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데서 바람 불어 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굳이 정호승의 '풍경 달다'라는 시를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깊어가는 밤, 타박했던 겨울비 그치고 이내 바람이 분다. 서재 처마끝에 달린 풍경이 바람따라 흔들거리며 맑고 청아한 소리로 부른다. 혹 그믐달 비출까 싶어 격자문 열고 토방을 내려서는 찰라 쨍그랑 한번 더 풍경 소리 들린다. 서둘러 서툰마음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경종을 울리나 보다. 별 두개뿐인 하늘 한번 처다보고 쫒기듯이 격자문 걸어닫고 이내 방으로 들어왔다.

가물거리는 꿈 속 인듯 가만히 풍경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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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겨울 눈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눈내리는 대나무 사이를 걷고 싶은 까닭이 크다. 푸르고 곧은 것이 하얀 눈이 쌓이면 그 극명한 대비가 주는 청량함이 겨울을 느끼는 멋과 맛의 선두에 선다.


그뿐 아니라 그 단단한 대나무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쩍하니 벌어지는 소리와 모양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모습 중 하나다.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뎌러코 사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하노라"


고산 윤선도가 오우가에서 노래한 대나무다. 줄기가 매우 굵고 딱딱한데다 키가 큰 것은 비추어 나무이며 외떡잎식물이기에 부름켜가 없어 부피 자람을 못 하니 나이테가 생기지 않고, 봄 한철 후딱 한 번 크고는 자람을 끝내기에 '풀'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대나무는 나무인듯 풀인듯 묘한 식물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에 나는 대는 크게 보아 왕대, 솜대, 맹종죽 등이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그 대를 이용하여 곰방대, 대빗자루, 죽통, 대젓가락, 활, 대자, 주판, 대소쿠리, 대고리, 대바구니, 대광주리, 목침, 대삿갓, 담배통, 귀이개, 이쑤시개 등 생활용품뿐 아니라 퉁수, 피리, 대금과 같은 악기에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대나무 꽃은 종류에 따라 60년 마다 핀다고 하니 쉽게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꽃이 피고 나면 그 대밭의 대는 이내 다 죽고 만다고 한다. 이는 꽃이 피면 모죽母竹은 말라죽게 되고, 개화로 인하여 땅속줄기의 양분이 소모되어 다음해 발육되어야 할 죽아竹芽의 약 90%가 썩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조', '인내', '절개'라는 꽃말을 가졌다.


눈이 귀한 올 겨울 눈 쌓인 대밭을 걷는 것은 고사하고 푸른 댓잎에 하얀눈이 얹어진 모습도 구경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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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1-07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속이 비어서인지 무거운 눈이 쌓여도 잘 부러지지 않는 대나무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네요^^: 무진님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무진無盡 2017-01-08 21:16   좋아요 1 | URL
눈이 귀한 겨울입니다. 지난해 사진으로 아쉬움 달래고 있답니다 ^^
 
책, 조선 사람의 내면을 읽다 - 책이 읽은 사람, 사람이 읽은 책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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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람을 불러 세운다

간혹 서재를 두리번거리곤 한다책장에 꽂힌 책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그 책과 나와의 인연을 떠올리기도 하고책 속의 주인공들과 만나 책으로는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며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바라만 보기도 한다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은 편안하지고 가슴 가득 따스한 기운이 전해진다나름대로의 휴식을 취하는 방법으로는 그럴싸하니 좋은 시간이다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은 사람이 만든다책을 만드는 사람의 가치관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고스란히 반영되기 마련이다.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앞선 시대와 소통하는 것이다우리가 책에 집중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리라보통의 경우 책을 통해 저자와 내용을 보게 된다하지만 역으로 책이 만든 사람을 본다면 어떨까?


설흔의 조선 사람들의 내면을 읽다는 저자의 '책의 이면 책을 읽다 사람을 읽다'(2012. 역사의아침)의 개정판으로는 흡사 이러한 경험을 실제로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 인물과 특별한 책의 인연을 찾아 사료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엮어내 사람과 책 사이 소통을 매개로 사람들의 속내를 꺼내고 있다여기서 다루는 책으로는 등 인물이 직접 저술한 책도 있고 그가 평소에 가까이 두고 읽었던 책도 있다스물세 명의 사람들과 스물네 권의 책이 그 주인공으로 저자 설흔의 맛깔스런 이야기 구성이 돋보인다책과 사람의 상호작용이 참으로 신선한 접근이다.


근사록과 조광조능엄경과 심노승교우론과 홍대용 등과 같이 사람에게 적극적인 영향을 미쳤던 책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의 추적하고박제가와 북학의최부와 표해록서유구와 임원경제지 처럼 저자와 책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다이야기 속 주인공인를 통해 사람의 심사를 추론해 가고 있는 것과 한편으로 김시습과 매월당집이문건과 양아록신류와 북정일기소혜왕후 한씨와 내훈김양기와 단원풍속도첩김정호와 청구도와 같이 책을 저술한 사람이나 그 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책과 관련되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흔적을 찾아본다.


서재 책장에 가만히 있는 책들이 그 책의 주인인 나를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특별히 아끼는 책이 있다면 그 책과 주인 사이는 따스한 공기가 흐를 것이지만 존재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책들은 무슨 시선으로 바라볼지 의문이다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취향과 가치관을 알 수 있다고 한다내가 선택한 책이기에 내 생각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그 책들의 모음은 결국 내 자신의 관심과 생각을 대변하고 있을 것이다다시 책장을 둘러보며 나의 관심과 생각을 반영한 책을 통해 자신을 볼 시간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와같은 저자의 행간읽기를 통한 사람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매개하는 방식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기에 역사인물과 시대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내가 책을 본다라고만 생각하며 책을 대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역으로 책이 사람을 본다는 시각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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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하루를 지우고 
그 자리에 
그대 생각 넣을 수 있어 
비 오는 날 저녁을 좋아합니다 
그리움 담고사는 나는... "


*윤보영 시인의 '가슴에 내리는 비'라는 시의 일부다. 이 시는 "내리는 비에는/옷이 젖지만/쏟아지는 그리움에는/마음이 젖는군요/벗을 수도 없고/말릴 수도 없고"라며 처절하게 열어간다. 그리움에 젖지도 못하는 마음이 내리는 비에 기대어 나도 모르게 이끌려 가고만다. 시의 힘인지 비의 끌림인지도 분간할 수 없다.


스스로 진 멍에가 버겁고,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서 더 무거운 시기를 건넌다. 코끝이 시큰할 정도로 추워서 억지로 마알개진 정신으로 건너야할 이 겨울에 봄날 아지랑이처럼 몽개몽개 피어나는 비라니 도대체 어쩌자고 이럴까 싶다.


비로 내려 가벼워진 구름이 산을 넘어와 안개로 변하더니 헐거워진 옷깃 사이로 자꾸만 파고 든다. 속절없이 당할 판이다. 별수없이 옷깃을 여미고 마음깃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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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 먼 산들이 모여 골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를 안개가 드리웠다. 화순 백아산에서 남쪽을 바라본다. 그 품이 넉넉하고 아늑하다.

어쩌면 산에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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