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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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의 시각으로 본 사랑방정식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을 통해 작가의 이른 시기 작품을 접했다열 네 편의 단편은 '다 다르지만 모두 같음'으로 읽힌다여전히 갈 길이 멀다한강의 단편들을 통해 다소 멍한 머리와 답답한 가슴으로 작가가 맞았던 바람과 맞서보려고 한다날려버릴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단짝 친구 이정희와 서인주의 이야기다사고 후 칩거그 친구를 곁에서 돌보며 별을 공부한 삼촌과 그림을 그린다삼촌의 죽음혼란스러운 일상을 살아간다그러던 중 어느 겨울 폭설 속 미시령 고개에서 서인주가 돌연한 죽음을 맞는다이정희는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인주와 외삼촌의 그림과 자료가 남겨진 작업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낡은 사진 한 장과 그 뒤에 적힌 암호 같은 메모에 의지해 이정희는 상담소 소장 류인섭의 존재를 알게 된다정희는 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하고 서인주의 죽음을 신화화하고자 하는 미술평론가 강석원과 대립하며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찾아 나선다.

 

이정희서인주삼촌의 이야기가 다소 지리멸멸하게 이어지는 듯싶은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는 동안까지 이야기의 흐름을 좀처럼 잡아내기 힘들다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주 이야기 등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강석원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사랑했지만 가족으로도 연인으로도 나설 수 없었던 외삼촌의 죽음과 친구의 잠적 앞에서 망연자실했던 이정희는 갑작스런 친구 서인주의 죽음 앞에서 또다시 무력하게 선 채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겪게 된다나직하지만 근기 있는 호흡과 문장으로 미세한 숨결로 생을 이어가는 인물들을 그려간다.

 

미시령 고개에서의 돌연한 인주의 죽음죽기 직전까지 인주가 몰두했던 먹그림그날 새벽 인주가 폭설의 미시령 고개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그리고 인주도 외삼촌도 암묵적으로 발설하지 않았던 인주의 엄마 이동선 어느 것 하나 간단치가 않다서인주를 사랑하지만 늘 언저리에 머물렀던 강석원이 이 복잡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갈 키워드를 쥐고 있다.

 

나는 너를 몰랐다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하지만어쩌면 너도 나를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었을까내가 너를 몰랐던 것보다 더.”

삶 쪽으로 바람이 분다가라기어가라기어가라어떻게든지 가라.”

 

각자가 믿는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마치 격렬한 투쟁을 치르듯 온몸으로 부딪치고 상처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강석원을 매개로 하여 밝혀진 서인주의 이정희에 대한 사랑과 이정희의 서인주에 대한 사랑이 만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우리는 상대방을 얼마나 알고 있고 그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두 여자가 나눈 각기 다른 사랑의 변주가 버겁고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삶의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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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가고 날이 밝아오도록 가녀린 비가 함께했나 봅니다. 조심스럽게만 머물렀던 비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 비가 밤사이 일을 저질렀나 봅니다. 함지박에 노랑어리연을 쌍으로 키웠습니다. 집을 비운사이 꽃을 피워 비를 내린 그 하늘을 빤히 바라보겠지요. 비오는 내 뜰이 노랗게 물들어갈 것입니다.

내가 없어도 그 향기는 고스란히 남아 기다리고 있을테지요. 그 뜻이 이미 내게 닿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 노랗게 물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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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이 든다는 것'
정情이 든다는 것은 내 몸에 생채기를 쌓아가는 일이다. 더불어 나무에 핀 꽃이 떨어져 땅에서 두번 피고도 다시 지는 것을 애틋한 마음으로 끝까지 지겨보며 안아주는 일이다.

그렇게 세겨진 생채기는 애써 일궈온 내 사랑의 맛과 향기 그 사랑만이 가지는 멋을 담아 향기로 스며든다.

하여, 정情이 들었다는 것은 지난날의 생채기라는 꽃에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어 이제는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번지는 것임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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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샛노랗다. 이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이 생기지 않은 까닭은 자연의 색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강렬함이 고소함으로 담겼는지도 모르겠다. 진한 녹색으로 좁고 어두운 밭이랑이 땅콩꽃으로 인해 환하다.


'땅콩'은 남아메리카 열대지방이 원산지인 한해살이풀이다. 줄기가 옆으로 기면서 자라고, 거기에서 가지들이 나와 땅에 가깝게 누우면서 뻗는다. 독특하게 열매가 땅속에서 여문다.


꽃은 잎이 나오는 잎겨드랑이에서 금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피고 길이가 4㎝에 이르는 가느다란 꽃받침이 마치 꽃자루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1780년(정조 4)을 전후하여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덕무李德懋의 '앙엽기盎葉記'에 "낙화생의 모양은 누에와 비슷하다."라고 하여 이에 관한 기록이 처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식용유와 땅콩버터로 이용되며, 볶거나 소금에 절여 먹고 사탕이나 빵에 넣기도 한다.


지상에서 핀꽃이 지고난 후 땅속으로 들어가 꼬투리를 만들어 열매를 여물게 하는 것에서 미루어 땅 속에 대한 마음을 '그리움'이라는 꽃말에 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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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숲은 무겁다. 짙은 초록이 그렇고 습기 가득한 공기가 그렇고 발에 채이는 풀이 그렇고 걸음을 더디게하는 새들의 노래소리가 그렇다. 

하나. 그 모든 것을 뚫고 깊숙히 쏟아지는 햇살이 있어 무겁고 칙칙함은 한순간 무너진다. 그 감춤이 무너지는 곳에 생명의 환희가 있다.

사람 사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대가 내 삶의 숲에 쏟아지는 햇살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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