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대입 자기소개서 바이블 - 대입 수시전형 합격의 열쇠
김한슬 외 24인 / 지식채널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 제 풀이 입시 위주의 신입생 선발 방식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건 누구나 동의합니다. 대학은, 자기 학교에 들어오려는 학생의 인물 됨됨이를 보고 입학 자격을 주어야 하며, 문제를 잘 푸는 기계를 우대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곤란하죠. 그래서 현재 각 대학에서는, 수능 점수가 주된 선발 기준이 되는 정시 전형 말고도, 자기소개서의 완성도와 진정성으로 적합성을 평가하는 수시 전형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료입니다. 이 대학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성취해 왔으며(꼭 "스펙'을 말하는 건 아니죠. 현재 상당수의 대학은, 토익 점수 등 스펙을 기재한 자소서에 대해 0점 처리의 원칙을 유지합나다), 이 대학에서 앞으로 어떤 계획 아래 학업을 이뤄 나갈 것인지를, 분명하면서도 진솔한 방법으로 진술해야 합니다.

이 책은, 자소서 위주 전형에서 고득점을 받고 합격한 학생들이 몸소 적은, 모범적인 답안례를 소개하거나, 이렇게 쓰면 높은 평가를 받기 곤란한 답안의 실제 예를 들면서 개선해야 할 점을 상세히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자소서를 잘 적기 위한 원칙은 여러 가지가 제시되어 왔지만, 그 대부분은 추상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건지가 모호하거나, 서로 상충되기까지 합니다. 학생들은 아직까지 초, 중등 과정에서 자기 표현이나 자기 생각을 효율적으로 적는 훈련을 덜 받아 왔기에, 자소서를 적으라고 하면 그저 막막해하거나, 좋지 못한 미사여구의 남발만 보이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잘 쓴 자소서인지, 또 바람직하지 못한 서술 방식은 무엇인지, 어떻게 고쳐 나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예문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본문은 410페이지, 부록이 80페이지에 달하는 아주 방대한 분량입니다.

양이 이렇게 많다 보니, 웬만한 학생이면 "아, 나는 이 선배와 처지나 적성, 환경이 비슷하구나, 이런 식으로 적으면 되겠다."라든가, "나는 자소서라고 하면 이런 식으로 적어 나가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곤란한 거였구나."면서 고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문은 이론이 아닌 구체적 실전에 의의가 있으며,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자소서라면 두 말 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모범적인 자소서를 두고,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 삼는다든가, 여러 예에서 좋은 요소만 따 와 짜깁기를 하는 방식은 절대 금물입니다. 작성자는 자기 혼자 생각으로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사정관은 수없이 많은 자소서를 보면서 어떤 것이 정직한 작성이며 어떤 것이 "점수 따기만을 위한 컴필레이션 픽션"인지 한눈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의 원칙은 준수하되(모범적인 형식 구비), 거기에 담아야 할 내용은 철저히 자기 자신의 정직한 이야기라야 합니다.

참신함과 논리적 비약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기
읽 으면서 "이런 자소서도 있구나."할 만큼 신선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소서는 초현실주의 신춘문예가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 전개와 구조는 건전한 상식과 논리에 맞아야 합니다. p44를 보면 "목감기 때문에 말의 소중함을 배웠다."는 예가 나오고, 이에 대해 적절한 비판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을 첨부하자면, 너무 내용이 늘어지거나 글자 수 제한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근거와 짜임새를 첨부하면 식상함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무리한 시도는 아닙니다. 다만 이대로의 모습은 곤란하며, 상당한 글재주가 아니고서는 이 소재로 멋진 진술까지 발전시키기에는 조금 힘에 부칠 것 같습니다.

전문 경영인이라야 의료 법인을 잘 운영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이대로 방치하면 특정 직업군을 비하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죠. 구체적으로, 의료인이 경영을 맡았을 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근거라고 든 사실이 지나치게 길어져서는 그것도 곤란합니다. 다만, 사회의 현 제도가 분명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린 학생 개인의 입장에서 이의 개선을 위해 어떤 포부를 갖는지 서술하는 건 바람직합니다. 이 경우에도, 개인 범위를 벗어나는 지나친 욕심, 과장된 비전 나열은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입학 사정관을 기다리게 하지 말라(p70)

왜 글이 두괄식이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좋은 예죠. 사정관은 많은 지원자를 대면(혹은 서면을 통한 접촉)하고 평가, 사정해야 합니다. 과도한 자의식으로 문장을 질질 끄는 것은 자소서 스타일에 어긋납니다. 개성의 표출은 대학에 입학한 후, 그런 스타일이 잘 들어 맞는 다른 상황에서 뽐내야 합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라
일 관성이란 같은 단락 안에서 같은 주제, 화제만을 다루는 기본 원칙을 말합니다. 학생 주관적으로는 토픽 A와 B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나, 사정관이나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연결점을 찾기 어렵다면, 그런 서술은 일관성을 잃고 자기 주장을 전달하는 데에 실패하기 쉽죠.

