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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 - 다큐멘터리 만화 시즌 1 다큐멘터리 만화 1
최규석.최호철.이경석.박인하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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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게 인문학적 시각을 입히다

만화에 대한 향수는 깊다. 청소년 시절에 짬을 내거나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꼭 보고 싶은 것이 만화였다. 볼 수 있는 것도 볼 만한 것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만화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실로 큰 것이었다. 만화가 이처럼 사람들 속에서 강한 흡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림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강점일 것이다. 상상의 세계를 마치 현실화시켜주는 매개체가 바로 만화였던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 만화는 점차 손에서 멀어졌다. 그 자리를 대신해 자리 잡은 것이 일간지의 네 칸 만화나 웹툰이다. 당시 사회정치적인 문제를 촌철살인의 해학으로 가시화 시킨 것이기에 대단히 주목받기도 했다.

 

만화의 이러한 기능을 살린 것이 ‘다큐멘터리 만화’가 아닌가 싶다. ‘현장성’과 ‘진정성’을 지향점으로 가지는 다큐멘터리 만화에 대한 기대감이 만화의 일반적 장점에 인문학적 시각을 접목하여 현실화 시키자는 의미로 이해된다.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책이 ‘사람 사는 이야기’다. 이 작업에 참여한 작가로는 최규석, 최호철, 이경석, 박인하, 정용연, 최인수, 박해성 등이다. 몇몇 작가는 문학작품을 만화로 재해석한 작품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작가들이다. 이들이 다큐멘터리 만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만든 열 두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삶의 현장을 찾아 나선다. 생존권을 보장 받기위한 노력이나 전통의 가치와 현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화적 간극 등 사람들의 삶 속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인천지역 삼화고속 노동자들의 농성현장을 찾아 인터뷰를 담은 ‘24일차’, 철거 현장에서 아르바이트 한 경험담을 그린 ‘단돈 5만원’, 할머니와 살던 초등학생이 기르던 개에 물려 죽었던 사건을 담은 ‘철망 바닥’, 청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청춘은 아름다워’와 ‘열심히 살자!’,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다룬 ‘따뜻한 사람, 체’, 식물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을 시도한 ‘나무 이야기’나 ‘도심 속 식물 여행’ 등이다.

 

보기 쉽고 접근성이 뛰어나며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만화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며 만화가 가지는 이러한 긍정적인 의미에 사람의 삶의 문제를 직시하는 인문학적 시각을 접목한 이러한 시도는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으로 다가온다. 이는 만화가 가지는 일회성이나 가벼움 등을 시각을 바꿔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대가 원하는 정신을 담아내는 훌륭한 도구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다큐멘터리의 기능적 측면을 보강한다는 시각이 돋보인다. ‘다큐멘터리’란 사전적 의미로 ‘기록으로 남길 만한 사회적 사건 등을 사실적으로 제작, 구성한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즉, 다큐멘터리 만화는 만화를 통해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봐서는 안 될 것 또는 숨어선 봐야하는 것으로만 여겨졌기에 더 강한 끌림의 대상이었던 만화가 이제 자신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사람들과 교류를 꿈꾸고 있다. 그 꿈이 이 시대 삶을 버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이웃들의 현장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담아내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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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세월이 가면
곽의진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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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 어설픈 동거

지금쯤 그곳에 가면 기나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붉은 마음이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마쳤을 것이다. 성급한 어떤 놈은 벌써 붉은 꽃잎을 내밀고 따스함이 묻어나는 봄바람을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완도군 약산면 조그마한 바닷가를 점령하고 있는 동백나무 숲은 바다와 연이어 있다. 찬바람 쌩쌩 불던 어느 겨울 그 바닷가에서 맞이한 동백의 붉은 꽃잎에 한 동안 마음 빼앗겼던 적이 있다. 가끔 봄을 맞이하는 이때쯤이면 그곳 동백이 생각나곤 한다.

 

동백을 노래한 시인들의 마음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동백꽃의 붉디붉은 꽃잎에 마음 빼앗겨본 사람들은 안다. 모가지를 댕강 꺾듯이 떨어뜨리는 그 마음에 무엇이 담겨있지를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지는 붉은 동백꽃은 비록 바람을 따라 바닥을 뒹구는 수모조차 아름다움으로 생을 마감한다. 붉은 그리움을 남기듯 동백처럼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에 끝자락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세기를 넘게 살아온 아버지와 반세기를 넘어 또 다른 반세기를 살아가는 딸의 마음이 어느 순간 수평선 너머로 지는 붉은 노을로 닮아 있다.

