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30년 - 우리가 사랑한 300권의 책 이야기
한기호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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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 현대사를 함께한 책들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난다는 말이 맞는 말일까? 문화의 영역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만들어지는 시대의 흐름과 정신을 반영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 말은 의미를 가진다고 보여 진다. 그렇게 책 속에 담긴 세상은 독자들과 소통하며 다시 당대를 이끌어갈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특정한 책이 주목받아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오른다. 베스트셀러란 ‘어떤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물건’이라는 의미로 통하기에 이를 통해 그 어떤 기간에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이유를 따져보면 그 책에 담긴 내용이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부키출판사의 대표는 베스트셀러가 ‘사회적 관심의 반영 내지는 투영’이라는 말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는 사재기와 같은 베스트셀러 조작이나 마케팅 자원의 집중포화를 통해 베스트셀러 만들기와 같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사의 반영이나 투영에 일정정도의 제약과 한계를 가진다는 말로 들린다. 그는 베스트셀러란 ‘책을 주로 읽는 사람들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중에서 지금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사할 뿐이다.’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공감하면서도 책에 반영되어진 트렌드를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들을 살펴볼 필요가 생긴다. 교보문고에서 발행한 우리가 사랑한 300권의 책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베스트셀러 30년’은 1981년부터 2010년까지 발행된 책들 중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은 교보문고 연도별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을 기본으로 하였다고 한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행한 책들의 흐름과 이 흐름이 반영된 사회정치적 배경들과 책이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베스트셀러 30년’은 10년을 단위로 크게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10년 단위로 나누고 다시 각 해당년도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원고상태에서 출판사를 떠도는 책이 우연히 한 출판사에 눈에 들어 세상에 빛을 발하고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이야기나 책의 기획, 집필, 편집, 제작, 홍보·마케팅 등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얽힌 에피소드까지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시각을 따라가 보면 확인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책에 담기는 시대의 실상과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바로 책이 ‘세태와 시대정신’을 담는 도구로 활용되어온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1980년대를 이념의 시대이자 불의 시대, 시의 시대이자 대하소설의 시대’라고 규정하며 살피는 책의 목록을 보면 저자가 왜 그런 규정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시대에 청춘의 시기를 보내며 책과 본격적으로 접한 독자의 한사람으로써 충분히 공감 가는 이야기다. 또한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회상을 반영한 책들의 목록의 변화는 곧 우리가 온 몸으로 살아온 시대의 또 다른 표현처럼 다가온다. 책은 그렇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사를 반영하기도 하고 자본의 논리나 정치적 이해요구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던 실상을 살필 수 있다. 밀리언셀러를 만드는 아홉 가지 법칙, 21세기 한국 밀리언셀러의 여섯 가지 유형, 불황에는 불륜소설이 뜬다와 같은 이야기는 출판계에서 통용되는 에피소드처럼 다가와 책과 관련된 흥미를 북돋아 주기도 한다.

 

베스트셀러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는 대부분 책을 일정 정도 읽으며 자신만의 관심사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베스트셀러는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 점은 출판사의 마케팅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될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이 발표되는 이유 중 분명 하나이다.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책에 대한 향후 전망이 엇갈린다. 하지만, 인류 역사와 그 맥을 함게해 온 책은 앞으로도 그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리라 생각한다. 책이 이러한 가치를 간직하는 한 책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어떤 형태로든 반영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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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홍신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최호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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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회적 존재로써 개인의 가치는 무엇일까

같은 저자의 작품을 번역자가 다른 작품으로 디시 읽게 되는 일이 있다. 문학작품과 그리 친하지 못한 독자로써 이런 경험은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미 읽어 줄거리를 알고 있기에 내용의 전개보다는 구체적이고 미세한 번역자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경우가 되었다. 그 미묘한 차이는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음도 느낀다.

