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김선희 지음 / 예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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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것은 나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살만큼 산 나이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거의 모든 세대들이 느끼는 세상살이에 대한 생각이다. 세상을 살아서 삶의 지혜를 얻었을만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고민에 쌓여 일상을 살아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의 존재에 관한 말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하는 말이 있다. 사회적 동물이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을 이르는 말이 된다. 나와 타자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사회적 속성은 바로 사람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의미가 된다.

 

사회적 관계를 떠나 개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는 먹고 사는 생존 이외의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존의 문제와 같은 무게로 때론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 이 관계로 부터 시작된다. ‘나’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이 사회적 관계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삶의 문제는 나와 타자 그리고 이 양자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고 해결의 실마리 역시 그로부터 출발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여기에서 중심은 바로 ‘나’다. ‘나’가 어떤 상태로 존재하느냐가 문제가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모든 철학적 사유는 여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된다.

 

‘나’를 둘러싼 세상과 세상 속의 ‘나’는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규정한다. 이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로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과정 속에서 좌절하고 갈등하기 마련이다. 이 책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는 바로 세상살이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을 정립하자고 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세상살이에서 오는 문제는 사랑, 일, 가족, 나, 변화, 욕망, 자유, 시간, 타자, 행복 등 열 가지다. 이 열 가지의 문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 작용과 반작용으로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키워드로 저자는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철학이 모든 문제의 정답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고 전재하면서도 철학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그 이유다.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할지라도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에 철학은 사유의 틀로 작용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유는 사람들이 가치 있는 삶을 살기위해 필요한 힘의 원천이다. 사유하지 않으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도 해결방안에 대한 모색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야기 방식은 구체적 현안으로부터 출발한다.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던 문제나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에서 때론 지금 당장 눈을 돌려 주변을 보면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이 대해 철학자들의 주장과 결합시킨다. 플라톤, 스피노자, 루소, 헤겔, 니체, 푸코, 사르트르, 키르케고르, 공자, 주희 등 철학자들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장했던 사유의 결과와 지금 겪고 있는 개인이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근본적 이유를 따져보는 것이다.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에서 보여주는 주목되는 시각은 과연 ‘나’라고 하는 존재가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살피는 부분이다. ‘나’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나를 넘어서 주인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나’가 사라져 버렸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사회적 통념이나 규범, 관습 등에 의해 나는 사라지고 나라고 믿는 존재가 나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찾을 때 비로써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고 모든 문제를 풀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중심이 있는 ‘나’에 대한 깊은 성찰에 주목해야 한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을 우뚝 세우고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 ‘나’를 둘러싼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수많은 자기개발서 들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문제는 늘 나와 함께한다. 보통의 자기개발서 들은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인에 도달하지 못한 방법들은 쓸모없는 말잔치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철학의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할 것이다. 삶을 해설하는 미사여구로써의 철학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모습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철학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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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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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딛고 일어선 예술가들

예술 한다는 사람을 만날 때 우선 생각되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이다. 빈 화폭을 대할 때 드는 절망감은 뒤로하더라도 만들어진 이미지에 갇혀 길고 긴 길을 가야한다는 점이 앞선다. 예술가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인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뭔가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예술가들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삶에서 그리고 이를 조장하거나 만들어 온 사회적 관습에 의거한 것이리라. 하지만, 예술 또는 예술가라는 이미지에 갇혀 어쩜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오직 작품 속에서만 이야기되어지는 예술가들의 삶에 중요한 무엇이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작품 속에 담고자 했던 예술가의 사사상이나 가치관을 비롯하여 그런 사상과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들의 구체적인 일상을 배재하기일쑤다. 작품의 성공여부에만 국한시켜 예술가를 평가하는 것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이 책 ‘예술, 상처를 말하다’는 바로 그런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미지화된 이름 속에 갇힌 예술가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을 표현하는 이야기 중에서 창작에 대한 고통을 거론한다. 창작의 고통은 곧 예술가가 지향하는 가치관과 관련되어 있다. 즉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섦을 대변하는 것이 작품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창작의 길은 대단히 험난하다. 생각하는 것을 화폭에 다 담을 수 있는 것도 힘들지만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깊이 관계된다.