 

곽의진의 ‘섬, 세월이 가면’은 지는 저녁노을과 그 노을 곁에 머물고 있는 붉은 기운이 함께 만들어가는 섬 생활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고단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자신이 나고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가 거처를 마련하고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했던 저자 곽의진이다. 아직 자신이 마련한 터에 적응도 못한 시기 병마에 지친 아버지가 들어온다. 자식도 버리고 떠나온 곳에서 느끼는 한가로움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손님처럼 왔다가 주인이 된 아버지의 마지막 삶을 지켜보고 함께 나누었다.

 

그 아버지는 자식에게 의지처이기도 하지만 때론 자신의 삶에 끼어든 이방인이다. 귀가 어둡고 똥오줌마저 가리지 못하는 늙은 몸이기에 수발드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저자는 그런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누구에게 하소연으로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도 않는다. 오히려 나쁜 딸이라며 스스로 자책하기 일쑤다. 취재일정으로 당일치기 아니면 1박2일 정도의 집을 비우지만 그 시간이 해방감과 더불어 떨치지 못하는 그리움이 함께한다. 딸자식이 이젠 아내이며 친구처럼 그렇게 자리 잡았다. 겨울 추위 지나고 몸만 추스르면 갈 것으로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동거가 길어지면서 딸은 자신의 미래를 그 아버지에게서 본다. 섬 기행에서 늘 상 마주하는 붉은 저녁노을 속에 아버지와 자신의 모습이 함께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섬, 세월이 가면’은 저자가 섬에 정착하고 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 아버지와의 동거생활, 섬 기행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한데 엉켜 사람살이의 온갖 감정이 녹아 있다. 저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풍경이 사진으로 함께 있어 마치 저자의 발걸음에 동행하고 있는 생동감마저 들게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의 일부분이다. 가장 절정의 순간에 통째로 지고 마는 동백의 마음과 사라지기 직전 불타는 듯 장렬한 노을이 닮아 보인다. 어쩜 저자와 함께한 아버지의 생의 마지막이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마지막 생을 함께한 딸 저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이미지는 가족 누구보다 오랫동안 남아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분명 저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접하기 마련인데 도중에 자꾸 저자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는 책이 있다. 하여 책표지 안에 소개된 저자의 프로필로 눈이 간다. 스스로 표현에 의하면 그리 잘나가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돌아온 고향에서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그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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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기행문 - 세상 끝에서 마주친 아주 사적인 기억들
유성용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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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

마음이 착 가라앉은 느낌이 지속되는 나날이다. 차가운 바깥기온에 몸이 얼어붙어 마음까지 전해진 무거움을 탓하기 보다는 뭔가 빠진 일상에서 이유를 찾아본다. 그것에 무엇일까?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지난 몇 개월간의 더딘 발걸음 때문이라고 애써 위안 삼아보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남쪽 바닷가 어디쯤 와 있을 봄을 마중하지 못하는 더딘 마음자리가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기분일 때 스스로 위안 삼는 방편 중 하나가 여행기를 읽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거리라도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지만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책이 아닌가 한다. 발이 묶인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껏 등에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되었을 여행길에서 보고 듣고 얻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다시 보여주는 것처럼 담아놓은 여행기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제법 많다. 누구는 순전히 자신의 발로 땅을 걷고 걸어서 또 다른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외지인을 자처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 결과물을 편안한 방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간접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이 무슨 맛일까 싶지만은 꼭 그렇지도 않다. 실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여행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읽는 사람들의 개별적 자기체험이 있기에 그 느낌이 공유되는 것이고 이 공유가 여행자와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인 셈이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주말오후 여행생활자라는 사람 유성용이 꽤 긴 시간동안 전국을 돌아다녔던 스쿠터 뒷자리에 몸을 슬쩍 기대고 나서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가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서 주목하는 것은 다방이다. 약속을 하고, 차를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공간으로써의 기능을 했던 다방을 찾아 옛 기억을 되살리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 속에서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흔적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떠난 스쿠터 여행은 강원도를 시작으로 바다를 따라 남으로 내려간다. 목적하는 곳도 만날 사람도 정하지 않은 길이기에 거칠 것이 없다고 하지만 때론 그것만큼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길을 잃어버린 막막함은 땅위에 난 길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생길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저자 손에 들린 지도 한 장이 그 길을 안내하는 유일한 나침판은 아닐 것이다. 길은 가다가 잘못 갈 수도 있다. 잘못 간 길을 돌아 나오거나 방향을 틀어 새로운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 여정을 거처 남해안에 이르고 다시 서해안을 따라 자신이 살았던 서울로 돌아왔다.

