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릅나무'
툭~!!! 찬바람 맞으며 애써 키워낸 새순을 채 피기도 전에 툭 하고 따버릴때 두릅이 느낄 암담함 보다는 특유의 향과 맛이주는 강렬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따고야 만다. 두릅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늘 가시로 무장하고서는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지만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일부를 내어줌으로써 전체를 지키고 몸집을 부풀릴 수 있다는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다르지 않다.


두릅은 땅두릅과 나무두릅이 있다. 땅두릅은 4∼5월에 돋아나는 새순을 땅을 파서 잘라낸 것이고, 나무두릅은 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한다. 두릅나무는 주로 양지바른 산이나 들에서 자란다. 줄기에 가시가 있다. 꽃은 8~9월에 흰색으로 핀다는데 주목하지 못하여 기억에 없다. 올해는 그 꽃도 봐야겠다.


대부분의 동식물은 인간과의 관계로 이미지를 설정한다. 거의 모든 것을 주는 두릅나무의 '애절', '희생'이라는 꽃말은 그런 의미에서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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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의 시 '논개'의 일부다. '의기' 논개의 그 의암에 올라 남강에 드리운 초승달을 본다. 나라와 내 이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을 다시 생각한다. 숨가프게 달려와 여전히 광장에서 나라와 내 이웃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들이 있어 정유년 한해는 살아볼만한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어두어지는 서쪽 하늘에 아스라이 뜬 달이 남강에 드리워 물결따라 일렁인다. 하늘에 하나 강물에 또 하나다. 바라보는 모든 이의 눈에도 담겼을테니 천강에 드리운 달이겠다.


2017년 정유년 첫날,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 사람들 가슴에 담긴 이를 만나 위안받고 오는 길 위에 다시 시작하는 달이 함께 한다. 사람의 달과 하늘의 달을 한꺼번에 품은 가슴 뿌듯한 정유년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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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날은 밝았고 밝아온 그 시간의 중심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어제도 그래왔고 오늘도 그 길 위에 서 있으며 내일이라고 다르지 않으리라. 어설픈 마음이 애써 구분하고 구분한 그 틈으로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댓잎에 앉은 서리는 자신을 사라지게할 햇볕에 반짝인다. 오늘을 사는 일도 자신을 사라지게할 시간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끝과 시작이 따로 있지 않다.
여전히 그 길 위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뭇사람들의 어께에 기대어 함께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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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꽃으아리'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첫눈맞춤을 하고 나면 여기저기서 보아달라는 듯 불쑥불쑥 고개를 드리밀고 나온다. 심지어 출퇴근길 운전하면서도 눈맞춤할 수 있다.


사진으로만 애를 태우던 녀석이 어두워져가는 숲에서 문득 눈앞에 고개를 내민다. 으아!. 여태 저기에서 나를 기다리다 곱던 꽃밭침잎에 눈물자국까지 남았구나.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 꽃받침잎이다. 이 커다란 꽃받침잎이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꽃은 5~6월에 피고 백색 또는 연한 자주색이고 가지 끝에 1개씩 달리며 꽃받침잎은 6-8개이고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서 끝이 뾰족하다. 야생에서는 아직 하얀색 이외의 다른 색은 만나지 못했다. 열매는 둥근 모양으로 익는데 암술대가 긴 꼬리 모양으로 남아 있다.


큰꽃으아리라는 이름은 납작하게 펴지는 으아리 종류에서 그 크기가 가장 커서 쉽게 구별할 수 있어 우리말 이름이 큰꽃으아리라고 한다. 이 꽃을 처음보고 으아리큰꽃으로 불렀다가 무안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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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로부터 자발적인 단절를 선택하고 스스로를 지키고자 애썼던 지난 몇 년이었다. 시간이 쌓이니 내성도 생기고 어설픈 몸짓일지라도 다시 밖으로 향하고 있음을 스스로가 안다. 

쌓인 시간 속에는 옮긴 터전 주변의 우리 들꽃이 있었고 우리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연장이 있었고 입술 터지지 않을 정도로 단련된 피리 리드가 있었다. 또하나 절대적 도피처이자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되었던 책이 있었다.

날을 세우고 벽으로 둘러싸고 안으로 움츠러든다고 자신을 지킬 수 없음을 안다. 달리 방법이 없어 밖으로 모난 가시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제 그 드러낸 가시에 스스로를 찌르지 않을 정도로 무디어졌다.

이 겨울이 지나면 움틀 새싹처럼 서툰 못짓, 어눌한 말일지라도 다시 세상으로 향한다. 그 세상은 그리 넓을 필요는 없다. 감당할 범위에서 깊어지고자 한다. 그렇다고 일상에 특별한 변화를 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들꽃을 찾을 것이고 공연장을 기웃거릴 것이며 피리를 불 것이고 책은 내 손에 있을 것이다.

하여, 아지랑이 피어오를 따뜻한 봄을 반겨 맞이하기 위해 겨울의 차가움을 누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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