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 얼굴'
처음으로 숲으로난 길 위에 서던날, 이 바위를 지나고나선 더이상 숲으로 들지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뒷머리가 서늘해지는 오싹한 느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로도 여러번 바위를 지나 숲에 의지해 꽃들을 보러다녔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서늘한 냉기는 여전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혼자 낯선 숲을 방황하는 것처럼 다니면서도 이런 오싹한 느낌의 무서움은 없었는데ᆢ.

어느날 같은 길을 돌아나오다 보았다. 제법 큰 바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그 바위에 표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길에 익숙해지고서야 겨우 주변을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깊은 눈매, 뭉툭한 코, 다문 입술에 움푹패인 턱선까지 선명하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표정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많은 시간이 쌓이는 동안 눈과 비 그리고 바람의 손길에 다듬어졌을 표정이다. 

이후로는 이 숲길을 들어서는 마음은 달라졌다. 반갑다~ 큰바위 얼굴. 보일듯말듯한 나와 닮은 미소를 보고서야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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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6-06-21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좀 무서운데요...

무진無盡 2016-06-22 23:30   좋아요 0 | URL
이젠 다정합니다ᆢ^^
 

저녁꽃을 아침에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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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꽃 피다'

땅에서 온갖 꽃으로도 더이상 붉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하늘에 닿았나 보다.

점점더 붉어지는 가슴처럼 봄의 끝자락 노을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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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아초狼牙草'
가지마다 줄줄이 하늘 향해 꽃대를 올렸다. 꽃대마다 연분홍 꽃이 가득핀 나무는 틈을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다. 풀이 아닌데 풀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우리나라 남부의 낮은 지대나 해안가에 자라는 낙엽지는 작은키나무다. 낮은 지역의 따뜻한 곳에서 자란다.


꽃은 5~8월에 연한 적자색으로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꽃대에 모여 달린다. 꽃이 마치 촛대모양으로 위로 솟구쳐 올라간다.


낭아초(狼-이리 낭/牙-어금니 아/草-풀 초)는 '이리의 어금니 모양을 한 꽃'을 피운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방에서 선학초(仙鶴草)라고도 부르는 낭아초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꽃'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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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성왕 '백제의 칼'
-김현빈, 주류성출판사 시타델


잊혀진 역사 백제
망한 나라는 사라진다고 했던가. 유독 백제의 역사만 전하는 바가 많지 않다. 있는 역사적 기록이나 유물도 그 가치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백제 관련 책이 발간되면 늘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소설이라도 주목하고 찾는다.


소설 동성왕 '백제의 칼'은 충남 공주에 있는 무령왕릉의 주인공 무령왕의 아버지 동성왕의 이야기다.


"동성왕은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모대(牟大), 시호는 동성(東城)이다. 이름을 따서 모대왕(牟大王)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이름이 마모(摩牟)라고도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마제(麻帝)나 여대(餘大)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네이버)


"동성왕은 신라와의 동맹을 기초로 국방체제를 정비하여 고구려의 남하를 막아냈으며, 웅진 천도 이후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여 왕권을 강화했다."(네이버)


"동성왕은 대규모 토목사업과 거듭된 자연재해로 점차 민심을 잃었다. 동성왕은 가림성(加林城)을 쌓고 위사좌평인 백가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서 지키게 했다. 그러나 이에 불만을 품은 백가는 그해 겨울 사냥에 나선 동성왕을 자객을 시켜 죽이고 가림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동성왕이 죽은 뒤 둘째아들인 무령왕이 왕위를 이었다."(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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