은유적 표현을 피하라

잘된 은유는 글에 참신성과 생기를 더하지만, 자소서처럼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에다 비약적인 표현을 남발하고, 이에 근거를 덧붙이며 낭비하다가는 사정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지원하려는 학과에 대해 평소 깊은 관심을 가져 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전공 분야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건 전형에 따라 꼭 필요한 성의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서술"이라는 미덕과도 관련됩니다.

진솔하고 구체적인 서술
p202 를 보면 서울대 인문학부에 지원하여 합격한 남미희 씨의 좋은 예가 나옵니다. 보통 명문대에 지원하고 입학하는 학생들은 강남 출신이 많다는 선입견에, 아주 보기 좋게 반박하는 답안으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참신하고 흥미로운 답안이었습니다. 이 사연은 모범 답안을 베끼거나 대필이 절대 아니겠구나 하는 인상을 주려면, 결국 자기 이야기를 정직하게 적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글에는 명확한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교육 환경이 그리 유리하지 않은 가리봉동에서 나고 자란 상황이,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는 데에 구체적으로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 이 답안은 설득력과 매력을 겸비한 채 잘 전달해 주고 있었네요.

p258에 보면, 기업체 채용시 그렇게나 기피된다는 마마보이 캐릭터의 어느 학생이, 역시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설득력 있는 학업 비전을 젛묘하게 잘 표현한 사례가 나옵니다. 잘된 글은, 역시 자신에 대해 평소부터 분명하고 건강한 정체감을 형성한 학생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약점이라고 해도 감추지 않고, 자신의 개성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치밀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는 자소서 뿐 아니라, 모든 글쓰기에 공통된 원칙이겠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라난 학생이, 있는 그대로 자신의 지난 이력을 적은 답안도 있었습니다. 이런 답안도, 마무리는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을 이해하며.." 같은, 건설적이고 열린 자세의 표현으로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구김살 없이 자라나 인성에 왜곡이 없는 지원자를 선호하는 대학들이, 이처럼 어른스러움까지 드러내는 자소서를 아주 마음에 들어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어떤 답안(경제학과 지원)은 "매몰 비용"에 대해 학생으로서 깊은 사고를 해 보았음을 토로한 것도 있었습니다. "고기 뷔페 식당에 가서, 배가 터지게 먹는 것은 결국 비이성적인 선택이니..." 그런데 이 경우처럼, 지불과 효용이 밀접하게 시간적으로 닿아 있는 것을 "매몰 비용"으로 포섭하는 건 오류죠. 계획과 실행이 근접할 때에는, 갑자기 신체적 조건이 악화되거나 한 게 아니라면, 처음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각 대학의 특성을 파악하자
현 재 자소서 전형이라고 명칭을 달고 있는 대학은 없습니다. "21세기 인재 전형", "프론티어 전형", "다빈치 전형".. 이렇게 이름이 다양하다는 건, 그 전형에서 중시하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말도 됩니다. 어느 대학에 지원하려면, 그 대학이 학생의 어떤 면을 보는지부터 알아야 하죠.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 대학의 전형 취지를 꼼꼼히 읽고, 자소서의 개요를 구상해야 합니다.
이 책에는 대학이 잘 묻는 질문의 특성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평소에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해 적어 보라든가, 대단히 특이하게도 "지원 동기 중심으로 대학이 학생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적으라는 문항도 있었습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할 줄 아는지를 묻는 것도 되며, 아울러 왜 스펙에 치중하면 안 되는지, 대학의 선발 동기를 학생에게 처음부터 알리려는 의도도 됩니다. 이런 게 잘 맞지 않으면 그 대학에 자소서 전형으로 입학하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부록에는 각 대학의 구체적인 자소서 양식이 나와 있어서, 지원자의 작성 실전에 감각을 더 잘 살려 주는 포맷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첨삭자의 느낌이 생략된, 원문 그대로의 모범 답안이 본문과 중복 없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저 희 때에는 그저 수능 점수로 학생을 뽑았으며, 수시 전형이라고 해도 그 대부분은 역시 내신이나 수능 점수가 선발의 기준이 되었어요. 기업체 취직 말고는 자소서라는 걸 써 볼 일이 없었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어 미국이나 유럽처럼 그 학생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자소서를 통해 대학에 가기도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물론 수능 최저 조건도 만족시켜야 하고(이게 없는 전형도 있죠), 내신도 잘 관리해야 하지만, 자소서의 비중이 이렇게 높아진 건 새로운 추세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새삼 "나는 누구인가?"를 점검하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쳐 읽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또한 바람직한 글쓰기란 과연 무엇일까. 세상에는 이렇게나 다양한 환경과 가정 형편에서 자라나서, 결국 같은 대학에 입학하기도 하는구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팀 - 어떻게 탁월한 팀이 되는가
코이 뚜 지음, 이진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1990년대부터 한국 직장에도 연공 서열, 직제에 얽매이지 않는 일종의 "계급 파괴" 바람이 불었습니다. "OO부 XX과"라는 소속 대신, "∆∆ 팀"과 같은 성과 위주의 유닛이 일상화되었죠. 심지어는 공식 직제가 큰 의미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팀제나 다름 없는 구조였던 중소기업이나 영업팀 같은 곳에서도 (그 실질이야 어찌되었던 이름만이라도) 이를 따라했습니다. 이런 트렌드에서 완전히 무풍지대일 것 같은 공무원 사회, 공기업에서도 현재는 "태스크 포스"제를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팀 개념"은 자유로운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하는 서구 사회에서 그 효용이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지만, 한국이나 일본 같은 유교, 농경사회적 전통을 보유한 곳에서 오히려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면도 있습니다.

