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
정민 지음 / 태학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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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암 박지원의 글맛을 만난다

글쓰기와 책읽기의 관계에 주목해 온 시간이 제법 된다그렇다고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고 그저 생각나면 끄적거리는 정도다하지만 좋은 글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그렇게 읽을 좋은 글은 주로 고전에서 찾는다그것도 우리 선조들의 글 속에서 말이다.

 

그런 연유로 주목하는 사람이 있다조선 후기를 살았던 박지원과 이덕무의 글들이다이들이 남긴 옛글 속에 담긴 글쓴이의 감정과 의지를 알아보고자 함이다그러나 여기에도 넘지못 할 벽이 있다그것은 한자라는 벽을 넘지 못하기에 번역자의 시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설흔이라는 작가와 정민 교수다설흔의 책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통해 설흔이라는 또 한사람의 독특한 글을 쓰는 이를 만났다설흔은 옛글 속의 행간을 읽으며 글쓴이들의 심사를 헤아려보는 작업을 주로하는 사람으로 매력적인 글을 남기고 있다소설가인 설흔에 비해 한문학을 전공한 정민 교수는 옛글에 보다 직접적이다그의 저작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에서 다시 정민교수의 시각을 통한 박지원을 만나는 계기가 된다이 책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연암 박지원이다정민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조선의 대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다양한 글을 만나는 기대감이 있다.

 

고전문장론에서는 옛사람들의 글 읽기와 그에 의거한 글쓰기에서 주목하는 점을 담았다. ‘소리내서 읽기,정보를 계열화하여 읽기의문을 품고 확산적으로 읽기글쓴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간을 읽기텍스트를 넘어서 읽기’ 등의 다섯 갈래의 독서방법론에 이어 고전문장론에서 법()의 문제와 문장 이론사의 세 유파에 관한 논의를 정리했다이를 온달전를 통해 편장자구 분석으로 옛글의 단단한 짜임새와 행간 읽기의 실제를 보여준다.

 

다음으로 박지원의 편에서는 그의 문장론과 독서론을 살펴보고잡록이나 서신 자료 중 독서 관련 글을 검토하고 있다글쓰기의 최고 수준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는 황금대기’, ‘홍덕보묘지명의 명사, ‘주공탑명’, 연암 척독 소품 등의 분석을 통해 연암 글의 행간을 읽어내고연암 박지원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과 그 글에 담긴 예술미를 살펴본다또한 뒤늦게 발굴된 편지글 모음인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연암선생서간첩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동안 박지원의 생애와 인적교류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검증을 해 본다.

 

정민 교수가 본 연암의 편지글의 일부인 척독은시치미 떼기다말꼬리 흐리기통렬하게 찌르기장황하게 늘어놓기 베껴서 짜깁기등으로 연암의 글쓰기의 특징을 밝힌다연암의 글 속에서 해학을 찾는 이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보여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연암 박지원조선후기 북학파의 한사람으로 청나라와의 교류에 대한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과 열하일기의 저자로 알려졌다이러한 단편적 이해를 넘어 연암이 남긴 글 속에 담긴 감정과 의지를 밝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정민 교수의 이 책을 통해 대문장가로 일컬어지는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란 무엇이고 글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 심사숙고하는 기회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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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하다'
깊고도 깊은 간절함이다. 일부러 드러내려 애쓰는 억지스러움이 아니라 번지듯 스며드는 자연러움에 기반한다. 이 은근함의 중심에는 상대를 향하는 내 마음의 근본이 담겨있다.

은근함은 모양, 색, 향기로 드러냄을 지향하는 꽃의 아직 다 피지 않은 상태에서 번져오는 그 멋과 다르지 않다. 바닷가를 떠나온 해국이 바다가 그리워 품었을 색깔과 향기가 햇살에 깨어나며 이슬에 배어나온다.

아침햇살이 가슴에 스미듯 전해지는 은근함은 서로가 서로를 향한 마음이 깊게 쌓여온 결과이다. 그대의 곱고 온기 가득한 은근함이 내 마음을 붉게 물들인다. 다ᆢ그대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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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
시공간을 초월한다. 물리적인 거리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간절함에 정성을 더하면 물리적 거리와는 상관없이 마음의 거리는 사라지는 것이다.

