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생태계 - 생성-성장-소멸-재생성 순환 체계 단절로 침하되고 있는
NEAR재단 엮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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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이 되어서는 안 되고, 약자나 성장 유력 주자나 자신만의 고유한 몫을 추구하며 전체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근래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또 이제는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이런 조화로운 생존의 도모 옹호가 대세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무분별하게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거나, 재벌 독과점의 풍조를 예찬하는 풍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허나 어떻게 해야 "생태계의 조화로운 조성"이 가능한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여전히 입장들이 엇갈리며, 무난한 중론이 모아지기도 어려운 상황이죠.

저자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 본디 한국처럼 정부 주도의 강력한 드라이브로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나라에서는, 정책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각 단계의 사이클도 짧아서 기존 생태계에 주는 충격도 크다....." 그러나 개발과 성장이라는 과실의 수확이 이 모든 부작용과 충격을 어느 정도는 흡수해 준다며 그간의 고도 성장이 이뤄 온 긍정적 효과에 의지할 수 있었던 게 과거상이라고 정리합니다. 현재는 이런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며, ".. 노동 생산성과 자본의 한계 효율이 급속도로 낮아지는 지금" 잠재적인 성장률이란 거의 바닥까지 떨어졌으며, 이런 충격파는 생태계에 대해 거의 병리적인 상처를 남기고 선순환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만든다고 저자들은 단언합니다. (p18)

저자들은 어느 나라의 경제이건, 경제 생태계 단독으로 조화로운 생리와 성장, 유지가 기대될 수는 없고, 정치 생태계, 사회 생태계가 두루 그 곁에서 건강한 호흡과 대사를 이뤄야 경제 역시 건강한 작용 유지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허나 한국 사회는 이마저도 낙관하기 힘들며, "과잉 정치, 이념화, 담합 구조의 덫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의 무한 루프를 그저 뱅뱅 돌 뿐이고,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나쁜 생리에만 적응한 관료제의 병폐까지 더해져 국가의 장기 과제를 소신껏 추진할 수 없는 풍토까지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거시경제가 건전하고 참여 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운용되려면 신 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해야 합니다. 허나 기업은 더 이상 R&D를 놓고 역량을 쏟아 붓는 모험, 결단을 선호하지 않으며, 지난시절 고 이병철 회장 등이 보엿던 미래에의 통찰과 소통은 이제 재벌 총수들에게서 좀처럼 찾기 힘든 미덕이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의 추격도 무섭게 이뤄지는데, 이미 중국은 우리를 추격해 온다기보다 첨단 산업 분야에서조차 몇 발짝 앞서가는 세계의 거인, 선두주자로 위상을 바꾼 지 오래입니다. 한국은 재래식 공산품 시장에서도 중국산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고, 신산업 동력 역시 그들에 선수를 놓쳐 장래의 도약 발판 마련도 기대하기 힘든 판입니다.

노동 시장 역시 경직성이 개탄스러운 실정입니다. 왜 노동 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과도하게 높은지는, 저자들은 크게 두 가지 요인을 짚습니다. 하나는 생활에 필요한 필수 기본 지줄 비용의 비중이 꽤 높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안전망의 질적 양적 기능이 미비하기에 임금에서라도 넉넉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려는 노동자층의 욕구가 교섭 과정에서 전투적 대립상을 소모적으로 도출한다는 분석입니다. 타당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불안이 사회 전체를 좀먹다 보니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저출산 국가가 되었는데,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과도한 출산을 억제하기 위해 3자녀 이상 가구에 대해 과태료까지 부과하던 규제를 떠올려 보면 실로 상전벽해의 감회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계 부채는 물론 우리뿐 아니라 미국도 심각하고, 어느 나라건 생애 소득 전체 전망을 고려치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아 일단 쓰고 보는 풍조는 경제 전체를 심각히 위협하는 불안 요인이 됩니다. 허나 한국은 전반적인 개인 소득 증대 가망이 희박해진 국면에서, 여전히 구조적 요인으로 가계 소비가 줄지 않고, 이른바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 생산, 유행 풍조를 봐도 짐작할 수 있듯 빚 내어 어렵사리 장만한 집이 언제 시한 폭탄으로 변해 중산층과 서민의 살림을 벼랑으로 몰지도 매우 불투명한 국면입니다.

1990년대부터 한국 정부는 "이제 내수도 넉넉히 키워야 경제의 지속적이고 건실한 성장을 이끌 수 있다"며 정책의 기본 방향 전환을 암시했습니다. 또 중국 경제가 무한한 잠재력을 유지할 수 있는 동인은 바로 든든한 인구 집단 덕에 활기가 줄지 않는 안정적 내수 시장의 확보로 기업들이 마음 놓고 사업을 영위할 수 있다는 환경적 여건에도 크게 기대는 면이 있죠. 그러나 한국처럼 국토가 좁고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더 인구가 많고 더 부존 팩터가 넉넉히 포진한 다른 국민경제에 수출을 늘려 부가가치를 해외에서 창출, 유입해야 지속적이고 질적 우위에 선 건전한 경제 사이클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말합니다. "일본도 과거에 비교적 큰 인구 볼륨을 기반으로 내수에 기댄 구조 걔혁을 꾀했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듯 "잃어버린 20년"의 거대한 침체와 상흔에서 헤어날 줄을 모릅니다. 우리도 똑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습니다.