 

저자의 몸을 싣고 가는 스쿠터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여행길에 끊임없이 마음을 파고드는 질문이 있고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기에 어느 길 하나 쉬이 갈 수 있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뭘 하며 살아야 할까?’와 같은 무거운 질문들이 함께하는 저자의 스쿠터 여행길은 그래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온갖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는 세월이 지날수록 사라져가는 풍경과는 또 다른 무엇이 있다. 전국에 산재한 수많은 다방의 커피 맛이 어쩜 한결 같이 똑 같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호를 붙이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 가슴 속을 헤집고 있는 삶의 무게와 살아온 기억의 흔적들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면 를 만들어 가는 것일까?

 

나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 삶이라면 죽을 때 자신은 내가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나로 태어난 나 아닌 것으로 끝나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일까? 누가 이런 무거움 질문이 함께하는 여행길에 동행하고 싶어 할까? 여기서 저자를 생활여행자라고 부르는 낫선 느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다방은 핑개였다고 한다. 다방기행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 그가 찾아 나선 여행길은 결국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잊혀져도 여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만들어 왔으면서도 늘 극복의 대상이 되었던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었을까?

 

유난히 추웠던 어느 해 겨울 처음 찾아가는 섬, 선착장 옆에 있던 다방의 따스한 커피한잔이 생각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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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 - 한국고대사 천 년의 패러다임을 넘어
김운회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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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뿌리를 찾아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진실일까? 알고 있는 사실의 진위 여부는 어디서 배웠는가에 의해 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학교의 정규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사실이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믿음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른 경로의 다양한 정보를 접하면서 알게 된다. 이때 오는 혼란스러움을 때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정치권력의 성격이나 정치적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의해 주목하는 점이 달라질 수 있지만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부분에서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특히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은 자신의 삶의 근거가 되는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정체성은 개인의 경우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역사 교육에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정규학교 교육과정에서 역사교육을 선책의 문제로 전락시키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정부 당국이나 학계에서 해내지 못하는 일을 재야 학자들이 해결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특히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이해하는 정도의 차이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현실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더불어 안도감이 함께한다. 재야 사학자들의 노력이 없다면 진실에 대한 접근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기록을 바탕으로 살필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수천 년이 지나 기록마저 사라져버린 역사를 올바로 밝혀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일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사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재구성하여 사라진 기록과 남아 있는 기록 사이를 연결시켜 단절의 역사를 이어가는 것이야 말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 일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필요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강화되어가는 국제관계에서 자국의 지위를 높여갈 수 있는 단초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의 저자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처하는 적극적 방안으로 우리 자신이 잘못알고 있는 역사의 흔적을 올바로 이해할 때 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중국의 고대사 왜곡은 우리 역사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기에 이에 적절한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면 향후 국제사회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나갈 근거를 잃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런 시각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시기는 고대 역사인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지만 고조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하게 만들고 있다.

 

사라진 역사의 흔적들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단편적인 기록들을 면밀하게 살펴 해석하고 추론하며 기록과 기록 사이에 다리를 놓아가면서 복원하는 일 그것을 바탕으로 올바른 역사적 이해를 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역사와 우리는 떨어뜨려 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특히 고대사의 경우는 남아 있는 사료의 부족으로 중국의 사료를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기록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나라의 근거가 될 땅이 바로 오늘날 중국의 땅이고 이로부터 고대사는 함께 공유되는 부분이 많다. 저자가 중국 고대사의 기록을 중심으로 살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단군신화로 시작되는 고조선에 대한 이해에서 무엇이 중심인지를 다시 살피게 한다. 고조선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식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은나라를 비롯하여 그 당시의 기록에 근거하고 있고 단편적인 사료들에 한정되는 측면이 강하기에 추론하거는 부분이 많지만 사료와 사료사이의 연결 다리가 때론 명확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어 이 연구의 진정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여 진다.