 

저자가 주목하는 예술가 카미유 클로델, 빈센트 반 고흐, 케테 콜비츠, 프리다 칼로, 권진규, 백남준, 이성자,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장미셸 바스키아 이 열 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들에게서 남들이 주목하지 아픈 영혼, 상처라고 말하고 있다. 화려한 명성 뒤에 숨겨진 진실로 접근하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상처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스승의 그늘에 가려진 아픔, 가족으로부터 쫓겨난 배신감, 사랑에서 버림 받았다는 상실감, 창조된 이미지에 스스로 숨어들었던 좌절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히 외로웠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예술의 본질에서 벗어난 시대적 산물인 상업성과도 관계가 있다. 모든 것을 물질화 시켜 값을 매기고 그것에 자신의 정신을 빼앗겨버린 현실이 그것이다. 정신적인 피폐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과정이다. 열 명 중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예술가들이 제법 많다. 자살은 삶에서 벗어나는 극단적인 수단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면에는 그들을 자살로 몰고 간 사회구조적 모순도 한 몫 한다. 바로 이러한 상처들이 창작의 배경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들에게서 상처에 주목하는 점이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바로 상처를 스스로 이겨내거나 그 상처 속에서 헤매는 과정이 창작활동과 떨어질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살아생전 빛을 발하지 못했던 예술가나 화려한 명성을 당대에 누리며 살았던 예술가나 스스로 상처에 갇혀 이 상처가 싸우는 결과가 작품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은 사회적 약자였다. 주류사회로의 진입이나 강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상을 버리거나 강자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이며 소외된 사람들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강하다. 그리고 단정적이다. 예술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강자나 상업성에 굴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자고 하는 주장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여, 저자는 오늘날 예술이 들려주는 것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그 다름이 예술의 본질로 다가가는 지점으로 보인다.

 

강자와 타협하지 못하거나 상업성에 물들지 못하는 예술가들은 여전히 현실의 압박에 좌절한다. 예술은 역사와 시대정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술과 예술가들의 개인의 경험은 모두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은 언제나 고통과 상처, 소외와 고독, 억울함과 분노, 수치심 같은, 실패와 상실로 오해되는 것들의 옆에서 성취 된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술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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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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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본질에 사람이 있다

‘그림 읽어 주는 책’을 가슴에 담았다. 그림에 대해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들의 마음과 만난 것은 삶의 보너스인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감성을 일깨워 주고 때론 나도 예술가들의 가슴 한 자락을 엿볼 수 있다는 만족감을 준 이 만남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내가 그려갈 내 삶의 그림이 비록 유치한 수준에 멈출지라도 온전히 내가 그린 그림이기에 소중한 것처럼 이 만남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사람들 가슴 깊숙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나타낼지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이 바로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그 선두에 오주석이 있었고 손철주를 비롯한 이주은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각기 다른 향기를 발하는 그들의 마음과의 만남은 늘 설렘과 함께 한다.

 

맛과 향이 달리하며 독자들과 만났던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손철주와 ‘당신도 그림처럼’의 이주은 두 사람이 각자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우리그림을 비롯한 동양화에 주목했던 손철주와 서양미술사학을 전공한 이주은이 자신들이 선정한 그림에 비추어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주거니 받거니 맛깔 나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림은 어떤 방법으로 표현되었던 사람과 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삶 속에서 추구했던 이상과 가치관, 삶의 구체적인 모습이 담긴다. 그렇기에 그림 이야기는 곧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현재의 우리들 삶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의 주제는 그리움, 유혹, 성공과 좌절, 내가 누구인가, 나이, 행복, 일탈, 취미와 취향, 노는 남자와 여자, 어머니 엄마 등 열 가지다. 주제 열 가지는 서로 주고받는 글이 열편이라는 점과 연결된다.

