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환한 밤에는謝湛軒'
어제밤 달이 환하여 비생(박제가)을 찾아갔다가 그와 함께 돌아왔더니 집을 지키고 있던 자가 고하기를, "누런 말을 탄 손님이 오셨는데 키가 크고 수염을 길었으며, 벽에다 무언가를 써놓고 가셨습니다."하더군요. 촛불을 켜고 비춰 보니 바로 그대의 글씨였습니다. 손님 온 것을 알려주는 학이 없어서 문설주에 봉자(鳳字, 凡鳥)를 써놓고 가시게 하다니! 유감입니다. 송구하고 송구합니다. 이후로는 달이 환한 밤에는 절대로 외출하지 않으렵니다.

*연암 박지원이 담헌 홍대용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마냥 부러운 벗의 사귐이다. "이후로는 달이 환한 밤에는 절대로 외출하지 않으렵니다." 벗을 대하는 마음이 이토록 깊다.

*백중의 달이 밝다. 연암의 달이나 지금 내 머리위의 달이나 매한가지인데 담헌의 달이 부러운건 왜일까? 보름달의 정취를 나눌 이가 있어 시공간을 넘어선 마음 나눔에 대한 열망을 기대한다.

나도 달에게 그 마음을 기댄다.
"이후로는 달이 환한 밤에는 절대로 외출하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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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난초'
붙잡힌 꿈일까.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겼다. 비록 몸은 붙박이로 태어났지만 날고 싶은 꿈이 커 하늘을 나는 잠자리를 닮았나 보다. 늘씬한 몸이 하늘로 곧 날아오를 듯하다.


같은 길을 늘상 가기에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적절한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들꽃을 만나는 방법 중 하나다. 여기에 지난번 봤던 때를 기억해 다시 찾아가는 것도 아름다운 꽃을 놓치지않고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만나는 꽃들이 많다.


'잠자리난초'는 햇살이 좋고 물살이 빠르지 않은 습지와 고산 혹은 낮은 산의 습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은 8월에 백색이고 줄기 윗부분에 꽃이 무리지어 핀다. 입술 모양의 꽃잎은 중앙에서 3개로 갈라지고 아래로는 길게 꼬리와 같은 것이 붙어 있다.


'잠자리난초'
-이고야


아침 이슬 살포시 
내려앉은 
희고 고운 네 품안
아기잠자리 한 마리
하늘하늘 날갯짓하듯
작은 바람에도 
설레는 네 마음
곧 내마음


이고야 시인의 "잠자리난초"라는 시다. 시인의 표현대로 백색의 날렵한 자태가 잠자리를 닮아 잠자리난초라 부른다. '숲속의 요정'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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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8-24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진님은 평소 글을 쓰시고꽃을 찾으시는지, 꽃을 보시고 난 후 글을 쓰시는지 궁금하네요^^: 매일 올라오는 글과 사진이 오래전에 준비된 것 같아요^^

무진無盡 2016-08-25 20:09   좋아요 1 | URL
꽃은 휴대폰으로 만나는 때 담아둡니다. 그 꽃을 날마다 하나씩 페이스북에 올리지요. 그렇게 올린 글을 다시 이곳에 올려 내 스스로 정리하고 찾아보기 쉽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 차이가 날대도 있습니다. 특히 달 사진과 관련된 글은 더 그렇지요.
 

화암사,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 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을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개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엇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사랑이 가득담긴 시다. 불명산 깊은 계곡 중턱에 자리잡아 세간의 주목을 덜 받고 있을때 안도현 시인의 이 시가 화암사와 세상 사이 다리를 놓은 셈이다.


화암사는 내게 이른 봄에 피는 얼레지다. 극락전(국보 316호), 우화루(보물 662호) 보다 꽃이 귀한 이른봄 얼레지로 먼저 알게된 절이다. 정작 얼레지 피는 봄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여름 끝자락에 그 화암사를 찾아간다.


숲길이 좋다. 사람의 손때를 덜탄듯 다소 거친 돌길이 절다운 절에 드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이든 다 품어줄듯 하면서도 오로지 자신만을 의지해야 하는 구도자의 삶처럼 녹녹치 않은 길이어서 더 좋다. 돌 몇개만 고르면 좋은 길에 쇠와 방부목으로 나무길을 내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우화루(雨花樓), 보물 662호로 경사면에 석축을 쌓고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마루를 내어 안마당을 더 넓게 보이도록 하고 대중이 모일 강당을 만들었다. '꽃비 내리는 누각'이라는 이름도 건축만큼 아름답다.


극락전(極樂殿), 국보 316호로 정면 3칸, 측면 3칸인 극락전은 다포양식의 맞배집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국 목조건축의 전형인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두 건축물 보다 속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좁은 터에 건물들이 어께를 걸고 있지만 욕심 부리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다. 거의 모든 절이 자본의 위력을 과시하느라 혈안이된 듯 보이는 이 시대에 그것과는 비켜선듯 참으로 단아한 절 맛을 지녔다.


안도현 시인이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말한 이유를 짐작하는 사이 얼굴에 미소가 절로 난다.


건물과 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늘공간이 좋아 오랫동안 처마끝에 시선이 머문다. 낙엽지는 때를 골라 다시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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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랑 2016-08-24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진 님 올려주신 글 덕에 시인의 글을 찾아보고, 잘~ 늙은 산사를 눈에 새기고 갑니다.

낡음을 고스란히 내보여서 오히려 좋네요.
단청으로 어색한 꽃단장을 해놓고 홀로 화려하게 버티고 있는 산사는 거부감이 생기는데, 불명산 화암사 그 정겨움을 찾아 꼭 가봐야겠어요.

오늘도 좋은 시간되세요 ^^

무진無盡 2016-08-24 12:11   좋아요 1 | URL
좋은 만남 되시길 바랍니다 ~^^
 

말복末伏이다. 이제 여름도 끝자락인게다. 몸부림치는 더위라고해도 이제 꺾인다는 것이며 가을이 코 앞에 왔음을 말한다. 오늘을 잘 건나면 여름한철 여물었다는 것이니 그것으로 위안 삼아도 좋을 것이다.

먼 산 아침 그림자 아득하고 해를 막아선 구름은 송곳으로 파고드는 햇볕 아래 나처럼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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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기다렸던 비인가.
광복절 애타는 마음을 아는듯 시원스럽게도 내린다.

갈라진 콩밭을 보며 애태우는 할머니의 손등에도, 고추 따고 깨 말리는 할아버지 밀집모자 위에도, 도시의 아스팔트 열기를 감당키 어려운 휴가나선 사람들 발등에도, 하늘 향한 나무의 품에도, 차별없이 내린다. 

요란한 소리가 더 반가운 지금 비는 이내 몸으로 파고들어 한낮 송곳같은 햇볕에 찔린 가슴까지 그 시원함으로 적신다.

지금 내리는 이 비는 두루두루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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