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뿌연 미세먼지는 바늘틈도 없이 하늘을 덮고 강렬한 태양마져 사라지게했다. 차갑지도 못한 기온으로 오히려 낯선 시간이 더 깊고 무겁게 땅바닥까지 내려앉은 날 빼꼼히 스며든다.

얼마만에 찾은 곳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곳에 서서 따스한 세상을 꿈꾸었던 이들이 있어다. 한명은 국민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며 잘나는가 싶더니 들리는 소문도 없이 종적이 묘연하다. 다른 한명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젊디젊은 나이에 하늘에 별이 되었다. 그 중 한명이었던 이는 긴 세월동안 침묵 속에 살며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그때도 의암에 올랐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성벽 사이로 흐르는 남강의 끝이 어디인가 남해 바다쪽을 바라보며 삼천포 항구에서 해상국립공원의 한 축인 여수로 갈 여정을 생각했으리라.


문득 진주성 그곳에 올라 초승달을 바라보는 동안 엄습하던 알 수 없는 기운이 며칠이 지난 이제서야 짐작된다. 안개인 듯한 미세먼지로 날이 을씨년스러우니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오늘밤 달이나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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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림의 시전집2 "쓰러진 자의 꿈"에 실린 시 '나목裸木'의 일부다.

안개가 제 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멈춰선 시간, 바쁜 출근길임에도 기어이 차를 세우고 만다. 20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온 느티나무 한그루 우연히 같은 시간대를 사는 인연으로 아침저녁 눈맞춤을 한다.

나무는 맨몸으로 이 거친 시간을 견디는 일을 나이테로 켜켜이 쌓아갈 것이다. 알고 있을까. 사계절 눈으로, 손으로, 마음으로 곁을 서성이며 기대어 마주한 시간이 있어 이제 조금은 더 헐거워진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시간을 앞질러가기라도 하듯 달리는 차를 멈춘다. 이 짧은 멈춤을 할 수 있는 내가 좋다. 다 그대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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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호의 기회다. 납매를 선두로 복수초에 노루귀까지 여기저기 꽃소식 들리고 마침 눈까지 내려 설중에 꽃을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슬그머니 번지는 미소를 애써 감추고 잔설이 제법 남아있는 계곡으로 들어선다.


나만의 계곡 문지기인 길마가지나무가 향기로 눈인사 건네고, 죽은 오동나무를 쪼는 새소리도 반갑다. 개운함을 전하는 차가운 기운이 몸으로 파고들지만 산을 넘어오는 햇살이 있어 춥지만은 않다.


몸을 낮추고 나뭇잎과 눈쌓인 계곡에 눈이 익숙하도록 기다리며 고개를 내밀고 있을 노루귀를 찾는 눈동자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곳저곳 살피는데 시간이 꽤 지났어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가 아닌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너무도 익숙한 숲, 그 자리가 맞는데도 안보인다. 그렇게 한시간을 두리번거리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복수초 군락지를 가서도 만나지 못하고 온 후라서 그 아쉬움은 더 크다. 지난해는 이곳에서 설중 노루귀와 눈맞춤한 행운을 누렸는데 올해는 때가 아닌 모양이다. 느긋하게 기다려보자.


'꽃이 이끌어주거나 허락해야만 눈맞춤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숲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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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의 시 '저문강에 삽을 씻고' 전문이다. 날마다 건너다니는 다리에 서서 지는 해를 보다. 문득 생각나는 시다.


무엇이 발길을 멈추게 했는지 모른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모든 것을 되도록이면 자세하게 눈맞춤하고자 애쓰며 오가는 길인데도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그 속에 내가 느끼는 희노애낙애오욕이 다 담겨 있어 문득문득 눈시울을 붉히게도 하고 발걸음 멈춰 한없이 바라보게도 한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꾹꾹 눌러놓은 속내가 슬그머니 비집고 나와 주책없이 민망함을 보이지만 늘 혼자인 시간이니 누구 눈치볼 일도 없어 그냥 그대로 둔다. 그렇게 또 한차례 뒤집힌 속내가 흘러 넘치고 나면 맑고 밝아서 더 깊어진 따스함이 스며든 스스로의 가슴을 품고 일상으로 걸어갈 수 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잊혀져가는 담배 연기가 손에 잡힐 듯 눈 앞에 아른거린다. 일어나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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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달에 바짝 붙어 가시버시하던 개밥바라기별이 오늘은 길을 앞서고 있다. 그렇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함께가고 때론 나란히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순리라는 것을 몸소 말해준다.

채 어둠이 몰려오기 전 피어나는 듯 차오르는 초승달이 참으로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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