본디 서양은 "슈퍼맨"을 지향하면 했지, 집단에 개인을 매몰하는 문화는 기피하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팀을 짜서 일하면, 동양인들(공, 사 불문)보다 더 높은 효율을 내곤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성향이 "팀 활동"에 맞아서가 아니라, "팀"을 잘 짜고 잘 굴러가게 하는 방법을 깨우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팀" 중에서도,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임무(여기에는, 개인 단위로는 아예 성취가 불가능한 것도 포함됩니다), 도무지 달성이 불가능한 높은 실적을 올리는 "드림팀, 슈퍼팀"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드림팀이 슈퍼팀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모든 드림팀이 다 슈퍼팀이 되는 건 아닙니다. 슈퍼팀은커녕, 평범한 팀보다도 못한 성과를 내고 온갖 비난을 다 받는 드림팀도 많았습니다. 이렇다면, 구성원의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서 그들로 이뤄진 "팀"까지 잘하란 보장은 없다고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일, 최소한 남들이 전혀 바라보지도 못했던 일을 해 내는 팀은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을 내기보다, 최근에 존재했던 슈퍼팀의 성공 사례 7가지를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자신의 상황에 응용할 수 있는 답안의 pool을 제공합니다. 각 챕터는 "슈퍼팀" 하나씩을, 경영 분야뿐 아니라 군사, 대중문화, 스포츠 경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선택하여 그 구체적인 성과의 경위를 자세히 풀어주고 있으며, 챕터 말미에는 이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교훈을 명제 형식으로 정리합니다.

첫째 장에는 픽사의 사례가 나옵니다. 제 생각에는, 첫째 장에서 굳이 이들을 다룬 데에는 저자의 분명한 동기가 존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픽사의 예에서 우리가 반드시 살펴야 할 것은, "대체 왜 팀이 필요한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공동의 목적이 없다, 팀을 꾸려서까지 이뤄야 하는 열정의 대상이 없다면, 처음부터 팀제를 검토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죠. 또한, 활동 영역이 아무래도 예술 분야다 보니, 영화를 위해 일을 하느냐(-돈을 버느냐), 그 반대로 돈을 벌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느냐 같은 기초 인식에서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이 "팀 픽사"의 예에서 금전적 보상은, 빼어난 개인의 동기 유발을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뒤 챕터들에서도 나오는 포인트이지만, 너무 단결이 잘 되고 대외적으로 순조롭기만 한 팀도 지속성 이슈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적절한 긴장감은 팀의 건강성 면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테니스에 데이비스 컵이 있다면, 골프에서 국가(미국 대 유럽의 형식입니다만) 대항전으로는 라이더 컵이 있습니다. 그런데 테니스에는 복식이라는 형식도 있지만, 골프에서는 압도적으로 개인 단위의 시합이 주류 포맷입니다. 게다가, 골프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 개인 멘탈 조절의 비중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직업 골퍼들은 극도로 예민한 감정적 성향을 보입니다. 이런 골퍼들로 한 팀을 꾸린다면, 팀웍이니 매니지먼트니 하는 게 타 종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게 꼬입니다. 그런 면에서 콜린 몽고메리가 중심이 되어  2010년 라이더 컵 대회를 위해 결성했고, 결승전에서 미국 팀을 맞아 극적인 승리를 거둔 사례는, 경영학적 측면에서도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가 지금 피파 월드컵을 보면서도 알 수 있지만, 개인기가 능숙하다고 반드시 팀에 적시적소의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며, 단 한 번의 슛으로 팀의 운명을 좌우하는 승부차기를 잘 해내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선수들로 이뤄진 팀일수록, 그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콜린 몽고메리는 그 자신이 필드 멘털의 달인이었고, 이런 체험과 소신, 강렬한 스타일로, 상대에 비해 그닥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전력으로 승리했습니다. 특히 그가 타이거 우즈에 대해 코멘트한 걸 눈여겨 볼 필요가 있더군요.