자연 생태계에도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의 3각 구조가 존재하듯, 경제 생태계 역시 생산과 소비 못지 않게 "분해"의 기능을 원활히 이뤄 상품과 서비스의 유통, 순환이 경화, 교착 상태를 피할 수 있게 어떤 장치적 담보가 이뤄져야 합니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금융 기관의 원활한 작동이 이를 적절히 대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헌데 한국 경제에서 가장 경쟁력이 취약한 섹터 중 하나가 금융 영역이다 보니, 이런 기능마저 아직까지는 소기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은행으로부터 대출한 원금은커녕 이자도 제대로 변제 못 하는 한계 기업은 그 수효가 줄지 않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 역시 이를 필터하고 유효한 모니터링, 심사를 벌일 역량이 대단히 미비합니다.

금융 기관 본연의 소명은, 투자자로부터 여유 자금을 끌어들여, 그들에게 소정의 과실과 성과를 약속하고, 이를 현장에서 간절히 자금 수혈을 갈구하는 유망 기업들에게 적기 적시에 수혈하는 중개자의 역할입니다. 과거에는 대출을 정계의 압력으로 특정 대기업에 몰아다주는 악성 풍조가 뿌리뽑히지 않았으며, 현재는 이런 폐습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대신 대기업들이 사내에 쌓아둔 유보금을 도통 시중에 풀지를 않아 성장의 과실을 모두가 누리지 못하는 악순환의 한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금융 기관 역시 착실히 성장할 기업과 그렇지 않고 흉내만 내다가 도태될 부실 단위를 잘 준별하지 못하여, 악성 돌연변이(좀비 기업)의 생태계 출현을 방조하다시피 합니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성장과 쇄신을 더욱 위협하는 미래 인자는 바로 "핀테크 산업"의 도전인데, 구태의연한 영업방식과 과거 패턴에만 의존한 전략 기획으로 이 거센 미래의 변동 요인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어떻게 해야 한국의 경제가 다시 과거의 활력을 찾고, 서민과 중산층, 대기업 모두가 공존 공생하는 양질의 속성을 재 장착하겠습니까? 저자들은 이 책에서 많은 대안을 내놓습니다만, 그 중 하나가 수천 수만 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인재의 육성과 지원책입니다. 과거에도 정부와 기업은 성실한 인적 자원, 특급 엔지니어 후보군을 우대하고 그 감별에 정성을 쏟아 왔습니다. 대개 과거에는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기업 전략을 카피하거나, 심지어는 책략을 통해 기술을 훔치는 방식으로 "추격형 성장"을 꾀했습니다. 이런 방식을 현재는 중국이 답습하는 셈인데, 중국의 재래식 산업 구조가 지닌 확고한 경쟁력과 국가 주도의 영리한 전술 구사를 우리가 대응, 감당해 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런 방식이 미래에 더 이상 먹혀들지도 않는다는 데에 나라 안팎에서 거의 합의가 이뤄진 편입니다. 언제까지 과거의 향수에 얽매어 소중한 미래의 비전을 도외시하겠습니까?

미국이 제조업 경쟁력을 잃고서도 아직 세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건 "일찍이 세상에 없던 아이템과 서비스"를 무수히 만들어내는 그들의 창의성에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그간 축적된 활발한 정치적 에너지를 산업과 핟문으로 방향 전환하여, 혁신과 창의로서 세계의 도전에 맞서야 합니다. 그것이 오염과 방해 없이 맑은 산소를 마시며 건전한 재생산을 무한 담보, 가동할 수 있는 생태계 유지의 근본 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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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구조 교과서 - ICBM · 미사일 방어 체계 · 핵탄두 미사일의 메커니즘 해설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가지 도시키 지음, 신찬.박종성 옮김 / 보누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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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달은 그 도약 단계가 하나하나 다 필연인 듯해도 면밀히 살펴보면 기이하거나 언밸런스인 구석이 많습니다. 핵무기만 해도, 인간이 더 평화롭고 온순한 기질을 지닌 종이었다면, 더 긴요한 쓰임새를 지닌 기술과 장치보다 훨씬 늦게 출현했을 겁니다. 아무튼 정신적 성숙도에 비해 너무 일찍 등장한 핵무기 때문에 인류는 20세기 내내 절멸의 공포와 히스테리에 시달렸고, 이 핵무기 못지 않게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게 바로 미사일입니다.

아무리 폭발력, 파괴력이 강력해도 목표물인 적국에 이를 "배달"하지 못하면 오히려 자살골이나 먹기에 좋을 뿐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고도 신속하게 적을 타격할 수 있는 비행 매체, 수단이 탁월해야 파괴력 증강의 연구 개발 그 보람(?)이 생깁니다. 이런 저주받은 기술은 문명 사회로부터 멀찌감치 치워져야 합당하겠습니다만, 자측을 노리는 상대방이 섬뜩한 칼을 가는 중인데 나부터 먼저 평화를 실현하자며 가진 무기를 다 내려놓는다면 최악의 불의에 자진해서 부역하겠다는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유 불문 근거 무시하고 무작정 평화를 외치는 태도는 그 저의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제공권을 장악한 후 브리튼 섬에 상륙하려는 의도가 매번 실패하자 히틀러는 다른 꾀를 냈습니다. 파일럿이나 비행체를 통하지 않고 유럽 대륙에서 직접 포탄을 쏴 해협 건너에 떨어지게 하자는 발상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로켓 기술을 보유했던 독일이었던지라 이 미친 착상이 탁상공론으로 그치지 않고 집행 단계에까지 이르러 실제로 V2 등이 영국 본토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단지, 파산 직전이었던 나치 정권 재정으로 더 이상 이 비싼 무기의 제조와 운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성공, 소련군의 베를린 진공으로 전쟁 수행의 본진이 털리고서는 모두가 한 줌 물거품으로 사라졌습니다.