 

나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백’이다. 안정효의 번역으로 문학사상사에서 발행한 책과 최호의 변역인 홍신문화사 발간 본으로 다시 접하게 된 것이다.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깊이가 일천하기에 두 번역가의 차이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이미 접했던 작품을 다시 보는 기회를 갖었다는 점에 무게 중심을 두고자 한다.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사실과 부엔디아 일족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깊은가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 수탈 역사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친숙하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년 생)는 콜롬비아 출생으로 12남매의 장남, 외조모부와의 어린 시절, 법학을 공부했지만 콜롬비아, 프랑스, 베네수엘라, 미국, 멕시코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쿠바혁명 이후 쿠바로 가서 통신사 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창작 활동을 한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스탕달, 발자크 등의 작가를 좋아했던 저자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작가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던 삶을 살았던 저자의 주요 작품으로는 ‘신고 된 사망자 연대기’(1981), ‘백 년 동안의 고독’(1982), ‘사랑과 또 다른 악마들에 관하여’(1995) 등이 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부엔디아 일족이 변화하는 시대에 어떻게 적응해 가는가가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사촌 여동생 우르슬라의 근친상간으로 시작된 이 일족의 이야기는 남미의 숲속에서 ‘마콘도’라는 마을을 형성하고 이 마을을 중심으로 넘나드는 집시로부터 외부 문명을 받아들이며 변화의 흐름 속으로 밀려간다. 순수했던 원시마을이 외부의 물질문명에 의해 도시화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마콘도와 사람들의 변화 그리고 끊임없이 자행되는 근친상간은 부엔디아 일족의 운명을 예견하는 것 같다.

 

‘마콘도’라는 마을과 부엔디아 일족의 형성과정이 전반부의 이야기라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서른두 차례나 반정부 봉기에 참여하는 이야기가 중심이 되며 이는 라틴아메리카의 혼란스러운 정치 역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자유파와 보수파로 갈린 정치적 싸움은 결국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도 불분명하게 되며 오랜 시간을 사람들의 인상과 삶을 지배하게 된다. 이후 바나나 농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력의 등장과 원주민에 대한 착취와 학살로 이어지는 것 역시 스페인, 미국, 영국 등의 제국주의 세력의 라틴아메리카의 침략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제목이 담고 있는 ‘백 년 동안의 고독’은 무엇을 의미할까? 5대가 100년간에 걸친 몰락의 과정이 어쩌면 고독이 아닌가 싶다. 고독은 자신이나 타인과의 소통의 부재가 전재되는 이야기다. 부엔디가 가문의 광기와 쇠망이 고독 자체일수 있겠고, 마꼰도라는 공간 자체도 일종의 '섬'이라는 점에서 소외된 고독으로 보이기도 한다. 좌절된 꿈은 인간에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수없이 반복되는 ‘황금물고기’는 아버지와 자신을 포함한 당시 사람들의 잃어버린 무엇인가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려는 것이 아닐까?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는 저자 마르케스의 말에 담긴 의미는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담긴 이야기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마술적인 현상과 현실이 혼재되며 외부세력에 침략에 의한 혼란스러움과 더불어 근친상간이라는 부족내의 역사가 중첩되고 ‘라콘도’ 마을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 ‘백 년 동안 고독’은 이념이나 사상, 사회구조의 변화, 근친상간이라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개인들이 겪게 되는 심적 고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개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작품을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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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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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완성은 산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매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독자들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잘 꾸미는 사람이라도 봐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작가를 넘어 그 작가의 보다 깊은 내면을 알고 싶은 독자들은 어떻게 작가와 만나야 할까?

 