전쟁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전쟁이 꼭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미 터진 전쟁이라면 그냥 손 놓고 패배하는 게 최상의 선택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전쟁의 "승리"는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한 명(혹은 소수)의 힘으로 수행할 수 없는 게 전쟁이요, 평화시에는 이 전쟁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 게 범죄자 소탕, 폭력 진압, 인질범으로부터 인질 구조 같은 작전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세번째로 다룬 게, 1980년 주영(駐英) 이란 대사관에서 이란 내 쿠제스탄 분리주의(이란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이런 위험이 상존합니다)자들의 인질극이었습니다. 여기서 영국 툭수부대 SAS는, 놀라운 능률과 과감한 작전, 치밀한 계획으로 인명 손실 0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SAS는 영국군 뿐 아니라 전세계 군사조직 중 최고의 명예를 상기시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시사하는 교훈은 강렬했는데요. 최고의 팀은 결코 개인의 개성을 죽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난척하고 누구와도 비길 수 없는 탁월한 재능을 과시하고, 더 날카롭게 갈고 다듬을 것으로 조장됩니다. 그러면 과연 팀이 유지가 될까? 이 스쿼드는, 워낙 빼어난 개인들이 모였기 때문에, 스킬이나 체력만으로는 분명한 우열이 안 갈라집니다(구태여 가를 필요가 있다면 말이죠). 따라서, 조직원으로서 추앙받을 수 있는 기준은, 같은 동작을 수행해도 그 동작이 가능하면 팀을 위한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느냐입니다. 잘하는 건 누구나 다 잘합니다. 더 잘하는 팀원은, 같은 노력을 들여도 팀의 다른 구성원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선택한다는 점을, 우리는 이 사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팀 때문에 개인을 죽이는 우를, 이 슈퍼팀은 결코 저지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많은 "엉터리 팀"은, 무능한 팀원을 피곤하게 만드는 우수 팀원을 기를 쓰고 끌어내리려고만 들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우수한 팀은 결코 개인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룹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와 대조되는 컬러로도 유명하지만, (그 음악적 성취의 레벨은 별론으로 하고) 비틀즈와는 달리 지금까지도 멤버가 거의 다 살아 있으며, 개인 단위로 활동하기보다(이 정도 나이면 팀은 고사하고 개인 단위 활동도 어렵습니다. 물론 롤링스톤스의 이 빼어난 멤버들은 개인 활동도 합니다) 여전히 팀을 이루다시피 한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더군다나, 뮤지션들이야말로 세상과 융화를 못 이루는 가장 극단적인 개인주의자들임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일이죠. 우리가 잘 알지만 믹 재거니 키스 리처즈니 하는 사람들이 인간성은 또 좀 괴팍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도 무려 반 세기를 잘 "굴러 온" 비결이 과연 무엇인가? 실제로 이 책에 나온 바로도, 믹과 키스는 불과 얼음이라 할 만큼 상극이었더군요. 여기서도 알 수 있는 게,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제 스타일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게 하나의 요령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은근히 강조한 건, 로니(론) 우드의 조정자 역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개성이 내 개성과 실제로 충돌만 안 한다면, 그냥 보기 싫다는 이유로 태클을 걸지는 않는다는 게, 이 무지막지한 개성이 모인 팀이 그리 오래도록 굴러간 비결이라는 거죠. 이 챕터는 "공연은 열심히 하는데 돈을 못 버는" 초기의 실패에서 시행 착오를 거쳐, "인기와 공연 성공을 고스란히 수입으로 연결시키는" "사업 단위로서의 롤링스톤스"가 커 나가는 모습도 알려 줍니다(이 책의 주제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흥미로운 대목).