이 책에도 자세히 나오듯, 전후 소련이 급속도로 핵무장에 성공하고 동유럽 장악을 위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베를린 점령 후 독일 미사일 기술진을 대거 빼돌려 자국 전력 강화에 전용할 수 있어서입니다. 사실 이 과정이 비밀리에 추진되기도 했고, 일본이나 미국에서 반공 프로파간다로 널리 활용하기도 했기에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는데, 이런 공신력 있는 책에도 언급이 되거니와 소련 붕괴 후 봉인해제된 기밀 문서를 봐도 대개 맞았다는 게 판명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의 강경 드라이브를 도저히 쫓아갈 재간이 없어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를 선언하고 국제적 해빙 무드를 주도했습니다. 항복하려고 두 손 쳐든 게 만세 부른 꼴이 되었다고, 이 온화한 표정에 세련된 매너를 지닌 중년 신사가 우아한 그 부인과 함께 세계 무대를 누비면서 군축과 핵확산 자제 메시지를 전파하고 다니자 미디어에서는 연일 띄우기와 칭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세계적 군축 노력이 (이때 한번 탄력을 받은 뒤로) 지속되었다면 지금쯤은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을 텐데, 어째 긴장도 고조되고 갈등이 더욱 통제불능 국면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p23을 보면 2013년(아마 이 책 원판이 저술된 시점이겠죠?) 기준 17,265발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핵탄두가 존재한다고 합니다(책 저 뒤편의 p89도 함께 참조하십시오).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은, 여러 군데의 목표 지점을 돌아다니며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놀라운 유도 성능의 미사일(다탄두 각개 재돌입 방식)에 의해 운반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1990년대 초 세계인들이 충격을 받은 건, 베트남 전 종전 이래 대규모 전쟁 없이 오랜 기간을 지내 온 터에 그간 얼마나 첨단 군사 기술이 발전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다가 느닷 SF 영화처럼 전개되는 각종 신무기들의 활약상을 보고 일종의 "컬처 쇼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영상 유도를 기본 원리로 삼는 AGM-65 매버릭(p16)은, 미사일 앞부분에 부착된 소형 카메라를 통해, 본부에서 조이스틱 조작만으로 자유로이 작동 가능하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이미 1970년대 전반인 제4차 중동전쟁 당시에 이 기술의 원형이 실증 효과를 보았다는군요. 이 기술의 가장 진화된 방식을 적용한 무기는 현재 일본이 다량으로 보유 중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이치는 인간의 모든 기술적 문명을 일깨우는 스승입니다. 방울뱀은 일종의 적외선 센서인 "피트"를 가지고 먹잇감을 쫓는데(p13), 이에 착안하여 고안한 장치입니다. 나쁜 기후 등의 이유로 가시광선 등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어려울 때, 이 적외선 유도 장치는 타격 목표의 정확한 형태와 위치를 알아내게 돕습니다. 이 가공할 무기에 자신의 이름과 개성적인 생리, 신체 구조가 참고, 모방되었다는 걸 알면 방울뱀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혹은 자연으로부터 만물의 궁극적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론을 주창한 남송 때의 유학자 주희 같으면 무슨 평을 내놓았을지도 말이죠.

센서가 발달하다 보니 제트엔진의 배기, 기체의 열도 탐지가 가능해져, 모든 정보를 영상으로 "해석, 전송"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책에서는 "전방위 타격"이 가능해졌음을 지적하는데, 그만큼 결정권자의 사려 깊음보다 일시적 변덕과 감정에 의해 비극이 초래될 여지가 많아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 인터넷이나 AI 기기의 발달이 집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게 4차 산업혁명이라고들 하는데, 그보다 앞서 센서 영역의 대혁신이 이 모든 파장을 앞서 예비했다고 봐야 맞겠습니다.

중국은 독재 시스템이 지배하는 국가인데다 전통적으로 군부의 입김이 막강한 권력 구조입니다. 이런 중국도 아직은 미국의 엄청난 군사력에 대적할 마음을 못 품는데, 전력상 중요 열위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지스함 단위에서의 현저한 낙후상입니다. 이 책 곳곳에서 강조되는 게 프랑스제 미사일 "엑조세"의 탁월한 성능인데, p58뿐 아니라 저 뒤 p78에 보면 아직도 국제 무기 시장에서 여전한 명성을 떨치는, 프랑스 군수산업계에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하는 아이템이라고 합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측이 이런 순항 미사일의 위력에 별 마땅한 대응책이 없음을 뒤늦게 깨닫고(프랑스가 참 얍삽한 게, 당시 영국 엿좀 먹으라고 일부러 아르헨티나에 무기를 팔았겠죠ㅋ), 이 필요성은 소련 측애서 대함(對艦) 미사일 증강 기미를 보이자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미국이 집중 연구한 분야라고 하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그 본격 개발은 포클랜드 전쟁이 안긴 충격파 때문입니다(결국 아르헨티나가 지긴 했어도 말이죠).