모든 글은 이야기다. 글의 성격이 소설이나 시나 다큐멘터리 또는 사나리오가 되었던지 그 속에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학작품의 대부분은 바로 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독자나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이러한 글들은 대부분 픽션과 논픽션이라는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기 마련이다. 이러한 글 속에서 작가의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은 한계를 가진다. 작품을 통해 작가들은 자신이 가진 이야기의 일부를 가지고 풀어간다. 그래서 작가가 발표하는 작품을 이어가며 단편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작가의 생각을 퍼즐 맞추듯 짜 맞추어 가게 된다. 작품을 통해 작가에게 접근하는 것과는 다른 통로가 있다면 그것은 작가의 일상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잡다한 글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시각으로 접근할 때 주목받는 책이 있다. 일본 소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한국에서 주목받는 작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증이 큰 만큼 독자와 작가의 거리가 그만큼 멀리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차에 ‘무라카미 하루키’을 작품 이외 다른 방법으로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을 만난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 그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는 오랜 기간 동안 글을 쓰며 살아온 작가가 써온 글을 모았다. 이미 지면을 통해 발표되었거나 아직 발표하지 않았던 글들을 모아 직접 선별하고 이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하여 이 잡문집에 담겨 있는 글들의 내용은 잡다하다. 성공한 소설가로써의 작가뿐 아니라 작품을 쓰는 것 외에 그가 관심 갖는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교류하는 모습이나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 다양한 수상 소감 등 작품으로 말하지 못했던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에 일정 분량의 글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음악을 듣고, 야구 관람을 즐기고, 취미로 번역을 하고, 챈들러와 잭 런던을 즐겨 읽고, 맥주를 좋아하고 조개는 먹지 않는…… 보통 남자입니다.’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작가의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다.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것과 이런 자신의 고백을 종합하여 작가에게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많은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일반 독자로 그가 왜 한국에서 그토록 인기 있는 작가인지 궁금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접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여기에 있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된 이야기가 대부분이기에 작품 이외에 다른 글을 통해 그를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그것이다. 작가의 작가론이나 번역가로써 자신의 소신, 음악 애호가, 성장과정에서 친구가 되었던 책 등의 이야기는 작품에서 느끼지 못하는 그 무엇을 전해주어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한층 더 부풀게 만들고 있다.

 

‘글의 완성은 산문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의도된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이 된다면 산문은 그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에서 보다 글쓴이의 내면에 다가가는 길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의도된 목적의식적 글이 가지는 한계를 넘어선 글의 완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인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설날 복주머니’를 여는 설렘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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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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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살아가는 것은 산을 넘는 것이 아닐까? 오르막길로만 여겨지던 시기를 지나면 분명 내리막길이 있지만 그것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닥친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다 보면 분명 내리막길이 있는 것처럼 삶에도 그런 굴곡이 있다. 다만 이런 삶의 이치를 아는 것은 세월이 훌쩍 지난 인생의 후반기에나 일게 된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길게 잡아도 삶의 후반기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야 그런 인생의 굴곡을 알아가는 시간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청춘의 시기를 지나온 사람이 가끔 하는 일 중 하나가 옛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학창시절이 중심에 있다. 문학 작품을 접하다 보면 간혹 그 시기를 묘사하는 작품을 만나곤 하는데 자신이 겪은 옛일을 떠올리는 시간과 겹쳐지며 흥미로운 시간을 보낸다. 천명관의 신작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이렇게 지난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삶과 마주대하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가는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나’를 화자로 삼촌의 일상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으로는 1970년대를 시작으로 2000년대까지 이른다. 이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 사회의 중심세력이다. 그들이 직접 경험했거나 이웃 사람들의 일상에서 보고 느꼈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문학작품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삼촌은 할아버지가 딴 살림을 차려 낳은 서자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으로 무작정 찾아와 할머니의 배려로 가족이 되었다. 나와 나이차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형보다 더 가까운 사이로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게 된다. 할아버지 제사에서 충격을 받은 이후 말을 더듬게 된 삼촌의 관심사는 영화배우 이소룡이다.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이소룡이 삼촌의 인생에 중심으로 들어오고 난 후 삼촌은 뒷산에 무술을 연마할 장소를 만들고 무술연마에 몰두한다. 자신이 영웅이 죽었다는 소식에 조카인 나와 함께 추모제를 지낼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이 점은 동시대에 청춘의 시기를 보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나, 친구, 삼촌 그리고 형과 조그마한 읍내의 건달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물들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권의 중심은 코 흘리게 시절부터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한 시기까지의 이야기다. 성장기 청춘들이 경험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초반부에 해당한다고 보여 진다.

 

주인공 삼촌은 암울한 시대에서도 덜떨어진 측에 속한다. 서자로 태어나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소식이 끊겼고 숨은 배경이 되어주었던 어머니마저 죽은 후 조그마한 배경마저 사라져 버렸다. 출생에서부터 주류에서 비켜난 삶이 사회의 급격한 변화과정에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뻔한 예측을 할 수 있다. 그 뻔한 예측이 우리세대들이 살아온 사람들이 몸으로 겪어온 삶이었다. 인생 긴 여정엔 굴곡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기가 아니기에 자신에게 닥친 운명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이 살아온 일상과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 공감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장이지만 답답함이나 단절감이 느껴지지 않은 글이다. 그 글이 주는 인상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실감나게 다가온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소룡의 대역을 꿈꾸며 홍콩에 밀입국을 시도했지만 좌절된 꿈이 근 입대로 이어지며 한국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군부독재와 이어진 후 어떻게 변할지 후속 작이 기대된다.