요즘 잠잠한 동네가 있습니다(더 시끄러워진 우크라이나, 이라크 같은 데도 있지만). 바로 북아일랜드입니다. 요즘 "신페인당"이니 IRA니 하는 말은 아예 뉴스에 안 나옵니다. 이유는 바로 지난 세기말, 벨파스트 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이 잘 체결되어,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 백년(최소한으로 잡아서요) 불구대천지 원수들이 이런 극적인 화해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요? 토니 블레어 행정부가 구사한 전략은 1) 상대를 악마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 2) 그 자리에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대신 채움 3)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되, 억지 화해가 아닌, 대립하는 현실의 긴박함도 상기하게 함 등의 모범적 수순이었습니다. 원칙은 알아도 실천이 어려운데, 토니 블레어 팀은 분리주의와 연방주의 세력 대표자들을 한 데 모아, 이들을 "평화'라는 공통 목표를 추구하는 "팀"으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팀은 이처럼, 종래의 피아 구분을 극복하는 인식상의 도약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도 배울 수 있는 바는, 억지로 개성을 누르는 선택은 필패로 이끌어진다는 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초 안에 떠오르는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 비밀 - 끊임없는 성장을 위한 전략적 브랜드 관리 와튼스쿨 비즈니스 시리즈
바바라 E. 칸 지음, 채수환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내용은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알찬 지침으로 가득했습니다. 물론 상당수는 실제 기업의 경영 사례입니다만, 사례 중에서도 타 상황에 교훈으로 적용할 수 있는, 꽉 찬 사례가 따로 있기 마련입니다. 그 사례로부터 추출하는 명제 역시, 익히 들어왔던 것이지만 맥락 속에서 또다른 의미를 지닌 것들이 많아서, 밑줄 쳐 가면서 읽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브랜드"란, 소모품과 동반자 사이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쥐틀, 철못 따위를 사면서 브랜드를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난 세기만 해도,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에는 소모품이 브랜드품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허나 지금은 대중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이에 따른 욕구 수준도 높아졌으며,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 까닭에, 기업은 "판매"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再考)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만들고 나서 팔리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무엇을 소비하고 기대하는지 미리 예상하고, 타 기업에 앞서 시장을 선점하고, 선점에 앞서 아예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케팅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브랜드 하면 바로 이것이 떠오를 만큼, 컨셉과 개성, 스토리를 모두 갖춘 브랜드를 개발하는 게, 기업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성공하는 브랜드, 로컬을 넘어 글로벌 스케이프에서 선전하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수 사례를 통한 개발상의 중요 포인트를 잘 짚어 주고 있습니다. 흔히, "내가 브랜드를 만들 것도 아닌데 뭐하러 그런 고민을?"이라고 하는데, 직장인이라면 회사(나아가 CEO)와 고민, 그에 따르는 전략 개발에 동조 동감할 줄 알아야 제 할 일을 다하는 거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이 시대 기업의 화두 "브랜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우선 저자는 "우수한 브랜드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이에는 더 이상 강조가 식상할 만큼 유명한 사례로서 애플이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좀 신기한 건, 1990년대 말만 해도 애플은 "고립적 브랜드. 타 제품과 호환이 안 되는 소수 마니아(이게 중요하죠)만을 위한 제품"으로 학계와 언론계에서 찍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보시다시피 성공을 위한 모범으로 아예 공인되고, "소수 마니마 운운"은, 시대를 앞서간 하위 세그멘테이션 전략이 지구를 제패한 대성공 모범"으로 180도 바뀌어 있습니다. 경영의 세계에서는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자발적 관심 유발은 아무 소용이 없는가?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기도 하지만, 캘빈 클라인의 유명한 광고("CK와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가 잘 말해 주듯, 효과적으로 소비자의 머리에 각인된 이미지는 언젠가 제 역할을 해 줄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선명한 이미지입니다. 추상적이어도 괜찮고("코크는 언제나 당신과 함께" 같은 건 아무 효용도 주지 않습니다만, 대단히 성공한 카피입니다), 기능적이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일관성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 책 2장에 나오는 에스티 로더의 브랜드 "오리진스"이 사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에스티 로더는 처음에 "오리진스"를 백화점 매장에서 다른 고급 브랜드와 경쟁하는 강력한 하위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좀 엉뚱하게도 "friendly fire"를 맞게 되는데, 시청자(따라서 소비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오프라 윈프리가 자기 쇼에서 "나는 욕실에서 '오리진스'를 쓴다"고 발언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지도 않은 "지원"은 업계에서 큰 행운으로 여겨지지만, 에스티 로더 측은 오히려 당혹해했습니다. 그들이 지향한 브랜드 이미지는 고급품 레벨에다 다양한 기능성의 스펙트럼을 지닌 제품군이었지만, 오프라의 저 발언은 "아로마 제품" 정도로 이 브랜드의 컨셉을 훼손(나아가 오염)시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죠. 이처럼 브랜드 전략이란, 일관성과 선명한 이미지의 각인이 그 핵심입니다. 일시적 판매 증가에 일희일비할 게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차별화 전략입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비슷비슷한 표준적 제품의 제조가 성공의 비결이었다면, 현대의 시장이 지난 시절과 확고한 선을 긋는 부분이 비로 이 대목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차별을 한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한 차별이냐, 또 어떻게 수행하는 차별화인가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저자는, 먼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라고 하는군요.
"당신이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리고 그 다음 질문은
"그게 시장(하위 세그먼트)에서 중요한가?"
"당신이 비교하는 대상(경쟁 상대)은 누구인가?"
라고 합니다. 참 정곡을 찌르는 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지셔닝에 대한 백 가지 정의, 천 가지 사례 열거보다 이 질문이 가르쳐 주는 바가 더 많습니다.

