고 규모의 국민소득을 달성했다고는 하나) 거시 실질경제 지표는 도무지 살아날 줄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오 영호 저자는 우선 1부와 2부에서 과거 회고담을 펼치고 있습니다. 1부의 1장은 1960년대, 그야말로 머리를 잘라 가발을 만들어 팔아 외화획득원의 주요 수단으로 삼던 시절의 눈물겨운 사연이 주를 이루고 있고, 2부로 넘어가면 때맞춰 발발한 월남전의 특수 덕에, 한국으로 대거 달러가 유입되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한국 장병들이 한사코 일제군수품 사용을 거부하여("일제 마크가 찍힌 제품을 입고 착용하면 싸울 사기가 살아날 수 없다!") 말단 병에 이르기까지 강력 항의하여, 미군도 공급선을 (가까운) 국내 업체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도 나오네요. 박정희가 당시 서독 대통령 뤼브케에게 충고를 받아 "산과 강이 많은 한국에서는 철도보다는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한다(독일의 아우토반을 염두에 두고)" 라는 말을 귀에 새겼다는 대목도 흥미로웠고, "산업 전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깡다구 하나로 열악한 현장에서 땀을 흘렸던 노동자들, 공기를 맞추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며 사우디의 사막에서 목숨을 거는 모습을 보고 파이잘 국왕이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거리라도 배려하여 할당하라."고 명령을 내렦다는 이야기에선 잠시 눈물이 돌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다시 오랜 화두를 꺼냅니다. "과연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처럼, 우리는 저신뢰사회가 맞는가?" 이 보람찬 고도성장기에는, 사회가 온통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진만을 마음에 채우고, 다른 구성원을 향한 신뢰의 충전에 여념이 없었다는 거죠. 저자는 이 기저에 동아시아 한국 특유의 유교 윤리, 공동체 우선 사상, 연장자는 부모나 형, 누이처럼 대접하고 손아랫사람을 자식처럼 아끼는 풍조가 아니었으면 그런 기적 같은 성장이 불가능했으리라 단정합니다. 유교 윤리는 당시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가장 순도 높은 신뢰를 제공하는 원천이었으며, 후쿠야마 교수가 주장하는 "신뢰"의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우리 독자의 신뢰가 폭발적으로 발생하여, 성장과 번영의 가망이 보이지 않던 최밑바닥에서 여기까지 발전을 이뤄왔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현 시점에서 유교 정신의 복원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 듭니다만(아마 저자와 비슷한 정치 경제관을 갖고 있을 리콴유, 마하티르, 또 홍콩의 재계 거물들도 같은 논리를 펴긴 합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에 족쇄매이지 않고 도약을 감행하려면, 구체적인 방법론이 따라붙는 "신뢰 재구축"의 컨센서스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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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이가 함께 만드는 힐링요리
김소영 지음 / 원앤원스타일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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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즘은 요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죠. 자라나는 청소년들도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 보면 "일류 요리사(셰프)를 거론하는 일이 많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이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대중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박찬일 셰프 같은 이가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일도 당연하다는 듯 보고 듣는 세상입니다. 일찍부터 장인 정신에 대한 존경의 풍토가 각별했던 유럽에서는 일류 요리장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새삼스러울 게 없고, 그래서 "You are what you eat." 같은 격언이 통용된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스파게티, 파스타 같은 걸 주문하면 대뜸 짜증부터 낸다고 합니다. "집에서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걸 뭐하러 식당까지 와서 돈을 내고 주문하는가?" 사실 아직도 시내에서 제일 잘되는 요식업종이 고작 삼겹살집인 걸 생각하면 우리네 외식 선호 현상을 정말 이상한 면마저 있습니다(물론 양질의 육류를 조달하는 일이 반드시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조리사가 밑반찬 몇을 고작 내주는 정도의 서비스에 과도한 페이가 지불되는 건 다른 나라에서는 쉬이 찾기 어려운 현상이죠).


위생 문제, 과소비를 염려해서라기보다, 간단한 요리를, 혹은 간단하지 않은 요리라 해도,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비용도 줄고, 조리 과정에서 가족 간의 소통이 증진되고 신뢰와 사랑이 돈독해진다는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전부터 가정 주부를 위한 요리책도 많이 나왔었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에는 아침 시간대에 정기적으로 TV에서 전문가의 지도가 이뤄지는 프로그램도 방영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맛집 소개 프로그램은 있어도, 가정에서 스스로 만들어 먹는 요리를 장려하는 프로그램은 드물게 보는 게 사실입니다.