 

고조선이 사라진 후 그 후예들의 진출 경로를 밝히는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 역사의 지평을 확대하며 풀리지 역사적 의문을 해결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후 나아갈 방향과도 일치한다고 보인다. 바로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소 중화주의나 국수주의 같은 역사를 보는 시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점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현실의 우리 역사학계나 역사 교육에 대해 자성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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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조선 최고의 사상범 - 한 천재의 혁명이 700년 역사를 뒤바꿔버렸다
박봉규 지음 / 인카운터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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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백성의 나라를 꿈꾼 정치가, 정도전

조선 500여 년 역사에서 불운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들은 제법 많다. 정도전과 조광조를 비롯하여 허균 등이 그들이다. ‘불운했다’라는 말의 이면에는 그들이 가진 사상이나 삶이 시대를 앞서 당대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목숨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불운은 대부분 정치적인 환경과 관계 깊은 것이기에 정치적 환경이 바뀌면 ‘신원’이라는 제도에 의해 대부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조선이 개국하는 시기 역적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던 정도전만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개국한 조선이라는 나라가 운명을 달리하게 되는 후기에 와서 겨우 신원되었다.

 

500여 년 동안 철저하게 잊혀진 사람 정도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왜 조선은 자신을 있게 한 그를 버렸을까? 에 대한 의문은 그가 죽은 지 600여 년이 지난 21세기 오늘날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왕조국가에서 왕 다음으로 권력의 2인자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죽임을 당하고 철저히 매장당한 그에 대한 시각은 차츰 변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그 승자들의 기록 속에서 살아남아 훗날 자신의 진가를 밝혀줄 후데 사람을 기다린 것일까?

 

저자 박봉규는 ‘조선 최고의 사상범’이라는 시각으로 정도전을 바라본다. 이는 곧 ‘정치가요 혁명가다’라는 규정 속에 그가 지향했던 사상을 밝혀 온전한 자리로 돌려놓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이 점은 현실 정치와 관련하여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필요성도 한몫하고 있다. 역사를 보는 진정한 의미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는 ‘한 천재의 혁명이 700년 역사를 뒤바꿔버렸다’고 붙여있다. 700년 역사는 그가 나고 자란 고려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저자가 이런 부제를 단 이유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고려를 딛고 일어선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최고의 사상범’에서 저자는 정도전의 면모를 살피기 위해 그가 남긴 ‘조선경국전’과 ‘r경제문감’ 등의 저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저작은 막 개국한 조선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마련한 것들이다. 이 속에서 사상가요 정치가며 혁명가인 정도전의 면모를 살펴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힌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다’와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로 표현되는 조선 건국의 주된 목적이 정도전의 핵심 사상이며 정책이라는 점이다. 왕조국가에서 왕의 절대적 권력이 미흡할 때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지를 비롯하여 왕이 정치를 펼칠 때 누구를 중심에 두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부패한 권력에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절취부심 한 결과가 혁명이었다. 혁명의 성공을 위해 기반이 없는 자신이 군사력을 가진 이성계를 만나 혁명에 대한 모의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에 개국 초 새로운 나라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가는 부분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거위 모든 기반을 마련한 것이고 이러한 정책의 근간에 자신이 고려를 딛고 역성혁명을 주장한 사상과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 것이다. 재상중심정치, 중앙집권적 관료체계, 토지개혁, 군권의 재편, 신분제 등은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사상이었기에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특히 이방원과 대척하게 된다. 결국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 정도전이다. 그렇기에 정도전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고려의 역사와 정치정세를 비롯하여 원나라나 명나라 등의 외교관계 그리고 조선 건국과정에서의 권력의 역학관계까지 언급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의 정치 풍토와 정도전의 정치철학을 비교하면서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살필 수 있게 한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을 살피는 것이지만 현실과 동떨어질 때 글자 속에 묻히고 말 것이기에 현실을 보는 거울로 작용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도전을 실패한 정치인, 혁명가로 보는 시각도 있다. 철저한 민본주의 사상으로 백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권력의 중심에 선 이후 자만하거나 나태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라는 조심스러운 저자의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비운의 죽음을 당한 정도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깔려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철저하게 버림 받았던 조선의 역사에서 조차 정도전의 개인적인 비리나 치부 등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정도전은 자신이 가진 사상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도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그의 정치철학에서 정치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백성의 행복한 삶을 무엇보다 먼저 생각했던 그의 정치철학으로 볼 때 오늘날 정치가 어떻게 비춰질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정치인으로써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청렴결백한 삶의 자세와 태도는 아무리 시대가 달라지더라도 변해서는 안 될 지도자의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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