그런 고민을 통해 창출된 브랜드의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되는가? 여기에 대해서 여러 논의와 주장이 있지만, 이 책에서는 정평 있는 "인터브랜드 방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분야는 전통적으로, "추상적이고 구름 잡는 논의"라며 일부 기술만능론자에게 비판 받아 왔지만(현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안 이론적 발전이 워낙 현저했기 때문이죠), 예컨대 회계학에서도 영업권 같은 것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합니다. 인터브랜드 시스템은 "브랜드가 창출하는 이익"과 "브랜드의 강도"를 곱해서 종합 가치를 측정합니다. "이익"을 산출할 때에는, 과연 창출된 소득의 몇 퍼센트 정도가 브랜드의 기여인지를 염두에 둡니다. 향수는 95%, 호텔은 30% 정도가 해당 산업의 평균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강도"의 측정에 있어서는, 이익(현재, 잠재)과 위험을 동시에 낮추는 게 그 핵심 지표이자 지향점입니다. 보통 수익과 위험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인데, 브랜드 젼략은 이런 "상식에 반하는" 결과를 안겨 준다는 점에서 기업의 관심사가 됩니다.

이 책은 기존 마케팅 교과서에서 많이 강조한 개념들이 충실히 잘 정리되고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정통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편입니다. "브랜드 확장", " 마케팅 믹스  4P" 등등... 그런 중에서도 최신의 사례를 소개하고, 이를 실감나는 서술과 유기적인 설명을 통해 독자의 머리에 오래 남게 하는 게 두드러진 장점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호텔 종합 체인인 메리엇 그룹의 사례에서 처음 들어보거나 배우는 게 많았습니다. 서울 강터에도 있는 JW 브랜드가 그런 전략적 지향점을 지니는 줄은 처음 알았고요. 시계로 유명한 불가리 브랜드가 벌써 이 기업에 넘어간 사실도 처음 접했습니다. 여러 모로 유익했지만. 다만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도 발견되는데요, 이를테면 P&G의 사례에서, 지나치게 많은 컨셉의 창출로 인해 오히려 총 점유율이 줄어든 결과를 지적합니다만, 과연 어디까지가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며 어디부터가 그 초과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 설명은 없습니다(그저 결과론이죠). 또한, 21세기 폭스 사의 사명 변경은 오히려 브랜드 고수 전략의 예로 들어져야 맞습니다. 이름이 바뀐 건 루퍼트 머독이 새로 만든 모회사이며(따라서, "바뀌었다"고도 할 수 없죠), 영화 제작사는 아직 "20세기 폭스" 그대로입니다. 고민고민 끝에 원 명칭을 유지한 경우인데, 사실 모회사의 작명이 더 비판 받는 사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수수 할아버지
곽영미 지음, 남성훈 그림 / 다섯수레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별의 문제는 어느 나라 어느 공동체에서나 심각한 이슈입니다. 사람을 그 인격과 능력에 따른 기준으로만 평가해야지, 종교, 피부색, 외모, 국적 따위로 편가름을 한다면, 그 국가나 집단은 발전을 이룰 수가 없고, 차별을 하는 사람이나 차별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결과를 빚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어린이들에게 "차별이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를 가르칩니다. 설사 이 가르침이, 학교를 졸업한 후는 물론, 심지어 학교 현장에서도 잘 실천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를 어려서부터 그 성원들에게 가르치는 공동체는, 그 먼 장래를 내다볼 때 밝은 비전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우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만큼 오랜 기간 동안 단일 민족 단일 국가를 이루고 살아 왔습니다. 비교적 영토에 늦게 편입되거나, 그 경계와 소속이 불명확했던 이유로 차별을 받은 지역도 있고, 정변의 발생이나 기도 때문에 차별을 (부당하게) 받은 받은 곳도 있습니다. 허나, 그 어느 지역도 고려, 조선, 한국이라는 소속감이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고(중요한 문제입니다. 안 그런 나라도 있으니까요), 부정당한 적도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족 상잔과 분단은 현재진행형으로 아직도 전 구성원에게 깊은 상처를 안기고 있죠.

