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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스캔 비전 역설계 - 첨단 공간 정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강태욱 지음 / CIR(씨아이알) / 2017년 11월
평점 :
진리를
알아가는 방법에는 크게 보아 연역과 귀납 두 가지가 있다고 서양 철학에서는 강조합니다. 근본 이치와 얼개를 알고 구체적인
각론으로 진입하는 길, 그와는 반대로 개별 현상(들)을 먼저 알고 나서 그 안에 숨은 이치를 더듬어가는 길, 대개 인간의 지성은 이
두 가지 방법론 중 하나를 골라 목표을 완수하려 듭니다.
역설계는
이미 완성된 3차원 조형물을 스캔하여, 그로부터 설계 원 도면을 거꾸로 추론하는 기법입니다. 이미 1980년대부터 솜씨 좋은
엔지니어들은 (아직 그 제조 기법이 알려지지 않은) 경쟁사의 공산품 완제품을 입수, 분해하여 그 고유의 노하우를 알아내는 시도를
했고, 경우에 따라 실정법에 저촉되는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그런 건 아니고, 건설,
건축, 기계, 해양 플랜트 등 다양한 거대 구축물에서, 그 외관을 정밀히 스캔하여 비슷한 구조를 재현할 수 있는 도면을 작성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자세히 다룹니다.
이미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되는 부문이 많기에 이제는 뭐 "당연한 기술" 정도로 여기는 분들도 많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창 완성되어
가는 중인(발전의 여지가 많은) 분야라서,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거나 업무 관련하여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은 이들이 또 유별나게
버닝해 대는 모습이 주변에서 눈에 자주 띌 겁니다. 회사에서 내 준 "숙제" 때문에 골머리가 아픈 분들도 그저 귀동냥으로 배우는
수준 말고 뭔가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할 때 바로 펴들고 의존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당장 저 개인한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간절히 구하면 수가 생긴다고 필요할 때 용케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여겼습니다.
요즘
하도 LiDAR 라이다 해 대어서 무슨 뜻인지 아는 분들도 많겠습니다. 제가 10일 전쯤에 리뷰한 <주거혁명
2030>이라는 책에서도 이 신기술의 적용 대목이 잠시 언급되는데, 쉽게 말해 레이저(laser)로 쏘는
레이더(radar)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레이더라는 게 2차 대전 당시 적군 전투기, 폭격기의 출현을 마이크로파 반사를 통해 미리
알아내는 장치이듯, 이 라이다는 레이저를 쏘아 물체의 여러 특성을 알아내는 원리, 장치를 가리킵니다. 단, 레이저가 물체의
표면을 뚫지는 못하므로, 이 3차원 스캔비전에는 그 외에 엑스레이(폭 넓게 방사선), 전자기파, 와류 등을 적용하여 내부
구조까지를 알아내게 합니다. 까다로운 건 직육면체 형태의 모듈이 아니라 자유곡면 꼴을 지닌 실린더 같은 것인데, 이런 대중서까지
출간되어 문외한인 독자들에게 설명을 하는 시대라면, 이미 해당 분야의 기술이 표준화하여 산업계에 널리 통용되는 단계라는 것도 다
짐작이 가능할 겁니다. 참 편리하고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만, 너무 발전 속도가 빨라 부작용이나 생기지 않을지 우려스러운 바도
있습니다.
"정합"이라는 개념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책 읽으면서 저 개인적으로 대뜸 연상된 건 어느 초현실주의 대가의 그림이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가
1954년에 그린 유명한 <십자가의 처형>을 보면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가 다소 기이한 형태로 시각화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평면에다 입체감을 표현하는 방법은 원근법 등 여러 (좀 구차한) 수단이 고안되어 사용되었으나, 달리는 새롭게 4차원의
도시(圖示)를 그의 작품에서 시도한 건데요. 스캔 데이터 원본을 우리 눈으로 보면 마치 맥락 없는 평면 이미지의 중첩 정도로만
인식됩니다. 이걸 입체 시야로 보정해 주는 프로세스가 바로 정합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정합은 영어로
registration이라고 하는데, 정합의 원리야 어차피 물리학과 공학의 접합이므로 체계적으로 지식을 차근차근 습득하면 이해는
되겠으나, 이런 원리를 (하고많은) 단어 중에 하필 저 어휘로 이름 붙인 영어의 숨은 이치가 훨씬 어렵게 느껴지는군요.
레지스트레이션이라니.