좋은 책은, 첨단 기기의 큰 흐름, 발전상을 그저 기술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일관된 맥을 짚어 보여 준다는 게 장점입니다(물론 그런 "맥"은 저자의 개인적 관점이기도 하기에 독자는 언제나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마땅하겠지만). 냉전 시대 소련은 내내 핵탄두의 폭발력 증강에 초점을 두었는데, 이는 타격의 정확도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반면 미국은 폭격기의 질적 양적 성능에서 우위를 보였으므로 미사일 개발에는 큰 관심이 없다가, 우리가 잘 아는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로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하였고, 조준과 타격의 정확도 면에서 소련이 범접 못 할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아무리 폭발력을 증강시킨다 해도, 더 빠른 선제공격으로 소련 측의 마사일 저장소(=사일로)를 타격, 무력화시킨다면 이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됩니다. 해서 소련 측은 고정된 지점에 무기를 배치하지 않고, 열차 등으로 이리저리 운반해 가며 미사일을 쏘는 "자주식 시스템"을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이것과 직접 연관은 없고 시간적 배경도 소련 붕괴 후 러시아를 상정하긴 했지만, 드림웍스 제작 배급 작품, 니콜 키드먼 등이 주연한 <피스메이커>를 보면 열차에 실려 어딘가를 향하는 러시아산 핵무기가 유독 인상깊은 피처로 다가오기도 했죠. 또 냉전시대에 개봉된 <007 옥토퍼시>에도 "열차에 실린 핵무기"의 저지가 작품의 주된 스토리라인이었습니다.

구 소련이 어떻게 무기 체계를 발전시켰는지는 현재의 북한 문제 난맥상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기술 개발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의 성취는 인민의 막대한 희생을 담보로 하여 이룬 것이므로 전혀 건강한 성격이 아니고, 이미 타국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얻어낸 노하우와 체계를 카피한 데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떤 독창의 산물도 못 됩니다. 스커드 미사일은 상온에서도 보존 가능한 액체 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데에 장점이 있는데, 북한이 채용한 미사일은 상온에서 기화되기 쉬운 연료라서 그간 미국의 추적을 쉽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주입이 오래 걸림). 그러나 최근 기술 개량으로 고체 연료 사용이 가능해졌고(이 책에는 이 사정이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미국에게 선제 타격의 틈을 주지 않고 바로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저자는 벌써 집필 시점에서 이 점을 예측하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단계입니다.

일본은 자국을 (넉넉히)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북한 측의 움직임에 신경이 쓰이겠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는 중국의 동향입니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의 영유를 놓고 중국은 언제든 "영토 탈환"을 위해 군사 작전을 시도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측의 대응 방안은 생략되었고, 중국 측에서 구사할 수 있는 여러 책략과 작전안들이 저자의 관점에서 설명되는데 이 대목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미사일 전력은 현재 그 보유국의 군사적 전력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설명력 높은 지표입니다. 어떤 나라가 어떤 성격의 미사일을 얼마나, 어떤 체계 안에 배치, 보유하는지는 그 국가의 군사 전략 향방을 점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미사일 이슈는 군사 영역에 국한한 게 아니라 국제 정치의 가장 하드하고 살벌한 얼굴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국제 정세의 긴박한 움직임 때문에 원치 않는 국민들도 뉴스를 통해 미사일 원리를 부지불식간에 이해하게 되는 착잡한 시국입니다. 허나 깨어있는 시민은 아는 게 또한 힘인 법이며, 사실을 정확히 안 후에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건전한 해법이 시민 사회로부터도 도출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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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 현대사 - 강철서신에서 뉴라이트까지
박찬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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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은 "민족 해방"의 약칭입니다. 민족 해방은 한때 반미 사조와 공산 혁명의 기치가 젊은이들을 휩쓸었던 중남미, 혹은 그외 제3세계에서 흔히 접하던 구호이자 표어이지만, 한국처럼 저리 간략히 연원 모를 두 알파벳 두문자로 약칭하는 예는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외국인에게 들려 주면 무슨 소린지 모를 것입니다. 허나 웬만큼 의식과 양심을 지닌, 특정 연령대 이상인 한국인들에게는 이 간단한 두 글자 안에 온갖 곡절과 사연이 모두 담긴 듯 다가오겠습니다.

1990년대 학번들만 해도 이 NL은 낯선 애크로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알긴 아는데 별로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경이원지의 대상이라고 할지. 그러나 80년대 학번 세대들께 반독재 투쟁이란 불가침의 성역이자 영원한 죄의식, 마음의 빚을 상기시키는 비밀의 주문이었듯, NL은 침노되어서는 안 될 최후의 요새이자 도덕성과 권위 가득한 비밀의 아지트처럼 여겨졌고, 때로는 외경을 넘어 공포감마저 자아내는 본산의 상징이었습니다. 1990년대는 시대의 풍조가,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만큼 180도로 달라졌기 때문에(투쟁에서 향락, 가벼운 감상과 소비), 따지고 보면 같은 캠퍼스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었던 두 세대가 정작 그 청춘기들의 색채에는 판이하게 다른 물을 들였다는 게 신기합니다.

