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산조기념관'

'가야금산조기념관'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맥을 이어온 김창조와 김죽파의 고향인 영암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김창조, 김죽파의 생애를 비롯하여 국악의 흐름 특히 산조 음악이 만들어지게된 배경 등을 연표, 그림과 도표, 영상자료, 음원, 악기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이해를 돕고 있다.


*김창조(1856~1919)
전라남도 영암 출생. 영암에 살다가 1917년경에 광주로 옮겨 살았다. 가야금·거문고·양금·젓대·퉁소·해금 등 모든 악기에 능했다. 19세 때부터 시나위 가락에 판소리가락을 도입하여 민속장단인 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휘모리장단에 짜넣어 산조의 틀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김죽파(1911∼1989. 가야금산조의 명인)
전라남도 영암 출생. 처음으로 가야금산조의 틀을 짰다고 전해지는 김창조의 손녀다. 1978년 67세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창조의 가락에 새 가락을 짜넣어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구성하였다.


ᆞ개관시간 : 10:00~17:00(매주 월요일 휴관)
ᆞ전남 영암군 영암읍 기찬랜드로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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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한강, 열림원


'채식주의자', '내 여자의 열매', '여수의 사랑', '바람이 분다, 가라', '소년이 온다', '흰'


작가 한강을 그의 소설을 통해 만나며 얻은 근원을 알 수 없는 갈증을 풀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 작가의 오래된 산문집을 찾았다.


무엇을 만나든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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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은 다 필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관계로부터 오는 외로움이나 슬픔, 절망, 아픔 등을 감추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때론, 지엄한 생존이 걸린 문제이며 목숨같은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겉모습만 화려한 듯 보이는 꽃이지만 그 꽃은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지 않는다. 안으로 쌓아둔 꿀이 있기에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고, 벌과 나비는 이것을 알기에 꽃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내실을 기하지 않고 밖으로 화려함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것을 열망하는만큼 청정한 마음자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며, 그토록 벗어나고자 하는 외로움이나 슬픔, 절망, 아픔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외로움을 감추려고 애써 치장했던 허세를 버리고 나니 청정하고 투명한 마음자리가 이제서야 보인다. 그곳이 그대와 내가 민낯으로 만나 열매를 맺을 인연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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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분주할 것도 없는 아침이다. 먼 산허리를 감싼 구름과 눈맞춤하고자 다소 긴 호흡이 필요하다. 

아득히 먼 것에 눈길이 더디가는 것은 그 거리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탓이리라. 구름에 눈길이 닿기전에 느긋한 발걸음을 옮긴다.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하루의 시작이니 더운 여름날의 하루가 이와 다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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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자리공'
어린 시절 추억이다. 천지 사물이 다 장난감이던 시절 나팔꽃과 함께 친구 옷에 물들이기 놀이의 도구였다. 잘 익은 열매를 한송이 따서 친구 등허리에 일격을 가하면 모양따라 시퍼런 물이 들었다. 한바탕 웃음으로 한나절 즐거웠던 기억 속 식물이다.


'미국자리공'은 1950년대 6·25전쟁 때 미국에서 들어온 귀화 식물로 전국 각지에 퍼져 있다. 주로 도시 주변 오염된 지역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은 6~9월에 붉은빛이 도는 흰색으로 핀다. 열매는 8~9월에 동글납작한 포도알처럼 다닥다닥 많이 달려 적자색으로 익는데 검은 씨가 1개씩 들어 있다.


강한 생명력으로 척박한 곳에서도 잘자라 생태계 교란식물로 분류되기도 했다. '환희', '소녀의 꿈'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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