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속도'
정해진 속도는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만 있을 뿐이다. 한자리에 이웃한 꽃도 피고 진다는 순리는 어기지 못하나 제 각기 조건과 환경에 따라 더디가기도 하고 서두르기도한다.


하물며, 꽃보다 더 많은 온갖 조건에 휘둘려야 하는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리. 꽃이야 피고 진다는 방향이라도 있지만 사람 마음은 이 방향조차 오리무중이다.


하여, 마음의 속도를 조절한다는게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을 견뎌내야 하는 일인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러니, 그대여 애써 더디가지도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말고 마음이 움직이는 그 속도를 따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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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8-10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문동과 같은 류의 꽃을 볼 때면, 저 많은 꽃들이 동시에 쫙 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똑같은 가지를 공유하고 있어도, 같은 햇살을 받았어도, 가지고 있는 바탕과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피어나는 속도가 다른 것이겠죠?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표류`라서 `스스로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다 원치 않는 항구에 닿을 수도 있다`구요. 인생이든 마음이든 조절을 한다는 건 말씀하신대로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가끔 생각하죠.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도를 타 듯 자연스럽게 말이죠. 결국 삶이라는 것도 `내 마음의 주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일까요?

무진無盡 2015-08-10 20:32   좋아요 0 | URL
마음대로 라고 써놓고는 해석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왔다갔다 그야말로 지맘대로잖아요. 그런데 그마져도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내 마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더라구요.

나비종 2015-08-10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에게 가장 기쁜 선물을 하는 방법은 그를 잘 관찰하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건네주는 거라 하더군요. 그럴 때면 상대방이 내 행동의 주인인 듯 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원하는 대상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바람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마음의 절반은 내가 주인인 걸로ㅎㅎ
 

염染,
그대를 통과한 빛으로 나를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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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8-08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한 살의 무늬를 만지면, 스러질 듯이,
생시인지, 꿈인지, 하네..

무진無盡 2015-08-08 00:50   좋아요 0 | URL
생시를 지향합니다

나비종 2015-08-10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쪽으로 염색해 본 적이 있습니다. 헝겊을 쪽물에 담그는데, 너무 뜨거워도 차가워도 안된다더군요.
`그대를 통과한 빛`에 온도가 있다면,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 염색할 때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온도겠지요? 사람을 기분좋고 편안하게 하는 온도요.
메꽃처럼 생긴 꽃의 빛깔이 참 곱네요. `설렘`에 색깔이 있다면 이런 빛일까요?^^

무진無盡 2015-08-10 22:05   좋아요 0 | URL
투명에 가깝지만 맑은 색이 주는 느낌이 좋아요. 나팔꽃입니다. 온기ᆢ가 느껴지는 색ᆢ그것이 사람을 가슴에 담은 마음의 온도를 나타내지 않을까요?

나비종 2015-08-10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맑음`.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색에 적용해도 느낌이 좋네요. 붉은 색, 푸른 색처럼 특정 방향을 가리키지도 않고, 무슨 색에든 어우러진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아침에 찍으셨나 봅니다. 나팔꽃의 영단어를 알았을 때,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편지지에 있던 마크가 그냥 그려진 것이 아니구나 했죠. 오후에 파마 머리처럼 쪼그라든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었구요. 아침의 영광. 참 기막히게 적절한 이름입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 담겨있어도 살아가는 게 그리 외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진無盡 2015-08-10 23:36   좋아요 1 | URL
그렇게ᆢ상대의 빛으로 나를 동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에ᆢ
 
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믿음을 권하는 보관 가계

깊은 사연이 있으나 이제는 보내야 하는 물건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용도 폐기될 물건이지만 그렇게 처분하기에는 마음에 무게를 감당하기가 버거운 것일 때는 난감할지도 모른다이런 것을 해결해 주는 곳이 있다면 어떨까?

 

오먀마 준코의 하루 100엔 보관가계가 바로 그런 일을 해 주는 곳이다이른바 하루 100엔으로 물건을 맡아주는 보관가게가 그곳이다여기는 누구든 어떤 물건이든 하루 100엔에 기한을 정해 물건을 맡기고 찾아가면 된다찾아가지 않으면 주인이 알아서 처분한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가능한 거래이니까주인은 손님이 가져온 물건을 소중히 맡아 보관하고 손님이 다시 찾아오면 내어준다어떤 물건이든 상관없다그 물건을 맡김으로 위안 받는다.

 

보관가계에는 주인과 사장이라 불리는 고양이 그리고 진열장과 출입문 위 휘장이 전부다이들이 보관가계를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엮었다보관가계가 만들어지기 까지 과정을 설명한 후 그 가계와 온 특별한 손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아버지와 엄마의 이혼 서류사람을 다치게 한 권총아버지에게 졸업 선물로 받은 자전거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오르골도서관에서 대출 받은 책 등 속사정을 간직한 물건들을 맡기는 손님들은 보관가게와의 인연을 계기로 자신의 진심을 다시금 확인한다.

