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을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서권기書卷氣가 배 속에 가득 차서 넘쳐나와야 시가 되고, 문자향文字香이 손가락에 들어가서 펼쳐 나와야 그림이 된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통감절요通鑑節要 반 권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함부로 칠언율시를 짓고, 해서楷書 한 줄도 쓸 수 없으면서, 함부로 난과 대를 그린다. 그러면서 스스로 고아한 사람의 깊은 운치라 여긴다. 일곱 글자에 운자를 달기만 하면 시라 말할 수 있는가? 먹물 종횡으로 갈기기만 하면 그림이라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우스운 일이 있다. 두 눈동자 반짝반짝하여 밤에 추호秋毫같이 작은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으면서 항상 안경을 낀채, 종일 배나 쓰다듬으며 앉아서 한 가지 일도 하지 않고 한 가지 직업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일체의 일에 대해 '서유기' '수호전' 등의 책을 인용하여 함부로 재단하며 스스로 옛 것에 박식하다고 자랑을 한다. 내 일찍이 이런 것을 비웃었다.

이 말을 내뱉자니 다른 사람을 거스르겠고, 내가 머금고 있자니 나를 거스르게 된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거스를지라도 끝내 이 말을 내뱉는다. 모름지기 각기 노력하여 이 병통을 면하면 다행이겠다.

*조선후기 매화화가로 유명했던 우봉又峯 조희룡趙熙龍(1789~1866)의 척독 중 하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양은 비슷하나 보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여 자신이 처한 조건이나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쭐한 마음가짐으로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이름값은 자신의 성찰에서 근거한 책임감일 것이다.

공인, 전문가,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다양한 활동이 많은 이들에게 폭력의 다른 이름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산부추'
길다란 꽃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솟더니 제 무개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 몸을 누인다. 밤하늘 불꽃처럼 터진 자잘한 보라색 꽃들이 모여 둥그스런 꽃봉우리를 만들었다. 길다란 꽃술이 제 키만큼이나 길어 보인다.


저만치 숲길에 고개 내민 모습이 오랜 기다림 끝에 지쳐버린 마음인양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모여 피어 화려함으로 무장하였으나 눈맞춤 하는동안 하나하나의 맛에 흠뻑 빠진다. 무엇이든 몰입하여 대상을 볼때 그 안에 감춰진 보물과 만나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산부추'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땅 속에 기둥처럼 비늘줄기가 달린다. 잎은 가늘고 길며 2~3개가 위로 퍼진다. 단면이 삼각형이고 표면은 초록색이다. 꽃줄기는 속이 비어 있다.


꽃은 9~10월에 홍자색으로 피는데 꽃줄기 끝에서 많은 꽃이 조밀하게 달려 핀다. 수술은 6개인데 꽃덮이보다 길고 수술대 사이에는 작은 돌기가 있으며 꽃밥은 자주색이다.


민마늘이라고도 하는 산부추는 채소 부추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보호', '신선'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침 안개 속을 거닐다.
토방에 닿았던 안개가 마루 깊숙히 들어왔다. 성큼 깊은 가을로 빠져들었다는 증거다.

오늘은 가을볕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누추한 내 방 태학산문선 109
허균 지음, 김풍기 옮김 / 태학사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균차별 없는 세상을 위하여

소설 홍길동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균(許筠, 1569~1618)은 자유분방한 삶파격적인 정치가사회모순을 비판한 문신 겸 소설가시대의 이단아 등으로 불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허균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시각은 그만큼 허균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못한 결과라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허균(許筠, 1569~1618)은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학산(鶴山등을 주로 사용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학가다문과에 급제했으며 여러 벼슬을 거치는 동안 부침이 많았다. 1617년에는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하며 대북파의 일원으로 왕의 신임을 받았으나광해군 때인 1618년에는 반란을 계획한 것으로 지목되어 처형당했다다양한 시문을 남겼으며 홍길동전과 호민론’, ‘탕무혁명론’, ‘유재론등의 개혁사상가의 면모를 보이는 글과 우리나라 식품사와 관련된 최초의 저술로 꼽히는 도문대작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이 책 누추한 내방'은 허균의 글들 중에서 척독을 따로 분류하고 자신의 일상과 벗들과의 교류 등을 주제로 한 산문읽기와 쓰기에 관련된 독서론 그리고 호민론과 같은 혁명적 사상가의 의식이 뚜렷하게 보이는 논설과 기타 다양한 글을 가로 뽑아 엮은 책이다.

 

허균이라고 하면 그동안 단순하게 소설 홍길동의 저자나 여류 문인 허난설헌의 동생파란만장한 삶을 산 불우한 선비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범위를 벗어나 허균이 직접 쓴 산문을 통해 그의 일상과 더불어 뚜렷한 미래지향적 가치관을 가진 개혁사상가의 삶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허균의 글은 언제나 변화무쌍하면서도 신선하여 좋다피를 토하는 혁명가의 모습이 들어있는가 하면 어느새 다정다감한 남편의 웃음이 흐르기도 하며샌님의 말투가 배어있는가 하면 벗을 불러 술을 마시는 풍류재자의 몸짓이 보이기도 한다."

 

허균의 글을 번역한 김풍기의 허균의 글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글이다허균의 글을 통해 허균이 가진 감정과 의지가 발현되고 때론 좌절되는 순간마다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를 보는 맛이 참으로 좋다이와 더불어 허균의 심정을 짐작하거나 이후 행적과 연결시키면서 자신의 독특한 시각으로 허균을 이야기하는 번역자 김풍기의 해설 또한 허균의 글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글이다두 글을 나란히 놓고 읽어가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다.

 

한 개인을 바라볼 때 다른 이들의 시각이 아닌 본인의 글 속에 담긴 감정과 의지를 바탕으로 알아가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허균의 삶을 그의 글을 통해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허균이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살아갈 세상을 꿈꾸며 바라보았을 하늘과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4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하늘이 다르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때를 놓치지 말 일이다.
어느달이고 보름달없는 달 없지만 밤 기온 서늘해지는 10월과 11월은 달보기 참으로 좋은 때다. 없는 벗이라도 불러 술잔 마주하고 푸른밤하늘 환하게 웃는 달과 눈맞춤하자.

모월당慕月堂에 달빛이 환하다.
만월은 차마 버거울까봐 미리 눈맞춤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