이 책의 저자 김소영씨는 "러블리 키즈쿡"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보다 가족 간의 소통을 증진하고 밖에서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과정과 결과에 있어 공히 힐링을 도모하는 요리를 창안하여 보급하는 데에 열심인 분입니다. 책 은 주로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줄 수 있는 요리법"을 제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주된 역할을 맡긴 이유는, 이 요리들이 처음에 아이들의 바른 식습관을 만들어 주는 데에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때부터 간단한 요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는 방법을 가르치며(다시 강조하자면, 가르침의 대상이 "아이들"입니다), 편식 등 나쁜 습관을 뿌리뽑아 어려서부터 바른 성장을 기하게 한다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는군요. 이렇게 바른 방법으로 식습관을 들인 아이들은, 커서도 바람직하고 균형잡힌 식단을 계속 유지하여, 애쓰지 않아도 웰-비잉이 이뤄진다는 거죠. 뿐만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하는 쾌감을 가르챠 줌으로써 바른 정서와 인성의 함양에도 기여한다는 겁니다.

처 음에는 아빠가 주도하고, 아이가 곁에 끼어 아빠의 솜씨를 맛보는 코스인 줄 알았습니다. 사진을 먼저, 그리고 텍스트를 나중에 들여다 보니 전혀 아니더군요. 정말 놀랍게도, 이 책은 아이가 아빠를 위해 만들어 주는 요리, 그 방법과 즐거운 결과를 잔뜩 담아 놓은 책이었습니다! 놀랍지 않으신가요? 아빠가 애를 위해 요리를 해 주는 모습도 흔한 건 아닌데, 아이가 아빠를 위해 요리를 만들어 주는 모습이라니! 사실 저는 책을 처음 폈을 때, 제가 혼자 해 먹을 때 참고하려는 용도였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세상에 어린 아이들이 이런 요리를 만드는 게, 좋은 요리사에게 배우면 가능하구나!"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책 을 읽으면서 상식도 많이 늘었습니다. 본디 월남쌈과 쌀국수는 베트남이 아닌, 남베트남 붕괴 후 대거 호주로 몰려 간 베트남인들이 그곳에 퍼뜨린 게 효시라고 합니다. 칼로리도 적고,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들 사이에 대화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힐링을 위한 메뉴로서 최고라고 합니다. 견과류가 몸에 좋긴 한데, 어르신들은 몰라도 아이들은 이게 맛이 없어서 골라 내곤 한다죠? 그런데 이걸 시리얼에 같이 타서 주면, 초콜릿과 우유에 숨겨진 맛 때문에 아이들이 같이 잘 먹는다고 합니다. 아이를 둔 집에서는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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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 집에서 치료할 수 있다 - 혼자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파킨슨병 자가운동방법
미즈시마 타케오 지음, 조기호 옮김 / 부광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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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 체의학이라는 것과, 해당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고심담, 투병기에서 나온 유용한 교훈을 혼동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난치병, 불치병에 시름하는 이들의 고통은, 요즘 같은 세상에선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공유되고 전파되어,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이를 완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곤 합니다. 아픔은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는데, 단순한 감정적 상처가 아닌 육신의 병이라면 이 점은 더욱 확실해질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해 줘야 할 현대의학이 제 할 일을 못하고 있는 대목에서, 환자들 스스로가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겠다는데 그걸 누가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막아서겠습니까?


이 책은 제목처럼, "정말 파킨슨병을 통원 입원 절차 일절 거치지 않고, 집에서만 치유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더군요. 우리가 독감이나 전염병 예방을 위해 손발 깨끗이 씻고 몸가짐을 잘하는 것이 사이비 대체 의학이 아니듯, 이 책에서 가르치는 것도,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된 파킨슨병의 악화를, 집에서나마 최소한으로 막아보는 바른 습관, 병원에서 투여하는 약들의 기능과 정체,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같은 걸 친절하고 자세히 일러주는 지침서였습니다.


생 각과는 달리, 파킨슨병의 진단 기준이라는 게 모호한 면이 있더군요. 틱이나 운동장애가 있다고 다 그 예후가 아니며, 일정 기준을 다 충족해야 이 병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이 병이 무슨 노인들이나, 특수한 인생 경로를 거친 드문 사례, 예컨대 무하마드 알리 같은 소수나 걸리는 병이 아닌, 두뇌와 신경 장애의 일환으로서 누구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병임도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현 대의학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거나, 오히려 배격해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병의 싩체를 정확히 알아야 그 병마의 습격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고, 혹시라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이 병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을 때, 물리적 도움 외에 베풀어 줄 수 있는 그 모든 배려와 마음가짐, 유용한 팁들이 따로 있다는 걸, 경험자들의 증언과 지혜를 통해 가르쳐 주는 책이었습니다. 병이란 특히 환자의 입장에서, 부작용 없이 나을 수만 있으면 그게 곧 신의 축복인 겁니다. 간혹 이런 보건의 이슈를, 비뚤어진 과시욕이나 잇속 챙기기, 혹은 정치투쟁의 소재로 삼는 이들이 있더군요. 환자에게 이로운 것만큼 강력한 공공선과 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 깨달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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