NL로 한국 현대사 코드를 모두 설명할 수야 당연히 없겠지만, 또 현 문재인 대통령의 행적이나 신조를 두고 NL과 유의미한 연결을 짓는 건 다분히 무리이지만(세대가 다릅니다. 개인으로서 사후 공감을 할 수야 있겠지만), 여튼 비서실장부터 해서 1980년대 후반 전대협 의장 등 화려한 커리어를 지닌 인사들이 정권 핵심부에 대거 포진해 있으니, 이상하게도 시대의 대세가 전면 교체되었건만 아직도 음지에 계속 묻혀 있어야 할 것만 같은 이 NL에 대해, 쓴소리는 쓴소리대로, 온당한 재평가는 재평가대로 뭔가 이뤄져야만 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아주 포괄적이지는 않지만) 당시의 궤적과 현재의 자취를 이처럼 책 한 권으로 되짚어 보는 작업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 생각으론 이 정도 책의 세 배 분량이 할애되어야 온전한 조명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운동권 출신 인사(현재는 대부분 시민사회단체 중진들로 활약하는 이)들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 나름 큰 기대를 품고 "상경"하여 거물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만나 보면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차가운 대접에 환상이 깨어졌다는 말을 책이나 강연 등에서 여러 번 접합니다. 이 NL의 전성시대라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운동권 문화, 풍조"와는 너무도 다른 구조와 흐름이 지배했음을, 이 책을 읽고서야 바르게 상기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제 편할 대로 왜곡되어 정작 그 기억의 담지자마저 당혹스럽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서클(언더)의 종막"이라든가, 8대니 5대니 하는 "패밀리"들이 노선과 이념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은 마치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 혹은 그 반대편의 멘셰비키 파벌과의 살벌한 내부 투쟁을 연상케 합니다. 물론 칼과 총의 부림을 일삼는 난동이 아니라, 논리와 대의의 향방을 놓고 벌이는 일대 결전이지만 말입니다.

"일체의 종파주의를 금지한다." 사상의 자유와 분기, 진화, 발전은 다양한 입장의 차이를 인정할 때에만 아름다운 맹아와 결실이 가능한 법인데, 마치 북에서 김일성이 갑산파 독재를 확립할 때 쓰던 살벌한 구호 같아서 영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물론 그들 엘리트 지도부로서는 전두환 체제의 폭거와 극악한 탄압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단일 대오를 구축하여 투쟁 역량을 강화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겠으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여튼 관악 집(서울대 관악캠퍼스를 뜻합니다) 곳곳에서 벌어진, 운동 노선과 조국의 갈 길을 놓고 최고의 젊은 지성들이 집결하여 벌어진 논쟁과 고민이란 그 자체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책의 부제 중 한 어구로 쓰이기도 했지만,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 씨는 한때 NL의 정신적 지주 중 한 분으로 널리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랬던 분이 직접 북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에는 그 입장에 극적 선회가 이뤄져 찬반 양 진영에 큰 충격을 주었죠.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한데 박노해 시인의 경우도 "1990년대에 태어났다면 서태지가 되었을 것이다." 같은 발언을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이게 메시지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속에서 하는 바람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여튼 과거 혹심한 권위체제의 탄압 속에서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소중한 일생을 망치거나 귀한 몸 걸레짝이 될 각오를 하고(그 당시 책에 나오는 표현이더군요) 목숨 건 투쟁을 벌인 이들의 공적은 존중되어야 하며, 안기부의 칠성판과 써니텐 세트가 다 없어진 지금 맘 편하게 입만 갖고 할 수 있는 민주화 운동의 난이도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책에는 서강대 박홍 총장(당시)에 대해서도 긴 언급이 있습니다. 이분은 사실 1990년대 중반에 화제가 된 인물인데, 한겨레 등 진보 매체에서는 날마다 그의 발언을 놓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으며, 반대로 보수 언론에서는 구국의 소신파라며 열렬하게 칭송했죠. "주사파"라는 단어를 대중에게 코인시킨 계기로도 널리 알려졌는데, 책에서도 지적하듯 사노맹은 PD 계열이지 NL(그토록 대립하던)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단 팩트 인식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게 확실합니다. 이 박 총장의 당시 발언과 행적이 과연 보수진영에 도움이 되긴 했는지, 반대로 희화화와 풍자의 대상이 되어 이후 90년대 학번이 사회로 본격 편입한 후 좌편향하는 데 일조를 했는지는 살펴봐야 할 과제입니다. 당시에는 주로 서강대생들을 중심으로 "빠콩" 같은 멸칭이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는 등, 그리 호의적인 분위기가 못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첵에는 역사 공부의 텍스트로써 1980년대에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이후 1990년대에는 소위 "다현사"가 널리 읽히게 된 배경도 밝히고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만 <해방 전후사...>는 논문 모음이기 때문에 필자의 입장도 천차만별이라 어떤 일관된 관점이 부족합니다. 대신 독자가 알아서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지적인 맛이 있죠. 반면 다현사는 한 명의 저자가 선명한 주제를 제시해 가며 결론을 명확히 찍어 놓고 쓴 책이라서 "엘리트 중심이 아닌 대중적인 호응"을 얻어냈다는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었습니다.

이른바 "품성론" 분석도 지금 보면 흥미롭기 짝이 없습니다. 본디 (소위)주체사상에서 품성론이란 방계 논의나 여담에 지나지 않는데, 김일성에 대한 맹종을 강요하는 주체사상의 본론에는 시큰둥하던 이들이, 인간의 도리와 바른 범절, 의리를 중시하는 이 품성론에 대해서만은 열렬한 호응을 보내어서, 뜻하지 않게 NL의 세 확산에 도움이 되었다는 뒷이야기입니다. 오해에서 비롯하긴 했어도, 정말로 북에서 고안한 주체사상이 "풍성론"에 큰 방점을 찍은 품격 높고 포용적인 체계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마 북도 행복해지고 남에서 제한적으로 그에게 동조했던 이들도 훨씬 떳떳하고 뿌듯했을 텐데 말입니다.

