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立春'
거친 숨 몰아쉬며 바위끝에 주저 앉은다. 고요ᆞ정적, 막혔던 가슴이 터지며 시원함이 심장으로 깊숙히 파고든다. 그러나 시원함을 음미하는 것은 언제나 가슴보다 눈이 먼저다. 아스라히 먼 산은 구름다리를 놓고 건너오라는 듯 미소 짓는다. 마음 같아선 몇걸음이면 닿겠다. 날개를 잃어버린 이들이 여기서 비로소 다시 꿈을 꾼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대문에 붙이지 못한 춘방春榜을 가슴에 담는다.

만덕산 할미봉에 올라 남서쪽을 바라보며 동에서 백아산, 모후산, 무등산, 병풍산, 용구산, 삼인산, 추월산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반겨 손짓한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바람이 붙잡아둔 구름 사이로 땅의 봄맞이와 눈맞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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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매探梅' 2

크고 작은 가지마다 휘도록 눈이 쌓였건만
따뜻함을 알아차려 차례대로 피어나네
옥골玉骨의 곧은 혼은 비록 말이 없어도
남쪽 가지 봄뜻 알고 먼저 꽃망울 틔우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시 탐매探梅 중 한 수다. 탐매의 시작은 눈쌓인 길을 떠나 남쪽으로 길을 나서면서부터다. 

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눈쌓인 추위에 매화를 찾아 그 아름다움과 맑은 향기를 즐기는 것을 탐매探梅 또는 심매尋梅라 하고, 봄기운이 더 완연해진 후 만발한 매화를 찾아 감상하는 것은 관매觀梅 또는 상매賞梅라 했다.

하여, 관매觀梅나 상매賞梅는 이미 그 맑은 기운을 잃어버린 후이고 더욱 인파 속 묻혀버린 매화는 향기마져 흐트러져버린 까닭에 그 맛과 멋이 덜하다. 물론 이 또한 다 취향이니 더 무엇을 이르랴.

무릇, 매화를 보고자 함은 추위 속에서 그 향기 더욱 맑고 그윽해지는 탐매探梅가 제격이다. 

남쪽 가지 봄뜻 알고 먼저 꽃망울 틔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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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2-04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정기 등산길... 매화가 피었더군요... 전 매화를 정말 좋아한답니다... 특히 고매... ^^

무진無盡 2017-02-05 13:37   좋아요 0 | URL
이제 때 되었으니 꽃과 향기 많이 누리세요~^^
 

여천무극與天無極 하늘과 더불어 끝이 없도록

세상에 변치 않는 것이 어디에 있나.
믿었던 사람들 돌아보면 곁에 없고,
앞에서 웃던 이들 돌아서서 나를 헐뜯는다.
마음 다칠 것 없다.
아득한 그때에도 저 하늘이 저리 푸르렀듯이,
늘 푸른 마음으로 살고 싶다.

*정민 교수의 '와당의 표정'에 나오는 글과 사진이다. 2천 년 전에 사람들을 품었던 집의 기와지붕 끝자락에 걸쳐있던 수막새인 와당에 세겨진 길상문이다.

땅에 묻혔다가 다시 햇볕아래 얼굴을 내밀었다. 무엇을 전하고 싶었기에 그토록 긴 잠에서 깨어났을까. 눈 뜬 세상이라고 깨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뱉지 못하는 말이 가슴에 쌓이고 쌓여 넘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으랴.

마음 다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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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도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버리는 초생달은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가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에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女王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 등에 정든 임 그리워 잠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 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들은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생달 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치어다 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듯하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도향의 '그믐달'이다. 그믐달을 보는 심회心懷가 나와 다르지 않다. 그리 이른 시간이 아님에도 요사이 이 달을 보는 맛에 서둘러 토방을 내려선다. 아직은 쌓인 눈 사이로 열어둔 길을 따라 마당 한가운데 서서 나지막이 떠 있는 달을 바라본다. 겨울 아침의 알싸한 공기가 엄습하는 시간 달과의 눈맞춤은 그 무엇보다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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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
늘푸른 잎으로 시간을 살며 특별히 주목받지 않고서도 잘 자란다. 가지에서 공기뿌리가 나와 암석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 의지하며 살아야하지만 그로인해 버티는 힘으로 작용되기도 하여 돌담장에 심기도 한다.


가을에 핀다는 꽃을 볼 기회가 없다. 잎에 묻히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분명 꽃이 피어 열매를 맺는다. 남해바다 섬마을의 돌담길에서 눈맞춤한 이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래된 것으로는 고창 선운사 인근 선운천 건너편에 천연기념물 367호로 지정된 송악 한 그루가 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다. 이 송악은 굵기는 물론 나무 길이와 나이까지 모두 우리나라 최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부지방에서는 소가 뜯어먹어 소밥이라고도 한다. '신뢰', '우정'이라는 꽃말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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