정합의 핵심
아이디어는, 참 제가 이 책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는데, 스캔을 한 여러 이미지들에서 공통 3차원 좌표를 추출해 낸다고
합니다, 일단은요. 그 다음에, 그 숱한 좌표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연결하는 "좌표 변환 행렬"을 찾는 프로그램이 바로
"정합"이라는 겁니다(그러니 레지스트레이션이겠죠). 사실 이런 생각 자체는 깔끔하긴 하지만 아주 기발하다거나 창의적이진 않습니다.
연관 기술이 워낙 발전된 형편이고, 특히 초정밀 스캔 기법이 발전해야 의미 있는 좌표 추출이 가능한 법이니 일단은 그 분야에
빚진 바가 매우 큽니다. 마치 머신 러닝에서 시스템에 많은 자료를 인풋하고 그로부터 스키마를 스스로 습득해 내게 하는 구조와도
닮았다고 할까요. 물론 뭔지도 모르면서 기계에 일만 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기계의 연산 노가다를 통해 핵심 알고리즘을
뽑아낸다는 주체적 노력이 분명히 개입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 주는 공통 요소 행렬를 추출하여 다른 분야에도 응용하는 기법은 경제학에서도 널리 쓰입니다. 예컨대 산업연관론에서 자주
논의되는 투입계수행렬, 생산유발계수 행렬 등이 그것이죠. 행렬의 계산(주로 곱셈입니다만)에서 서로 곱해지는 앞과 뒤의 열(컬럼)
수와 행(로우) 수가 맞지 않으면 아예 연산될 자격이 없습니다. 원 스캔 자료에서 얻은 SCS는 (앞 앞 문단에서 말한 대로)
LCS로 변환되어야 (마치 달리의 기괴한 그림처럼) 이것저것이 겹쳐 보이지 않는 말끔한 3차원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걸
지도상에서 조감하기에 적합한 이미지로 다시 바꾸려면 WCS로 변환해 준다고 하네요. 결국은 변환에 필요한 모든 과정에 행렬 연산의
기여가 핵심적입니다.
동차좌표계 행렬은 4x4 규격이 대부분입니다. 이 행렬은 다시 부행렬 네 개로 나눌 수 있는데, 책에는 부행렬들의 성격을 텍스트로만 지칭하고 있으나 제가 다시 그려 보자면
이게
이렇게
나눠진다는 소립니다. 이 중 빨강색 부행렬이 크기, 반사, 전단, 회전 기능을 대변하고, 청보라색은 이동 변환, 하늘색은
동차행렬 표현(형식적 기능입니다. 규격이 안 맞으면 곱셈이 안 되니까), 핑크색은 전체 크기 변환 기능을 수행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건축 분야에서 파괴공학이라는 게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출범 당시에는 일상의 건축물을 부작용이나 공해, 환경 파괴 등의
악영향 없이 가장 적은 노력만 들여 이룰 것으로 각광받았으나, 현재도 그 정도까지의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헌데
적어도 역설계 섹터에서는 이처럼 편리하고, 다양한 과제를 총괄적으로 해결가능한 범용 기술이 출현했으니 그저 놀랄 뿐입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MLS는 아직 물 속을 스캔하지는 못합니다. 허나 곧 다른 기술의 접목으로 이 기술적 난제도 해결 가능하리라는
전망이죠. 제가 가장 눈여겨 본 대목 중 하나는 MLS를 이용해 가상 튜어에 필요한 3차원 맵을 생성할 수도 있다는 암시였습니다.
이 분야 기술이 반드시 건축 산업에 한정된 게 아니라, 각종 엔터테인먼트, 게임 등의 증강 현실 기법에 응용될 여지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
간단한 수식 하나가 이처럼 광대한 기법을 이루는 기반이 되어 표면 속에 숨은 세계를 인간의 눈에 재현해 보일 줄이야 아마 창안자
자신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최소 세 개의 타깃이 찍혀야 정합이 가능하고, 거울 같은 표면은 별도 스프레이 처리가
필요하며, 타깃이 부족하면 체커 보드 여럿을 임의로 마련하라는 주의사항도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후처리에도 역시 윗사람들에게
보여 줄 만한 말끔한 pt가 되려면 경험자의 실전 팁을 들어야 안심이 되는데, 벡터라이징된 폴리라인은 돌출처리를 통해
곡면형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한 줄 설명에 그간 막혔던 체증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알기 쉽고 친절한, 초보자를 위한 유익한
안내서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