노을의 절정은 태양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그 순간에 있다. 이 순간에는 물리적 거리는 사라지면서 질적 변화의 순간을 맞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을만이 아니다. 사숙하는 스승이나 함께 공부하는 도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역사속에서 보면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은 제법 많으며 현대에도 여전히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마음의 거리가 제로가 되는 순간 순간이 쌓여 관계는 깊고 넓어지며 그 끝이 사라진다. 그대와 나, 그 순간들을 함께 공유해 왔다. 다ᆢ그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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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하다'
마음 상태의 반영이다. 알차고 실하며 야무진 마음이 상대를 향할때 내 마음 속으로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이와같다. 하여, 든든함은 허전하거나 두렵지 않고 굳세다.

해바라기가 나팔꽃이 해를 향하는 마음이 이와같을 것이다. 믿고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마음은 오직 한방향으로만 향한다. 그것이 사명이기에ᆢ

든든함은 시간이 겹으로 쌓이는 수고로움을 동반한다. 그 시간동안 그대를 향한 바라기가 오늘의 기적을 만들었다. 다 그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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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죽음, 정조의 국장
이현진 지음 / 글항아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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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 조선왕 정조

모든 죽음은 안타깝다살아생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와는 무관하게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것이다그렇다면 모든 죽음은 똑같은 무게를 지닐까살아생전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깊은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이는 무엇으로 나타날까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삶의 한 과정이지만 죽은 자를 기억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공식적으로는 신분의 차이가 없어진 현대사회에서도 죽음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생전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르다철저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는 생전 신분에 의해 죽음이후의 모습도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드러난다신분사회 최고정점에 있는 왕의 경우는 어떨까왕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신주가 종묘에 봉안되어 상장례가 끝나는 3년 동안의 기록을 통해 왕의 죽음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던 왕들의 죽음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조선왕 중에 그렇게 안타까운 죽음에 정조를 빼놓을 수 없다정조의 죽음을 두고 독살설이 제기되는 등 의문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왕의 죽음정조의 국장은 바로 조선 왕 정조의 죽음을 기록한 공식적인 기록인 의궤를 통해 국장의 전 과정을 살피고 있다.


저자가 서술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 의궤다의궤는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그 경과를 그림과 함께 기록한 일종의 공식적인 보고서다특히 흉례 관련 의궤가 많이 제작되었는데이는 곧 국왕의 장례식에 상당한 물량이 투입되고 엄숙한 의식이 행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를 근거로 삼아왕의 죽음정조의 국장에는 크게 두 가지 분류를 국왕의 죽음에 대해 살핀다우선, ‘1부 조선 왕실의 국장 형성과 국장 관련 문헌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상장례가 유교사회인 조선에 어떻게 정착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있다. ‘세종실록오례가 정리되면서부터 국조오례의이를 바탕으로 다시 국조속오례의에서 국조상례보편까지 상장례에 관한 변천과정도 살필 수 있다더불어 고려와 조선의 상장례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 이유도 알아볼 수 있다.


1부의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2부 정조의 국장 절차에서는 정조의 국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살핀다정조 사후 설치된 국장도감에서 국장에 대한 모든 일을 담당했다. ‘정조국장도감의궤에는 정조가 승하한 뒤 신주를 봉안하기까지의 국장에 관한 온갖 일이 다 기록되어 있다이를 바탕으로 햇수로 3,만 27개월에 걸친 정조의 장례절차를 따라가고 있다.


유교 사회 조선을 지탱해온 사상적 바탕엔 충과 효가 있다. “살아 계시면 예로 섬기고돌아가시면 예로 장사지내며예로 제사지낸다.” 이 충과 효의 집결은 오례로 나타나며 그 중심에 흉례가 있었다그렇기에 이 흉례의 과정을 살피면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 수 있다등장인물인물의 배치와 숫자를 비롯하여 수례를 비롯한 온갖 도구들이 구체적으로 실린 반차도도 함께 실려 있어 조선시대 한 장소에 와 있는 듯하다이 조선 왕실의 공식적 기록 속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그래서 저자의 말대로 죽음에 대한 석연치 않은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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