한때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들이 있습니다. 과거 체제 경쟁이 심할 때에는 북에서 넘어 온 이들을 가리켜,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귀순자, 귀순 용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체제 경쟁이 남측의 완승으로 끝난 후에는,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 붕괴되어 버린 북에서 넘어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배려와 주목을 하지 못한 채 그저 난민에 준하는 신분으로 다루게만 되었죠. 이들을 총칭하는 게 "탈북자"라는 이름입니다. "탈북자"와 "귀순자" 사이에는 엄청난 의미의 갭이 존재하며, 그들을 바라보거나 대우하는 온기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동화의 주인공은 "나", 민호, 건이 등 삼총사입니다. 그리고 이들 앞에 낯설고 적대적인 분위기로 등장한, 왠지 싸움 잘 할 것 같은 정체불명의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 집에서 옥수수를 키우는데, 다른 작물도 아니고 보기 드문 옥수수를 키운다는 것부터가 왠지 마음에 안 듭니다. 어느 날 "나"는, 이 할아버지가 북한 사투리를 쓰고, 수상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걸 엿듭습니다. "나"는 그러잖아도 수상해 보였던 이 할아버지가 간첩이라고 확신한 후, 간첩 체포에 대한 포상금이 5억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마음이 팔려, 명탐정 코난과 꼬마 탐정단이라도 된 양 삼총사와 열심히 작전(?)에 몰두합니다.

옥수수 할아버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자신의 친할아버지도 계십니다. "나"는 전직 경찰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이 문제를 상의합니다. 할아버지는 코웃음을 치며 "아무나 함부로 신고하면 감옥 가는 수도 있단다!"며 주의를 줍니다. 하지만 "나"는, 원하는 장난감은 마음대로 다 살 수 있는 포상금 5억에 정신이 팔려, 예전(나중에 밝혀집니다)에 공고되었던 "간첩 의심자 사항"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등, 수상한 옥수수 할아버지를 간첩으로 찍고 신고할 마음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윽고 3총사는 옥수수 할아버지를 감시하던 중 드디어 일을 내고 마는데요...

이 동화는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합니다. 어느 탈북자 노인이, 북에 두고 온 손자가 너무 보고 싶어, 동네 유치원에 들어왔다가 건조물 무단 침입 혐의로 입건된 사실에서 창작 동기를 얻었습니다. 한국의 노인들이라면 길에 지나가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도 머리를 쓰다듬는 단순한 표현마저 삼가거나 자제하고, 자기 용무에 주의를 쏟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남북 간의 이질화가 여러 모로 위험 수위까지 육박한 현실인데, 이런 정서적 반응이나 표현까지도 어쩌면 이미 선을 넘어 버려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표출이 범죄로 오인되는 당혹스러운 사건도 이처럼 생깁니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탈북자는 물론 새터민마저도 차별용어다. 우리 같은 남한 원거주자는 그럼 헌터민이라고 해야 맞을까?'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차별을 하는 주체마저도 그 차별행위로 인해 자신을 특정 틀에 가두는 모순을 초래한다는, 아주 날카로운 지적으로도 들립니다. 남성훈 선생의 따스하고 섬세한 그림이 돋보이는 책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정 - 행복과 불행은 어디서, 어떻게 교차하는가
문지현 지음 / 작은씨앗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400페이지에 달하는, 대단히 두꺼운 책입니다. 요즘 이른바 힐링을 해 준다는 책도 많이 나와 있고, 현대인 사이에서 나날이 증가하는 정신병에 대한 증상 소개, 처방 제시를 하는 책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책들 중에는, 저자가 마치 우월자의 입장에서 그런 환자들을 내려다 보는 시선으로 쓰여진 책도 있고, 힐링을 한다면서 현실에서 잘 통하지 않는 덕담, 공론만 잔뜩 늘어놓는 책도 있었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첫째 사례가 많고 그에 따른 진단과 처방 제시도 따라서 많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저자의 어투가 대단히 친절하고 공감 지향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논의가 성의있게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어떤 책은 사례를 많이 제시해 놓고도 결말을 무책임하게 지어버리기도 합니다(빈약하게 얼버무리거나). 이 책은, 사례를 자세히 적어 놓고, 챕터를 일단 거기에서 끊습니다. 이러면 독자는 그 환자에 대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결함 가득한 성격을 지니게 되었을까? 그 해법은 무엇일까? 잠시라도 이런 간격을 가지면, 그 다음 챕터에 이어지는 저자의 진단이 보다 머리에 잘 들어오고, 이미 (대략이나마) 형성된 자신의 생각 틀을 통해 저자의 사고를 보다 적극적으로(혹은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장에서는 "죄책감"을 다룹니다. 요즘 흔히 거론되는 "사이코패스" 타입이 집중 소개됩니다. 안와전두엽의 손상은, 뇌에서 금기와 통제를 관장하는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른바 "가성 사이코패스" 환자로서, "진성 사이코패스" 유형과 거의 같은 행동 유형을 보입니다. 보통 어렸을 때 사랑을 받지 못해 전두엽 부분이 잘 발달하지 못한 자가 이런 불행한 운명을 맞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몇 년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종석 사건 역시, 성장 과정에서는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범인을 지속적으로 따돌리고 학대에 가까운 차별을 가한 그 주변의 행태가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사회적 보완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기야 집단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일에는 전혀 죄책감을 안 느끼는 이들도 있으니, 인격의 반사회성을 굳이 전두엽 손상이라는 외적 팩터에만 돌릴 것도 없습니다. 언제나 "가성"보다는 "진성"이 더 위험한 법이니까요.

