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한다는 것'
빛이 따스함으로 온 몸을 감싸듯 그렇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의 무게 중심은 그대에게 가 있다. 어떤 상태인지 궁금함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대의 처한 상황의 변화를 시도한다.

아침을 여는 햇살이 꽃잎을 부드럽게 감싸며 그 꽃의 심장을 두드린다. 햇살에 기대어 깨서난 꽃은 비로소 살아갈 사명을 위해 햇살과 눈을 맞춘다. 이렇게 눈을 마주하는 교감이 일어날때 염려하는 마음은 온전한 제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염려하는 마음은 꽃의 심장을 두드려 깨우는 햇살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달을, 음악을, 꽃을, 노을을, 하늘을 빌려 전하는 염려의 마음이 그대에게 닿아 교감이 일어난다. 깊은 눈 속에 환한 미소로 피어나는 순간이 그것이다. 염려하는 마음이 교감을 일으켜 기적을 만든 때이다.

하여, 산 너머 전하는 나의 염려가 그대 가슴에서 닿아 온전히 밝고 환한 미소로 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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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o Inbu
Memory of the Wind

2015.10.12-10.24 gallery 숨(전주)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 전선을 가르는 소리, 나뭇가지의 흔들림, 깃발이 펄떡이는 요란함, 처마 밑 풍경의 딸랑거림, 귀밑을 스치며 내는 소리ᆢ등 이것은 삶에서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바람의 편린이다. 또한 청량하다, 웅장하다, 꿈틀거린다, 상쾌하다, 포근하다, 편안하다, 외롭다, 쓸쓸하다, 서글프다, 두렵다, 서럽다ᆢ등 인간 내면의 감성을 통해서 바람은 묘사되고 인식되기도 한다.


어릴적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슬픔, 유년시절의 우울함과 서러움, 십대시절의 좌절의 모습, 그리고 청년시절의 분노와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모습, 낯선 나라에서의 희망을 꿈꾸는 모습ᆢ등 처음 구체적인 형상이었던 내 기억들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서 하나의 색채로만 인식되고 존재한다. 그 색채는 내 감성의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바람이며, 바람은 내 삶의 사유와 반추를 이끌어 낸다.


화면위에 찢어서 세워 붙이거나 둘둘 말아서 묶는 수백, 수천 장의 한지 조각들은 바람의 결과 화면의 율동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며, 그리고 한지의 유연함과 가벼움의 특징들은 바람을 묘사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 2015 표인부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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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五里霧中
오리나 되는 짙은 안개 속에 있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나 대상에 대하여 방향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가을을 맞이하는 아침풍경이 당분간 이럴 것이다. 운치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같은 것을 대하는 마음 상태가 달라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자연현상에는 '최소작용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자연은 필요 이상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어진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미리 염려하여 자신을 궁지로 몰거나 특정한 감정상태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가드는 일은 하지않는다는 말로 이해된다.

오직 사람만이 그렇다. 과거나 현재의 특정한 상태에 집착하거나 지나친 염려로 스스로를 막다른 궁지로 내몰아 좌절하는 일ᆢ얼마나 못나고 어리석은가. 

그러나, 이 못나고 어리석은 일이 스스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근본 힘이기도 하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오리를 덮은 안개는 바람과 햇살에 자리를 내어주고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것이 순리다. 그대와 나, 마음을 짓누르는 그 무엇도 이 안개와 다르지 않다. 

곧 햇볕이 감싸주리니. 그대, 잠시 머무르되 멈춰서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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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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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시간 속에서 사람과 만나다

누구에게나 특정한 공간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가진다태어난 고향이 그 선두에 서겠지만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곳이나 여행을 통해 방문한 공간특별한 추억이나 경험을 했던 곳 등 어느 곳이든 대상이 될 수 있다.때론 그론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일상을 살아가데 위안이 되기도 한다.


너 없이 걸었다라는 책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 가는 먼 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세 권의 시집을 발간하고 매니아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시인 허수경의 에세이다.