 

눈먼 주인과 고양이 사장이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런 곳이 있다면 나는 이 보관가게에 무엇을 맡길 수 있을까그 물건을 맡겨 위안 받을 무엇이 있기는 한 걸까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 얽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위고하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는 사람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사연 한 두 개 쯤은 안고 살아간다.그런 사연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수 있다면 그로부터 위안과 치유는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이 보관가계는 물건을 맡아주는 것으로 그 일의 시작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무엇으로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의 길로 들어서는데 단초를 만들어 주는 곳이라면 말이다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물건을 특별히 안심할 수 있는 곳에 맡긴다는 것은 스스로 위안 삼고자하는 출발이다그 출발선에 보관가계가 있다이 보관가계의 설정은 눈먼 장인이 주인이라는 것과 주인 이외 다른 시점으로 관찰한다는 점이다주인이 눈먼 사람을 설정한 것은 손님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비밀스러운 물건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하는 장치다그리고 주인이나 손님의 시점이 아니라 그 공간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다른 사물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보다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장치로 보인다.

 

"이곳은 모두가 돌아올 장소입니다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입니다."

 

하여이 소설은 성공적으로 보관가계의 임무를 완성해간다이는 한번 찾았던 손님이 식나이 훌쩍 지난 훗날 다시 찾아와 살아오며 가슴에 쌓아 두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자 한다는 것이다흐른 세월만큼이나 변한 손님들이 이제는 돌아와 자신을 찾아갈 의지처로 삼는다는 것에서 확인한다.

 

이러 공간이 있다면 난 무엇을 맡길까아니 맡길 수나 있을까맡긴다는 것이 스스로 치유의 시작을 한다는 것이게 쉽지 않을 결정이 될 것이다물건은 맡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은 가슴 뭉쿨하게 하는 무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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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으로'
저절로 피고 지는 것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견디면서 이겨나가야 비로소 때를 만날 수 있고 꽃을 피울 수 있다.


저기 저 무릇도 마찬가지다. 여리고 여린 저것이 본연의 꽃을 피우려면 조금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이란 지극한 그리움을 가슴 속 가득 쌓아두는 일 이기에 이 또한 수고로움을 견뎌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프고 시리며 두렵고 외로운 이 수고로움이 가득차면 그대와 나 꽃으로 피리라.


지난밤 달님은 유난히 깊게 내 품으로 안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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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버려야할 때가 있다'
식물이 본체를 살리기 위해 특정한 가지를 선택하고 영양공급을 중단해 고사시키듯 과감히 버려야할 때가 있다. 극단적인 선택이 이에 해당한다.


사람의 사귐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덜 중요한 것은 뒤로 미루거나 때론 포기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손에 쥐고 갈 수 없을때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느냐에 달렸다. 잘 살펴서 사귐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사소한 욕심을 부리거나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해 본질을 무너 뜨려서는 안된다. 무엇을 버려야 할지 그것을 감지하는 이는 바로 자신이다.


본질이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엄습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대와 나란히 걷기 위해 난 무엇을 버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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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5-08-06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엽이 지는 원리를 알고 식물이란 참 무섭도록 냉정하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생존 본능 앞에서 미련을 지니고 있으면 안되는구나 했죠.
한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버려야 할 것 중 하나는 거리에 대한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기분으로 나란히 걸을 수 있으려면, 너무 가까와도 안되거든요. 시원한 바람이 들락거릴 수 있을 만한 거리?ㅎㅎ 그게 얼만큼이냐 물으신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측정 기술이라는 적.당.한. 거리요^^;

무진無盡 2015-08-06 21:19   좋아요 0 | URL
틈이라고 하면 너무 가깝고 사이라고 하면 조금 먼듯 싶고ᆢ적당한 거리가 정답이긴 한데ᆢ이 또한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도 매번 다르니ᆢ ㅠ

나비종 2015-08-0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가져야 할 것이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꾸준한 인.내.심ㅋㅋ
음. . 역시 사람은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상대의 마음이 어디쯤 있는지 알아야 거리를 가늠할 텐데 수시로 변하니 말이죠.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도전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문제이기도 하지만요^^

무진無盡 2015-08-06 21:33   좋아요 0 | URL
당해보면 얼마나 아픈지도 외로운지도 알아ᆢ내가 다시는 안하리 다짐해도 ᆢ다시 찾게되는 사람, 살아있는 동안 늘 주고 받고 하겠지요.^^

나비종 2015-08-0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아마도 사람 안에 온기와 빛이 있어 그럴 거예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찾기를 반복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무진無盡 2015-08-06 21:43   좋아요 0 | URL
사람은 본래 태생적으로 혼자이면서 또 둘이어야하는 운명이 아닌가 싶어요. 그 근저에 온기와 빛이 있을거구요~^^

나비종 2015-08-06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이 두 개인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요! 나란히 걸을 때는 한 손을 잡고, 마주 서 있을 때는 두 손을 잡을 수 있으니 말이죠ㅎㅎ

무진無盡 2015-08-06 23:12   좋아요 0 | URL
멋진표현입니다~^^

[그장소] 2015-08-08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분이서 소설같은 글을 주고받으시는 군요! 음, 바람이 드나드는 틈과사이.
손이두개.. 와...너무 감성충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