 

동양화와 서양화, 남자와 여자, 삶을 살았던 세월 등에서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은 상대를 이해하는 바탕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점이 아니라 이 두 분야의 공통점을 찾는다. 공통점은 바로 사람들의 마음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감성이자 구체적인 생활모습이다. 손철주가 ‘묘사하면 그림이 되고 갈망하면 그리움이 됩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이주은은 그리움을 ‘지나간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라는 답신을 보낸다. 또한 손철주가 ‘품에 안을 수 없는 미인도를 그리는 마음’으로 삶을 통찰한다면 이주은은 보통 사람들의 가슴 속에 담긴 감성을 부릴 수 있게 도와주는 ‘바쿠스의 포도주’를 들고 서로의 이야기에 화답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더 잘 보기 위해서 타인의 눈을 필요로 하고, 나 자신의 욕망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 타인의 촉감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감정이란 막고 통제하려고 하면 굴레가 되지만, 느끼고 만끽하려고 하면 자신을 더 잘 알게 하는 마술의 틀이 되는 것이다.”

 

이주은 작가의 말이다. 그림은 예술가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낸 도구가 아닐까 싶다. 이 소통의 도구는 때론 예술가의 손을 떠나 관객들 사이의 소통을 매개한다. 이렇게 만나는 지점이 예술의 본질일 것이다. 삶의 가치를 높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 또한 그 지점에서 만나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둘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 핵심일 것이다. 열편의 편지로 끝나지만 이들은 독자들을 위해 열한 번째 편지를 남겼다. 손철주, 동양의 미술을 말하다와 이주은, 서양의 미술을 말하다가 그것이다. 이 두 글을 통해 두 사람의 그림에 대한 이해를 보텔 수 있어 좋다.

 

달을 보라고 가르치는데 손가락만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동, 서양의 그림을 보는 맛, 글을 따라가는 동안 떠나지 않은 미소로 참으로 따스한 만남이다. 다르면서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 사이가 보통이 아니다. 마치 연인들의 연애편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껴주고 격려하며 때론 농담도 서슴치 않지만 이를 보는 내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사귐이 이럴 수만 있다면 한 폭의 그림도 담아내지 못할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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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 마음이 외로운 당신을 위한 따뜻한 위로
A.G 로엠메르스 지음, 김경집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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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왕자에게서 찾은 희망은 사랑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앞날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점과 현실이 주는 암담함이 그 주요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현실은 극단적인 두 방향의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지극히 현실화 되어 물질적인 삶에 치중할 수 있다는 점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옛 시절 훈훈했던 향수를 그리워 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부활을 꿈꾸곤 한다. 행복했던 지난 시절이나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불러와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힘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 속에 존재했던 숱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게 된다.

 

문학작품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기에 적절한 도구로 활용된다. 수많은 영웅전이 그렇고 순수함을 간직했던 주인공들이 그렇다. 그 중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오게 만들며 자신의 삶의 순수성을 일깨워 준 주인공이 있다. 어린왕자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왕자는 제2세계대전이라는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과 마음에 위안을 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로 비행기 조종사로도 활동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인간의 대지’, ‘야간 비행’, ‘전투 조종사’ 등이 있다.

 

그 어린왕자가 지구상에 다시 나타났다. 저자 로엠메르스는 사라진 어린왕자를 현실로 불러왔다. 사막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만난 어린왕자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저자는 사람들의 마음이 혼란스럽고 피폐해져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다. 어린왕자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오랫동안 친구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그런 어린왕자를 불러 온다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여, 그 어린왕자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싶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여행길에 저자는 혼자였다. 혼자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며 지금 현재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때 어린왕자가 나타난 것이다. 어린왕자의 두 번째 이야기는 제목에서 연상되듯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용뿐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도 이어간다. 하여 자연스럽게 나와 어린왕자 주고받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어린왕자가 겪었던 비행사나 양, 살던 행성의 잡풀 등에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남아있던 흔적이 이어지며 풀리지 않은 의문을 제기한다. 나름의 인생을 살았던 ‘나’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경험 속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을 밝힌다.