NL과 PD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에서 벌어진 모 사건 과잉수사 이슈를 놓고, NL에서는 PD 측이 도와주지 않았다며 내내 서운함을 표시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조직문화를 놓고도, PD 쪽은 다분히 서유럽식 사민주의의 영향을 받았는데, NL은 한국적인(?) 의리와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투박하고 획일적인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특정 젊은 세대 전체를 휘감고 장악했던 이 두 사조와 (현재적) 실재가, 어떻게 발전적, 변증법적으로 화해와 통합을 이룰지, 아니면 과거의 미숙한 에고에 갇혀 시대에 뒤떨어져가며 사멸할지는 그들의 쇄신 노력에 달렸다 하겠습니다. 역사의 선택이 전자 쪽이라야, 그들 자신이나 밖에서 관찰하는 국외자들에게나 "해피 엔딩"이 아닐까 생각해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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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탄잘리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류시화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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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 지방은 찌는 듯 더운 날씨와 풍성한 자원으로 유명합니다. 물산이 풍부하다 보니 외세로부터 침탈의 대상이 자주 되었고, 이 때문에 종교 갈등도 첨예하게 일어나 타고르의 시대에는 영국 식민자들로부터 "분할령"이 공포되기도 했고 현지인들은 이를 맹렬히 거부하며 저항 운동의 한 계기를 이뤘습니다. 정작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이룬 후에는 힌두 교와 이슬람으로 나뉘어 대립 끝에 결국 서로 철천지 원수가 되고 말았고, 벵골은 다시 파키스탄으로부터 갈라서서 다른 독립국을 차렸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쓰디쓰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인 타고르는 벵갈 출신이지만 인도의 문호로 대접 받고, 본디 출신 가문부터가 인도 문화, 전통에서 대 명문가에 속했기 때문에 협소하게 어느 한 지역에 묶어 평가할 수 없는, 보편적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 된 위대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후대에 들어서는 그를 두고 보편적 인류애와 반 제국주의를 설파한 사상가적 측면을 높이들 평가하지만, 바로 이 작품집에서 알 수 있듯 초기에는 유미주의적 경향이 매우 강했습니다. 하긴 괴테, 심지어 헤겔까지도 청년기에는 피끓는 청준의 격정과 달콤한 연정을 자주 글의 소재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기트"는 노래, 시(詩)라는 뜻이며, "안잘리"는 봉헌을 의미합니다. 그 봉헌의 대상은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신일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여인일 수도 있고 겨레, 조국일 수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를 넘어 (오랜 숙적이었던) 프랑스, 혹은 그 어느 문명권으로부터도 널리 사랑받는 문인이지만, 4대 비극만큼이나 애송되는 작품이 그가 젊은 시절 빚어낸 소네트들입니다. 일개 사랑 타령에 무슨 인생의 오의가 깃들었겠냐고 폄하하는 이는, 정말 사랑도 모르고 인생도 그 오의도 맛보지 못한 채 생명이 저무는 불쌍한 처지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문인, 가수, 화가, 작곡가 들이 그만의 소명을 이룰 수 있게 돕는 유일한 영감의 원천이며, 사랑을 소재로 얼마나 절실한 곡조를 뽑아낼 수 있느냐를 보고 그 시인(혹은 어떤 예술가라도)의 자질 전체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사랑 노래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이 시인을 인정해야 한다는 건 유사 이래, 문학의 창안 이래 전 인류가 공통으로 합의를 해 온 바입니다. 이 <기탄잘리> 역시 한 총명한 법학도가 인류 문학사 전체에 바치는 야심찬 고고의 성이자 청춘기 격정, 순정의 결산이었기에, 스웨덴 한림원과 유럽 문학계는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이" 최상의 영예를 수여하고 만 것입니다.

기탄잘리는 여태 여러 번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었지만, 이 책은 진즉부터 동양적인 명상의 실천과 피안의 탐구에 깊이 천착해 온 류시화 시인의 번역이라서 펴 읽기 전부터 흥미로웠습니다.류시화 시인만큼 사무치는 연정과 그윽한 동양적 명상의 세계에 고루 관심을 주고 헌신했던 문인이 국내에 드물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 이 시인과 힌두 문학의 정수가 만나야 하지 않을까 독자로서 기대를 품어 왔습니다. 역시, 전공자의 건조하고 다분히 기술적인 문체로 풀어왔던 기본 번역본들과는 달리, 공감과 투영이 매 행마다 이뤄진 혼연일체의 옮김이라서 독자로서는 몰입도 자체가 달라지더군요.