 

비주류의 좌절된 삶을 중심에 두고 작가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꿈과 이상을 실현할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시대에 이들의 인생을 이끌었던 배경을 묘사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조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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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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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풍경은 이야기가 있어 공유 된다

100평 남짓한 땅이 있다. 지난여름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마련한 집에 딸린 마당이다. 그 땅을 어떻게 가꿀까? 계절이 바뀌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행복한 상상의 근원이다. 세 식구 먹을 만큼의 채소를 가꾸는 텃밭을 제외하고는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다 큰 나무를 심는 방법도 있겠지만 무리하면서까지 큰 나무를 심을 생각은 없다. 조그마한 나무를 골라 심고 그 나무가 자라는 동안 나와 나무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휑한 공간은 채워지고 있다. 그 사이 지금껏 모아 놓은 야생화 꽃씨를 뿌리고 그 꽃이 전하는 향기와 함께 나무가 자라는 것을 지켜 볼 것이다. 매화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포도, 대나무, 소나무, 무화과나무, 동백나무 등이 내가 관심 가지고 지켜볼 나무들이다. 물론 이 모든 나무를 다 심지 못하고 때론 생각하지도 않았던 나무도 함께할 수 있다. 그렇게 열려져 있는 공간이라면 좋겠다. 이렇게 가꿔가는 공간에 이름을 붙이고 나만의 정원을 가꾼다면 그것으로 좋을 일이다.

 

모습이 각기 다르고 있는 곳도 다르지만 같은 이름이 붙은 곳이 있다. 이렇게 특정한 이름으로 만나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사람과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동식물이 만들어 놓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로 인해 또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만들어 간다. 이름 하여 그곳을 사람들은 ‘정원’이라는 부른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의 저자 오경아는 이 정원에서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었던 이야기를 찾았다. 그가 찾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 오경아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잘나가던 방송작가의 삶을 던지고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살던 집마저 팔고 유학을 떠난 것이다. 두 딸과 함께한 영국 유학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6여 동안 낯선 영국에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그녀에게 다른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한 시간대를 뚝 잘라내 감행한 도전이 앞으로 남은 인생의 후반전에 대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정원’에 대한 것이다. 남달리 정원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 영국을 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는 6년 동안의 무모했던 도전을 정리하는 2주간의 여행 동안 자신이 만난 이야기들을 담았다. 저자가 만난 이야기는 자신과 딸 그리고 엄마라는 테마로 모아진다. 이 이야기를 만난 곳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으로 영국의 최대 환경보전지역이라고 한다. 13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에서 2주간 머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오늘날의 모습을 간직한 배경에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것이다. 호숫가를 거닐고 양떼를 만나며 수선화가 가득한 묘지를 들르고 주변의 도로를 따라 운전하며 때론 가파른 산에 등산을 하기도 한다. 발길이 머무는 곳에 여기저기서 만나는 것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보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거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자신을 중심으로 세대를 건너 딸과 엄마를 동시에 만난다. 딸 속에 전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어린 아이로만 생각되는 딸아이의 당돌한 질문과 속 깊은 헤아림으로 당혹스러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 속에서 일찍 떠난 엄마의 존재감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이야기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정원’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이야기 속에서 공유되는 것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엄마를 만난다는 것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실로 끄집어내는 일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로 기억을 되살리는 일에서 깊은 아픔으로 존재하는 엄마를 살려내서 내 삶을 가꿀 힘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엄마라는 공유된 인간의 마음과 다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쩜 ‘낯선 정원’은 영국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공간이라면 동일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건물 한 귀퉁이 조그마한 공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무한 그루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원에 대한 의미부여가 가능한 것이며 그 정원이 담고 있는 이야기 속에 살아있는 사람의 흔적이 될 것이다. 저자가 꿈꾸는 정원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 짐작된다.

 

짧은 글 속에 인생의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여운이 있다. 더불어 녹색 가득한 사진이 주는 시각적 안도감이 자신과 만나는 성찰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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