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지나고 섣달 보름까지 건너온지라 날이 제법 길어졌다. 늘 같은 시간 같은 곳을 바라보니 하루를 건너온 해가 눈맞춤하는 모습이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해가 산을 넘어가는 위치와 시간이 다르고 전해지는 느낌이 날마다 다르다.

내게 날이 길어진다는 것은 긴 겨울을 건너오는 동안 내내 기다려온 때가 비로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근 후 꽃나들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여, 요사이 출퇴근 시간이면 지나는 곳마다 자꾸 눈은 숲과 계곡의 언저리에서 멈추곤 한다. 멈춘 시선에 숨기기 어려운 속내가 피어난다.

저기 길마가지나무 꽃 피어 입구를 지키는 계곡 오동나무 지나 굴참나무 아래 노루귀 올라올 것이고, 그 옆에 깽깽이풀 붉은 새싹도 곧 볼 수 있을 것이다. 건너편 산등성이 돌밭을 지나서 상수리나무 아래는 복수초의 노란 등불로 숲이다 환해질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이미 꽃과 눈맞춤하는거나 다름 없다. 

오늘은 해의 걸음걸이를 더디게 하는 서쪽하늘이 유난히 높고 깊다. 성급한 마음에 꽃나들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벙그러지는 미소가 꼭 저 하늘 닮았다 싶어 자꾸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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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가는 길'
오랜 기억을 되짚어 그 길을 걷고 싶었다. 다산이 혜장선사와 유불儒佛의 틀에서 벗어난 마음을 나누었던 길이고, 바다를 건너온 제주도 봄볕이 붉디붉은 그 마음을 동백으로 피었던 길이다.


"한 세월 앞서
초당 선비가 갔던 길
뒷숲을 질러 백련사 법당까지 그 소롯길 걸어 보셨나요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 째 지천으로 깔린 꽃송아리들
함부로 밟을 수 없었음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송수권의 시 '백련사 동백꽃' 중 일부다. 모가지째 떨구는 동백은 아직 피지 않았다. 게으른 탐방객에게 한꺼번에 다 보여줄 때가 아닌 것이리라.


뱩련사 아름드리 동백나무숲 푸른 그늘은 시린 정신으로 열반의 문을 열었던 선사들의 넋도, 남도땅 끝자락까지 봄마중 온 이들의 상처투성이로 붉어진 마음도 품었을 것이다.


하여, 백련사 동백숲에 들 요량이라면 세상과 스스로를 향해 갑옷으로 무장했던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동백의 그 핏빛 붉음으로 물들일 준비를 마쳐야 하리라.


봄이 깊어질 무렵 그 동백꽃 "생꽃으로 뚝뚝 모가지 째 지천으로 깔린 꽃송아리들" 보러 다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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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 하늘빛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갇힌듯 하지만 그렇다고 답답함까지는 몰아가지 않으니 움츠린 가슴을 조금 펴고 평온함을 불러오기에 적당하다. 이 또한 상대적이라 여전히 지금 이 하늘빛 닮은 얼굴들은 땅만 보고 걷는다.

쉬어 가도 버거운 산길은 홀로 걷다 툭 터지듯 뱉은 숨 끝자락에서 눈맞춤 했다. 팔 벌려 겨우 닿을듯 말듯 지근거리지만 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라 마음과는 달리 몸은 주춤거린다. 서걱거리는 겨울 숲의 마른 기운이 애써 키워가는 봄이 여기에 담겨 초록의 꿈을 꾸고 있으리라.

실바람도 멈춘 하늘은 해마져 삼키고 고요에 겨워 잿빛으로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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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잠잠하게 다독거려서일까 분주한 아침시간 마음이 몸보다 느려졌다. 산을 넘는 해와 찰라의 눈맞춤으로 깊은 하늘을 품는다.

깊다. 청연靑燕의 뜻을 품고 한번 만이라도 날자꾸나. 고요 속 하늘바다로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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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의 표정
정민 엮고 지음 / 열림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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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와당

백제의 미소 - '마애여래삼존상', 신라의 미소 - '얼굴무늬 수막새이는 사람이 만든 인공적인 조형물에 담은 표정을 읽어내 집단이나 국가의 상징적인 이미지로 삼는 대표적인 유물들이다천 년을 훌쩍 넘는 시간동안 묻혀 있다 다시 태어나 꽃을 피운 것으로 이 중에서 신라의 미소로 표현되는 '얼굴무늬 수막새'는 와당이다.

 

와당瓦當은 기와지붕의 암키와와 수키와의 끝을 마감하는 장식으로 암막새와 수막새를 포함한다그저 기능적인 막음새에 불과하던 와당은 주술적 의미가 부여되고 아름다움까지 추구하면서 중국의 전국시대에 이르러 문양과 글자를 새겨 넣은 예술작품으로 본격화되었다고 한다이 와당에 세겨진 문양으로는 각기 시대를 반영하여 당초문인동문포도문보상화문 등의 식물문양과 용기린앵무비천 등의 동물문양이 있다.

 

정민 교수의 '와당의 표정은 중국 고대 전국시대의 기원전 400년경부터 당나라시대까지일천 년 중국 와당들 가운데 특별히 아름다운 것만을 추려 엮은 책이다이 책에서 중국 와당을 반원형동물과 인간,구름·꽃 무늬길상문 등으로 분류하여 와당에 담겨진 문양과 문자에서 읽혀지는 의미와 느낌을 자신만의 독특한 글로 공감을 불러오고 있다이 와당에는 두꺼비와 사슴과 표범과 학 같은 평범한 동물들부터주작과 백호와 청룡과 현무 등 상상 속의 동물들그리고 여러 표정의 얼굴을 한 와당들뿐 아니라 다양한 구름의 모양과 꽃문양교훈과 축원의 의미 등을 담은 글자들을 표현한 길상문이 포함되어 있다.

 

다분히 이미지화 한 와당에 담긴 각종 문양과 글자는 무엇이 무엇인지 언 듯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이런 와당이 정민 교수의 설명을 바탕으로 다시 볼 때는 와당에 담긴 이미지가 해바라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꽃이 되고 원숭이와 호랑이도 된다이처럼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다가 와 보다 구체적인 와당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여천무극與天無極 하늘과 더불어 끝이 없도록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어디에 있나./믿었던 사람들 돌아보면 곁에 없고,/앞에서 웃던 이들/돌아서서 나를 헐뜯는다./마음 다칠 것 없다./아득한 그때에도 저 하늘이 저리 푸르렀듯이,/늘 푸른 마음으로 살고 싶다.(본문 269p)

 

암호문 같이 세겨 놓은 문양과 글씨를 통해 와당에 담고자 했던 사람들의 소망을 하나 둘 알아가며 길흉화복에 대한 사람들의 근본적 마음이 수천 년 전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별 다르지 않음을 확인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와당이 있을 것이다언젠가 우리의 와당으로도 이런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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