책에서는 기탄잘리를 "님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표현합니다. "바치다, 봉헌하다"는 건 반드시 그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두고 "(원문에는 명시적으로 안 드러난) 님"이라 상정한 건 포괄적이어서 좋고, 우리에게도 시심 가득한 문인으로 널리 기려지는 만해 한용운의 "그 님" 생각 나서 더욱 좋습니다. 실제로 기교와 지능, 재능을 과시하려고 형식적으로 운을 맞춰 행마다 짤막하게 끊지 않고, 절실히 이어지는 감정은 줄글로 내처 표현한 기법은 자유시의 정수를 보여 주지만, 이런 스타일이 만해 한용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지도 우리는 (특히 류시화 시인의 번역을 보고 나서야) 바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나는 부서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아니 모든 인간이, 비록 자연의 도전과 같은 인간과의 생존 투쟁 과정에서 거칠어진 성정을 한 구석에 지니긴 해도, 일개 미물인 야생의 사자나 맹금류와 대적해서 이길 수 없는 초라한 육체와 완력을 지녔을 뿐입니다. 육신도 약할 뿐 아니라 마음 또한 변덕스러운 감성에 출렁이는 치명적 약점을 안았으며, 내가 생령을 잃는다면 몸이 약해서가 아니라 이 마음, 감정 때문에 아마도 쓰러지고 말 겁니다. 이런 약한 몸, 약한 마음을 무엇이 채워주고 무엇이 온전히 만들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난폭한 신은 굴종을 강조하며 섬김을 받는 자신과 섬기는 자까지 모두 악하고 약하게 만들지만, 사랑으로 나를 감싸는 당신은 나를 철벽으로 바꿔 줍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 때문에 불멸이 됩니다.

나는 당신에게 노래의 형식을 빌어 사랑을 봉헌하지만, 당신은 오히려 더 큰 선물을 나에게 두 손으로 건네 줍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내 보잘것없는 요량으론 짐작할 수 없지만, 눈먼 나로서는 그저 벅찬 사랑이라고 즐거운 착각에 빠져들고 싶습니다. 영문학에서는 본격 문학과 장르물 가리지 않고 "군중 속의 낯선 얼굴'에 대해 기나긴 허구와 상념을 풀어 대는 일이 잦은데, 그 원조가 바로 이 고전 아닐까 싶을 만큼 "낯익은 군중의 얼굴"이란 표현도 책 속에 바로 눈에 띄더군요. 이야말로 "결코 군중이 아닌 나만의 그대"가 가장 역설적인 모습을 하고선 내 맘에 찾아든 기막힌 결합이 아닐지요.

The day was when I did not keep myself in readiness for thee; and
entering my heart unbidden even as one of the common crowd,
unknown to me, my king, thou didst press the signet of eternity
upon many a fleeting moment of my life.


이 책은 이처럼 영어 원문(물론 벵갈어 원문도 창작 당시엔 따로 있었겠습니다만)을 같이 실어서 독자가 더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이를 놓고 류시화 시인이 옮긴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낯익은 군중의 한 사람처럼 내 마음 안에 들어온 이는 누구인가? 그리고 덧없이 흘러가는 내 삶의 수많은 순간들에 영원이라는 각인을 새겨 놓은 이는?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는?" (기탄잘리 43)

작품 중에는 king of kings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서유럽에서면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뜻으로 새겨지겠지만, 페르시아에서도 인도에서도 절대 군주를 저리 부르는 건 흔한 전통입니다. 기독교에서도 가장 힘없이 죽음을 당한 이를 두고 "왕중왕"으로 높였듯, 가장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근원을 놓고 이리 부르는 건 이후 타고르가 전세계를 돌며 설파한 사상, 평화주의와 사해동포주의를 이미 배태한 흔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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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래보고서 2018 - 세계적인 미래연구기구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2018 대전망!
박영숙.제롬 글렌 지음, 이영래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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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하고 싶은 욕구와 그에 따른 노력은 "생각하는 인간"의 존재 본질을 규정하는 특성 중 하나입니다. "생각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말처럼, 삶이 사고와 계획에 의해 통제되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선 짐승의 발버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어쩌면 예측과 대비 없이 닥치는 대로 사는 삶이란 생존 자체마저 보장 못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연말 연시에는 이런 미래 예측서를 찾아읽고, 아주 먼 장래까지는 몰라도 내년 한 해 정도는 알차게 설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모두의 습관처럼 자리해가는 듯합니다.

박영숙 대표와 제롬 글렌 회장 공저의 오랜 시리즈 올해판(내년판?)인 이 책은, 그간 "UN 미래보고서"란 이름으로 독자들과 꽤 친숙해진 기획입니다. 표지만 봐도 친숙하다 느낄 이들도 많겠습니다. 무척 변화가 빠른 세상이긴 하지만 보고서나 백서로 아젠다를 명료하게 짚어내기란 무척 어려운 과제이며, 거대 이슈가 한 해 단위로 바뀔 정도는 현재 아니기 때문에 중복감과 식상함 없이 매년 이런 책을 펴내는 노고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자들이 무슨 사진 같은 기억을 지닌 터도 아니라서, 2018년판에 이러이러한 체제와 취지로 책이 무엇을 제안한다면 숙고, 집중해서 읽어나가는 반응도 조건반사적입니다. 공자도 "배우고 때때로 (다시) 익히면 즐겁다"고 한 적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각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래 타임라인을 5년 단위로 끊어서 주요 이벤트(역사적 사건)를 예측하는 체제를 취해 왔죠. 이 파트도 매년판 해당 부분을 특히 (연속적으로) 챙겨볼 필요가 있는데, 특히 대담한 예언으로는 "중동경제 붕괴(이건 2031~35 구간에 배치되었습니다)", "EU 붕괴와 재연합(이건 그 다음 구간입니다)" 등이 있네요. 탄소 연료 에너지 의존도가 줄어들어 현재의 안정과 번영 수준도 유지 못한다는 위기감은 그들 족장이나 왕실이 누구보다 먼저 느껴 왔기에, 예컨대 두바이는 메가시티 프로젝트와 금융 등 서비스 허브 정책 추진으로 국가 혁신을 일찍부터 꾀해 왔던 겁니다. 일부 국가에서 (엉뚱하게도) 원전 기술을 도입하려던 것도 다 그 나름 절박한 이유가 있었고요. EU 붕괴(적어도 "위기")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국의 경제 구조 내실이 저처럼 차이 나는데 눈가리고 아웅 식의 통합 화폐 관리 정책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그 장래는 꽤 어둡습니다.