허수경 시인이 주목하는 장소는 독일의 도시 '뮌스터'. '뮌스터'라는 특정한 장소에 대한 특정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20 여년을 살고 있는 도시를 그 도시와 특정한 경험을 가진 시인의 시와 연결하고 그 시를 쓴 시인과도 함께 만난다독일 시인들의 시와 그 시와 함께 만나는 '뮌스터'의 이야기는 공간에 스며든 사람의 이야기며 사유의 결정체가 담겨 있다시인의 눈에 비친 시와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을 살았던 사람이다.


시를 읽는 어떤 시간은 이런 시간이다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들이 돌아오는 시간그 시간을 새로 발견하고는 그 시간으로 들어가 보는 것.”


시인인 저자 허수경이 뮌스터를 이야기하면서 시를 시작점으로 삼은 이유가 여기에 있어 보인다지나가버린 시간이 공간을 만나 지나간 시간을 불러와 현재 속에서 만나고자 하는 소망이 담겨 있어 보인다.


하이네트라클작스괴테릴케그베르다아이징어호프만슈탈드로스테휠스호프 등 독일 시인들의 시는 독일만의뮌스터만의 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는 결부되어 인용되고 있다우리에게 익숙한 시인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시인도 있다허수경의 시에 대한 이야기에서 새롭게 만나는 시인들이 이야기도 반갑다.


너는 언젠가 있었다그리고 지금은 부재중나는 너에게로 가고 너는 나에게로 온다이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누군가 나를 향하고 있는 것내가 누군가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 -뮌스터의 푸른 반지 중에서


자주 지나다니는 길은 잊어버릴 수 없어우리가 잊어버릴 수 없는 이유는 마음속에서 서로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이야.”


일상죽음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람의 기억과 현재를 담았다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사람의 역사와 현재가 공간에 함께하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그레서 공간이 주는 특별함은 간단치 않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가져다주는 변화가 사색의 시간을 확보해 준다살아온 곳과 살아갈 곳에 대한 기억과 기대가 만나면서 삶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있기 마련이다그러기에 시인 허수경의 '뮌스터'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른 특정한 장소로 대체될 수 있겠다지금 내가 사는 곳이든 기억 속 여행지였든 그 어디든 '뮌스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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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ᆢ
아빠는 외로운 것이 아니란다.

검푸른 가을밤 무릎에 올린 거문고의 술대에 감기는 현에 유난히 무게가 실리는 것이 느껴지지 않느냐? 가을이 주는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그 무게를 온전히 현의 울림으로 담아내는 것만한 것도 없으리라고 본다.

아빠는 이른아침 발길에 차이는 이슬이 무게를 더해가는 것을 느끼고, 해질녘 붉은 노을이 저 혼자 붉은게 아님을 알듯이 오늘 이 시간을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며 스스로 위안삼는 것으로 이 가을을 누리고자 한다. 너에게 있어 거문고 연주처럼 이 아빠도 가을이 주는 그 행복을 마음껏 누리려는 것뿐이다. 

딸아ᆢ
너도 이제, 행복은 아득히 먼 곳에 있는 것만이 아님을 어림짐작으로나마 알 것이라고 믿는다. 아빠가 누리는 그 행복의 중심에 딸, 네가 있어 너의 안부가 궁금하고 네 무릎위에 놓인 거문고 현을 울리는 술대에 힘을 실리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너에게 아빠가 가을타는 외로움으로 비쳤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나마 아빠의 심사를 짐작해보려는 너의 마음이 가상하다.

가을은 외롭고 쓸쓸함만을 주는 시간이 아니란다. 풍성한 열매도 있고 따스한 햇볕도 있다. 아스라이 하루를 밝히는 안개도 있고, 풍덩 빠지고 싶은 푸르디 푸른 하늘도 있으며 눈시울 붉히는 붉디붉은 노을도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이 가을을 외면하지 말거라. 그것이 눈부신 햇살로 만물을 영글게하고, 다가올 추위를 대비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는 이 가을에게 덜 미안한 일이다.

딸아ᆢ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 가을이 올 무렵에는 내 피리 소리에 너의 거문고 음을 얹어볼 날이 오길 바란다. 곡으로 '수연장지곡'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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