중요한 건, 죄책감이 지나쳐도 망상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 등은 범죄로 의율하면 되지만(이게 바람직한 형사정책인지는 논외로 하구요), 죄책감이 지나쳐서 대인 관계에 지장을 받는 건 평범한 이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흔하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희진씨(이름은 물론 다 가명입니다)처럼, 잘못이 없거나 경미한 쪽에서 오히려 더 죄책감을 가지는 일이 흔합니다. 천성이 뻔뻔스럽고 어려서부터 사랑을 못 받거나, 사회가 제 기대대로 자신에게 사랑을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는 발달장애를 가진 인간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도 오히려 남이 자신에게 죄책감을 갖길 기대합니다.

"연주씨"의 사례는, 어찌 보면 간단한 심적 자세의 전환과 마음가짐이, 이런 마음의 장애를 처리하는 데에는 대단한 지혜가 될 수 있다는 걸 말해 줍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다루는 사람입니다. 이 챕터 뿐 아니라, 이 책의 모든 장은 결국 "어떻게 하면 마음을 잘 다스려서, 공연한 정력 소모로부터 나를 해방시키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의 저자가 이처럼 환자들에게 다 가명을 붙여 신상을 보호함(그건 저자로서 당연하죠)과 동시에, 일일이 "~씨"를 붙여가면서 최대한의 공감과 배려,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 책에는 연주씨, 희진씨 처럼 슬기롭게 "병" 혹은 감정 장애를 극복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불행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해서도, 마치 죄인이 응보를 받았다거나 나보다 못한 열등분자를 내려다 보는 (비뚤어진)쾌감을 깔면서 대하지 않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분노"를 서술한 두 번째 챕터도 곱새길 내용이 많았습니다. 심리학 개론에서 으레 다루는 내용이지만(프로이트의 창안 개념이니 당연하죠?), 억압(repression)과 억제(suppression)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지현 박사님은 차분하고 친절한 어조로, 왜 억압하지 않고 억제를 해야 하는지, 마치 보모나 선생님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두 개념이 늘 헷갈렸는데, 이 책의 이 장을 읽고 나서는 확실하게 머리에 자리잡더군요.

이 챕터에는 유독 불행한 인생이 많이 소개됩니다. 주제가 "분노'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려서 불행하게 자랐든, 정반대로 너무 과잉보호를 받고 자라서 가정이라는 둥지만 벗어나면 무능, 감정 조절 장애로 도통 적응을 못 하는 처지이건 간에, 성인이 되면 알아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른이 되어서도 이런 문제를 타인에게 상담을 받아야 하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을 우리가 실제로 동정어린 눈으로 잘 보지는 않습니다. 유독 이 책은, 이들에 대해 기능적이면서도 동조적인 태도로 접근하기 때문에, 독자도 읽어 나가면서 "저런저런, 어쩜 좋아. 뭔가 해결책이?" 같은 긍정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됩니다.

슬품과 우울, 두려움, 불안, 트라우마,.... 이 모든 것에 공통된 처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피하지 말고 마주 보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향해 어차피 자기 리듬으로 직진해 오고 있습니다. 이를 회피하여 눈을 감아 버리면, 그 문제는 우리가 대비하지 않은 사이에 우리에데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비를 해도 그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지만, 무방비상태에서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같은 문제가 우리에게 같은 방식으로 상처릃 주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