인공지능 하면 대뜸 떠오르는 게 (솔직히 그리 정교하게 창안, 설계되지도 못한) 영화(처음에 B급으로 시작)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상인 듯합니다. 상업용 기획은 그저 재미로 보고 넘겨야 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세대를 달리하는 대중이 너무 (역시 상업화한) 공포감을 내면화한 느낌도 듭니다. 섬뜩한 지배욕을 갖고 빈틈없는 계산과 통제 기법으로 인간을 요리하는 AI가 나오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할지 모르지만(그 전에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 인자 때문에 다 죽을수도), 그 무엇이 자기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면 공포감을 넘어 적개심과 분노가 존 코너 새러 코너 모자의 평균 게이지까지 상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비교적 똑떨어지는 진단을 내려주네요. "자기 분야에서 초고도 기능을 갖춘 이는 급여가 더 올라가고, 그렇지 못한 이는 실업자가 된다." 일자리 카테고리 자체가 "삭제"되는 일은 극히 일어나기 힘듭니다. 직업 이슈로 한정하면 결국은 1990년대부터 진행되던 자동화 트렌드의 연장일 뿐입니다. 말이 거창해서 "4차 산업혁명"일 뿐.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 대한 예측도 이것만 특화해서 다룬 대중적 분석서가 이미 여럿 나와 있지만, UN 보고서(현재는 이처럼 이름이 바뀌었지만요)만의 특징은 간략한 기술(description)로 트렌드 지향성만을 알기 쉽게 봅아낸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의료 분야에서는, 조시 잭맨 CEO는 이 가상현실 기술을, 극심한 통증을 겪는 환자의 주의를 다른 데로 분산하여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합니다(사실 꽤 오래 전의 발견, 제안입니다만). 뾰족한 치료법이 개발 안 된 병증에 대해 일단 진통제(장기적으로 내장 기관을 파괴하는)를 대체할 수도 있고(근원적인 치료는 될 수 없죠. 통각은 장래 위험에 대한 시그널이므로), 각종 부작용이 따르는 전신 마취를 장기적으로 대신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이란 참으로 기만적인 기제이니 말입니다.

개인이 유전적으로 타고난 질병에 대해, 문제가 되는 부분만 절단, 대체, 접합하는 크리스퍼 캐스 9 기술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도 있는데 노벨상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존재 양상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는 대사건이죠.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죽을 날만 기다리거나 두드러진 종양 때문에 활동이 어려운 이들에게, 서양식 외과 수술의 도입은 아마도 기적에 버금가는 혜택이자 인간 존엄의 진정한 실천이었을 터입니다. 허나 유전적으로 "교정된" 인간에 대해서도 우리가 종전과 같은 대등한 배려를 베풀 수 있을까요? 성형을 한 후보자는 결혼 시장에서도 냉대를 받는 게 이 시대 풍속도 중 하나라고들 말합니다. 현재 중국에서 이 분야 기술에 큰 관심을 주고 있으며 북미와 서유럽에서도 규제를 해제하라고 아우성인데, 무엇보다 인간들 자신이 일상에서 (출현 가능한) (이상한) 이웃들에게 성숙한 대접을 할 각오가 먼저 선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지요. 말은 쉽게 하는 자들을 너무 많이 봐 와서 하는 소립니다.

가상화폐에 대해 말도 탈도 많은 요즘입니다. 책에서는 5대 화폐를 거론하는데 물론 "순위"는 재조정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인지도 탑은 쉽사리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듯합니다. 요즘은 그런 말도 많이 들리는데 블록체인 기술에 국가 인증 시스템을 접목시켜 가상화폐 역시 정부의 독점 영역으로 만들자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발상은 익명성과 편의(이것과 동시에 보안이 충족되기란 종래 불가능으로 여겨졌는데 놀랍게도 이 문제가 기술적으로 해결되었죠)를 추구하는 가상화폐의 본성에 정면으로 어긋나긴 해도, 정부(딱히 한국 정부라는 게 아니라 정부라는 속성을 가진 그 어느 국가의 공적 섹터든 간에)로서는, 일단 과세의 사명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건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같은 독재 국가)이 최근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건 정말 당연한 반응이라 하겠네요.

미래에는 수명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예언도 나옵니다. 수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무기한 무한정을 당연히 택하리라는 게 흔한 상식적 반응이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작품이나 그리스 신화에도 그 모티브가 나오듯 "무한정 깨달음도 성숙함도 없이 오래만 사는 건 무기징역이나 다름없는 형벌"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문명의 편의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문화 지체 현상이나 소모적인 갈등, 반인륜적 범죄의 해악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우려면 먼저 인간적 도덕적 성숙이 선결 과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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