 

여행길에서 주고받던 이야기는 ‘나’가 ‘어린왕자’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행길 마지막에 이르러 알게 된다.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상실감, 혼란스러움, 잃어버린 희망 등으로 지칠 때 한 가닥 온기를 전하며 미소 짓게 한다면 그 순간 어린왕자는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린왕자의 귀환은 현실을 살아가며 사람들이 잃어버린 순수함과 진실 그리고 사랑 등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을 되살리는 임무를 맡기고자 하는 저자의 부름으로 보인다. 추억 속에 존재하는 어린왕자에 대한 동경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희망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지구를 떠난 어린왕자를 다시 불러와야 될 만큼 현실의 무게는 사람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삶은 때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성찰은 솔직한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이다. 이 내면의 만남에서 자신만의 어린왕자의 존재를 확인한다면 사랑이 기본인 삶의 희망은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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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 이성적 친구 감성적 타인
정덕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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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친구, 감성적 타인

이웃나라 중국이 심상치 않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떨어트려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고대시대에는 대륙의 광활한 영토를 두고 다투기도 했지만 이후 거대 중국과 한국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여왔다. 일제 침략기에는 한국의 항일운동 중심지가 중국 땅에 있었고 현대에 들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의 대립 과정에 국교가 단절되기도 했다. 2012년은 한국과 중국의 국교수교 20년을 맞는다.

 

그사이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묘한 흐름이 형성되었다. 한류의 출발점이 중국이었으며 한류는 이제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인 문화현상으로 펴져나갔다. 국제정치에서 밀고 당기기는 외교관계에서 기본원칙일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더 확보하고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수용에서 일찍 성장한 한국의 기술적 우위가 있어 그동안 한중관계는 경제적 분야에서 양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왔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 사이에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는 자국의 이익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대립관계를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중국은 G2의 위치에 올랐다.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에 의해 부여된 지위다. 중국은 경제대국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여 이제는 경제대국으로도 굳건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제대국 사이에 있는 한국의 미래는 그래서 더 불투명하게 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각축전에 어떤 외교정책으로 살아남고 성장을 해가야 할지 남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지위를 갖는 나라가 중국이다. 경제적으로는 거대한 시장인 중국은 수출 위주의 정책이 중심이 되는 한국의 중요 교역국으로 이미 교역량에서 미국을 넘어섰다. 또한 정치적으로 북핵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정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날로 그 위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천안함 사건이후 중국의 시각은 불편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더 가깝게 지내고 있어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로써 이 지점이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으로도 훨씬 가까운 사이 중국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 시각에 주목하여 현재 중국의 시각을 드러내 놓고 있다. 한류 이후 반한감정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현상이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등으로 일방적인 불편함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이는 중국의 시각을 따라가 보자.

 

중국은 실사구시적 시각를 바탕으로 현 체제와 국정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중국만의 외교 전략은 아닐 것이다. 자주외교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실리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외교를 보면 친 미국외교에 치중하고 있다고 보는 국내외적 시각이 존재한다. 특히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동아시아 전진 캠프쯤으로 여긴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할 것이다. 중국이 세계강대국으로 자리를 굳건히 다지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도 한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이다. 중국의 속내는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 중요도를 높여 미국 일방도에서 벗어나길 희망하는 것이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이는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를 대표하는 말이다. 양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그것이라는 말이다. 애매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이 말이 어쩌면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이해관계에서는 이성적 친구로 서로의 이익을 지켜나가고 정치적 사안에서는 북한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이기에 양자를 저울질하며 친구와 타인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는 그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세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동양으로 중심이동은 세계판도를 바꾸는 것이기에 각국의 이해관계는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면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가야할지 방향을 이미 나왔다는 것이다. 저자가 중국의 본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을 대하는 전략적 관점, 현실적 대처방안에 허술한 점이 있다고 본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자는 말이다.

 

중국과 한국, 양국은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필요는 자국의 이해요구에 따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충돌지점에서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양국의 관계가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으로 충분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래를 함께 열어갈 파트너, 동반자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깊이 있는 성찰을 불러오게 만드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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