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갔다. 뽀송뽀송한 솜털을 세우고 세상구경 나올 그 녀석을 보기 위함이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길마가지 나무는 여전히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반긴다. 어제밤 흩날리던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그 흔한 동물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에 당도하여 앉아 가만히 눈이 겨울숲에 익숙하도록 기다리며 반가운 녀석이 보일까 두리번거리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는듯 하나도 볼 수가 없다. 노루귀하고 숨바꼭질하는 것이 이번이 여섯번째다.


잔설이 남아 겨울 숲의 운치를 더한다. 요즘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임을 여실히 체험하는 때라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숲을 나오는 길 그래도 허전함은 숨길 수 없다. 보여줄 때까지 다시 오면 되지 뭐ᆢ.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대길일리大吉日利'

크게 길하고 날마다 좋은 일만.
참 좋은 덕담이다.
사방으로 피어나는 구름처럼
내 앞길에 기쁨이 넘치기를 바란다.

*정민 교수의 '와당의 표정'에 실린 와당 무늬와 글이다. 이천 년 전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와당을 통해 지금 우리들의 마음을 엿본다.

입춘立春에 벽사와 길상을 담은 입춘축立春祝을 써 대문에 붙이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해의 시작을 준비한다. 봄을 맞이하는 마음에 서로에게 덕담을 나누는 이유도 다 '대길일리大吉日利'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입춘에 대지를 깨우는 반가운 비가 온다. 땅에도 사람의 마음에도 두꺼웠던 겨울의 닫힌 문을 열라는 뜻이리라. 입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한해를 채워간다면 '대길일리大吉日利'의 그 뜻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나 2017-02-13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한주의 시작을 좋은 문양과 글귀로 시작하네요~♥

무진無盡 2017-02-13 21:41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남덕현, 빨간소금

말이나 글이 힘을 얻으려면 그 말이나 글을 하거나 쓴 이의 마음과 듣거나 읽는 이의 마음이 만나 공감을 일으켰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남덕현의 글은 힘이 쎄다.

"나뭇잎 하나 지는 까닭을 모르고서도 가을이면 단풍이 황홀하듯 인생사 한 치 앞을 모르고서도 삶은 황홀하다."

'모르고서도'에 방점을 찍는다. 모르기에 가능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삶의 절망도 모르기에 겪게되지만 희망 또한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절망과 희망은 그 '모르고서도'를 어떤 마음가짐을 대하는가의 차이일뿐.

주문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손에 들어왔다. 첫장을 펼치기도 전에 표지 날개에 놓인 글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긴 기다림이 큰 기대감으로 펼쳐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오는 달 밤 불이 타오른다. 달집태우기다. 남원 창극 보러가는 길에 만났다. 논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하늘 가운데 떠오른 달을 맞이한다.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떠오를 때 생솔가지 등을 쌓아올린 무더기에 불을 질러 태우며 노는 세시풍속이다.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새해, 질병도 근심도 없는 밝은 새해를 맞는다는 사람들의 꿈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 달집태우기이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을 살라버리는 정화의 상징이다. 불타오르는 달집 주변을 돌며 두손 모아 합장하며 구름 사이를 건너온 달과 눈맞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볕 좋은 점심시간을 누리는 방법 중 하나다. 연휴와 바쁜 일상으로 오랜만에 찾은 그곳에 반가운 벗이 찾아왔다. 빽빽거리는 부자연스러운 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반복해서 듣다보면 내성이 생기는 걸까. 짧은 호흡이 더 짧아진 것을 확인하며 게으름을 탓해보지만 그것도 다 나름대로 누리는 일이기에 싫지만은 않다.


"시언지가영언 詩言志歌永言"
시란 마음속에 있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는 말을 길게 읊조리는(長吟) 것이다.


*이는 옛날사람 순舜임금이 했던 말에서 유래한다. "기夔야, 너에게 명하노니 전악典樂을 맡아 자제들을 가르치되 강직하면서도 온화하게 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게 하며, 굳세면서도 거칠지 않게 하고, 간략하면서도 오만하지 않게 하라. 시란 마음속에 있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란 말을 길게 읊조리는 것이며, 소리란 가락에 의지하며, 음률이란 소리가 조화를 이룬 것이다. 팔음이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음계를 빼앗지 않게 하면, 신과 사람도 이로써 조화를 이룰 것이다."


이로부터 "음악이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은 '시언지 가영언'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지극히 펑범한 사람으로 그 지극한 경지를 알지는 못한다. 더욱이 시가詩歌의 근처도 가본 일이 없다. 하여, 부르지 못하니 듣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흉내라도 내보고자 마음을 내어보는 것이다.


날도 풀리고 새해도 지났으니 다시 시작해 보자. 혹, 어쩌다보면 율려律呂의 12음률音律도 알아가는 날이 오지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